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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26화 (26/200)

[26] 26화.

제1강 복귀

하얀 천장.

천장이 아니라 아무 색이 없는, 그냥 하얀 공간인가?

머리통이 욱신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 할아버지?”

오광필 할아버지가 아니다. 나를 두 번 살게 해 준, 아니 세 번인가? 아무튼 고개를 들자 그 흰머리 할아버지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대충 눈치챌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나는 또 한 번 죽은 것이다. 지난번처럼 또 어이없이…….

하여간 나란 존재는 불운을 타고 났던 것인가.

아니, 나쁜 짓만 골라서 하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왜 이렇게 까지 재수가 없는지. 억울했다.

“아냐.”

응?

“네?”

아, 이런 대화. 왠지 그만하고 싶다.

“아직 안 죽었다고. 넌 맞아 죽을 명은 아니니 얼른 돌아가!”

그리고 할아버지가 갑자기 뭐라 뭐라 말하면서 내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뭐라고 했는지는 궁금했지만 보기보다 힘이 좋은 할아버지의 손찌검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조금만 기다려 주지.

‘그나저나 왜 또 하필 머리통을!’

* * *

“아이고!”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까만 하늘인가?

몸을 일으켜 보려는데 움직일 수가 없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듯.

가만 보자…….

나는 분명 원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집 앞 골목까지 무사히 와서 돌았는데.

맞다. 그 이후에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지?

누구였더라. 얼굴을 본 기억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눈을 떴으니 여긴 골목 바닥인가?

아니었다. 바닥이 푹신푹신한 것이 딱 침대는 침대인데, 내 방 침대는 아니었다. 이것보다 훨씬 푹신해야 하는데.

‘저, 저기요?’

“으……. 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내 몸은 내 몸인데 아무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날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을 때, 병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머리에 뭔가 맞은 것이 심하긴 했나 보다.

처음보다는 그래도 몸을 꿈틀거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병실로 들어오지 않아 체념하려고 할 때…….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내 몸 왼쪽 아래편에서 들렸다.

“어머님, 어제는 조금 피곤하셨나 보네요.”

천장만을 바라보는 내 시야로는 누군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볼 수는 없었지만 간호사 같았다.

그런데 어머님이라고?

“어? 아, 오늘은 늦잠을 자 버렸네요. 선생님도 고생 많으시네요.”

엄마 목소리였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내가 돈을 벌어서 뭐하랴. 성공하고 잘해 드리려고 한 건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우리 엄마는 스물 넘은 아들 병원에서 수발이나 드시고…….

“아닙니다. 의사 선생님 회진 곧……. 어머님! 환자분 눈을 뜨셨어요!”

나는 처음부터 계속 눈 뜨고 있었는데.

“네? 아, 현덕아! 현덕아, 정신이 들어?”

시야의 오른쪽 밖에서 그리운 얼굴이 들어왔다.

엄마였다.

그리고 곧바로 왼쪽 아래에서 간호복을 입은 여성이 보이더니 이내 내 시야 위쪽에서 멈췄다.

“네, 여기 302호 환자분 깨어나셨어요. 강진욱 선생님께 연락 좀 드려 주세요.”

이 와중에 나는 시야를 움직이지도 못하니 눈앞의 간호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또 다시 못 뜰까 봐 그냥 뜨고 있었고.

음, 그나저나 내가 살면서 이렇게 한 여자와 몸이 가깝게 놓여 있던 적이 있었나?

민망한 상황인데 정작 민망해할 수도 없이 몸을 움직이질 못하다니.

엄마가 내 몸을 막 흔들었다. 시야가 간호사의 몸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고마워요, 엄마.

* * *

그렇게 눈을 뜨고 이틀 정도 지나니 대충 말은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눈만 껌뻑이는 것으로 의사표시를 할 뿐.

의사들 이야기를 엿들으니 원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면 한동안 회복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혼수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목으로 흘려 넘겨주는 미음 같은 것을 먹으며 이틀을 보냈다.

조금씩 몸에 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냥 목소리를 조금 내거나 팔을 드는 정도였지만.

부모님과 조금씩 이야기가 통하자 얼마 안 있어 혼이 나기 시작했다.

“무슨 대학생이 학원에서 일을 한다고 그래! 사범대에 갔으면 공부나 하지 왜 학원 일을 하다가 이런 일까지 당하니!”

에고, 이런 일로 혼이 날 나이가 아닌데…….

하긴 지금은 내 나이 스물하나. 서른이나 넘겼으면 그러려니 하셨겠지만 지금 나이는 아닐 것이다. 아직 한없이 어려 보이시겠지.

“험한 일 하지 말자, 앞으로. 응? 돈 많이 안 벌어도 되니깐.”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앉아만 계셨다.

그리고 그렇게 혼나던 중 벽에 걸린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왜 저게 이틀이 지날 동안 보이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쓰러진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달력은 2002년 12월이었다. 나는 자그마치 세 달 동안 이렇게 누워 있던 것이고…….

아직 몸이 불편해 황급히 어머니께 휴대폰을 달라고 해 충전기에 꽂아 놓았다.

세 달.

내 마지막 기억은 신성 학원과 미래 학원이 성공 대입학원을 거의 무너뜨린, 그리고 성공 대입학원이 뜬금없이 전국구 학원 맥스스쿨과 합병을 발표한 것이었다.

세 달.

너무 긴 시간이었다.

뭔가 결착이 난 것인지, 아니면 또 다시 피 튀기는 전쟁으로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 상황에서 모든 사건들을 뒤로 하고 나만 쓰러져 있었다니…….

