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4화.
“아니요. 생각은 아직 안 해 봤어요. 이 정도로 돈이 갑자기 많이 생길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일을 하다 보니 점점 능청스러운 연기만 늘어 간다.
“그러고 보니 하나 생각난 게 있네요. 해야 할 일이…….”
“뭔데? 뭐 할 건데?”
유환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자그마치 3천에 가까운 돈.
물론 더 모아야 조금 굴릴 만하겠지만, 일단 일부는 조금 떼어서 쓸 곳이 있었다.
유환 선생님이 나에게 듣기를 기대하는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소소한 곳.
그건 바로 친구였다.
다시 살게 된 내가 학원에서 일을 시작하도록 해 준 친구.
* * *
“여, 요즘 보기가 힘드네?”
“그거야 네가 수업만 듣고 곧바로 사라지니깐 그렇지. 웬일로 나를 불렀어?”
“이 시간에 친구 부르는데 뭔 이유가 있겠냐? 하하. 술이나 한잔하자고 부른 거야.”
“술? 술이야 좋지. 그나저나 이거 올해는 처음 같이 먹는 것 같은데?”
그랬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일을 시작하고 학교생활을 소홀이 했던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매일 대학생과 학원 강사 일을 동시에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돈도 많이 벌고 있긴 하다.
하지만 번 돈을 어디다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것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 돈인데, 막상 그렇게도 바라 왔던 일이 현실이 되자 그것대로 골치가 아팠다.
혹 내가 이전 생애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돈을 버는 비용으로 지불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 그랬나? 우리 올해는 이렇게 본 적 없었나?”
“응. 뭐, 서로 얼굴이라도 보고 지내야 놀건 말건 하지. 너 맨날 학교에서 사라졌잖아.”
사실 내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학교가 아닌 학원 강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친구 준서의 영향이 컸다.
만약 그가 학원에 근무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둘이 친한 친구라 졸업 후에도 가끔씩 얼굴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가 나름 성공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아등바등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죽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오기까지 하고선…….
“그래그래. 오늘은 내가 사주는 거니깐 편하게, 많이 마셔. 실수만 하지 말고.”
이전 삶은 바꾸고 싶은 삶이었다.
하지만 바뀌지 말아야 할 것도 있었다.
소중했던 것들, 물론 조건이 달라지는 것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를 살아가도록 만들었던 것들은 잊지 말아야 했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한다 할지라도 소중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니깐.
우리는 대학가에 있는 한 술집으로 갔다.
함께 자주 갔던 호프집이나 오랜만에(내 입장에서만 오랜만이지만) 가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돈도 있고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횟집으로 갔다.
“돈 좀 버나 보네? 가난한 대학교 2학년생이 안주로 회를 다 먹고.”
이 녀석, 약간 삐져 있는 것 같다.
“꽤 벌어. 그러니깐 많이 먹자, 오늘. 아, 술 말고 회!”
“그럴까? 그냥 젤 싸고 먹을 만한 거로. 광어 먹어, 광어. 그나저나 학원에서 일하는 건 할 만해?”
원래 내가 아니라 이 녀석이 신성 학원에서 성공을 하는 것이었는데…….
“힘들어 죽겠어. 그래도 돈은 좀 벌려. 학교가 나을지 아니면 학원이 나을지 생각 중이야.”
거짓말이었다.
학교로 되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단지 나는 준서가 했던 말과 똑같이 그에게 해 주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는 나의 기억 속에 있는 미래는 현실이 아니었다.
“그래? 하긴, 학원에서 제대로만 풀리면 돈은 잘 번다더라. 그리고 따지고 보면 요새 학교 선생님들이 뭐 존경받는 직업이냐? 툭하면 사고 터지고, 처리하러 돌아다녀야 하고…….”
“이미 선생님 다 된 것처럼 말 하네? 하하. 어쨌든 그 직업도 시험을 통과해야 되는 거 아냐. 아무튼 학원은 힘은 들어. 그래도 그만큼 수익도 따라오는 것 같고.”
“나도 생각 좀 해 봐야겠네. 술이나 먹자 일단.”
갑자기 내 삶의 결정을 바꾸면서 이 친구의 삶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오히려 더 자극받아서 학원으로 나올까? 아니면 나와 이 친구의 입장이 바뀔까?
“참, 너 집은 자주 가?”
아차, 생각해보니 부모님께 연락을 못 드린 지 좀 됐다.
“아니, 연락도 못 드렸네. 에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정신이 없다 보니.”
“학원에서 일하는 건 아셔?”
“모르시지. 아시면 혼날 걸? 사범대 들어왔는데 임용 준비는 안 하고 학원 뛰고 있는 것 아시면. 돈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는 말씀 안 드리려 했는데, 아예 연락을 못 드렸네.”
교사가 될 거라고 좋아하셨던 분들이다. 아직은 차마 말씀드리기가 조금 그랬다.
목표는 1억이었다.
그 돈을 만들 때까지 연락조차 드리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삶이 바빠지니 나도 모르게 소홀히 한 것 같았다.
죄송스러웠다.
“돈도 많이 번다면서? 자주 연락 드려. 나 이번 주에 한 달 만에 전화 드렸더니 엄청 반가워하셨어.”
이따 자기 전에 전화를 드려야겠다.
“응, 그래야겠다. 학교는 별일 없는 거지?”
학교생활을 거의 하질 않다 보니 정보가 없었다.
뭐 쓸 만한 정보랄 것도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사실 한 번 겪은 일들이다 보니 굳이 그 안에서 중요한 것,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있을 일이 뭐가 있겠냐. 다들 공부하느라 바쁘지. 그 와중에 남자애들은 술 먹느라 바쁘고.”
