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15화.
“그, 그런가요? 그 생각까지는 못했네요.”
그리고 민망한 듯 두 명의 여자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강의실로 쏙 들어갔다.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
하지만 주현필은 체벌을 신고 당할 위험까지 감수하며 저렇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알아야 했다.
잠시 비명 소리가 들렸던 주현필의 강의실을 바라보다 나도 내 강의실, 이 학원에서 가장 큰 강의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시간 잘 맞춰 왔네, 다들! 반장, 출석은 다 부른 거지?”
“네. 두 명 빼고 다 왔습니다.”
“두 명 이름은 체크해 뒀지?”
“네.”
“오늘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자, 어제까지 배운 부분은 103페이지, 그리고 보고 오라고 했던 강의는?”
“여덟 번째요. 104페이지부터 110페이지까지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강의를 보면서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들에 체크해 오라고 했죠? 체크가 어디 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할게요.”
내 수업 방식은 전형적인 자기주도형 거꾸로 수업 이었다.
거꾸로 수업이란 학생들이 미리 수업할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집에서 학습하고, 학교에서는 학습한 내용을 가지고 추가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거나 토론을 하는 방식이다.
학원 수업에는 완전히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내가 도입한 건 이 거꾸로 수업에서 집에서 미리 학습하는 부분.
학원 실강에서는 학생들에게 더 심도 있는 문제를 해석해 줘서 고난이도 지문도 풀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나의 의도였다.
유행은 아니었다. 이건 사실 2010년대 중후반 들어서서야 유행을 탄 수업 방식.
하지만 효과는 괜찮았다.
자식들을 학원에 보내 놓고 공부를 하는지 안 하는지 노심초사하는 학부모들에게는 마치 같은 수강료로 과외수업 하나를 더 듣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입소문을 제대로 타고 수강생이 점점 늘고 있었다.
동시에 맥스스쿨의 온라인 강좌 홍보도 점점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문.
물론 서울권과 지방을 비교할 수는 없다.
신성 학원의 성장세가 빠르다곤 해도 고작 지방 블루 오션을 공략한 것뿐이었다.
반면 맥스스쿨은 애초부터 서울권,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오는 전국구 학원이었고, 적절한 시점에 다른 학원보다 한발 앞서 유료 온라인 강좌를 개설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우리도 내 덕분에 그 흐름을 제대로 타고 올라갈 수는 있었지만, 맥스스쿨이 타고 올라간 물결의 크기보다는 훨씬 작은 너울 정도였으리라.
마냥 행복한 나날이 잠시 멈칫할 분위기가 보인 것은 11월 말이었다.
제7강 첫 번째 위기
2001년 11월 7일, 이날은 전국의 모든 고3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초긴장에 빠지는 날이다.
듣기 문항이 진행될 때는 심지어 공항에서 비행기조차 뜨고 내리지 않는 시간.
바로 대학수학능력 시험 날 이었다.
신성 학원은 아직 고등학교 3학년 수강생들이 많지 않았다.
특히 내 강의는 2001년에 단과로 개설된 것이기에 1학년 학생들이 유독 많았다.
2학년 반도 두 개 있긴 했으나, 3학년 반은 전적으로 주현필이 담당했다.
이런 체제는 아마도 내 나이가 고등학교 3학년들과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까닭도 있었다.
학벌이나 엄청 좋다면 모를까, 지방 사범대 학생의 신분으로 주현필의 영역을 내가 잠식해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 여러분들 고생 많았습니다. 수능시험은 여러분들이 총 12년간 열심히 준비한 결과를 평가받는 날입니다. 힘든 시간이겠지만,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옆에서 시험 보는 다른 친구들도 똑같이 어렵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쉬운 것보다는 어려운 것이 열심히 한 여러분들의 성과를 드러내기 좋다는 점, 꼭 마음에 두고 시험 보기 바랍니다. 파이팅입니다.”
우리 학원의 고3 수험생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주현필이 응원 메시지를 전달했다.
원래 이런 것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제안한 것이었다.
학교에서도 수능 출정식 같은 것을 하면서 나름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 주는 효과를 봤기 때문이었다.
다른 1, 2학년 수강생들은 3학년들이 학원에서 나가는 동안 박수를 쳤다.
‘12년 동안 노력한 결과를 평가 받는다’라. 멋진 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졌다.
내일 하루 컨디션이 인생에 있어 너무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는지.
‘공부가 성공을,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실패할 확률은 줄여 준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또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 설 보험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누누이 했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사실 저것도 온전히 옳은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공부 말고도 실패하지 않을 방법들이 있다. 몸이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분명히 있다.
“올해 수능은 어떨까요?”
“…….”
내가 슬며시 주현필에게 물었으나,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아마 학생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방금 나간 학생들보다 더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긴장이 되기는 했지만, 사실 한두 번 겪는 일은 아니었기에 긴장을 숨길 수 있었다.
“그런데 원장님.”
“네? 말씀하세요.”
이미도 원장의 대답도 딱딱했다.
아마 그녀의 머릿속에는 내년 1월부터 오픈할 재수 종합반 과정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차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가 궁금한 것을 풀어야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수능이 쉬운 것이 좋은가요, 아니면 어려운 것이 좋은가요?”
물론 대충 대답은 예상하고 있으나, 확인하기 위해 물어본 것이었다.
