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27화.
“유현덕 선생님 깨어났다는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어머님.”
이미도 원장이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나도 모르게 옆에 서 있던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는데 이 표정은 절대로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아들을 위험한 일에 끌어들인 사람들로 받아들이실 테니 그러시는 것이 당연했다.
“오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엄마.”
“애를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신 분들이 무슨 생각으로 오십니까, 여기를?”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나서셨다.
그나저나 내가 누구한테 맞아서 쓰러진 건지 다들 알고는 있는 걸까? 나도 그게 누군지 모르는데?
조규만 회장이 보낸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은 이상 찾기 어려울 것이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긴장감이 흘렀다.
오광필 할아버지까지 불편한 자세로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셨어요, 원장님, 할아버지 그리고 주현필 선생님. 엄마,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어제 이건 이야기 끝난 거잖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끝을 낸 적은 없었다. 나는 학원에서 일을 계속 해 보겠다고 말씀드렸을 뿐이고, 그것에 대한 허락을 받은 적은 없으니깐.
하지만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어려서 걱정은 되시겠지만, 이제 더 이상 부모님 손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부모님도 그것을 잘 알고 계셨다.
“잠시 나가시죠? 부모님 좀 쉬셔야…….”
“아니야. 우리가 나갔다 올게. 아빠랑 밥이나 먹고 오지. 위험한 일은 안 됩니다. 절대로요!”
“네,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어머님.”
두 분이 나가시고는 나는 내 침대로 주현필의 부축을 받아 움직여 앉았다.
“안녕하셨어요? 세 달이나 지났다면서요? 저는 어제 뵙고 나왔던 것 같은데 이미도 원장님 머리 스타일이 달라지신 것 보니 시간이 지나긴 지났군요? 하하.”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입은 아직 살아 있어 다행이구먼. 허허. 유현덕 몸은 삐쩍 말랐는데 입은 살아 있어.”
오광필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내 팔을 바라보니 정말로 살이 완전히 빠져 있었다. 핏기도 없었고. 이게 남자 몸인가 싶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요? 성공 학원은요? 저를 공격한 사람은 잡았나요?”
“아니. 경찰에 신고는 했는데 못 잡았어, 아직도. 어디까지 기억을 하는 거야?”
“성공 학원이랑 맥스스쿨 합병 건 듣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누가 제 이름을 불렀어요.”
“그러면 확실히 조규만 쪽 짓이구먼.”
“달리 누가 있겠습니까. 원장님도 당할 뻔하셨는데…….”
주현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보고 ‘괜찮으냐?’는 말조차도 없다, 이 사람은.
그나저나 이미도 원장도 당할 뻔했다는 건가? 하긴 조규만 회장이 나만 공격하고 끝낼 사람은 아니리라.
이 정도까지 막 나가는 사람인지는 몰랐는데. 혹 김윤지도 이 일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원장님도요?”
“괜찮아요, 나는.”
그러면서 주현필을 보는 이미도 원장. 그와 같이 있을 때였다면 그가 막았다는 의미이겠거니 싶었다. 워낙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보니.
“그러고 보니 나는 상대할 가치도 없었나 보구먼.”
오광필 할아버지가 내심 과소평가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어이가 없긴 했지만, 사실 이미도 원장은 그렇다 쳐도 나까지 공격당한 마당에 그는 멀쩡했다는 것도 의아했다.
“아마 저 때 실패하고 나서는 멈췄을 겁니다. 주현필 선생이 거의 잡을 뻔했으니까요. 가장 큰 거물이시니 가장 마지막에 해결하려고 했던 것 아닐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하는 이미도 원장도 대단했다.
“잡지는 못하셨군요.”
“어떻게 잡아? 막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어.”
“주현필 선생님도 팔에 금이 갔어요. 지금은 세 달이나 지나서 깁스 풀은 거고요. 아무튼 미안하게 됐습니다, 유현덕 선생에게는.”
“아니에요. 일어났으니 괜찮아요, 이제. 학원은 어떻게 됐나요? 성공 학원 합병은…….”
이게 사실 이들을 만나고 제일 궁금했던 점이었다.
