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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29화 (29/200)

[29] 29화.

“간판은 우리가 가져갑니다. 제가 신성 학원 소속이니까요. 그리고 운영 초반 강의 메인으로 성공 대입학원 강사들 중 맥스스쿨과 비교했을 때 승산이 있는 분들로 진행하는 겁니다. 두어 명 정도 초빙도 해 보고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이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수능시험 준비용 강의는 강사의 학력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동안 학교 내신 중심으로 운영했잖아요.”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둘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생각을 해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미도 원장은 몰라도 주현필은 삐딱하게 보는 것이 분명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초반이 제일 힘들게 버텨야 할 겁니다. 아까 잠깐 확인해 봤는데 맥스스쿨이 강의를 꽤나 많이 올려놓고 돌리고 있더라고요. 후발주자인 만큼 일단은 비슷한 수준의 강의에 가격으로 점유율을 올리는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게 확실히 승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유 선생님은?”

드디어 조금 관심을 가지는 건가? 절차상의 잘못은 둘째 치더라도 이건 해야만 하는 일.

“네. 맥스스쿨은 성공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뒤를 바짝 따라가야 하고요. 온라인 교육, 이거 성공하면 그때는 뒤를 쫓지도, 지금 시장을 유지하지도 못할 겁니다.”

조금은 과장을 보탠 말이었다.

온라인 교육 시장이 엄청 커지는 것은 사실이나, 지방 학원가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 둘은 애초부터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에.

하지만 타격은 분명이 있다. 미리 내신에 집중한 우리 학원은 괜찮을지 몰라도 수능에 집중했던 성공 대입학원과 비슷한 여러 학원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집에서 더 싼 값으로 더 설명 잘하는 강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데 굳이 학원을 갈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쪽에서 밀려난 강사들이 이쪽 시장을 넘보기 시작할 때는 지난 번 조규만 회장과의 싸움과는 또 다른 방식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아니. 내 말은 유 선생님 말대로 먼저 출발한 맥스스쿨을 따라가서 결국 승부를 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느냐는 것이에요.”

아, 이런 멍청한 대답을 하다니. 그건 당연히 비장의 카드로.

비장의 카드가 둘 있다. 이게 성공할지 성공하지 못할지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왜냐하면 나는 맥스스쿨의 미래를 바꾸려는 것이었기에.

“이건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윤지 원장에게도 말하지 않은 건데요.”

“당연히 우리와 상의가 먼저인 거야.”

“네. 알고 있습니다. 죄송하고요.”

말 좀 합시다, 주현필 선생님.

“두 가지 목적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맥스스쿨을 따라잡는 경우.”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서울에서 이미 성공한 후 온라인 교육 시장을 개척한 맥스스쿨을 따라잡는다. 아마 사회인 야구팀이 프로 리그 우승팀을 9회 말까지 이기고 있을 확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야 엇비슷하게라도 경쟁을 할 수 있다.

“맥스스쿨보다 먼저 우리가 기업 공개를 성공하는 겁니다.”

기업 공개. 기업의 소유권 중 일부를 투자자에게 매도하는 것.

절차상의 복잡함은 뒤로 하고 이제까지 학원이 기업 공개를 하는 선례는 거의 없었다.

대형 출판사나 교육 기업이 기업 공개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일개 학원이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규모의 일.

“맥스스쿨이 기업 공개를 할 거라고?”

“선례가 없어요. 그렇게 보는 근거는요?”

맥스스쿨은 기업 공개를 분명히 한다. 내 부족한 기억상 아마 2004년 쯤. 이때 맥스스쿨은 이미 온라인 교육 시장의 일당 독주 체제를 완성했을 때다.

“온라인 교육 시장도 선례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기존 학원 시장과는 다르게 준비 자본이 필요해요. 작게는 전국에서 통할 만한 강사와 교실이, 크게는 촬영 장비와 편집기기, 그리고 그것들을 운용하는 인력까지. 기존 학원 규모로 길게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온라인 교육 업체의 기업 공개. 이건 분명히 뜨는 기정사실이었다.

