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7화.
“차라리 지금 터진 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네, 맞습니다. 어차피 터질 일이라면 아직 입시 설명회 전이니 지금이 낫습니다만, 그건 앞으로 지금 상황이 제대로 해결되거나, 아니면 재수 종합반 개설 계획을 수정한다는 가정하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만약 제대로 해결이 되지도 않고, 그 상태에서 재수 종합반 개설을 하면 필패합니다.”
그는 내심 그녀가 재수 종합반 계획을 변경하길 바랐다.
힘든 길이지만 이것을 뚫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녀가 뜻을 굽히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재수 종합반 계획 변경은 없습니다. 그러니깐 이제 방법은 하나네요.”
“원장님과 유현덕의 감과 운을 믿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요. 주현필 선생님밖에 하실 수 있는 분이 없어서요. 이 일을 시작하고선 이런 부탁을 드리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녀는 단호하고 결정력 있던 이제까지의 모습과는 다르게 머뭇거렸다.
하지만 주현필은 전부 듣지도 않고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다른 강사들을 모두 내보내고 둘만 남아 회의를 한 적은 많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은 여태껏 전무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 상황에서 주현필에게 부탁할 일은 하나였다.
“지라시의 출처를 알고 싶으신 거죠?”
“네, 맞습니다.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한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이라면 정말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이겠네요.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께 보고는 하지 마시고요. 도와주신답시고 이상한 일을 벌이실지도……. 지금은 아버지도 아무것도 모르고 계셔야 합니다.”
“대표님께 보고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정기 보고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문을 닫고 나가는 주현필의 뒷모습을 이미도 원장이 쓸쓸하게 바라봤다.
주현필…….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붙여 준 사람이었다.
* * *
내 강의실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동영상 촬영 준비를 시작했다.
사정을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 설득의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솔직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지금도 계속 학원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있었고, 각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성공을 하면 그만큼 주변에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일들을 다른 누군가가 이룬다는 것에 대한 질투.
나도 이전 생에서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가며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포장을 하고는 그 안에서 안주하며 살아갔다.
결국 자기만족일 뿐임을 모르고서는…….
“안녕하세요. 신성 학원 유현덕입니다. 오늘은 강의가 아닌, 최근 일어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 보려고 합니다.”
동영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내가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대학생 신분이란 것, 하지만 내 강의의 적중률과 내용은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수치상으로 증명하는 부분으로 이어지고 마지막 멘트는…….
“여러분, 저는 저의 학력을 속인 적이 없습니다. 꼭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잘 가르칠 수 있는 건가요? 대학 졸업생이 대학생보다 항상 잘 가르치는 것인가요? 여러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을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디 대학 나온 강사에게 수업을 들었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나 성적 이만큼 올랐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이제까지 저는 최선을 다해 저에게 강의료를 내고 수업을 듣겠다는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의 판단을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강의는 내일 올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렇게 끝이 났다.
결국 강사에게 돈을 주고 수업을 듣는 것은 성적을 올리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부분만큼은 누가 뭐래도 철저하게 충족시켰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리 생각하지만 결과는 내가 정하는 것은 아니리라. 이제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
* * *
학원에 온 아이들은 역시나 학원 앞에 뿌려졌던 종이 쪼가리에 대해 물어봤다.
“선생님, 선생님 정말 대학생이에요?”
“학원 앞에 종이들 진짜에요?”
요즘 고등학생들은 마치 내가 어렸을 적의 중학생들 같다.
무슨 호기심이 그리 많은지.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말 그대로 호기심이었다.
간혹 이런 경우도 있었지만…….
“대학생이면 우리랑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데요?”
‘그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선생님한테 가서 배우든가.’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차이가 별로 없으니 너희들 시험문제가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더 잘 알 수 있잖아?”
웃음으로 넘기기는 하지만 힘든 하루였다.
확실히 다행이었던 것은 며칠 간 학원으로 오는 문의전화가 줄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도 원장의 지시대로 정리한 문제 적중률과 지금도 인터넷에 올라가 있는, 학원 홍보를 하고 있는 강의 영상들. 그리고 강의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지라시는 지라시일 뿐이다.
한 회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는 소문이지만, 반대로 그 소문이 당사자의 직접적인 도덕성과 관련이 있다거나, 아니면 성공과 직접적으로 결부된 사안이 아니라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딱히 속이고 수강생을 모은 적이 없기에 걸릴 것이 없었다.
불안감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대학생이면 조금 불안하지 않을까요?
이런 불안감을 내비치는 학부모들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 대응은 깔끔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님. 재훈이도 유현덕 선생님 수업 들으면서 내신 점수 23점이나 한 번에 올렸잖습니까. 재훈이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이건 유현덕 선생님 능력이에요. 잘 가르치고 점수 올려 준대서 학원 보내신 거지 선생님 학력보고 보내신 것 아니시잖아요.”
