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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8화 (8/200)

[8] 8화.

“세 달이요?”

하지만 말 그대로 타협 가능할 만한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나에게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시작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미도도 그것을 이해할 것이다.

“한 달은 안 되겠습니까? 제가 지금 돈이 많이 필요해서요.”

‘돈이 많이 필요하다.’ 뭔가 조금 찌질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이것조차도 아마 그녀에게는 나의 야망으로 느껴질 것이다.

-돈이 많이요? 혹시…… 도박이나 사채 같은…….

편하게 제시를 한 것인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전혀 아닌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돈을 벌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빠르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을 얼른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두 달로 하죠, 그러면. 평균 고정급은 200만 원입니다. 저희 쪽에서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 드리는 것이니 내일부터 바로 시작해 주시면 좋겠어요. 7시까지 학원으로 오시면 됩니다. 수업이나 다른 부분은 내일 뵙고 말씀드리죠.

두 달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200만원이면 예상했던 것 보다 큰돈이었다.

물론 내가 그 정도 돈을 벌려고 다시 내 몸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두 달 이후에는 비율제, 나의 능력대로, 나를 보고 학원을 찾아오는 학생 숫자대로 나의 몸값은 오를 것이다.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

-함께 성장해 보도록 하죠, 우리. 잘 부탁합니다, 유현덕 선생님.

다음 날, 나는 3시에 대학교 수업이 끝나자 첫 출근 전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잘 지내고 계세요?”

-그럼, 웬일이야? 학교 수업 있는 거 아니야?

“방금 끝났어요. 아버지는요? 아직 회사 다니시는 거죠?”

-그럼. 네 아빠 거기 그만두시면 곧바로 힘들어져.

“요즘도 늦게 퇴근하시고요?”

-얼굴 보기가 통 힘들 정도야. 그래도 거기라도 다니시는 게 어디니. 우리 나이 대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서 큰일이지. 공부 잘해서 졸업하고 바로 학교로 들어가. 요즘은 공무원이 최고라더라.

살짝 찔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사범대학에 들어와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돈을 벌겠다 하면 일단은 싫어하시겠지만, 그 이상으로 결과물을 보여 드리면 인정해 주시리라 생각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버지, 어머니. 올해 안으로 성공하고 호강시켜 드릴게요.’

대학 신입생인 나는 그날부터 오랫동안 준비한 새로운 삶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반가워요. 이제 가족이네?”

이미도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말투로 나를 반겼다.

교무실도 없는 학원이라 각 강의실로 인사를 다녔다.

우선 면접 때도 만났던 주현필 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선배는 무슨. 나도 잘 부탁해요. 같은 영어과니깐 잘해 보자고.”

말의 내용만 보면 전날과 다른 분위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의 표정이나 말투는 전날과 거기서 거기였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사람과의 관계는 왠지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다.

그러면 뭐 어떠랴. 나에게는 이들과 거의 같은 수준의 경험이 있고, 그리고 이들보다 훨씬 우위에 설 수 있는 기억이 있으니 상관없었다.

오늘 처음 보는 수학과 선생님 두 분은 모두 조용조용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이미도 원장은 내가 사용하게 될 강의실을 보여 주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아직 사용한 적 없어 반질반질한 화이트보드, 거기에 수업 준비를 위한 컴퓨터까지.

내가 필요한 것은 전부 있었다.

그리고 두 달 후, 월급용으로 새로 만든 내 통장에는 4,000,000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제4강 판을 키우자

“축하해요. 선생님들과 협의 끝에 유현덕 선생님의 수습기간 종료 및 우리 학원 최초로 비율제 전환해 드리기로 했어요.”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해서 확실히 도움 드리죠. 하하.”

출근 첫 날보다 훨씬 여유가 넘치는 말투로 이미도 원장의 말에 대답했다.

통장에 찍힌 돈은 현재 4백만 원.

부모님께 일을 시작한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으니 생활비는 계속 받아서 썼고, 월급은 고스란히 쌓였다.

죄송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시기까지 빠듯하게 모아야 했고, 그 시기가 되면 부모님께 이제 그만 인생을 즐기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멀지 않았다.

“일단 단과 수업 개설하고 선생님 수업 듣겠다는 학생들 설문부터 하셔야 해요. 현재 있는 학원생들 전부를 데려가실 수는 없습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가르치던 아이들은 대부분 주현필 선생님 수업으로 이동되는 건가요?”

“네, 아마 그렇게 될 거에요.”

내가 맡았던 아이들은 총 30명이었다.

계산상으로는 그 아이들이 내 수업을 듣기 위해 한 달에 15만 원씩 냈으니, 총 450만 원씩 학원으로 들어갔고, 그중 나에게 돌아온 것은 200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계산이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 나에게 배정된 학생은 총 15명. 주현필 선생님은 30명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에게 수업을 듣겠다고 새로 온 학생이 15명이었다.

주현필은 다섯 명 추가에 그쳤다.

이건 완전 초대박 수준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 출근 날, 수업 교재를 받고 아이들과 인사한 후 나는 곧바로 자료 제작 작업에 들어갔다.

수업을 잘하면 입소문을 통해 학생 수가 유입된다. 하지만 이렇게 유입되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적어도 한 학기, 시험 성적 상승의 결과를 보여 주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달이었다.