굳이 국내 사례가 아니더라도 칸 아카데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거대한 투자를 받는 것도 앞으로 일어날 일 아닌가. 이 부분은 확신이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맥스스쿨을 따라 잡을 수 있느냐는 것.

“그래요. 기업 공개라……. 그건 그렇고 나머지 한 경우는요?”

물론 이건 맥스스쿨 만한 성공을 거두었을 때 이야기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후발 주자의 한계점을 느끼는 시점이 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정착은 하지만 맥스스쿨보다는 한참 아래에 있을 경우입니다.”

기업 공개와 비슷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일단 숨고르기를 해야 했다. 시장은 거의 항상 1등을 주목하지 2,3등을 주목하지는 않는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이미도 원장이나 주현필에게서 나올 수도 있었고. 어쨌든 나는 이런 논의를 꺼내는 것으로.

“정착시킨 온라인 교육 플랫폼만 대형 학원에 매각하는 겁니다.”

‘매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이번에는 주현필뿐만 아니라 이미도 원장도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은 2002년 초. 수많은 벤처 기업이 난립하는 시기는 1996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끝이 났다.

그리고 소위 스타트업이 크라우드 펀딩 등의 투자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은 2010년이 지나서.

지금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정착시킨 이후 남에게 판다는 개념이 받아들여지기 이전이다.

스타트업은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을 해 놓고 시장성이 확인되면 투자를 통해 성장하거나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에 아이디어를 넘기는 구조.

내가 딱히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공부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나마 학교란 곳이 담당 교과만 알아서는 부족하기에 여러 가지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알게 된 것들이었다.

“학원을 매각해요?”

다행인 것인지 주현필은 표정만 바뀌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대화의 상대방은 이제 이미도 원장 한 명.

“제가 제 것도 아닌 것을 어떻게 매각하겠어요. 제가 말씀드리는 제안은 현재 이 지역 학원계의 틀을 깨자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신성 학원의 운영과 별개로 투자를 받으려는 겁니다. ‘우수하고 경험 많은 인력’이라는 투자요.”

다시 잠시 물을 마셨다. 이제 내가 할 말은 거의 끝났다.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기존 학원 운영에는 아무런 손해는 없습니다. 참여하시는 선생님들만 촬영을 하고 질문에 답변을 달아 주시는 일만 추가되는 것이고요.”

조용했다.

내 카드는 거진 다 보여 준 상황.

이게 확실히 먹히는 제안이냐고? 그건 나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성공한 학원들, 회사들을 따라가는 것. 그리고 노력하는 것.

이 제안은 물론 그들과 똑같이 가는 길은 아니었다. 그리고 멋들어져 보이는 제안도 아닐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새로운 것이라면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이상하고 위험하게 받아들여지기 쉽다.

아직 아이폰이 만들어지기 한참 전이지만 잡스가 처음 애플을 되살릴 때도 그렇지 않았는가.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아이맥, 그리고 학교 교육 시장 진출.

“학원은 그대로 운영을 하고, 유현덕 씨 투자와 우리 강사진, 그리고 우리 간판으로 맥스스쿨과 경쟁한다…….”

“네, 맞습니다. 총수익은 나누고요.”

“몇 살이죠, 유현덕 선생님?”

“네? 스물하나…… 아니 스물둘입니다.”

스물둘. 어리긴 어리구나.

잠시 고심하던 이미도 원장이 앞에 놓여 있던 메모지에 무언가를 끄적거리고는 주현필에게만 보여 주었다. 주현필은 그걸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기업 공개든 뭐든 전반적인 준비는 우리 쪽에서 하겠습니다. 유현덕 선생님 제안은 큰 그림은 그대로, 세부 사항은 신성 학원에서 논의하고 정하고요. 성공 대입학원과의 협력은 유 선생님 의견대로 진행하시되 우리와 같이 협의해야 합니다. 이번처럼 단독 행동은 이제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자리 뺄 각오하셔야 할 거에요.”

말을 마친 그녀는 주현필을 봤다.

‘내 의견대로 따르세요!’ 뭐 이런 의미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고, 그것으로 그날의 회의는 끝이 났다.

* * *

“대표님, 주현필 선생 다시 복귀시키는 일은 언제쯤 진행하시겠습니까?”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60대 중후반의 노인.