거의 죽을 뻔한 일을 겪었지만, 그만큼 조규만 회장도 나의 진가를 알아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뭐, 꽤나 무식한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이기는 했다.
그나저나 내가 쓰러지고 나서 신성 학원과 미래 학원이 견디지 못했다면, 결과는 아마 좋지 않았겠지.
“이제는 성공 학원도 아니네. 맥스스쿨 지방 본원이야. 조규만은 국회의원 준비하려고 하는 것 같고.”
국회의원?
“아무튼 자네 어서 재활 끝내고 돌아오도록. 그 이야기 해 보려고 온 거야. 한두 달 정도면 되겠지?”
“국회의원이라니요?”
“조규만 의원이 될 것 같아. 아직 다음 총선이 2004년이니깐 1년도 더 넘게 남았지만, 벌써 국회의원 다 된 사람처럼 행동한다니깐.”
잠깐만. 내 기억 어딘가에 조규만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낯설지가 않았는데, 이게 바로 그 이유였다.
중구 국회의원 조규만.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지역구라 이름을 들어 봤었다.
“그러면 맥스스쿨은 누가 운영을…….”
“김윤지 실장이 원장이 됐어.”
* * *
내가 힘든 재활을 끝내고 그리웠던 학교와 신성 학원으로 복귀하기까지 딱 두 달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이런 젠장. 진짜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죽을 뻔했으나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려나.
그리고 뭐 쉬는 동안에 땅은 팔아서 현금화해 두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통장에 찍혀 있는 금액을 보면 아직도 얼떨떨하다. 내 생전에 이런 액수가 통장에 찍히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긴 생전이 아니구나. 한 번 죽었었으니.
“이거 대박이신 걸요? 땅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운이 좋았던 것 같네요. 그냥 요즘 경제도 좋지 않아서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지어 보려고 산 건데. 하하.”
물론 거짓말이다.
이거 사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점점 더 늘어 가는 것은 능청과 거짓말.
누구에게 피해를 주거나 하는 거짓말은 아니기에 거리낄 것은 없지만, 진실을 숨기는 것은 깔끔한 기분은 아니다.
그렇다고 “저는 죽었다가 깨어났는데 제 과거로 돌아와서 이렇게 성공하는 겁니다.” 하고 말을 하고 다닐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다음에 혹시 또 괜찮은 느낌 드는 땅 있으시면 연락 꼭 좀 부탁드립니다. 대단한 안목이시네요.”
새파랗게 젊은 내가 2억이라는 거금을 들고 와 훅 사 버린 엄청 싼 땅이 30배나 올랐다.
아마 이 사람은 내가 운이 엄청 좋거나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의 자제라고 생각하겠지?
아무튼 어색하게 인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계좌 이체로 어마어마한 액수가 한 번에 찍힌 통장을 들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아직 재활 치료가 끝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병원 내 은행에서 부모님 계좌로 5억을 이체했다. 물론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몰래.
이게 자식이 부모님께 송금하는 것도 액수가 크면 증여가 되려나?
아무튼 큰 문제는 아니리라.
대충 증여세 표를 보더라도 내가 뭘 증여를 받고 주고 한 적이 있어야 알 것 아닌가.
당당하게 병실로 가 통장 내역을 어머니께 보여 드리고는 등짝을 세차게 또 한 대 얻어맞았다.
퍽!
“아이고, 왜 또 때려요, 엄마.”
“상의를 좀 하고 해! 이런 거 잘못하면 큰일 나!”
그리고 며칠 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고 정말로 큰일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땅을 판 시점이 구입 시점으로부터 1년 이내. 그렇다면 세금이 자그마치 50%라는 사실.
‘미쳤구나, 내가. 이거 이 부동산 사장이 왜 말을 안 했지? 내가 크게 오르면 팔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2억 짜리가 30배, 60억이 되었고, 양도소득세가 50%로 30억이나 됐다.
그나마 보유하고 있던 기간이 해가 넘을 때마다 대충 10%씩 세금이 감면되는 것 같기는 한데 나는 해당 없는 사항. 10%면 6억이다.
아…….
결국 이거 다 내면 내 손에 들어오는 건 30억인데, 거기에 부모님 5억 이미 송금했으니 증여세도 얼마냐 이거.
