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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9화 (9/200)

[9] 9화.

내가 단과 반을 개설했던 것은 2001년 1월, 21살의 나이가 시작되자마자였다.

기존 내 수업을 듣던 학생 중 단과 반으로 이동한 숫자는 11월, 12월 수습기간 중 새로 들어온 15명.

그들의 성적 향상이 제대로 확인된 것은 4월 말 중간고사 때였다.

3월까지만 하더라도 수강생 증가는 내 기대에 못 미쳤다. 15명이 들락날락 거리면서 3월이 되며 딱 수습 때 늘린 숫자만큼 더 들어왔다.

강의실에는 책걸상이 15세트씩 있기 때문에 3월 중순이 되어서야 세 개 반으로 늘렸다.

그리고 대망의 4월.

고등학교 1학년 단과 강좌의 결과를 평가받는 날.

사실 돈 들어오는 날이 내 입장에서는 평가받는 날이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시험 날이 투자한 금액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평가받는 날이 된다.

내 아이들의 성적은 평균적으로 20점 가까이 올랐다.

‘20점이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던 아이들이 수준별 하반 아이들이었고, 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자연스레 기초부터 세세하게 다져 주는 방법을 터득한다.

“이쪽 방면으로 타고난 운을 가지고 있는 거지.”

이미도 원장이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에게 한 말이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몇 년간 하던 일이 가르치고 시험 출제하고 평가하는 일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성과는 당연했다.

하지만 다른 강사들이 보기에는 운이 지지리도 따라 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찍어 준 문제들, 물론 세세하게 나가기 때문에 찍어 준 문제의 개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함정이 있지만, 그중 실제로 시험에 그대로 나온 것이 거의 70%에 육박했다.

그 말은 즉, 내가 준 문제만 다 풀 수 있을 정도였다면 70점 이상, 거기에 스스로 풀 수 있는 문제 몇 개, 추가로 찍어서 맞춘 문제까지 따지자면 하반 녀석들이 상반으로 직행하는 수준이란 것이었다.

가장 큰 부분은 내가 바로 수년간 하던 일이 문제를 출제하는 일이었단 사실.

강사들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출제한 문제를 찍어 맞히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학교 선생님들이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번 달 장난 아니야. 내 입장에선 마냥 좋기는 한데 정산 금액이 커지니 이것도 나름 무섭네.”

“계속 쭉 달려야죠. 나중에 제 학원도 차리려면.”

“근처에만 차리지 말아 줘.”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내 단과 수강생 숫자는 다시 두 배로 뛰었다.

정산이 어떻게 되나 매번 계산하고 고민했지만 이제는 늘어나는 학생 숫자가 많아서 계산도 어려웠다.

“얼마나 나와요, 이번 달에는?”

“글쎄, 계산을 해 봐야지. 자, 수강 첫 달치는 빼고 다음 달 1일부터 계산하기로 했으니깐, 6월 달 수강 인원은 15명씩 여덟 개 반에서 한 반은 10명이니깐.”

“그러면……. 862만 원?”

“음. 이런 건 수학 선생 시켜야겠어. 내가 영어니 힘드네. 862만 원 맞는 것 같네요.”

이미도 원장도 계산을 하면서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지만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과 개설이 성공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수학과 유환 선생님과 주현필도 같이 수강생이 늘어났다.

그 말은 곧 학원 전체 수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단 의미.

더 이상 임대료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확장도 심각하게 고려중이었다. 강의실도 부족한 상황이고.

그나저나 862만 원이라…….

정말 부자인 사람들에게 이 돈은 껌값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해 본 일이라고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뿐인 나에게는 처음 받아 보는 큰 금액이었다.

내가 작년 11월부터 올 6월까지, 8개월간 번 돈을 합치면 2400만 원 정도.

인터넷 강의용으로 영상 기기를 사느라 투자한 돈 500만 원을 빼면 실제로 그리 큰돈도 아니었다.

‘적어도 억대로는 찍혀 있어야 땅을 사든가 하지.’

“저, 원장님?”

“응? 왜 그러시나요, 유현덕 선생님?”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는 이미도 원장.

지금의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기 때문에 내가 일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 이런 어색한 말투를 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만큼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부탁? 나한테 부탁할 일이 뭐가 있을까요?”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많은 수강생을 받기는 어려웠다.

그 말은 곧 지금 받는 월급이 내가 이 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받을 수 있는 돈의 최대치란 것.

신성 학원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작은 학원이지만 언젠가 이 일대의 학생들을 수준과 관계없이 다 쓸어 담는 대형 학원이 될 것이기에.

“저도 우리 학원에 투자를 좀 해 볼 수 있을까요?”

이제껏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이미도 원장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투자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걸?”

갑작스런 분위기의 변화에 나도 살짝 움찔했으나, 이미 꺼낸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내가 이 학원에 들어올 때부터 준비하던 일이었다.

만약 내가 내 예상대로 어느 정도 성과를 단시간에 이뤄 낸다면, 확장은 필수였다.

“저, 이것도 건방진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만요.”

“응, 건방졌지.”

그녀는 단호했다.

지금 학원의 상황이 어쨌든, 내가 들어온 이후로 재정 여건이 좋아지고 발전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작한 지 3년 된 학원에서 이제 막 들어와 반년을 보낸 강사가 꺼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리라.

그래도…….

“그래도 일단 이야기나 한 번 들어 보자. 유현덕 선생이 이 판에 감이 좋은 것은 충분히 느꼈으니.”

