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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30화 (30/200)

[30] 30화.

자, 이제 2003년 3월이 되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한 번 겪어 본다 할지라도 막상 과거로 갑작스레 돌아오면 단편적인 기억 일부분 외에는 딱히 쓸 만한 능력이 없다.

내가 느끼는 아쉬움이 바로 그것.

전생에 나는 이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2003년 3월이라면, 대학교 4학년 나이.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3학년 여름방학 때 입대를 했으니 지금쯤 한참 일경 생활을 할 때.

일경? 일병이 아니라?

맞다. 전투경찰순경의 경우에는 계급이 이경, 일경, 상경, 수경의 순서로 나간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입대 신청을 해 버려 전경으로 군복무를 했다. 아주 미쳤었지.

이번에는 반드시 운전병이든 뭐든 조금이라도 편한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지금은 군 입대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내 앞에 엄청난 금액의 장비들이 놓여 있는 상황에 집중을 해야 한다.

“이거는 이렇게 사용하시면 되고요. 여기 옆에 있는 스위치는 강의 끝나시면 한 번 누르시면 됩니다. 그리고 빨간색은 꺼져 있을 때 들어와 있는 거고 켜지면 위에 파란 불 들어오고요.”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전생에 죽기 직전 시대에는 스마트폰 하나로도 충분히 인터넷 방송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기 자체가 없다.

방송을 하려면 고가의 거대한 촬영 장비에 이것을 원격에서도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컨트롤러까지, 한두 가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건물주(물론 이름만 그렇게 되어 있을 뿐, 실제 소유주는 이미도 원장이겠지만) 주현필이 제공한 교실 하나에 내가 용산을 돌며 사 온 촬영 장비와 컨트롤러가 들여왔다.

이날은 아직 겨울의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음에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실내가 더웠다. 장비들에서 나오는 열이 장난이 아니었다.

“천천히 좀 해 주세요.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설치 기사가 나를 힐끗 보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려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어쩌라고? 하고 싶지만 내 나이가 나이인 만큼 민망한 웃음으로 넘기고.

이거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조금 아끼겠다고 내가 직접 촬영하고 올리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리면…….

“저, 기사님?”

“네?”

“이거 여쭤 보면 실례겠지만, 혹시 연봉이 어떻게 되셔요?”

엄청 실례되는 말이지. 하지만 지금 이 사람은 아마도 설치만 해 주고 가면 따로 연락하기 어렵겠지? 외주일 테니.

어이없다는 식으로 나를 또 다시 바라본다.

“아니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요. 이 장비 다 잘 사용하실 수 있으시죠? 혹시 간단히 편집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하실 수도 있나요?”

“당연하죠. 설치만 해 주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교육도 나가고…….”

“그러면 아예 이참에 저희와 같이 일해 보시는 것은 어떠셔요?”

“네?”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 사람 눈에는 나도 이 학원에서 근무하는 일개 강사일 텐데.

내가 지금 진행하는 온라인 교육 사업 책임자라는 걸 알면 어떨까, 반응이?

이 사람이 설치 중인 장비 세트가 5억에 육박하는 고가인데, 그 금액이 내 손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해 볼까?

역시나 웃는다.

“무슨 소리에요. 허허. 이거 설치해 주고 교육해 주는 일이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제 연봉이 2천입니다. 많지는 않아도 이 정도 액수 어디서 쉽게 못 받아요.”

나쁘지 않은 액수다. 여기에 약간의 편집까지 추가해서 상시 근무로 3천 정도 부르면 어떨까?

내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 적은 돈은 절대 아니지만 강의료로 충분히 충당 가능하다. 이것저것 벌리느라 돈 들어오는 걸 처음처럼 신경 쓰지 못해서 그렇지, 내가 버는 건 월로 따져도 3천 이상이니…….

“설치는 이제 더 안 하셔도 되죠. 대신 상시 근무로. 저희 강사님들이 영상 촬영할 시간이 수업 전이랑 수업 끝나고 라서 조금 애매해요. 연 2천 5백이면 가능하실까요?”

