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1화.
“네, 지금 상황이라면 학원에 수업 듣겠다고 오더라도 추가로 받을 수가 없잖아요.”
“허……. 확장은 무슨 돈으로? 학원이 돈이 남아도는 곳인 줄 알아? 그리고, 아니다.”
그는 이미도 원장과 마찬가지로 이런 부분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신성 학원이 메이저급 자본을 가지고 시작한 학원도 아니고, 말 그대로 간간히 버텨 가는 수준이었을 때 함께했던 사람이니깐.
모든 사업이 그렇듯 지금 당장 잘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일은 쉬이 예측하기 어려웠다.
무분별한 확장은 까딱하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네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거는 뭔가 방법이 있단 의미였을 거고.”
그의 표정에 강한 거부감은 없었다.
앞으로 몇 달간 이런 식으로 수강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온다면, 늦어도 1년 이내에 더 이상 원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아무튼, 나는 이미도 원장에게 한 이야기를 주현필에게 그대로 다시 했다.
인터넷을 통한 홍보.
내 강의를 올려놓은 것까지 전부.
그는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들었다.
고개를 중간 중간 끄덕이며 듣기에 나름 내 생각에 동의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러면 확장된 강의실에서 여유 있게 강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장님은 뭐라 하시디?”
“원장님은 통이 더 크시던 걸요? 확장 오케이, 거기에 재수 종합 학원을 더 만드실 생각이시던데.”
“이거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바람을 잔뜩 집어넣었구먼?”
그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기 물건을 챙기고 나가려 했다.
내가 서둘러 밖으로 나간 그를 따라 잡았을 때, 그의 손바닥이 내 얼굴에 날아왔다.
짝!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다.
“이거 무슨 짓입니까!”
“야, 건방떨지 마. 그리고 내일 가서 어렵겠다고 말씀드려. 네가 잘못 생각하고 계산한 일이라고.”
“왜요, 갑자기?”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보다 어린 자식이…….
“이미도 원장은 네 투자 같은 거 필요 없는 사람이야. 그리고 동네에서 이런 학원 운영할 사람이 아니고. 이거 커지면 그녀한테는 좋을 것이 없어. 너 돈 벌고 싶어? 그러면 웬만큼 벌고 나가서 네가 차려. 괜히 여러 사람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미도 원장이 이런 학원을 운영할 사람이 아니다?
갑작스런 새로운 정보들, 그리고 술기운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다.
주현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 길을 걸어갔다.
나는 그대로 내 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애한테 무슨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이 정도가 딱 적당한 수준이에요. 더 커지면…….”
주현필이 끝을 내지 못한 채 멈췄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이미도는 그의 흥분한 표정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저한테 이렇게 흥분하시면서 말씀하실 수 있게 됐나요? 앉아서 말씀하세요. 다른 사람이 보면 협박하시는 걸로 보이겠어요.”
그녀의 말에는 뼈가 있었지만 표정은 웃고 있었다.
주현필은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주현필 선생님. 학원에서는 절대로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단호한 말투였다.
“이건 제가 결정한 것이에요. 유현덕 선생의 패기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결정은 제가 내린 겁니다. 헷갈리지 마세요.”
“압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학원을 하시는 것은 이유가 있으시잖아요?”
“됐습니다. 이유는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졌어요.”
“하지만 위험합니다! 잘못하면…….”
“목소리 낮추세요. 주현필 선생님이 저 걱정해 주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애매하게 숨어 지낼 수는 없어요. 계속 이렇게 없는 사람 취급 받기는 싫습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이제 제 힘이 필요해요. 도와주실 거죠?”
주현필은 당장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녀를 위해서는 뭐든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것은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책상만 보고 있는 주현필에게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듯한 말과 함께…….
“이길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과 운만 따라 주면요. 그리고 우리한테는 엄청나게 운이 좋은 친구가 하나 있잖아요?”
‘이런, 그 자식이 마음에 걸린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그때 조금 더 완강하게 반대를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유현덕을 채용한 것은 이미도의 뜻이었다.
자신이 반대를 해 봐야 상황은 변하지 않았으리라.
* * *
뜬금없는 일을 당하고 난 다음 날, 출근하기 민망했지만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주현필……. 내가 모르는 원장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도대체 감이 잡히질 않는 이야기.
그걸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주현필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이미도 원장만 몇 번 마주쳤으나 표정이 썩 좋지 않은 나를 보고는 “이야기 잘 안 됐나 보네?” 하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나는 학원이 끝나고 그녀를 따라가 볼 생각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먼저 퇴근하는 척하면서 그녀가 나오길 기다렸다.
12시가 되고 학원 전체에 불이 꺼진 후, 건물 밖으로 나온 이미도 원장은 잠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외제차 한 대가 건물 앞에서 멈췄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가씨.”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그녀에게 90도로 인사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매번 제가 감사하죠.”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남자가 열어 준 차의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설마, 그녀의 집안이 뭔가 엄청난 집안?’
그런데 왜 이런 조그만 동네에서 조그만 학원 원장으로 있는 것일까?