움찔하기는 분명 움찔했으나, 이전 생과 지금 생을 합하면 살아온 경험은 내가 그녀보다 훨씬 많았다.

오기가 생겼다.

난데없는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것도, 그리고 이 학원에서 아직도 나를 신입 취급하는 부분도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일단 말씀 드리기로 마음먹고 꺼낸 이야기니 말씀은 드리겠습니다. 다만 원장님께서 저의 제안이 일리가 없다 판단하시면, 그것은 그것대로 저는 이해하고 수긍하겠습니다.”

그녀는 잠시 내 얼굴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내가 아무리 죽었다 다시 한 번 돌아온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무슨 특수한 능력이 있어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 다음 나온 그녀의 대답은 다행히도 계속 들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알겠어. 투자를 받고 말고는 내 판단이니깐. 편하게 한 번 이야기해 봐. 불편한 분위기는 내가 만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유현덕 선생이 장난으로 이런 이야기를 가볍게 꺼낼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깐.”

“네.”

아마도 이번 대화가 내가 학원에 들어올 때 본 면접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아슬아슬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조금 빠르다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투자라고 언급한 부분은 실수가 맞는 것 같습니다. 우선 혹여 기분 상하셨다면 아직 제가 어려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 주세요.”

“본론으로 가. 어떤 부분에 투자하려고 했던 거야?”

“저는 지금이 우리 학원이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과는 현재 거의 마감 상태고, 가용할 수 있는 강의실을 시간별로 꽉 채워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사실은 아니었다.

나는 일곱 개 반 마감, 여덟 개 반 개설 후 15자리 중 10자리가 차 있는 상태.

그리고 주현필은 두 개 반 정도 더 개설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게다가 수학과는 상황이 조금 더 여의치 않았다. 대표 강사인 유환 선생님만 웬만큼 마감된 상태고, 나머지 한 분은 아직 절반 정도였다.

“일단 영어과는 곧바로 필요하고 수학과는 여유가 조금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우리 학원 수강생들 다수가 두 과목 모두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학은 아직 조금 여유 있잖아? 유현덕 선생 수강생 더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래?”

“아니요. 제 수업만 생각하면 제 것을 수강하기 원하는 학생이 더 들어오면 저에게 수학과 강의실 하나를 빌려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슬슬 땀이 나기 시작했다.

동네 조그만 학원 원장치고 뭔가 모를 강함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그녀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교감, 교장 선생님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포스라고나 할까?

“현재 학원 강의실은 총 다섯 개입니다. 이거 분명 올해 안으로 부족해집니다.”

그렇게 할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아직 많은 강사들이 하지는 않았던 인터넷을 통한 홍보. 내 강의들은 인터넷에 차곡차곡 쌓여 준비된 상태로 다음 단계를 기다리는 중이다.

“설마 6달 동안 수강생 좀 끌어왔다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는 거야?”

아직 그녀는 인터넷에 올라간 강의들을 몰랐다.

그리고 지금은 2001년.

인터넷을 통한 각종 홍보의 위력은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시기였다.

내 강의들의 조회수는 이미 회당 만 건을 넘어섰다.

그중 몇이나 이 동네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단순한 판촉 홍보와는 차원이 다른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사실이었다.

“네. 아직 한 가지 터뜨릴 것이 남았거든요.”

“뭔데, 그게?”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에 강의 일부 올려놓은 것이 있어요.”

“인터넷? 아직 인터넷은 홍보가…….”

“제 강의 조회수 회당 만 넘었습니다. 아, 말씀 끊어서 죄송합니다.”

“만……이라고? 그런데 아직 인터넷 보고 수강 신청하러 왔다는 학생은 없었잖아?”

당연했다.

그녀의 말대로 아직 내가 올려 둔 강의를 보고 수강 신청을 하러 온 학생은 없었다.

아직 그 강의들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뭐 하는 사람인지는 익명으로 해 두었으니.

“아직 제가 만든 것이라고 올려 두지는 않았으니까요. 처음부터 학원 강사가 만든 것이라고 하고 올리면 색안경을 끼고 봅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면 그때 일괄적으로 공개를 해야 효과가 좋을 것 같아서요. 성공할지도 확실하지 않았고요. 이제는 공개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만…….”

“그걸 통해서 홍보를 하겠다?”

왜 내가 자신 있게 투자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인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네, 이제 강의에 제 홍보를 넣으려고요.”

“음.”

잠시 기다렸다.

그녀에게도 지금 나의 제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인터넷을 통한 학원 홍보는 2000년대 중반부터 유행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인터넷 강의 사이트를 오픈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직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리라.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까지 내가 학원에서 뼈를 묻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필요한 것은 딱 필요한 만큼의 목돈.

그리고 계속 일은 하겠지만, 학원 일은 아닐 수 있었다.

“그것 때문에 투자를 하겠다는 거고?”

“네, 강의실을 확장을 했으면 합니다. 지금 있는 강의실은 그대로 놔두고 신성 학원 이름으로 건물 안에 한 층만 더 임대할까 하고요.”

“그렇게 자신 있으면 새로 학원을 차리지 그래?”

“에이, 제가 어떻게 학원을 차립니까. 아직 햇병아리인 것 잘 압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숙여야 할 때는 확실히 숙여야 하는 법.

게다가 학원에서 일하는 것과 학원을 운영하는 일에는 엄청나게 큰 간극이 있다.

나는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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