굳이 예상되는 대답인데 왜 물어보냐고 한다면, 학교와 학원이 바라보는 수능시험은 다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어려운 것이 쉬운 것보다는 학원의 필요성을 많이 느낄 테니 유리하겠지?
학교 입장에서는 쉬운 편이 유리했다.
그것조차도 2010년 초중반이 되면, 학생부 종합 전형이라는 완전히 내신과 생활기록부 중심으로 가기 때문에 별 관계는 없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2001년.
“어려운 것이 좋긴 하죠. 쉬우면 답이 없어져. 우리가 할 수 있는 변수가 사라지는 것이거든.”
“다만 그렇더라도 내가 가르친 애들이 똑같이 점수가 떨어지면 최악이지.”
이미도 원장에 이어 대답 않고 앉아 있던 주현필이 말했다.
역시나 목소리에서도 긴장이 묻어났다.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분위기의 이틀이었다.
수능 전날, 수능 당일까지.
다음 날, 수능시험이 끝나고 전화로 수강생들의 점수를 확인하던 주현필이 내 강의실로 들어왔다.
“됐어! 됐다고!”
“네?”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문을 열고는 저렇게 소리만 지르더니 곧바로 옆 강의실로 들어가 다른 선생님들께도 똑같이 말하고 다니는 모습.
그의 표정은 밝았다. 잔뜩 흥분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원장님, 곧바로 이번 수능시험 결과 플래카드 올리죠?”
이미도 원장의 강의실로 다들 모여들었을 때, 주현필이 저렇게 말했다.
30대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뭔가에 잔뜩 흥분해 이리저리 통통 튀듯 움직이면서…….
이제 절대로 어려 보이지는 않는 30대 아저씨가 정말로 통통 튀어 다녔다.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주현필 선생님.”
“대단하셔요. 어떻게 완전히 어려운 수능이었는데 애들 점수가 그 정도로 나오다니…….”
입꼬리가 귀에 걸린 듯한 표정으로 그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다녔다.
“여기가 신성 학원인가요? 주현필 선생님 계시나요?”
아직 학생들이 올 시간은 아니라 로비에 모여 있던 선생님들이 전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이가 지긋하신 택배 기사님이 승강기에서 내렸다.
“네? 맞습니다. 전데요?”
“오늘 무슨 날이래요? 배송이 엄청 많네요. 여기 사인 좀.”
그러더니 주현필이 서류에 사인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박스들을 계속 옮겼다.
“학부모들이에요?”
살짝 보니 대부분 낯익은 이름들이었다.
“결과 확인하자마자 준비해서 보낸 것 같은데? 이거 학교 선생님들한테는 좀 미안하구만.”
미안하다면서도 표정은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전화가 계속 걸려 오는 통에 이미도 원장은 아예 수업이 이제 없는 주현필을 전화기 담당으로 지정했다.
역대 최악의 난이도라 불렸던 2002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이 끝나고, 우리 학원 앞에는 플래카드가 세 개 동시에 붙었다.
[역대 최악의 난이도도 그에게는 부족했다! 주현필(영어)의 수능 특강 대박!]
오글거리는 멘트. 하지만 그 오글거림은 결과에 기초한 것이기에 영향력은 분명 클 것이다.
[기다리면 늦습니다! 학교별 맞춤형 영어 단과 최고 속도 마감 행진!]
이건 내 이야기였다.
아직 학원 전면에 홍보를 내세우는 것은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이미도 원장은 재수 종합반 확장을 계기로 한 단계 다시 뛰어올라야 한다면서 내 강의도 걸기로 했다.
하긴, 성적으로는 내가 메인이다.
그리고 마지막 플래카드.
[신성 학원 중대 발표! 2003학년도 대입 수학 능력 시험을 대비한다! 2001년 12월 1일 공개합니다!]
12월 1일은 내가 제안하고 준비하는 입시 설명회 당일이다.
그날, 이미도 원장은 학원 수강생 학부모들과 수강을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타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신성 학원의 재수 종합반 신규 개설을 공개할 것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머리가 깨지겠지.
이때까지는 닥쳐올 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 *
따르르릉.
“감사합니다, 신성 학원 강사 유현덕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 학원에 아이를 보내려고 하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몇 학년 아이죠?”
-고등학교 1학년이고 이제 2학년 올라갑니다.
여기까지는 매번 오는 전화의 내용과 같았다.
그리고 이후 어떤 수업을 듣기 원하는지, 원하는 강사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자리 배정이 가능하면 수강생이 한 명 추가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상대방은 조금 달랐다.
-거기 젊으신 영어 선생님 반에 아이가 들어가고 싶어 하더라고요. 이름이 누구시더라?
“아, 제 수업인 것 같은데요? 저희 학원 영어과는 현재 이미도 원장님과 주현필 선생님, 그리고 제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주현필 선생님은 고3 중심으로 수업을 나가고 계시고요, 원장님은 내년에는 고1 신입생 담당 예정이세요. 제가 고2 학생들과 특강 단과 맡고 있습니다.”
한 명이 더 추가되나?
이미 꽤나 많은 인원이 내 수업을 듣고 있기에 한 명의 수강생 증가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여서 하나의 반을 만들기에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학교라면 이런저런 업무도 밖에서 보는 것보다 많고, 담당하는 학생 숫자도 워낙 많기에 손이 닿지 않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학원에서 그런 것은 없었다.
손이 닿지 않는 순간 그 학생의 마음은 떠난다. 그리고 상승 흐름이 꺾이는 순간 하강 국면에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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