아마 유현덕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오광필 할아버지와 비슷한 나이 대라 생각했을 것이다. 외모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지만.

결재철을 들고 서서 그에게 말을 하던 남자는 이제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지원재였다.

교육계의 대기업 맥스스쿨에서 강사 출신이 아니면서도 대표와 매일 업무 보고를 하는 지원재 실장은 원내 대표 강사와 비슷한 수준의 위치를 가진 사내였다.

그가 맥스스쿨에 입사한 것이 이제 3년.

20대 중반의 나이로 행정업무 담당자 채용 면접에서 온라인 교육 시장 개척을 진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들어온 그는 곧바로 대표의 그림자가 되었다.

누구는 대표 강재훈의 조카라는 사람도 있었고, 누구는 숨겨 둔 자식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만큼 파격적인 승진은 강재훈 대표의 의중을 면접 자리에서 짚어 내고 실재로 착착 진행시켜 나가는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으리라.

“글쎄. 조금 더 끌어 줘도 괜찮지 않겠어? 이미도도 믿을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충분히 키울 수 있겠지. 천천히 하자고 그건. 그나저나 성공 대입학원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네, 김윤지가 온라인 교육 사업을 직접 언급했다고 합니다. 그쪽 대표 강사들 몇에게만요.”

“온라인이라. 거 우리랑 겹치잖아? 그러면 조규만이랑 약속한 것도 무산될 텐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맥스스쿨 본원 강사들과 성공 대입학원 강사들 몇을 인사이동 시켜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합니다.”

“괜찮네. 슬슬 잠식하자는 말이구먼.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조규만은 어차피 지금 국회의원 선거 준비로 사람들 만나고 다니느라 바쁠 테니.”

맥스스쿨과 성공 대입학원의 갑작스런 합병. 비율로만 보자면 동등한 합병이 아니라 인수 수준이었으나, 조규만이 원했던 것이 학원의 성장이 아니었다.

자신의 국회 진출.

‘거 참 꿈도 크시네.’ 하고 생각했던 강재훈이었지만 실제로 국회 입성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돈이었기에, 밀어주는 조건으로 합병을 했던 것이었다.

성공 학원의 운영과 내부 인사는 조규만의 조카인 김윤지가 담당했지만, 맥스스쿨 본원과의 인사 이동권은 맥스스쿨 강재훈에게 있었다.

“칼자루는 언제나 우리가 쥐고 있단 것을 보여 주자고. 가만 놔두면 이미도가 다 잡아 버릴 테니까, 생존은 확실히 시켜 두어야 하니깐 적당히.”

“알겠습니다, 대표님. 온라인 교육 사업은 수익이 전달보다 57% 올랐습니다. 잘 진행 중입니다. 이대로라면 2004년에는 업계 최초로 기업 공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임했으니 알아서 잘 굴려 봐. 허허.”

문을 닫고 나오던 지원재가 문 앞에 서 있던 50대 초반의 여성을 보고는 황급히 허리를 90도까지 숙이며 인사했다.

“사모님, 나오셨습니까.”

“오래 걸리네, 회의란 것.”

“죄송합니다.”

뻣뻣한 자세의 여성은 지원재를 혐오하는 듯한 눈빛으로 흘겨보고는 곧바로 노크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강재훈의 부인 유미진. 그녀는 최근 몇 년간 남편 강재훈을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숨겨 둔 자식이 있다는 소문. 하지만 실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큰 신임을 받고 있는 이 지원재의 존재가 의뭉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지원재가 바로 그 소문의 당사자인가 싶어 뒷조사까지 하며 알아본 바로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사고뭉치였던 지원재는 14살 때 큰 사고를 겪었다. 차 사고였는데 이것으로 부모님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함께 살아왔다.

조금 특이했던 것은 사고 이후 그가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매진했다는 부분.

그러나 그렇더라도 전교 꼴지 수준의 성적이 어떻게 단 한 번의 시험에 전교 10등 이내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무튼 여러모로 의심이 가는 사내였다.

지원재는 등 뒤로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혼잣말을 하면서 복도를 걸어갔다.

“더러운 놈들, 조금만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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