“에? 댁이 사장이슈? 아닌 것 같은데…….”

이 사람이. 나이 가지고 판단을…….

어린 것이 농담 그만하라는 얼굴.

나는 이제 스물셋이다. 어리지, 당연히.

그래도 내가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제안을 하는 거라면 눈치라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3천에 온라인 강의 홈페이지 업체 관리까지.”

“진짜요?”

“네. 대신 확실하게 일은 해 주셔야 합니다.”

설치 기사 일은 엄청 힘들다. 내가 직접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주말까지 고객 일정에 맞추어 집집마다 방문해서 설치하고, 사용 방법 알려 주기까지.

어차피 장비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안다면 내가 배워서 잠도 못 자고 하는 것보다 잘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맥스스쿨 회원권 하나 드릴게요. 그거랑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어 주세요.”

“맥스스쿨? 그 온라인 학원이요? 엄청 큰 기업 아닙니까? 본 적은 없지만 그 정도로 만들 수가…….”

“그쪽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 정도 수준만 해 주세요. 지금 바로 내려가서 계약서 쓰시죠.”

“지금요?”

괜히 연봉 더 올릴 생각 하면 피곤해진다. 이 정도도 꽤나 많은 상승이니 충분할 것이다. 내가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촬영 및 편집 담당 기사는 구했다. 홈페이지 제작과 관리, 그리고 서버까지 전문 업체에 연 5천으로 맡기기로 했고. 그쪽은 신성 학원에서 전적으로 맡아 주기로 했다.

그렇게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을 무렵, 예상치 못한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아니 예상은 했더라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해야 하나?

* * *

“안녕하세요, 지원재 라고 합니다.”

굉장히 미남형에 비싸 보이는 정장. 한눈에 보더라도 귀공자 스타일의 남자가 명함을 건네주었다. 하다못해 명함 건네주는 몸짓까지 귀티가 좔좔 흐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유현덕입니다.”

내 소개를 하며 명함을 보자니 맥스스쿨 업무실장이라는 직함이 눈에 띄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맥스스쿨에서 사람을 보낸 거지? 설마 우리가 온라인 교육 사업 론칭을 준비하고 있어서 온 것일까.

그리고 역시나.

“우리 온라인 교육 사업을 이미 알고 오셔서 유현덕 선생님 불렀어요.”

이미도 원장이 내 예상을 확인해 주었다.

“아, 네.”

언젠가는 그쪽도 우리를 경계하리라 생각은 했지만 굳이 사람까지 보낸 것은 예상 외였다.

아직 그만한 규모도 아니고 론칭 예고도 없이 준비 중인 시점인데…….

내가 할 말은 별로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여기에 왜 온 것인지, 그 이유였다.

겹치는 시장에 대한 경계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그는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나를 보고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짓더니 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방해하려고 온 것은 아니니. 주현필 선생님 좀 뵈러 왔다가 이야기를 들어서 얼굴만 한 번 보고 싶어서 부탁드렸습니다. 바쁘신데 미안하네요.”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업무실장이라니. 나이도 나보다 겨우 네다섯 많은 것 같은데 이미 저 정도 위치라면 이미 능력도 인정받은 상태일 것.

이 남자, 군대는 다녀왔겠지?

“아, 아닙니다. 반갑습니다. 주현필 선생님 뵈러 오셨…….”

그러고 보니 주현필이 없었다. 이런 자리에는 항상 이미도 원장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사람인데.

“잠깐 오광필 회장님 오셔서 모시고 나갔어요. 사업 일 때문에.”

“그래서 온 김에 아주 젊은 인재가 한 분 있다고 하셔서요. 하하.”

인재는 인재지.

아직 맥스스쿨에서는 나에 대해서 잘은 모르는 것 같다. 다행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눈에 띄었다가는 괜히 경계심만 자극하겠지.

그나저나 주현필과 맥스스쿨의 관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끝이 난 것이 아니었나?

아직도 그쪽 실장이 찾아올 정도라면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것인가?

