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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20화 (20/200)

[20] 20화.

“이번에는 우리 신성 학원의 유명 강사, 누구시죠? 다 아시겠죠? 그 나이에 갖추기 어려운 능력으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한! 유현덕 선생님이 나오시겠습니다!”

헐, 저렇게 소개를 하다니.

주현필, 저 사람, 학원 강사보다도 이 일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입시 설명회 끝나고 따로 있을 때 강력히 추천을 해야겠다.

그리고 내가 놀란 것은 그런 약장수 같은 멘트에 의외로 학부모들 반응이 굉장했단 점이었다.

“와아~!”

이런 분위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민망함 가득한 기분이었지만 그것이 밖으로 티가 나면 정말로 민망해진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있는 힘을 다해 최대한 당당한 걸음걸이로 단상으로 걸어 올라갔고, ‘저 어린 애가 그 사람이야?’ 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따갑지만은 않았다. 신기해하는 눈빛들이었다.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가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질까.

내가 기획하고 내가 준비한 입시 설명회.

이제까지 단순히 가르치는 것과 자료를 준비하는 일로만 이 정도 성공을 거뒀다면, 여기는 직접 면대면 마케팅을 위한 자리였다.

도박이라고 보기에는 사실 실패할 확률보다 성공할 확률이 훨씬 크긴 하다.

가운데로 나가 주현필 에게 마이크를 넘겨받는데 그가 나에게 씽긋 웃어 보였다.

나름 긴장을 풀어 주려는 시도겠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이 사람은 확실히 웃는 것보다는 무표정하거나 짜증내는 표정이 어울린다.

“안녕하세요, 유현덕입니다. 반갑습니다, 어머님들.”

주현필과는 다른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

전생에도, 현생에도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회사의 주주총회 자리와 비슷할까 싶었다.

투자자들에게 금년도 성과를 설명하고 투자의 결실을 알려 주는 자리를 주현필이 담당했다면, 이제 내가 할 일은 내년, 내후년 신성 학원과 미래 학원의 발전 방향을 교육과정의 변화와 더불어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아이들 보내 주세요.’ 하고.

슬라이드를 통해 이미 발표된 2002년 교육과정 변경 부분을 설명하며 대입과 관련한 부분만을 추려 설명했다.

2000년대의 교육과정 변화의 쟁점을 짧게 이야기하면 수능 비중의 축소와 내신 비중 확대,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생활기록부의 중요성 증가였다.

중요한 내용은 얼마 전 있었던 수능시험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았기 때문에 다음 수능은 필연적으로 난이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변별력은 상대적으로 내신이 수능에 우선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비중이 커진다. 따라서 신성 학원과 미래 학원 커리큘럼은 각 학교별 맞춤형 강좌와 2주에 한 번씩 보는 모의시험을 통해 원생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에 주력한다는 계획이었다.

인근의 다른 학원들은 전년도 수능이 워낙 어려웠기에 앞으로 수능시험에 초점을 맞추어 고난이도 문제도 풀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전략이었다.

이미 수시 비중은 매년 늘어나는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 말은 수능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었고.

당시에는 몇 년 이어 가다 사라지는 입학 전형들이 많았지만, 크게 보자면 수시는 내가 전생에 죽는 그날까지 계속 확대만 되어 왔다.

뭐, 당시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한 번 살았던 시대이니 예상과 결과가 일치할 것이다.

입시 설명회는 그렇게 성황리에 끝이 났다.

* * *

“입시 설명회 반응이 아주 좋은걸? 왜 이걸 그동안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다른 학원들에서는. 허허.”

“안주했던 거겠죠. 굳이 돈 들여서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갈 수 있는 학원은 딱 정해져 있었으니……. 할아버지 미래 학원도 그 중 하나 아니었을까요?”

“하긴 학원연합은 결국 큰 학원은 큰 대로 남고, 작은 학원들은 작은 대로 살아가는 걸 추구했지. 연합의 이름으로 소규모 어려운 학원들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적선이야. 못 사는 사람들이 잘살게 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남기만 하도록 하는…….”