수업 능력으로 입소문을 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그래서 생각해 둔 것이, 대량의 자료 제작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공개였다.

아무 사이트나, 또는 대충 만든 내 카페가 아니라, 나는 지역에 있는 아파트 커뮤니티 카페를 집중 공략했다.

학생들에게 아무리 학원을 홍보해 봐야 결국 학원을 보내는 것은 학부모다.

그리고 지역 학부모들에게 자연스럽게 학원을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은 아파트 커뮤니티 카페였다.

여기는 보통 중고 물건을 판매하거나 이런 저런 가십 거리만이 난무하는 곳이지만, 여기에 내가 올린 첫 글은 이 해의 교육정책과 그에 대한 해설, 그리고 입시 전략 소개였다.

교육열이 크지 않은 동네이지만 그것은 자녀 교육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서고, 그 정보를 코앞으로 가져다준다면 신경 쓰지 않을 부모는 없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내가 글을 올리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걸려온 상담 전화가 총 12건.

그중 자녀를 우리 학원으로 보낸 학부모는 여덟이었다.

일주일에 여덟 명이 수강생 15명의 강의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총 30명으로 커진 것이었다.

“빠르게 키우네.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아. 금세 들어온 아이들은 또 금세 나가거든.”

주현필이 옆을 지나가면서 한마디 던졌다.

이번에 나만 비율제로 전환된 것은 아니었다.

학원 성장을 위해서는 단과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꺼낸 내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 주며, 수학과 대표 강사 유환 선생님과 영어과 대표 강사 주현필, 그리고 나까지 셋이 전환되었다.

나는 입을 삐쭉 내밀며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나이가 아니었다.

‘내 덕에 조금 빨리 돈 많이 벌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고맙다고 한 마디라도 하면 어디 덧이 나나?’

생각은 저리 하면서도…….

“선배님께 많이 배워서 이렇게 된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모실게요.”

하고 말했다.

주현필은 나의 능청스런 대답에 ‘신기한 녀석’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슥 보고는 자신의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유 선생은 돈 벌면 뭐 하려고 그렇게 저돌적으로 하는 거예요?”

같은 공간에 아직 남아 있던 유환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려고 돈을 버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는 수강생 늘리는 일보다 어려웠던 것 같다.

“그냥요. 부모님 빨리 편하게 해 드리고, 저도 좀 편하게 살려고 그러죠.”

“학원 일을 하면서 편하게 살 수는 없을 걸? 돈을 많이 번다고 하더라도 번 돈을 쓸 시간이 없어.”

맞는 말이다.

죽기 전 친구 준서가 학원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있을 때, 그에게 들었던 이야기.

“야, 학교가 나아. 학원처럼 냉혹한 곳이 없어. 게다가 돈 벌어 봐야 쓸 시간이 나질 않아. 계속 보강에 보충에 수업 준비, 쪽지 시험 준비, 그리고 상담까지. 학교에서 버텨, 웬만하면.”

그는 벌어들이는 돈으로 인해 자신감이 넘쳐흘렀지만 몰골은 사실 썩 좋지는 않았다.

그만큼 몸을 축내면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일에 목매달며 할 것까지는 없을지 모르나, 내가 학원에 발을 들인 것은 평생 이것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뭐, 굳이 자세하게 그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어 그냥 어색하게 웃고는 내 강의실로 갔다.

* * *

“자, 어제 선생님이 보고 오라는 영상 전부 보고 온 거지?”

“네.”

나는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급성장하기 시작한 온라인 강좌, 그리고 2010년 중반에 유행한 거꾸로 수업을 수업에 적극 도입했다.

이 두 가지 모두 실제 수업하는 시간 외에 준비할 것이 많은 방식이었다.

따라서 모든 대학 수업을 오전으로 밀어 넣고 수업도 너무 많이 듣지 않도록 조정한 뒤, 점심 먹고 늦어도 3시까지는 학원에 도착하도록 움직였다.

사실 수능 강조 시대의 전통적 수업 방식은 문제에 나올 만한 부분을 전부 강의한 뒤, 예상 문제를 만들어 푸는 연습으로 찍어 맞추는 것이 트렌드였다.

물론 여기저기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학원들도 있었으나, 새로운 것은 그만큼 효과가 입증되기 전임을 의미했다.

그래서 보통 다른 학원들은 말 그대로 영어를 세세하게 쪼개 분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남들과 똑같은 수업을 하면서 더 벌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인터넷 강좌와 거꾸로 수업은 내가 죽기 전 어느 정도 효과성이 입증되었고 유행을 탔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적었다.

내가 처음 모은 돈 500만 원을 통째로 영상 기기 구매에 사용한 것은 그 이상을 벌어들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우선 어떤 부분을 배웠는지 한 명씩 돌아가며 말하고 시작하도록 하자. 재훈이부터?”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학교 수업 진도 이전에 그 부분을 엄청나게 세세하게 공부했고, 학교 수업 시간에 있는 여러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이는 곧장 그들의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성적 향상은 수강생 증가를 의미했다.

“단과 개설 6개월 만에 엄청 많이 커졌는데?”

“그건 원장님이나 주현필 선배님도 마찬가지이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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