아니 단순히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려고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얼굴은 뵀으니 됐고, 하나만 물어보고 갈게요. 어디까지 갈 계획이십니까?”

갑자기 그의 표정이 매우 진지해졌다. 일 이야기를 할 때면 이렇게 바뀌는 걸까?

분명 호감형이지만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그렇다고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직 그럴 만한 인물은 아니지, 나는.

아니면 이 지원재란 사람은 그런 감정을 완전히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어디까지 갈 계획이냐고? 슬쩍 이미도 원장 얼굴을 봤는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네 일이니 네가 판단해라’ 이건가?

“맥스스쿨의 뒤를 따라가야죠.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서…….”

“그리고 앞지르시겠죠?”

이 사람……. 여전히 진지한 표정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혹 그렇다고 대답하면 맥스스쿨이 움직일까?

이제 론칭 하려는 상황에서 그렇게 되면 버텨 낼 재간이 없다. 가격경쟁으로 바로 밀릴 것이다.

시간이 필요한데.

“기회가 된다면요. 호호. 맥스스쿨을 따라잡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이미도 원장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이런 질문에는 익숙하지가 않기에.

물론 성공 학원과 싸울 때는 달랐지만 그건 규모가 작은 전쟁.

이제까지 신성 학원, 미래 학원, 그리고 성공 대입학원의 계략과 싸움들은 앞으로 있을 맥스스쿨과의 경쟁을 생각하면 동네 구멍가게들끼리의 이권 다툼이었으리라.

그녀의 대답에도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지원재가 얼굴의 긴장을 풀며 이미도 원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희 대표님도 시장이 커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신성 학원이 이런 준비를 한다는 것에 놀라긴 하셨지만 기대도 크시더군요.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이 사람.

시장을 키운다? 역시 맥스스쿨다운 여유다.

판이 커져야 그 안에서 나눌 것이 많아지기는 하는데 과연 온라인 교육 시장도 그럴지.

어차피 온라인 시장은 강한 몇 곳만 살아남는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인지.

하긴 맥스스쿨 본원 주변의 다른 대형 학원들이 풍부한 자금력으로 경쟁을 시작하면 서로 피를 흘릴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지방 학원이니 당장 위협이 되지는 않고 시장을 확장시키는 역할만 도와줄 수도 있고.

사실 나도 맥스스쿨이 우리 사업을 그렇게 판단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싸워 보기로 마음먹고 도전하는 중이지만 지금 당장은 위험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이런 형식적인 대답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갑작스레 우리 학원을 찾아온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나저나 이제 맥스스쿨에서도 우리의 온라인 교육 사업 진출 계획을 알게 됐군.

론칭 시일을 조금 앞당겨야겠다.

그렇게 조금 자리에 앉아 있던 지원재는 주현필이 오자 같이 자리를 떴다.

지원재를 본 주현필의 모습이 썩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무슨 관계지? 술을 사주며 물어봐야 하나?

김윤지 원장과도 한 번 봐야 하니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미도 원장, 주현필 부원장, 김윤지 원장과 나까지, 이렇게 넷의 술자리가 처음으로 열렸다.

술을 싫어하는 나의 주도로.

* * *

“오광필 회장님 의중은 어떠셨나요?”

김윤지 원장도 우리가 오광필 회장과 이 건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관심을 보였다.

어차피 성공 학원이 참여하게 된 이상 동업자의 위치였기에 숨길 이유는 없었다. 아마 학원연합의 입장이 궁금했겠지.

“조금 복잡하신 것 같기는 하더라고요. 회의 내일 열어서 요구 사항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구 사항이라면 짚이는 것이 있었다. 아마 타 학원 강사의 참여가 아닐까?

그거라면 피할 이유는 없다. 후발주자인 만큼 맥스스쿨처럼 수능 시험 시장만 노릴 것은 아니었으니.

그쪽에서 간과하고 있는 내신 시장으로 규모를 키울 생각이었고, 그걸 위해서는 강사진의 숫자도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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