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22화.
“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학원 원장님이시잖아요?“
그녀는 특별한 대답 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거 영광입니다. 우리는 실장도 없잖아요?”
신성 학원은 워낙 급히 성장한 터라 아직 실장 역할까지 이미도 원장이 맡고 있었다.
물론 미래 학원 부원장직을 겸임하면서부터는 주현필이 신성 학원 내부의 행정적 업무를 하는 중이었다.
“원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없는 거지.”
“페이가 두 배라, 성공 학원 정도로 넘어가는 거라면 생각해 볼 만하죠. 원생 숫자도 지금보다 훨씬 많을 테니…….”
관심이 있는 척.
성공 대입학원이란 이름은 술이 확 깰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일을 시작할 때 신성 학원이란 학원명이 기억나지 않았더라면, 큰 곳으로 찔러 넣어 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분명히 내 전생에 근방 큰 학원은 신성 학원이었다. 그리고 친구 준서가 그곳에서 부러울 만큼 성공하고 있었고.
반면에 성공 대입학원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아직 제가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질 않아요. 더 배워야…….”
“나한테 배우고 싶은 거야? 그거면 해결돼.”
유환이 갑자기 또 끼어들었다.
그가 지금 신성 학원에서 버는 돈은 원생 수로 대충 계산했을 때 월 2천만 원 정도.
그도 두 배의 보장을 받았을까? 월 4천?
“선생님도 넘어가시는 거예요?”
“유환 선생님도 포함되어 있어요, 물론. 그리고 유현덕 선생님은 이미 유명하셔요. 누구한테 뭘 더 배울 필요는 굳이 없으실 정도로.”
사실이기는 했다.
생각해 보니 내 학력 지라시를 우리 학원 앞에다 뿌린 곳이 학원연합 관계자들이라 하지 않았었나? 그렇다면 성공 대입학원 조규만의 짓일 텐데…….
그런데 내 학력 가지고 공격을 했던 사람이 나를 데려가려고 한다. 그것도 페이를 지금보다 두 배 올리면서.
지금 내가 한 달에 버는 금액이 대충 3천을 넘었으니 6천을 줘야 가능할 텐데.
불가능한 제안은 아니었다. 지역 내에서 가장 큰 학원인 만큼, 강사 몇에게 학원에서 떼 가는 비율을 낮춰 페이를 올려 주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순수하게 자신들의 성장이 아니라 신성 학원을 흔들어 버리려는 목적이 너무 드러났다.
“생각 좀 해 봐야겠는걸요? 솔깃하기는 한데 그렇게 몇 년이나 계속 벌 수 있을지도 좀……. 조규만 회장님과는 이야기가 다 된 건가요?”
“생각할 시간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제안하신 부분이에요. 그리고 학원 강사라는 직업 자체가 능력에 따라 받는 직업이라 확답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이제까지 유현덕 선생님이 신성 학원에서 보여 주신 모습만 계속 유지하신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지라시가 돌았을 때 이미 내가 견제 받을 만한 인물이 되었구나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바로 한 달 전 일이었다.
공격을 하더니만 곧바로 스카우트 제의라.
내가 혼자 넘어가는 것은 신성 학원에 아주 큰 타격은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학과 유환 선생님은 수학과 대표 강사. 둘이 한꺼번에 넘어가면 신성 학원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다.
충분한 시간이라…….
“네, 그러면 생각해 보고 연락을 드릴게요.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만…….”
“괜찮아요. 뭐, 너무 오래 지나면 조건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유현덕 선생님을 모셔 오고 싶은 이유는 학원의 성장을 위해서니까요. 언제든 연락 주세요.”
“잘 생각해 봐. 나도 아직 확답은 주지 않았어. 하하. 그러면 오늘은 일 이야기는 마무리하고……. 2차나 갈까? 어때요, 김윤지 선생님은?”
술이 약한 나로서는 피해야 했다. 2차로 넘어가면, 술이 술을 부른다. 지금까지 먹은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런데 이 사람,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이 여자한테 먼저 물어보다니. 나는 당연히 따라 갈 거라 생각하는 걸까?
“저, 저는…….”
“유현덕 선생님 가시면 저도 갈게요. 호호.”
이런. 이렇게 된다면 내 계획이…….
“그럼 가야지! 큰 기회를 주신 분과 함께인데! 하하.”
“아, 저는 술을 잘 못 마십니다. 나중에 다시…….”
“왜 그러십니까, 유현덕 선생. 아리따운 여성분이 가신다는데 혼자 빼기야? 안 돼. 같이 가는 거야.”
나쁜 자식. 본인이 술을 먹고 싶은 것 같다.
하긴 아직 유환 이 사람도 결혼을 한 것은 아니니 여자랑 술 먹고 싶을 때지.
하지만 나는 아닌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2차는 곧 3차로 이어지고, 내 생각의 흐름은 끊겨 버렸다.
* * *
“조규만이 결국 제대로 선공을 하는구먼.”
“지난번에도 지라시 뿌린 걸로 공격했잖아요.”
약간은 투정하는 투로 말해 버렸다.
술자리 다음 날, 나는 미래 학원에서 이미도 원장과 오광필 할아버지에게만 따로 성공 대입학원의 제안을 알렸다.
학원 강사들을 빼 가려 한다는 정보였다.
특히나 신성 학원은 현재 이런저런 행사들로 자금이 부족할 것이기에 이미도 원장이 놀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와 오광필 할아버지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조규만이란 사람에 대해 나는 들은 것밖에 없지만 이들은 몸소 겪어 본 사람들.