“그치? 일이 있을 게 없지. 다음번에는 소고깃집 가자.”
“됐네요. 무슨 돈이 그리 남아돈다고. 부모님께나 좀 보내 드려. 사람 구실한다고 알려 드려야지.”
“그래야지. 곧.”
오랜만의 술자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전에는 이런저런 고민 이야기를 하느라 새벽까지 술집에서 있던 날이 많았다면, 지금은 아마 고민이 많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도 술을 많이 마셨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술에 약하다. 그리고 약하다는 것을 안다. 술 먹다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도.
준서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처음 봤을 때의 모습, 그리고 15년 넘게 친구로 지내면서 본 모습과 같았다.
집이 분명 상당히 어려웠던 것 같은데.
조만간 한 번 물어봐야겠다. 집을 찾아가 보든가…….
술집에서 나와 준서는 기숙사로 가고 나는 내 원룸으로 향했다.
여느 대학가나 다 그렇듯 이 시간에는 비틀거리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조심스레 그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피해 다니며 원룸 바로 앞 공중전화 박스로 갔다.
수화기를 들고 카드를 넣은 다음 천천히 익숙한 집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엄마? 저에요, 현덕이.”
-어! 현덕이구나! 잘 지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엄마는 역시 시원하신 성품이시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그날 있었던 전화 통화 전만 하더라도 항상 이런 모습이셨다.
“아니, 그냥요. 잘 지내시나 해서.”
-잘 지내지! 연락이 왜 그리 없었어? 무슨 일 있던 건 아니지?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돈은 안 부족해?
돈이라니…….
내가 돈이 부족할 리가 없잖은가.
“안 부족해요. 잘 쓰고 있어요. 엄마, 아빠야 말로 괜찮으셔요? 요즘도 아버지 일은 계속 나가시고요?”
-뭐, 그렇지. 잘 다니고 계셔, 걱정하지 마. 너는 그냥 공부만 잘해서 얼른 시험 붙고 선생님 되는 것만 생각해. 괜히 우리 생각해 준다고 알바같은 거 하고 다니지 말고. 너 대학까지는 책임질 테니깐.
“알겠어요, 엄마. 건강은요? 아빠는?”
-건강하신 것 같아. 뭐, 아빠가 건강하신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쁘지는 않으신 것 같으니 걱정 말아.
알바라.
내가 그걸 해서 얼마를 벌었는지 말씀드리면 깜짝 놀라실 거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셨던 게 아니라 성공적으로 독립할 능력을 갖추기를 원하셨던 것이니.
“알겠어요. 슬슬 들어가서 잘게요, 엄마. 주무셔요.”
-응, 그래 아들. 사랑해.
‘사랑해’ 라는 말이 왜 이렇게 감사하고 죄송스러운지 모르겠다.
“저도요.”
몇 달간 부모님을 못 뵙고도 생각도 못하고 지내 왔는데,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뵙고 싶어졌다.
내가 다시 어려지고 나서 몇 년이나 흘렀으니 잊을 만도 하지만, 웃고 계시던 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 * *
“자! 오늘은 56페이지에서 61페이지까지, 총 여덟 문제 풀 겁니다. 미리 풀어 오라고 했는데, 안 한 학생 있나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강의실에는 대략 30명 전후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고, 곧바로 앞에 서 있던 강사는 방금 말한 과제를 확인하기 위해 책상들 사이를 가로질러 다녔다.
곧이어 네 명의 학생들이 칠판 앞으로 불려 나왔다.
“자, 항상 말하듯이 감정을 실어서 때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치라고 때리는 겁니다.”
곧바로 강의실에서는 네 사람의 다양한 비명 소리가 차례대로 울려 퍼졌다.
“주현필 선생님 또 애들 때리시네요.”
“저거 괜찮은 건가요? 시대가 어느 땐데.”
수학과 김주현 선생님과 재수 종합반 준비를 위해 새로 들어온 윤주영 선생님이 복도를 지나가다 때마침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듣고 소곤거렸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 내가 따라가고 있었다.
“유현덕 선생님은 성적도 잘 올려 주시고 수강생도 엄청 많으신데 절대로 때리지 않으시잖아요?”
허허. 내가 때리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학교에서 워낙 많이 때리고 불려 가고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이 두 분의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애들을 패고 다닐 때의 모습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사실 학생인권조례안은 2010년 경기도에서 제일 먼저 시작될 것이었다.
지금은 2001년이니 아직 조례안은 구체화되기 이전.
하지만 규정에 없다고 해서 모든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변화 없이 80년대처럼 애들을 패지는 않았다.
느리고 약해도 시대의 미풍은 분명 학교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체벌이 과할 경우 학부모들이 학교로 찾아와 항의를 하거나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일이니, 내 입장에서는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학교로 찾아온 모습을 본 정도?
나머지는 사범대에 들어와서 교육 현장에 관하여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다.
“‘절대로!’는 아닙니다. 저도 때려야 하면 때리겠죠. 그리고 주현필 선생님께서 저렇게 하시기에 다른 선생님들이 애들 굳이 때리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통제를 하실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체벌이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분명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니깐.
하지만 좋은 말로 해결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애를 때리고 싶어서 때리거나, 교사나 강사가 본인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때리는 것이 아닌 경우에야, 적정 수준의 매는 필요악이었다.
없으면 좋겠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있어야 하는 것.
게다가 학원은 사실 무조건 성적 향상과 대입이 목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 당시 대부분의, 소위 말해 잘 가르친다는 학원에서는 체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나저나 그가 이렇게나 대놓고 숙제를 안 해온 학생들만 때린다는 것은 다른 반 학생들도 보란 의미였다.
전체적인 학원 분위기를 잡는 데 그 한 명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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