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3화.
제6강 소시민의 돈 버는 재미
“우리 에이스, 저녁은 드셨습니까? 하하.”
“그만 좀 놀려요, 유환 선생님. 웃기기는 한데 계속 놀리니깐 조금 불쌍해졌어.”
유환 선생님과 다른 수학과 김주현 선생님이 여느 때처럼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놀리고 지나갔다.
이렇게 된 지 이제 넉 달째.
저런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역시나 그날 이미도 원장과의 대화가 끝나고 있었던 회의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 학원도 이제 확장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아마 장소가 마련 되는대로 국어, 사회탐구, 과학탐구 강사 분들도 채용을 할 계획입니다. 곧바로 유명 강사들을 초빙하는 것은 부담이 커집니다. 그래서 여러 선생님들께 부탁 말씀 드립니다. 일단은 공고 내고 수습기간 둘 테니 괜찮은 선생님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였다.
물론 확장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았지만, 내가 놀림을 받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새 선생님들 오시면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아니면 어떤 기준이 있어 그 기준을 맞추어 봐야 하는 겁니까?”
“기준은, 희망 사항이겠지만, 우리 에이스 급 정도면 좋겠네요.”
“에이스? 에이스라 하심은…….”
“유현덕 선생 말이에요.”
“아!”
세상에나, 나보고 에이스라니.
사실 나 스스로는 당연히 신성 학원의 에이스급 활약을 한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 이미도 원장까지도 아마도 그렇게 여기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만 하는 것과 말로 꺼내는 것은 달랐다.
기분 나쁜 단어는 아닌데, 그날 뒤로 어쨌든 내 별명이 에이스가 되었다.
나쁘진 않지만 그걸로 놀림을 받고 있으니 짜증나는 일.
그간 정말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역시나 학생의 신분으로 일까지 하는 것은 힘든가 싶어 휴학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건 이미도 원장의 반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학원의 간판이 되려면 졸업장이 필요하단 이유였다.
학점은 다행히도 이전 생애에서 이미 다 들었던 내용들이라 평균은 나왔다.
그리고 나의 성과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부담될 수준으로.
예상대로 학원 확장 공사가 시작되고, 강의실 여건상 수강 인원을 넘겨 대기 인원으로 받아 둔 것이 두 달 이었다.
작 년 10월 중하순에 일을 시작하고 두 달간의 수습 기간, 그 이후 확장 이야기를 꺼낸 6월까지 내 수강생은 115명으로 늘어 있었다.
7월과 8월은 확장 공사가 있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강의실 인원의 한계는 15명 곱하기 8개 반, 총 120명이었다.
그동안 나는 인터넷에 올려 두었던 강의 영상을 하나씩 편집하여 “신성 학원 강사 유현덕입니다.”라는 멘트와 그 뒤에 학원 전화번호를 강의 처음과 끝, 그리고 중간 쉬는 시간에 집어넣는 작업을 했다.
이게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려 사실 강의를 녹화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컴퓨터도 겁나게 느려 터졌고…….
부언하자면, 이 시기만 하더라도 인터넷 강의의 개념은 생소했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 2000년, 그러니깐 작년쯤, 미래에 온라인 사교육 최강자로 자리 잡는 맥스스쿨이란 학원이 인터넷에 강의를 올리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았다.
내가 강의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 총 세 달간 번 돈으로 캠코더를 산 직후니깐 그 학원과 거의 엇비슷하거나 약간 늦은 시기일 것이다.
내가 죽는 2010년대 말에 맥스스쿨은 이미 정점을 찍고 약간 내려왔던 상황.
초창기 엄청나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맥스스쿨을 따라 여기저기 온라인 교육 업체들이 생겨났다.
어쨌든 대한민국 사교육 업계의 판을 흔들어 버린 학원이니 만큼, 사교육에서 성공을 거두겠다고 마음먹은 내가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뭐, 맥스스쿨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선전하는 수준만큼만 벌었으면 좋겠는데…….
“유현덕 선생 찾는 전화 너무 많이 오는 걸? 이거 까딱하다가는 돈 많이 준다는 곳으로 가 버리겠어?”
“죄송합니다. 이거, 학부모님들한테 연락이 많이 와야 좋은데 타 학원에서……. 그런데 아직 졸업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아, 그렇군요. 졸업하시면 연락 주십쇼.’ 하고 끊어요. 하하.”
강의에 홍보 문구를 넣은 뒤 서울에 위치한 학원들, 그리고 몇몇 지방 대형 학원에서 수시로 연락이 왔다.
내 연락처를 따로 넣은 것은 아니다. 영상에는 학원 이름과 번호가 있으니 그것을 보고 전화를 건 것이다.
그리고 학원으로 오는 전화는 이미도 원장님이 거의 전부 받기 때문에,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돌려주면 나는 정중히 거절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꽤나 큰돈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역시나 문제는 졸업장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니 예나 지금이 아니라 미래나 지금인가? 어쨌든 우리나라는 어느 시대나 대학 졸업장이 중요했다.
이런 건 조금 바뀌어도 좋을 법한데도 한결같다.
아무튼 인터넷을 통한 무료 강의 제공과 홍보의 효과는 엄청났다.
엄청나다는 것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기존 15명이 들을 수 있는 강의실 여덟 개를 단 여덟 달 만에 꽉 채운 나였다.
그리고 확장을 통해 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인원은 70명씩 8타임.
만약 전 강의가 마감이 된다면, 정말 그러면 좋겠지만, 수강생 수가 총 560명이 되는 거다.
560명.
학생을 돈으로 보냐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너무 자주 바뀌는 교육과정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적응하는 사교육 강사들이 인정받는 시대가 온다.
9월과 10월, 내 강의 인원은 새로 개편된 여파인지 기대만큼 엄청나게 늘지는 않았다.