학원 내부의 사태는 단 일주일 만에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라시의 내용이 퍼지고 나간 학생은 12명. 평소 들어오고 나가는 수강생의 숫자와 별 차이가 없었다.
단지 새로 들어오는 수강생 수는 확연히 줄긴 했지만 그것은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현덕 선생님, 지금 강의 듣는 학생들 학교가 근방 세 군데 학교들이지?”
“네, 맞습니다, 원장님.”
왜 물으시는지는 몰랐지만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다.
“자료도 그러면 그 세 곳 자료들 준비하는 건가?”
나는 학교 세 곳의 교과서를 분석한 자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찍어 주는 개념이 아니라 모든 문장의 부분 부분들을 쪼개고 해석하고 문법적 분석까지 함으로써 필요한 내용을 골라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시험 기간에는 내 출제 경험을 살려 각기 다섯 세트의 모의시험을 준비했다.
유환 선생님의 계산에 의하면 이 모의시험의 문제가 실제 고사에 나오는 적중률이 80% 이상이란 것.
과거에 내가 학교에서 문제를 내는 출제자 입장 이었다 보니 당연히 현 출제자의 심리도 알 수 있었다.
“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조금 범위를 넓혀 보죠, 그러면.”
“범위요?”
“응. 주한 고등학교랑 한성 여고까지. 어때? 가능하겠어요?”
이 두 학교는 학원에서 거리가 상당한 편이라 수강생이 아직 없었다. 이미도 원장은 지금 단과반의 확장을 원하는 것이리라.
나도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수강생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내 강의에는 이미 인근 세 학교에서 학원을 다닐 만한 학생들은 거의 전부 듣는 상황.
“알겠습니다. 이거 더 바빠지겠네요.”
나는 이제껏 남들보다 강의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이 적은 만큼 자료 제작에는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다.
지금 상황에서 수업이 더 늘면 아마 주말까지 밤샘을 해야 할지도…….
돈을 버는 것은 좋지만, 이거 버는 돈을 쓸 시간이 없다.
“우선 강의 동영상부터 추가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홍보지는 그 두 학교까지 돌릴게요.”
새로운 홍보지. 나의 학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아마 기존보다는 수강생 늘어나는 숫자가 조금 느리리라.
다시 한 번 찍신을 강림시켜야 하나, 이거.
* * *
“알아보셨나요? 어디에서 이런 소문을 퍼뜨렸는지?”
“네, 역시나 예상이 맞았습니다. 성공 대입학원과 우수 학원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 두 군데라면 학원연합 쪽이 관련되어 있다고 봐도 되겠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공 대입학원과 우수 학원.
이 두 학원은 시에서 가장 큰 입시 학원이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 위치해 사실 신성 학원과 시장이 겹치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그쪽은 레드 오션이라 학원 간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
“견제라……. 예상보다 빠르네요.”
이미도 원장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싸우는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대응 방안은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다. 언제라도 다른 방법으로 공격이 들어올 수 있으니.
하지만 누군지 안다면 그때는 상대방에 맞추어 대응하면 되기에 소문의 출처가 중요했던 것이다.
그 두 학원은 아마도 신성 학원의 성장세가 결국 자신들과의 경쟁으로 귀결될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장님?”
“글쎄요. 주현필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현필은 이미도 원장의 미소 짓는 표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이 신성 학원을 시작할 때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여 교육열이 상대적으로 낫고, 그렇기에 학원가 형성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지금의 위치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정도 성장을 이룬 지금은 굳이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붙어 보시겠습니까? 유현덕 선생으로?”
“딱 맞추셨네요. 이거 마음이 너무 잘 맞는데요?”
이번에는 활짝 웃는 모습.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급히 책상을 보는 척 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크흡. 네, 알겠습니다. 저는 붙지 않고 그냥 우리도 학원연합으로 들어가는 것이 출혈이 적을 거라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걔네들 텃세가 좀 심해야지요. 한 번 붙어 보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위해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이 어언 3년이 넘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 같았는데,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생각했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 과감히 투자할 시기와 엎드려 있을 때를 알아보는 예감, 싸움을 피할 때와 맞붙을 때를 결정하는 결단력까지, 아마도 그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리라.
신성 학원의 성공, 이것은 유현덕이라는 행운 덩어리가 뜬금없이 굴러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시간이 더 걸렸을 일이었다.
행운 덩어리는 평생 함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있을 때 제대로 써 먹어야 했다.
“입시 설명회 준비는 조금씩이라도 하고 계시나요?”
“물론이죠. 저는 맡은 일은 해 내는 성격입니다. 그것 때문에 제 얼굴이 이리…….”
“호호. 미안해요.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맡겨 드려서요. 그 만큼 믿고 있으니 그런 것이라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학원연합 연락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무시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유현덕 선생 홍보지는…….”
“그거는 제가 미리 연락해 뒀어요. 유현덕 선생 새로운 강의 올라가는 대로 곧바로 입시 설명회 이전에 주한고와 한성 여고 인근 지역으로 홍보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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