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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9화 (19/200)

[19] 19화.

“저, 무슨 말씀이신지를……. 그리고 저 노인은 누구입니까?”

“노인? 바로 알아보네, 이것도. 노인 맞아요. 보통들 40대 정도로 보고 만만하게 생각하지만 저래 보여도 70이 다 되는 사람이니…….”

70? 그것은 조금 예상외다.

많이 잡아 봐야 60 초반으로 봤는데.

“이 지역 학원연합 회장이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원연합은 뭐죠? 처음 들어보는데…….”

“유현덕 선생이 대학생이라고 지라시 돌린 곳이야.”

아! 그 종이쪽지들…….

그것들이 학원연합이란 곳에서 유포한 것이라고?

“도대체 왜…….”

“견제겠지요. 우리가 그 연합에 소속되지 않았거든요. 소속되어 있는 학원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죠.”

“그러면 아까 그 어르신과는 할 이야기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 분이 회장이라면서요?”

“저분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셨어. 그리고 이번 지라시 사건은 회장직에서 밀려나고 터진 일이야. 그것과 관련해서 대화를 해 보러 오신 거고.”

그가 회장직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성공 가도를 달리며 확장을 준비하는 우리 학원에 학원연합이 폭탄을 투척했다. 뭐 제대로 터지지도 않는 폭탄이기는 했지만.

이 시점에 저 노인이 우리 학원에 온 이유는 둘 중 하나일 터.

복수를 원하는 것이냐, 아니면 복권을 원하는 것이냐.

“저분 학원 규모는 지금의 우리랑 비슷해요. 우리 학원이 이 정도로 올라온 비결을 물어봐서 유현덕 선생님이라고 한 거고.”

“에이, 제가 무슨.”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오광필 회장은 지금 학원연합 회장 자리를 다시 찾으려고 하고 있어.”

역시 둘 중 하나가 맞았다.

사실 복수를 하는 것이라면 피해를 입히고 끝나 버릴 뿐이나, 복권을 노리는 것이라면 타격을 주고 본인은 그만큼 위로 다시 올라와야 한다.

타격은 단순히 우리가 당했던 거짓 소문 같은 것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복권의 문제는 조금 더 복잡했다.

“학원연합이 도대체 뭘 하는 곳인데요?”

이미도 원장이 주현필을 봤고, 그는 곧 나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학원연합이란 곳은 애초에 학원 간의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어. 예를 들면 동일한 과목의 경우 어느 정도 아래로 수강료가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약속을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건 담합이잖아요?”

학원 간 담합 의혹은 내가 학교에 근무할 때도 종종 들었었던 일이다.

다만 사교육비의 담합 부분은 공교육 입장에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알고만 있던 것.

사실 공정거래위원회든 어디든 문제를 걸면 걸릴 수 있는 것이었으나, 아무도 나서지는 않는 문제였다.

“맞아. 담합이라면 담합이지. 어쨌든 경쟁이 과도해지면 출혈이 생기니깐 자기들끼리 그러지 말자고 논의하는 자리야.”

“우리도 그 가격에 따르고 있는 건가요?”

“아니, 우리는 거기 소속이 아닌 거지. 학원 처음 만들었을 때 아까 그 오광필 회장이 몇 번 찾아왔었어. 학원연합에 들어오라고. 하지만 우리는 경쟁이 있는 지역이 아니라 굳이 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이고, 게다가 조금 찜찜하기도 하고.”

깔끔한 조직, 또는 순수하게 학원의 발전만을 위한 조직이라면 이미도 원장이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성 학원이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였다.

세상 어딜 가나 이런 어두운 구석이 있구나.

“이제 본인이 회장 자리에서 밀려나니깐 우리에게 손을 벌린 거고요?”

“뭐, 그런 셈이지. 우리랑 사이가 나쁘지는 않아. 저 사람이 회장 할 때는 전혀 터치를 받지 않았으니깐. 우리 원장님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아, 저 노인이.”

“우리가 얻는 건 뭐가 되죠?”