나는 그냥 목돈을 만들려고 이곳을 선택한 것인데…….
그리고 주현필이 그리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또 무엇 때문일지.
왜 확장을 반대하는 것일까?
해결되기 쉽지 않을 의문들이 늘어만 갔다.
“뭐지? 정말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거야? 아악! 읍!”
내 팔이 갑작스레 꺾이며 심한 통증에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렇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오기도 전, 누군가의 손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너, 뭐야? 왜 여기에 숨어서 이러고 있었어?”
괴한은 바로 주현필 이었다.
“주현필 선생님?”
주현필은 내 얼굴을 확인하고 곧 팔을 놓았지만, 꺾였던 팔은 계속해서 아팠다.
적당히 봐주면서 꺾은 것이 아니라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려나?
“팔은 왜 꺾으세요!”
제대로 펴지지 않는 팔을 부여잡고 그에게 소리치고는 밤늦은 시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도 모르게 주변 빌라들을 쳐다봤다.
다행히 곧바로 누군가가 나오지는 않았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좀 눈에 안 띄는 곳으로 가자.”
그가 나를 끌고 들어간 곳은 내가 방금 전까지 이미도 원장을 숨어서 지켜보던 곳의 바로 옆 좁은 골목이었다.
누군지 모를 손이 다가왔을 때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겁도 났지만 그것이 주현필이란 것을 알고 나니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곧 이어서 ‘이 사람이 도대체 나를 왜 이런 식으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서 볼 때는 배도 조금 나오고 둔해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이렇게 몸으로 부딪치니 의외로 단단한 골격이었다.
“괜찮은 거야?”
“엇!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가 나를 향해 단지 손을 뻗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몸이 자동적으로 움찔거렸다.
방금 전 그에게서 풍긴(그인지 모를 때였지만) 분위기는 이제까지 내가 알던 주현필의 모습이 아니었다.
“에고. 넌 거기서 뭐 하고 있던 거야, 그나저나?”
갑자기 또 사람 좋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경계심은 풀리지 않았다. 쉽사리 풀릴 것이 아니었다.
알던 사람, 물론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알던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의 분위기를 풍기며 내 팔을 꺾었는데 어찌 경계하지 않으랴.
하지만 사실 내가 하던 짓이 떳떳하지는 않았다. 숨어서 여성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 그러는 선생님은요? 팔은 왜 꺾으신 거예요?”
“웬 수상한 녀석이 숨어 있어서 확인하려고 온 거지. 그리고 그 수상한 녀석이 바로 너였고. 뭐 하고 있었어, 거기서?”
“집, 집에 가려고 하고 있었죠.”
“집에 가려는 녀석이 건물 벽에 딱 붙어서 힐끔힐끔 어딘가를 쳐다봐? 솔직히 얘기해. 너 이상한 놈은 아니란 거 아니깐.”
아, 너무 불리한 상황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미도 원장의 정체와 그녀를 데리러 온 남자의 정첸데, 그걸 묻기도 전에 내가 뭔가 알아채고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다니.
그나저나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무슨 죽었다 살아났는데 초인적인 능력 하나 없는지. 그런 거라고는 전혀 없고 그냥 기억뿐이니…….
“표정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행동한 것인가 보네. 낄 자리 못 낄 자리 구분 못할 나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알아들어야지!”
낄 자리 못 낄 자리?
“어제 내가 한 이야기 때문에 이미도 원장이 어떤 사람인가 했던 거지?”
그러게 그냥 편하게 다 이야기해 주면 될 것이 아닌가.
“직접 여쭤 봐. 이렇게 같잖은 머리 굴려 보려 하지 말고. 너 때문이 일이 상당히 그르치게 됐어 이미.”
내가 무슨 일을 그르쳤단 말인가. 한 일이라고는 열심히 일하고 돈 번 것 밖에는 없는데.
그나저나 확실히 이미도 원장의 정체가 궁금했다.
“아까 그건 어떻게 된 거에요? 원장님이 타고 가신 차는요? 그리고 그 차를 운전하던 사람은?”
“몰라, 인마. 가만, 너 솔직히 말해. 거짓말이면 다음에는 아픈 걸로만 끝나지 않을 테니깐. 너 어디 소속이야?”
“소속?”
무슨 말인지 몰라 멍청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나를 잠시 바라보던 주현필이 갑자기 내 등짝을 다시 한 번 때렸다.
“아. 왜 자꾸 때리는 거예요?”
“됐어. 내일 출근하고 나서 원장님께 여쭤 봐. 나는 이해되지 않지만 어쨌든 너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것 같으니. 하지만 일단 들으면 물릴 수 없는 이야기가 될 게다. 만약 말씀을 해 주신다면 말이지.”
“저…….”
“너 때문에 일이 어찌 돌아갈지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이제 이미 공은 던져졌으니 어쩔 수 없지. 하나만 약속해라. 네가 한 말은 네가 책임지는 거다.”
“네? 책임이요?”
“들어가 잠이나 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는 갈 길을 갔다.
도대체 그녀의 정체는 뭘까?
그리고 주현필의 정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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