하……. 이래서 돈도 많이 벌어 본 사람, 그리고 많이 굴려 본 사람이 더욱 더 벌게 된다는 거구나.
아무튼 미친 짓을 부모님께 이실직고할 수는 없었다.
그냥 그때 온 문자는 몸이 달은 부동산업자가 허풍을 친 거라 실제로는 30억에 팔렸다 하고, 5억을 드리고 나서 세금은 부모님께서 내주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등짝 후리기로 땅 이야기는 끝을 냈다.
아마 그 5억도 세금이 10% 넘을 것이다.
내 피 같은 돈.
국가에 세금을 이리 냈으니 뭐 애국한 거라고 생각하고 잊어야지.
하지만 솔직히 너무 아까운 돈. 부자들이 왜 그리도 세금 아끼려 별짓을 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 * *
“저 왔습니…….”
펑! 퍼펑!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이미도 원장의 강의실로 들어갔을 때였다.
닫힌 문을 열자마자 사방에서 폭죽이 터져 뒤로 넘어질 뻔한 나를 주현필이 잡았다.
“퇴원 축하해요!”
“고생 많으셨어요, 유 선생님.”
주현필이 나를 잡은 반대쪽 손으로 뭔가를 내 얼굴에다 갖다 박았다. 케이크였다.
얼굴이 얼얼할 정도였으니 나름 감정을 실은 한 방이 아니었을까.
그나저나 이런 건 체질에 맞지 않는데.
떠들썩한 환영식이 곧 끝나고, 강의실에는 다시 나와 이미도 원장, 그리고 주현필에 성공 학원으로 넘어갔다가 복귀한 유환 선생님까지 넷이 남았다.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이런 일까지 겪게 할 의도는 없었는데. 다시 한 번 미안해요.”
이미도 원장이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이들의 입장에서 나는 완전히 햇병아리, 하지만 그 햇병아리가 표적이 되어 골목에서 벽돌을 맞아 버렸으니 미안할 만했다.
하지만 굳이 이들 탓은 아니었다. 내가 나의 성공을 위해 선택한 길이었으니.
죽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흰머리 할아버지까지 만나고 올 정도였으면 정말 아슬아슬했던 것이리라.
“이제 괜찮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맥스스쿨이 어느 정도 여파를 미쳤는지…….”
“일 이야기부터 하기야? 혈기가 넘치는 건지, 아니면 인생을 즐길 줄을 모르는 건지 모르겠구먼.”
주현필은 딱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현필에게도 물어볼 것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그거고, 선생님, 맥스스쿨 계셨어요? 왜 한 번도 말씀을…….”
“그건 유 선생이 알 필요 없으니 말을 안 한 거지. 옛날 일이야. 여기 오기 훨씬 전 일.”
역시나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 희생에 이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바뀌었을까 했지만 헛된 기대였다.
냉혹한 사람.
그래도 이미도 원장에게는 든든한 조력자 같은 사람일 것이다.
“여파는 걱정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았어요. 분명히 있기는 했지만. 합병 사실을 제대로 홍보하면서 진입한 것이 이제 두 달째라서 아직은 원생 숫자의 변화는 없어요. 그나마 타격이라 한다면 유현덕 선생님 학생들이 조금 빠져나간 정도?”
“참, 많이 빠져나갔나요? 강의는 어떻게……. 주현필 선생님이 해 주신 건가요?”
“나는 강의를 더 늘릴 여력이 없어. 잊었어? 재수 종합반도 돌리고 있잖아.”
입시 설명회에서 홍보한 재수 종합반. 이건 1월부터 원생을 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대략 다섯 개 반 정도로 학생들이 들어왔고, 기존 단과 중심으로 운영하던 신성 학원 건물 위층에 자리를 잡았다.
한 반에 40명 정도로 다섯 개 반, 그리고 전 과목, 하루 종일 운영하기에 그만큼 수강료가 비쌌다.
다만 필요한 강사 수가 원체 많아 아직은 학원 입장에서 큰 수익이 나지는 않는 상황. 아마도 올해 수능시험 결과로 내년 승패가 판가름 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수능시험에서 어느 정도 결과가 있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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