[32] 32화.
“약간 명단에 수정이 있었어요. 갑작스레 강사들이 바뀌는 바람에…….”
“들었습니다. 괜찮아요. 맥스스쿨과의 계약 사항 전부 확인하고 동의는 다 받으신 거죠?”
전속 강사들의 경우 우리 쪽 온라인 강의에 참여하는 것이 계약 위반일 수 있었다.
실강과 인강의 차이. 사실 인강이 유행을 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고 이맘때쯤 이런저런 소송들이 많았기에 조심하려는 것.
“물론이죠. 다행히 이번에 이쪽으로 내려온 선생님들이 전부 현재 맥스스쿨 1타들은 아니셔요. 다행이 아닌가요? 호호.”
그녀가 웃는다. 시선을 피해야 했다.
나도 왠지 모르겠는데 전생보다 여성을 대할 때 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아무 말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다시 책상 위에 놓인 커피만 보고 말했다. 얼마나 찌질해 보일까 생각하며.
“아, 아닙니다. 명단에 있는 선생님들 이번 주 주말부터 스케줄대로 촬영 시작할게요. 일단 한 달 치 촬영이 전부 끝나고 업로드하는 대로 홍보와 함께 론칭할 예정입니다. 수익은 신성 학원, 성공 학원이 각각 25%씩, 거기에 선생님들이 나머지에서 운영비 20% 제한 30%씩 가져가는 걸로 계약서 준비하겠……. 아, 이건 아직 미정입니다만…….”
실수다. 아직 비율은 신성 학원에서만 합의되고 이쪽은 아니었는데…….
김윤지 원장의 표정을 살폈지만 애매했다. 동의인지, 아니면 거절인지. 기분이 상한 건지, 아니면 괜찮은 건지.
침묵의 시간.
“저……. 괜찮으신 가요?”
“학원이 너무 크고 강사가 너무 작아요.”
역시나 거절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놀란 것은 강사들이 계약서 찍을 때 나와야 할 소리가 김윤지 원장으로부터 나왔단 것이었다.
그녀의 배려심일까.
역시나 운영비가 따로 있는데 학원 몫이 너무 컸나?
나도 그 부분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강사 입장에서는 실강 5 대 5에서 3 대 7이 기본 비율이었는데, 현안대로 간다면 인강은 무조건 3 대 7이 된다.
우수한 강사를 초빙하기 위해서는 강사 몫을 늘려야 하는데 거기에 역행하는 제안. 하지만 얽혀 있는 학원이 다수다 보니 이렇게 나온 것이었다.
“우리나 신성은 운영에도 별 도움이 되질 않아요. 강사 수급만 도와주는 것이고, 홍보나 다른 제반 사항은 결국 유현덕 선생님이 부담하셔야 하고요. 이 구조면 오래 못 버팁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제안을 거절당한 적이 이번 생에서 없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말 몇십 년 간 지금처럼 계속 이 일을 담당할 수 없기에 학원들 지분을 올려놓았던 것인데.
“학원 비율은 각각 5%로, 최대로 잡아도 10%로 하죠. 그리고 운영비에 홍보까지 포함해서 35%. 강사가 50에서 55를 가져가는 쪽으로 협상하는 건 어떨까요?”
결국 성장을 위해서는 1타 강사를 만들던지, 아니면 키우던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했다. 어떤 쪽이든 강사 몫을 키워야 한다.
운영은 운영일 뿐, 결국 중요한 것은 강사고 수업이다. 내가 늘어난 고려 사항을 넣고 계산에 들어가니 실수를 한 것이었다.
당장 신성 학원만 해도 내가 강사로 들어가 수업 스타일을 바꾸고 우수한 자료를 만들면서 성장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미 초안을 이미도 원장에게 보여 준 것인데.
“신성 학원 이미도 원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가…….”
“그것 하나 이해 못하면 이미도 원장님도 변한 거죠. 난 내가 수정하기 이전에 이미도 원장님이 오케이 했다는 것이 더 못 믿겠는 걸요?”
“사실 저에게 운영 관련해서는 일임을 하신 상태라서 요.”
“일임이 아니죠. 이번 사업에 실제로 현금을 투자한 건 유현덕 선생님뿐이신데요?”