“그런 면에서 회장님은 적선 왕이셨죠. 호호.”

이미도가 웃으며 말했다.

신규 강의 개설 준비 때문에 미래 학원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신성 학원은 주현필이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었다.

입시 설명회는 거의 전적으로 신성 학원 주도하에 진행됐기에 신성 학원 강의실에 이렇게 셋이 앉아 있는 것은 몇 주 만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대화는 주현필이 들어오며 조금은 차가워졌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할아버지?”

나는 따로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이미도 원장에게는 차마 물어보지 못한 것.

뭐, 사실 궁금하기만 할 뿐이지 심각하게 고려하는 사안은 아닌지라 직접 물어보지만 않는다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왜? 표정 보니 뭔가 궁금한 모양이구먼.”

능구렁이 할아버지.

“미래 학원을 만약에 다른 사람에게 넘기신다면 얼마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예민한 내용이라서?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이러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었다.

잠시 오광필 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쳐다보다 이미도 원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아까까지의 밝은 얼굴이 아니었다.

“이미도 원장, 자네라면 신성 학원 팔 수 있겠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물어보는 걸세.”

이미도 원장이 나를 보고 말했다.

“글쎄요. 유현덕 선생님은 자신만의 학원을 가지고 싶은 건가요?”

학원을 굳이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돈을 벌고 싶었던 것이지 막상 뭘 평생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단과반의 경우 학원에서 수강료의 50%를 가져간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는 부분.

우리 학원이야 내가 그걸 제안하고 시작한 탓에 50밖에 못 가져가지만, 다른 학원들은 70이 학원 몫, 그리고 나머지 30이 강사 몫으로 돌아가는 곳들도 꽤 많았다.

내 전생에도 수도권 지역 유명 강사들이 자신의 학원을 차려서 나오는 경우도 종종 봤지 않은가.

물론 그중 다수가 접는 경우도 많이 봤다.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궁금한 정도.

강사의 네임 밸류만 믿고 차리기는 위험부담이 상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수나 합병의 경우는 어떠할까?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요. 제가 일하는 학원이 어느 정도 가격일까, 하고요.”

“조규만이 연합 회장직 내려오고 학원 망하면 인수해 버려! 하하.”

“네?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운영을…….”

오광필 할아버지의 입에서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 버리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언젠가 돈이 많이 모이면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별 생각 없이 물어본 거였는데…….

“보통 신성 학원, 미래 학원, 그리고 성공 대입학원 정도 규모라면 아마 50억 이상은 할 걸요? 계산은 안 해 봐서 모르겠지만요.”

50억이라. 하긴 이미 지역 학원가를 장악할 만한 위치에 오른 학원들을 인수한다는 것은 웬만한 자산가가 아니라면 힘든 일일 것이다.

내가 지금 대략 1년에 계산상으로 2억 조금 넘게 벌 수 있다고 하면, 그렇게 10년 이상 모아야 하는 돈.

물론 구매하기로 계획하고 있는 땅값이 예상대로 올라 준다면 가능할 수도 있나?

“하지만 새로 차리는 것은 얼마 안 들어요. 과외 같은 것으로 먹고 사시는 선생님들도 많고. 하긴 유현덕 선생 능력치라면 생각해 볼만 하죠. 그렇지 않아요, 오광필 회장님?”

“지금대로만 커 준다면 해 볼만 하겠지. 하지만 초반에 잘나가다가 거꾸러지는 강사 널렸어. 조심해야 해.”

맞는 말이다. 내 지금 상황은 잠깐의 성공일 뿐이었다.

잠시 동안 이렇게 번다고 한들 앞으로 평생 먹고 살 만큼 버는 것도 아니다.

땅으로 돈을 버는 것도 버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직업은 있어야 할 터. 나에게 있어서 학원이란 이제 본업이었다. 물론 대학생 신분이기는 하더라도.

아, 그러고 보니 큰 문제가 하나 남았구나.

군대.

군대를 두 번이나 가야 하다니…….