“계속 연합 들어가지 않고 우리끼리 성장하도록 놔두는 거지.”

“그러면 저 회장이 얻는 것은? 제가 그 학원으로 들어갔다가 그쪽 학생들 데리고 신성 학원으로 돌아오면 피해가 크잖아요?”

“저 사람 학원 운영 욕심이 크지 않아. 적당히 규모가 있는 편이라 가만 놔둬도 어느 정도 굴러가거든. 담합을 깨 버리기를 원하는 거야. 그리고 지금 현 회장 학원에 타격을 주는 것도.”

“그걸 어떻게 제가…….”

솔직한 심정이었다.

블루 오션의 경우 그냥 내가 잘하면 수강생들이 저절로 늘어나는 구조였다.

신성 학원의 성장은 철저히 유리한 지역에서 싸웠던 이유가 가장 컸다.

하지만 레드 오션 지역은 처절한 싸움판.

학원 강사로서 모든 것에 자신이 있기는 했지만, 두 달이면 짧은 시간이다. 그 동안 결과를 내는 것은 장담하기 어려웠다.

“복덩이 머리 좀 써 봐요.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래, 아마 이미도 원장 입장에서는 영역을 늘리기에 절호의 찬스일 것이다. 나도 사실 잘되면 수강생이 지금보다 배로 늘어날 수 있었다.

결국 돈이다. 내가 사교육 시장으로 바로 들어온 것은…….

“이거 나름 스카우트 제의인 건가요?”

“하하. 단순하구만 역시. 독특하다니깐. 그렇지 않아요, 원장님?”

“스카우트 제의 맞아요. 똑같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할아버지 머리가 좋으신데요? 적으로 두면 어려워질 수도 있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적당한 관계 유지하고 있던 거고. 사실 능구렁이 같은 면이 있어서 얽혀서 좋을 것은 없는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장단에 맞춰 주면 우리도 얻는 것이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미도 원장은 나를 보낼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내 의사를 물어봤던 것은 단순히 확인 차원이었을까. 아니면 상황을 듣고 내가 이런 판단을 내릴 것이라 이미 알고 있던 것일까.

“먼저 찾아온 쪽은 저분이시니 조건을 조금 올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머릿속에 번개같이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간 준비해 온 ‘입시 설명회’.

왜 이 생각을 못했던 것인지…….

“조건이요?”

“우리 입시 설명회를 공동으로 진행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그건 우리가 내 주는 건데, 너무.”

“그리고 원장님께서 그쪽 부원장 자리로 들어가시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거기에서 일하는 기간도 길게 잡을 수 있고요. 더 길게 보면 그 할아버지는 잘되면 학원연합 깨고 회장 자리 다시 차지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모두 아무 대답이 없었다.

너무 자신만만했을까?

방금 전까지도 레드 오션에서의 승부를 걱정하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 학원을 끌어 보겠다고?

어차피 그쪽은 계획에 없던 일이 아니었다. 바로 며칠 전 이미도 원장과 그 부분에 대해 논의를 했으니.

그렇다면 아예 신성 학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하드캐리를 하고, 종국적으로 하나의 이름을 가진 학원으로 만드는 것까지 생각한 것이었다.

치열한 경쟁 판으로 들어갈 상황이라면, 전초기지가 든든할수록 유리하다.

어쩌면 오광필 회장의 학원이 그 전초기지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통이 큰 거야, 아니면 겁이 없는 거야?”

주현필이 혼잣말로 주절거렸다.

‘죽고 나서 다시 한 번 살아 보세요.’

* * *

나의 제안에 따라 이미도 원장도 오광필 할아버지의 학원 부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뭐라고? 부원장직? 허허. 이거 범 새끼구먼?”

“아닙니다. 저로서는 이미도 원장님께 많이 배우는 상황이었는데, 임시라고는 하더라도 여기로 옮기면 배움이 끊기게 되어 그렇습니다.”

“뭐, 그렇게 하도록 하겠네. 이미도 원장이라면 우리 학원 방향에도 분명 도움은 될 테니. 도무지 그쪽에서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거든.”