이런, 쓸데없는 부분에서 성공을 보질 않고 눈치를 보다니. 이건 분명 전생에서 학교에 근무할 때의 습관이었다.
학원은 시장이다. 내가 투자를 했으니 성공해도 내가 하는 것이고, 실패를 한다면 내가 다 잃는 것.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일을 그르칠 뻔했다.
“선생님, 이제까지의 모습 덕에 선생님이 여기까지 온 거에요. 지금 그 모습을 잃으면 어떡합니까? 우리도 불안해지게…….”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초심을…….”
“초심이 문제가 아니에요.”
선생님께 혼나는 학생의 모습이었다. 원래 내가 이렇게 애들을 혼냈는데.
이번에는 혼이 날 만했지.
“돈을 벌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것 아녜요?”
맞다. 성공의 기준에는 돈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중에 돈의 비중은 확실히 있다. 그래서 내가 공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으로 들어온 것이고.
번 돈으로 뭘 하고 싶다가 아니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 내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살려서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겠다.
나는 이제 시작을 한 입장이고, 신성 학원과 성공 학원, 이미도 원장과 김윤지 원장까지 전부 나보다 한참을 앞선 사람들이다.
누가 누굴 배려한다는 것인지…….
착각이 심했다. 오만했던 것일까? 이 정도 배려하고도 나는 성공할 수 있다고?
내가 한참을 고심하다 김윤지 원장을 바라보자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나를 보고 있었다.
“커피나 한잔하러 갈까요?”
* * *
김윤지 원장의 예상대로 이미도 원장은 흔쾌히 새로운 비율에 찬성했다.
거기에 나는 추가적으로 외부 유명 강사를 초빙할 때는 학원 비율과 운영 비율을 조금 낮춰서라도 강사 비율을 올릴 수 있는 조항을 만들었다.
대략적인 계약서 양식이 정리되고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잊지 말자. 나는 아직 강사일 뿐. 하지만 사업에 있어서는 조금 다른 마인드가 필요함도 기억하고.
“선생님, 우리 학원은 선생님 강의만 인터넷으로 볼 수 있어요?”
한 학생의 질문. 역시나 지금쯤이 인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시기였다.
“곧 선생님들 강의 인터넷으로도 들을 수 있어. 더 쌀지도 몰라.”
웃으며 대답은 해 주었지만 긴장도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과연 이 도박이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지.
초기 비용이 이미 5억 이상 들었다. 계약금을 요구한 강사들이 몇 있어서 그렇게 된 것.
게다가 홍보비로 책정한 금액이 또 다시 5억. 초기 예산 25억에서 10억은 이렇게 묶여 버렸다.
그리고 연간 드는 운영비가 1억 정도 들 예정이고, 아마 수강생이 폭발하면 더 들 수도 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제발 서버 증설이 필요한 상황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 10배 정도 증설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충분했다. 홍보에 돈을 쏟아 붓는 만큼 효과가 있다면 더 많이 투자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있었다.
2010년만 하더라도 인터넷 강의에 이런 공격적인 투자는 금물이었다.
이미 선발 주자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가 이들을 앞지를 방법이 없었다. 공무원 시험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 외에는.
하지만 지금은 2003년이다. 이 시장은 이제 시작이었고, 우리가 최대한 높은 위치에서 출발해야 했다.
정신없이 7시부터 예정된 강의를 세 개 끝내니 11시 30분이 되었다.
아직 주현필 부원장의 강의실은 다음 수업이 하나 더 있기에 불이 켜져 있고, 다른 강의실들은 전부 불이 꺼진 상태.
나는 퇴근하기 전 잠시 촬영실을 둘러보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강의실 한 개 크기의 촬영실.
맥스스쿨은 실강생이 앉아 있는 수업 장면을 그대로 촬영하여 내보낸다. 그들의 댓글 반응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원래 강의란 것이 1시간 20분 예정이라도 실제 학습 내용이 진행되는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짧을 때는 30분도 강의를 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방식을 택하는 강사들이 능력이 없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 나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졸거나 지루해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사실 한둘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여름에는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수업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방법은 없다. 공부가 재미있는 경우는 자신의 흥미가 그 공부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할 때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아무튼, 이때 필요한 것이 이런저런 잡담들이다.