사실 전 수업 마감을 기대하긴 했다.
죽었다 다시 사는 두 번째 인생인데 그 정도는 기본이 아닐까 했던 자만도 있었다.
기대가 컸다.
너무 컸나?
정말로 자만이었다.
“와, 대박인데, 이거?”
“왜요? 무슨 일인데요, 원장님?”
“수강 문의 전화 계속 받고 예약 잡아 두기는 했지만……. 유환 선생님, 주현필 선생님 좀 불러 주실 수 있으세요?”
자신의 강의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던 주현필이 급히 달려왔다.
나는 그때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그래서 나중에서야 유환 선생님을 통해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네, 원장님. 찾으셨습니까?”
“이것 좀 보세요, 선생님. 확장 공사 이제 다 끝나고 강의실 배정하려고 하는데, 계산하다 보니깐……. 주현필 선생님도 한 번 봤으면 싶어서요.”
은근한 압박이었을까?
느린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수치를 보고 그의 표정은 가관이었다고 한다.
좋은 의미로가 아니라 정말 오묘한, 좋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료가 잘되는데 싫어할 수도 없는 그런 표정.
유환 선생님이 해 준 말이다.
“이거……. 진짜에요? 전화가 계속 들어오기는 했지만…….”
“호호. 이거 정말 대단하긴 한데요. 복이 굴러 들어온 건가. 이 속도로 계속 증가하면 해 볼만 하겠어요.”
“원장님!”
“알아요. 아직 이야기 꺼낼 시점이 아닌 거. 그래도 놀라운 걸 어떡해요?”
최대 70명이 들을 수 있는 수업 여덟 개로 기존의 수강생들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존 각 15명씩이었던 수업당 수강생 수는 평균 40을 훌쩍 넘었다.
자세한 수치는 각 반마다 다르니 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냐만, 내가 그날 학원에 출근하고 받은 총 수강생 숫자는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367명, 이게 뭐에요? 학원 수강생 총 합계인가요?”
“아니, 유현덕 선생이 이번 달에 가르칠 숫자.”
“네?”
성공은 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물론 기대치는 전체 마감이었고, 그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367명이면 도대체 얼마냐, 으하하하.’
생각은 저리했으나 태연한 척 나는 “오, 많은데요? 앞으로가 중요한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주현필의 두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져 나오고 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느라 힘겨운 표정을 짓는 나를 이미도 원장은 재밌어 하는 것 같았다.
귓속에서 통장이 꽉꽉 채워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들어오는 돈만큼 일도 토할 만큼 많아졌다.
* * *
“요즘 얼굴이 활짝 피어야 할 때인데 왜 이렇게 수척해졌어? 하하.”
유환 선생님과는 나름 많이 친해졌다.
아마 내가 신성 학원에 갑자기 들어와 하드캐리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쯤 다른 학원에 가 있었을 것이다.
내 수강생이 마구 증가함과 동시에 학원 내 다른 선생님들의 수강생도 덩달아 뛰어올랐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나만 빼고는.
“죽겠어요. 일을 너무 많이 벌린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이 벌리는 건 없어, 학원에는. 항상 이때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돈만 보고 버텨야 해.”
“그, 그런가요? 하하. 하긴 제가 너무 힘들어하고 있으면 뭔가 죄송…….”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안 그래요, 원장님?”
“그치. 우리 에이스인걸.”
이미도 원장의 대답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냥 우리를 보면서 웃고만 있었다.
나보고 에이스라고 칭한 사람은 주현필이었다.
이미도 원장의 정체 건도 있고 해서 나름 친해졌다 생각했지만, 이 사람은 원래 태생적으로 재수 없게 태어난 것 같다.
그는 아마 나를 재수 없게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자, 한 잔 더 하자고! 수강생 갑자기 많아지면 힘은 엄청 들겠지만 조금 더 힘을 내야 하니깐.”
“네!”
오랜만에 학원이 끝나고 전체 회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보통 학원 근처에서 간단히 한 잔씩만 하고 들어갔던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술집.
갑작스레 수강생이 늘어난 9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었다.
“대단하십니다, 유현덕 선생님!”
“정말 그렇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세요!”
아마도 앞으로 함께하게 될 새로 오신 국어과 선생님 두 분이 장단이라도 맞추듯 번갈아 가면서 나를 비행기 태웠다.
예전의 나보다는 젊은 두 선생님들이지만, 지금 거울에 설 때마다 보는 나의 모습보다는 열 살 가까이 많은 분들이 저리 말씀하시니 뭔가 민망했다.
하지만 나도 즐길 만했다.
내 통장에 들어온 액수를 보고는 나도 그간의 힘든 고생을 다 보답 받았다고 느꼈으니깐.
자그마치 2750만원이었다.
학교에 근무할 때는 통장에 그만한 액수가 찍힌 적이 없었다.
물론 연봉으로 치자면 그보다 많고, 내가 근무한 햇수가 1, 2년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받은 금액은 단 한 달간의 정산금이었다.
통장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예상은 했었기에.
하지만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멍한 상태가 되기는 했다.
“그 돈 가지고 뭐 할 거야?”
“아, 네? 돈이요?”
방금도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술을 마시는데 나 혼자 멍하니 있다가 이미도 원장의 말을 듣고는 꿈에서 깨어나 버렸다.
돈, 사실 벌고 싶었을 뿐이지 어디에 쓰고 싶은지는 몰랐다.
돈도 있는 사람이 쓸 줄 안다고 하는데 나는 써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계획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계획이 있어야 돈을 쓰겠는가?
단지 이 정도 돈을 모았다고 돈을 막 쓰고 다닐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돈은 이것보다 훨씬 컸다.
죽었다 다시 사는 인생인데 고작 이 정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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