이미도 원장의 말마따나 능구렁이 같은 할아버지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이번 도움의 손길은 우리가 이 남자에게 내어 주는 것이니 분명 도움을 받을 일도 있을 터.

오광필 할아버지의 학원의 이름은 미래 학원.

시내 한가운데 오래된 건물 4층부터 맨 꼭대기 7층까지 총 세 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내 전용 강의실로 주어진 곳은 7층, 50명 짜리 장소.

“조금 낡기는 했지만 항상 마감 제일 일찍 받는 강의가 차지하는 곳이네. 우리 학원 강사들 반발이 있더라도 여기를 내어 주는 것은…….”

“기대만큼 해 내라, 이 말씀이시죠?”

“그렇지. 기존 학생들 끌고 가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자네가 할 일은 신규 학생들을 어떻게든 저쪽에서 빼 오는 거야.”

맞는 말이다. 기존에 다니던 학생들은 강사가 바뀌더라도 웬만하면 학원을 이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익숙한 곳이 공부가 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성과를 보여 주는 일.

학원 주변 학교들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냈다.

며칠 뒤 신성 학원, 미래 학원 연합으로 입시 설명회가 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곧바로 나와 이미도 원장이 포함된 미래 학원 강사진 홍보물이 인근 학교들로 뿌려질 것이다.

일단 내가 노리는 곳은 세 곳. 일전에 이미도 원장이 언급했던 두 곳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주한고와 한성여고, 그리고 현석고. 이 세 곳은 전부 성공 대입학원의 텃밭이다. 상위권 학생 대부분이 이 학원에 다니고, 다른 중소규모 학원들이 중하위권 학생들을 확보하는 구조.

그리고 성공 대입학원장이 바로 학원연합의 현 회장 조규만이다.

그런데, 신성 학원의 내 강의들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원래 신성 학원에 개설된 강의들은 전부 신성 학원 인근에 위치한 학교 네 곳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총 여덟 개 반을 운영하며 네 개 학교 학생들의 각기 다른 교과서와 시험문제를 준비했는데, 이번에 이 반들을 통합했다.

시간별로 통합이 가능한 학생들은 남고, 도저히 맞추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주현필의 강의를 추가로 개설하여 수용했다.

학교당 하나의 강좌, 총 70명씩 네 개 반이 만들어지고, 남는 시간을 미래 학원에서 새로 개설한 세 개의 강의로 돌렸다.

원래도 토할 듯 바쁜 나날이었는데, 총 일곱 개의 각기 다른 학교 스타일을 맞추려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내가 선택한 고생길인 것을…….

나는 분명 21살이었는데, 얼굴은 내가 전생에 죽을 당시의 30대 중후반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신흥 강자 신성 학원, 그리고 전통의 미래 학원이 공동 주최하는 2002년도 입시 설명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내에서 약간 벗어난 대학교 강당을 빌려 개최한 입시 설명회에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인파가 몰렸다.

이런 행사를 개최할 때는 원래 숫자가 중요하기에 기존 학생들의 학부모들에게 학원비 할인을 내세워 참석을 유도했고, 이들만 하더라도 500명이 넘었다.

만석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 80% 이상 자리가 차기를 기대했는데, 자리가 없어 입구 쪽에 일어나 있는 참석자들도 있었다.

이미도 신성 학원 원장과 오광필 미래 학원 원장의 인사말이 끝나고 내려오는데 둘 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걸 이 녀석이 준비하자고 제안했다고? 허허.”

“조금 있으면 유현덕 선생님 차례에요.”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갔다.

애들 앞에서 수업하는 일이야 뭐 불안할 것이 있으랴마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기간제 교사가 어디 그럴 기회라도 있었겠는가.

먼저 올라간 주현필은 차분하게 준비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대입 전형의 변화, 그리고 올해 신성 학원과 미래 학원의 입시 결과가 주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가 발표할 내용은 앞으로 있을 대입 전형 예상, 그에 대응하는 신성 학원과 미래 학원이 준비하고 있는 계획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입구 쪽에 서서 듣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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