문제는 이 잡담들이 인강에 있어서는 오히려 학습에 방해 요소가 된다는 점.
앞뒤로 강의 내용을 건너뛸 수 있는 기능이 있기에 잡담을 넘기면 되지만, 그러다 보면 가끔씩은 한 시간 반짜리의 강의 하나를 듣는데 단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부분이 바로 우리가 파고들어야 할 약점이었다.
촬영부터 학생들 없이 강의만 촬영하기에 이런저런 잡담이 길어질 수가 없다. 카메라 앞에서 혼자 강의를 하는데 무슨 잡담이 나오겠는가.
게다가 굳이 1시간 30분짜리의 강의 영상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내용을 40분 정도로 압축해서 진행할 수 있다는 것.
분명 성공한다.
왜냐하면 맥스스쿨도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댓글에 올라오는 잡담 관련 불만 사항들을 고려하여 강의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과는 다른 것 같긴 하다.
“새민아, 혹시 인강 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강의 듣고 싶어?”
“맥스스쿨 인강 들어 봤는데 거기 선생님 웃긴 이야기 엄청 많이 해 주세요. 하하. 그런 게 좋아요.”
“응? 으응. 그렇구나.”
이 새끼…….
새민이란 학생은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주연이는 맥스스쿨 들어 봤니?”
“아……. 차 타러 가 봐야 해요. 안녕히 계세요!”
이 친구는 공부를 그래도 하는 녀석인데. 여학생이라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 거다!
아직 한 명이 강의실에서 가방을 싸고 있었다.
“재훈아?”
“네?”
“인강 듣게 되면 어떤 식의 강의가 좋니?”
제발…….
그래도 우리 학원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몇 명 중 한 명인 재훈아, 너만큼은 실망하게 하지 말아다오.
불안해지지 않도록.
“중요한 부분만 짚고 빨리 끝나는 것이 좋죠. 어차피 학교에서도 한 번 들었던 내용인 걸요.”
“그래! 너밖에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를 않는구나!”
“네?”
“아, 아니다. 고생했어, 오늘도. 숙제 꼭 해 오고!”
“제가 숙제 빼먹는 거 보셨습니까?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까칠하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내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는 친구.
이건 그냥 내 바람일지도 모른다. 온라인 교육 시장은 전국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맥스스쿨과 같은 방식의 수업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겠지.
이제 론칭까지 한 달이다.
* * *
“축하해요, 유 선생님!”
“고생 많았어. 이제 시작이구먼!”
2004학년도 수능시험 전략 설명회가 끝나고 이미도 원장과 오광필 할아버지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원래 연초에 진행했어야 할 진학 설명회였으나, 온라인 교육 사업 준비로 인해 여름으로 미뤄 두었던 것.
게다가 올해는 주현필 부원장의 수능 대비 단기 강좌를 밀어주기로 되어 있었기에 지금 설명회를 열었던 것이었다.
작년 있었던 입시 설명회보다 거의 두 배 더 큰 강당을 빌렸고, 이번에도 역시 거의 만석이었다.
그리고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올해 6월까지 번 돈은 월 3천을 넘어 총 2억 언저리.
그런데 사업 준비를 하는데 그 돈이 남아 있겠냐고?
당연히 그대로 남아 있다. 사업 준비는 땅 판 돈으로 충당을 하고도 남았기 때문에.
2억이라. 분명 엄청난 돈인데 이제는 큰 감흥이 없었다.
“이제는 별로 놀라지도 않네?”
부원장직을 맡게 된 주현필이 언젠가 정산을 하면서 약간 재수 없어 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돈이 적다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지금부터 내가 쓰기만 하더라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정도의 액수였으니.
하지만 벌면 벌수록 더 큰 것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 이건 일단 차곡차곡 모아 두어야 할 시기였다.
2003년 7월.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들이 여름방학에 돌입한다. 그리고 내가 오랜 기간 준비한 온라인 강의 사이트가 드디어 론칭을 했다.
S 아카데미.
맥스스쿨처럼 뭔가 입에 착 달라붙는 업체 명은 아니었으나, S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