“그건 그냥 ‘너네 너무 빨리 큰다? 이것들 봐라? 연합도 안 들어오는 녀석들이?’ 하고 찔러본 거고. 이번 건이 바로 그 사람 스타일이지. 허허.”
너무 여유 넘치는 것 아닌가?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그래서, 유현덕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미도 원장은 오광필 할아버지와 같이 미소를 짓다가 나에게 몸을 숙이며 물었다.
어떻게 하다니? 내가 거기 갈 생각이었으면 지금 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겠는가.
‘나를 혹시 떠보려고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요? 제가 갈 거였다면 이렇게 말씀 안 드렸죠. 서운하게 이러시기입니까?”
“왜? 돈 더 준다는데. 가야지, 이럴 때는.”
“학원 강사는 거의 프리랜서나 마찬가지에요. 페이에 움직일 수 있어요. 우리도 당장 유현덕 선생님 가치가 내려가면 내보낼 수 있고요. 그렇게 생각하셔야 해요.”
나름 충격이었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근무할 때도 뭐 자리가 없으면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것은 기간제 교사와 정규직 교사가 들어오는 루트가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이었다.
정규직 교사가 되려면 임용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기간제 교사는 학교마다 자체적인 전형을 거쳐 임시로 뽑는 자리. 일을 뼈 빠지게 한다고 해서, 또는 높은 분들에게 인정받았다고 해서 정규직이 될 수는 없었다.
다만 여기저기 소개를 받을 수 있고, 일단 계약하면 계약한 기간 동안에는 큰 사고를 치지만 않는다면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자리, 그것이 바로 기간제였다.
하지만 학원 강사는 달랐다. 더욱 냉혹했다.
임시직, 정규직 구분이 모호해서 마치 자리만 잡고 강의만 제대로 한다면 다 정규직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학교보다 훨씬 더 불안정한 일이었다.
이건 학원을 운영하는 입장도 마찬가지. 의리를 지키는 것도 살아남고 여유가 있어야 지킬 수 있다. 이미도 원장은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었다.
“하, 하지만 저는 지금 당장 다른 곳 갈 생각이 없는데요?”
“하긴 사실 유현덕 선생 학력으로는 거기서 살아남기 힘들 거야. 조규만 회장이 굉장히 학벌을 중시하는 스타일이거든. 잘해 봐야 실장일 걸? 이미도 원장이나 대학교 1학년생 끼고 돌지, 다른 학원도 마찬가지야. 허허.”
이 사람이? 띄워 주다 주저앉히기는…….
“아, 그렇겠죠. 결국 아직은…….”
말을 하고 나서 이 발언이 나에게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방금, 아직은 내가 을이고 학원이 갑이라고 인정한 것이었다. 프리랜서는 자신을 낮춘다고 득을 보는 입장이 아니었다.
“아직은? ‘아직은’ 같은 소리는 하지 말게. 이런 말에는 발끈해야 하는 거야. 나이를 보면 앞으로 훨씬 더 큰물에서 놀 수 있는 사람이 말이야.”
오광필 할아버지가 만난 후로 거의 처음으로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신성 학원에서 처음 얼굴 봤을 때도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으니 그때 이후로 두 번째인가?
그래도 이 사람들은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
“네…….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야 안 나간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유환 선생님이 나가시면…….”
“글쎄요. 오광필 회장님 생각은 어떠신지.”
“돈 더 준다고 하는 곳으로 간다고 하면 막을 수가 없어.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계략이야, 이거는. 쌓여 있는 현금이 많다면 우리도 금액을 올려서 거래를 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그럴 만한 사정도 아니고.”
내가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하긴, 만약 학원과 강사들이 서로를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면 의리를 지켜 주길 바라는 것도 무리 리라.
게다가 상대가 우리보다 여러모로 훨씬 큰 학원이기 때문에 강사 입장에서는 이것이 바로 기회였다.
밤새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먹고는 대안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가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안일하게 판단했던 것일까? 신성 학원에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당연히 내 일이 되는 것인데.
우리 셋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것은 이미도 원장이었다.
“항복할까요?”
정적이 깨짐과 동시에 그 내용 때문에 무거워진 분위기도 깨졌다.
항복이라니.
“항복? 무슨 소리야? ‘저 항복할래요.’ 하면 받아 준대?”
“학원연합에 들어가겠다고 한다면?”
아예 연합의 일부분이 된다면 조규만 회장도 지금처럼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연합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고, 그 규정이란 게 멀쩡한 것일 리 없었다.
그것 때문에 이미도 원장이 그간 연합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학원을 운영한 것이었고, 오광필 할아버지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었다.
“무슨, 그자가 이 정도 때려 놓고선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 이미 가입할 시점은 지났어. 받아 준다 하더라도 피해가 막심할 거야. 유현덕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고.”
나를 내놓으라고 하면, 그러면 나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조규만 회장 아래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걸 떠나서 가입해서 항복을 표시할 시점이 지났다면, 결국 오광필 할아버지가 원하는 회장 자리를 받거나 아니면 이쪽이 망하거나 할 때까지 싸우게 된다는 것인가.
오광필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현금, 현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현금만 어디서 구할 수가 있다면.’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묘수가 하나 떠올랐다.
“그냥 놔두면 어떨까요?”
“뭘 놔둬?”
“유환 선생님 데려가게요.”
땅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크게 오를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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