“열심히만 계속 해 봐. 또 누가 알아? 이미도 원장한테 유현덕 선생 같은 복덩이 굴러 떨어진 것처럼 유현덕 선생에게도 그런 복덩이가 굴러 들어올지? 허허허.”

* * *

“야, 이거 네가 제안했지?”

40대 중반, 남성, 깔끔한 외모. 하지만 그의 거친 말투는 외향을 따라가지 못했다.

오광필 전 회장을 아는 사람은 이 둘이 함께 있다면 굉장히 오묘한 분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회장님 자리에 앉아 있는 그의 앞에 20대 후반 남자들이 무릎을 꿇고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고 앉아 있다. 마치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나는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런 식으로 대응할 줄은.”

“몰랐다? 지금 몰랐다가 변명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번에는 손에 들려 있던 펜이 날아왔다.

가까스로 맞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곧 후회될 정도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차마 마주칠 수가 없어 땅만 바라보았다.

“걔네들 입시 설명회까지 했다면서? 가서 깽판이라도 치든가 했어야지!”

다시 날아오는 호통. 이런 모습이 최근 계속 이어졌다.

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는 조규만. 장기 집권하던 오광필을 밀어내고 학원연합의 현 회장이 된 남자다.

똑똑!

“뭐야?”

흐름이 끊겼다고 조규만은 아쉬움의, 그리고 다른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한숨이지만 완전히 달랐다.

“회장님, 진정하시죠. 아이들 오는 시간입니다. 밖에까지 소리가 다 들려서.”

“알겠네, 알겠어. 다들 나가 봐! 그리고 신성 학원, 미래 학원 잘 주시하고!”

“네, 회장님.”

마치 조폭과도 같은 운영 방식을 고수하는 성공 대입학원의 회의실 모습.

하지만 이렇게 무식해 보이는 모습 이면에는 근래 들어 이 근방에서 가장 성공한 학원을 만든 조규만의 머리가 있었다.

오광필 전 회장이 소규모 학원도 살아남도록 허락하는 중용의 길을 택했다면, 조규만 현 회장은 적자생존의 길을 택했다.

작은 학원의 생존을 허락하지 않고 몇 개의 대형 학원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구조.

그는 이런 구조에서야말로 자신들의 이익이 최대화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성공 대입학원 주변의 다수 중소규모 학원들은 문을 닫거나 흡수된 상태.

가장 최근의 먹잇감이 바로 신성 학원이었다.

중심 지역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나름 블루 오션을 개척하여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는 개원 4년차의 신생 학원.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유현덕이라는 신규 강사가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며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기에 뒷조사를 지시했다.

그리고 그가 아직 대학교 1학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학원 주변에 지라시를 뿌려 통제를 해 보려 했으나, 예상외로 곧바로 인정하고 자신들의 장점으로 그것을 돌리는 비책에 완전히 밀려 버린 것이었다.

“이거, 이제 막 학원 생활 시작한 꼬맹이 하나한테 학력도 좋은 녀석들이 밀린다는 것이 말이 돼?”

“진정하세요. 어려도 능력이 좋을 수도 있잖아요. 외삼촌도 젊은 나이에 성공하시고 여기까지 오셨잖습니까.”

“그건 그렇기는 하지. 답답해. 강의력으로 승부를 보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아예 꾀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뭣 하러 돈 써 가면서 그 좋은 대학들을 나왔냐고!”

잔뜩 흥분한 그를 의외로 아이 타이르듯 진정시키는 여성은, 아까 나간 무릎 꿇고 앉아 있던 남자들과 비슷한 또래의 직원이었다.

학원에서 직원이 강사들보다 오히려 더 영향력이 있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으나, 그녀는 조규만 회장의 외조카였다.

게다가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잠시 외삼촌의 학원 일을 도와주러 온 상황이었다.

가끔씩 학원 운영에 대해 내놓는 방안들이 획기적이라 나름 조규만의 신임을 얻은 그녀는 이번에도 한 가지 새로운 대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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