휴대폰이 약간 충전되고 전원이 들어오자 곧바로 문자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우선적으로 스팸들을 삭제하는 데만 5분이 넘게 걸렸다.

거지같은 놈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아니 미래나 과거나인가? 어쨌든 스팸은 문젯거리다. 도대체 왜 저리들 보내는지, 확인도 안 하는데 말이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내가 일전에 땅을 구입한 부동산에서 5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와 그보다 더 많은 개수의 문자가 와 있었다.

이건 대충 무슨 내용인지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눈과 귀로 확인을 해야 했다. 녹색 백라이트로 비춰져 보이는 글자들 사이로 다급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사장님, 연락 꼭 좀 빨리 부탁드립니다. 그 땅 사려고 줄을 섰어요. 60억입니다. 60억.]

60억…….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는 액수다. 내가 그 땅을 얼마를 주고 샀더라?

“으흐흐흐.”

“현덕아? 너, 왜 그래? 걱정되게.”

걱정이 되실 게다. 내가 혼수상태로 자그마치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누워만 있었는데 깨어나고선 또 소리까지 내 가며 실실거리니깐.

나는 말없이 휴대폰을 어머니께, 당당하게 내밀었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 고생 그만하셔도 되요. 제가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하하.”

하지만 두 분의 반응은 완전히 기대와 달랐다.

“뭐니, 이게? 땅? 너 돈놀이까지 한 거야?”

돈놀이라니…….

하긴 내가 아는 우리 부모님은 거저 얻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긴 하다. 본인들이 노동으로 나를 먹여 살리셨으니.

게다가 그들에게 나는 이제 20대 초반의 햇병아리. 일을 해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기 전에 요행을 바라는 것으로 느끼실 수도 있었다.

그렇게 느끼셨던 것 같다.

“아니에요. 제가 학원에서 번 돈으로 혹시나 하고 사 뒀던 곳이에요. 이런 것도 알아야 돈을 벌죠, 엄마.”

“돈이 부족해? 아빠랑 내가 다 도와주고 있었잖아. 그런데 네가 왜 벌써부터 그렇게 돈을 벌고 싶은 건데?”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땅 투기를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마도 나의 돈을 빨리 벌고 싶다는 생각 이면에 부모님께서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 주셔서 그렇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여기신 것 같다.

절대 그런 게 아닌데. 저는 서른 넘었단 말이에요!

“아니 돈 있으면 좋죠. 내가 빨리 자리 잡고 벌면 엄마, 아빠도 조금 편해지잖아요. 그리고 내가 애들 가르치는 것 좋아서 하는 일이니깐 안 힘들어.”

잠시 동안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아버지에게 내가 드린 휴대폰을 넘겨주신 것뿐.

아버지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화가 나거나 하신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한 표정.

내가 대화를 시작할 수밖에 없겠네.

“엄마, 아빠? 저, 부모님께서 저에게 충분히 안 해 주셔서 이렇게 일 시작한 것 아니에요. 조금 일찍 하고 싶었던 일이라 시작한 것이고, 과목도 잘 맞고 동료 선생님들도 좋아요. 굳이 학교가 아니더라도 애들 가르치는 것에는 다양한 길이 있잖아요. 거기에 돈도 꽤 벌 수 있고요. 이거 제가 허투루 쓰려고 번 돈 아니에요. 최대한 빨리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모아서 부모님 편하게 해 드리고 저도 미래를 준비하면서 살고 싶어요. 헉헉…….”

몸도 성치 않은데 갑자기 저렇게 긴 말을 한꺼번에 쏟아 내니 숨이 찼다.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가 나에게 다가와 몸을 뉘여 주셨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

그나저나 이게 세 달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다 보니 몸에 힘이 전부 빠져나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럼 몇 년간 누워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나는 분들은 재활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고맙다, 현덕아.”

아버지께서 드디어 입을 여셨다. 그리고 미소도 함께.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미소였다.

“그래도, 위험한 일은 하지 말거라.”

“저도 뭐 학원 일이 이렇게 위험할 줄을 알았나요? 하하. 학원 일은 그래도 계속할게요. 재미있어요.”

정말로 몰랐다.

애들 잘 가르치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직장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길 가다가 얻어맞고 혼수상태에 빠질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지.

* * *

다음 날 오전부터 나는 이 땅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중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절대로 받지 않는다 하셨지만, 60억이나 생기면(어쩌면 더 될지도 몰랐다. 마지막 문자가 온 것이 한 달 전이니) 최소한 5억은 드려야겠다고 빼 놓고, 나머지 55억은 뭘 하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 10년 가까이 근무하며 번 돈을 전부 모으더라도 5억에도 한참 못 갈 텐데 60억이라니. 하하.

그냥 가만히 있다가도 혼자 실실 웃음이 나왔다.

물론 계획은 있었다. 아직 이걸 쓰면서 즐길 때는 아니었다.

“정신이 나갔네, 아주.”

이렇게 말씀은 하시면서도 미소를 지으시는 엄마였다.

오전 재활 활동을 끝마치고 오후가 되자 날이 조금 풀렸다.

10월까지 반팔을 입고 있던 나는 하루아침에 날이 이렇게 추워진 것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사계절이 똑같기만 하면 그건 또 무슨 재미가 있을까.

병원 앞에는 주차장과 함께 걸어 다닐 만한 정원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병실로 돌아왔을 때, 이제까지 밝기만 하던 어머니의 표정이 갑작스레 어두워졌다.

병실에 이미도 원장, 오광필 할아버지 그리고 주현필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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