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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5화 (5/200)

[5] 5화.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1분만요?”

그리고 미리 알아본 이 학원의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의 신성 학원은 지역에서 꽤나 알아주는 명문 학원으로 통했다.

그만큼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상위권 학생들이 다니는 편이었고, 돈도 꽤나 많이 벌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그래서 내가 이 학원을 고른 것이었고.

지금 현재는 오래된 건물 2층에 위치한 작은 학원이었다.

나중에야 8층짜리 이 건물을 통째로 먹어 버려 거대해지지만 지금 당장은 아마도 근근이 버티는 수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 또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신규 강사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 근방에 제대로 오래 운영하는 학원이 없다고 합니다. 이는 학원이란 것이 워낙 계절과 교육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교육정책의 분석 없이는 학부모를 설득할 만한 비전을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교육정책을 학부모보다 먼저 분석하여 그에 맞는 방향을 학부모에게 소개하고,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수능시험이 중요한 상황이나 앞으로 진보 성향의 정권이 계속된다면 분명 지역 균등 정책과 같이 학생부, 그러니깐 생활기록부와 내신을 학생 선발의 주요 지표로 활용할 확률이 큽니다. 학원에서도 이에 따른 대비를 함으로 학교보다 빠르게 정책 변화를 분석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놀란 표정이었다.

그들도 학원을 잠깐만 하고 끝내려 한 것이 아니었기에 교육청과 교육부의 뉴스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방금 내가 말한 내용은 이제 대학에 입학한 1학년생이 떠올릴 만한 방안이 아니었다.

당연했다. 나도 학교에 근무하면서 몇 년이나 맨땅에 헤딩하며 깨달은 것이었으니…….

원장 선생님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책상에 두 팔꿈치를 올리고 나에게 한껏 기울인 자세였다.

“좋은 생각이네요. 그래서 현덕 씨는 어떻게 대처를 하시겠어요?”

역시 인상대로 프로페셔널 한 질문이다.

주현필이 했던 질문과 무슨 차이가 있기에 평이 그리 다르냐 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다.

역시 사람은 인상이 중요하다고 해야 할까? 아마 똑같은 질문을 두 사람이 했더라도 나의 평은 달랐을 것이다. 인정한다.

“일단은 제가 무슨 현란해 보이는 답변을 드려도 저를 채용하기 위해 원하시는 답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는 것은 기본에, 열심히 뛰어서 많은 수강생을 모으는 것이죠.”

주현필의 표정이 ‘그럼 그렇지. 네까짓 게 뭘 그리 현란하게 자기 포장을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만의 편견으로 인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만약 방금 전 말씀드린 저의 부족한 예측에 대해 어느 정도나 준비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여기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우선 신성 학원에서는 현 교육정책과 그에 따른 대입 전략을 주제로 하는 입시 설명회를 열어 홍보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성공적인 입시를 위한 맞춤형 수업 개설 준비도 되겠고요.”

원장 선생님의 입이 찢어지려는 것 같았다.

아마도 ‘어디서 이런 인재가 굴러 들어온 것이냐?’ 생각하겠지?

그에 반해 주현필의 표정은 적대적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동물의 왕국 법칙인가.

수놈은 다른 뛰어난 수놈이 제 영역에 들어오면 경계부터 한다.

잠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원장 선생님과 주현필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나는 읽을 수 없는 눈빛 교환을 하는 것 같았다.

될까? 이 정도면?

아마 원장은 ‘채용하자’의 의미일 것이고, 주현필은 ‘생각 좀 하고’의 의미를 담은 눈빛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유현덕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 시강은?”

“시강은 면접 결과 말씀드릴 때 일시 안내해 드릴 거예요.”

* * *

“괜찮지 않아요?”

“저는 영 찜찜한데요. 뭐, 원장님께서 괜찮으시다면야 채용하시는 거지만요.”

방금 전까지 유현덕이 면접을 본 그 자리에 원장 이미도와 대표 강사 주현필이 앉아서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은 학원생이 늘어 감에 따라 신규 강사를 한 명 임시적으로 채용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임시직에 지원한 유현덕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그리고 임시직으로는 아까울 만한 인재인 것 같았다.

원래 시강은 면접 전후로 보통 보게 된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워낙 청산유수처럼 쏟아지는 그의 말발에 다음 수업 직전까지 시간을 다 써 버린 것이었다.

이미도 원장은 지금 학원의 재정 여건상 어렵긴 하겠지만, 유현덕을 풀타임 강사로 뽑고 싶었다.

자신이 차린 이 작은 학원이 이제 궤도에 오르고 성장이냐 도태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이라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반면 주현필은 뭔지 모를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도 영어 과목인 만큼 도움이 될 만한 후배가 들어오면 편해지기는 하겠는데,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은 막아야 했다.

여기는 정글이었다.

“만약 유현덕 씨를 정규로 채용하면, 대학 수업이 끝나고 시간이 될 테니 대충 7시부터 강의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겠죠? 대학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아직은 거기에서 배울 부분도 있을 테니 말이죠. 그리고 지금 당장을 그렇다 쳐도 결국 학벌이 필요할 테니.”

“그 학교 학벌이 뭐 학벌로 쳐준답니까? 다만 정규로 채용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졸업장도 없는 상태고 학원의 얼굴로 쓰기에는 아직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아요.”

“일단 선생님께서 영어과 대표를 맡고 계시니 선생님 결정대로 하겠습니다. 시간제 근무로 연락을 해 볼게요. 어차피 시강도 남아 있기는 하지만요.”

시강 날짜와 시간을 잡는 상의를 하고는 둘은 각자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면접실에서 나갔다.

사실 말이 면접실이지 강의가 없는 강의실일 뿐이었다.

이 학원 강의실은 총 다섯 개. 그중 수학과 전용 강의실 두 개와 영어과 강의실 두 개는 상시 사용이었으나 하나가 비었다.

영어과 수강생이 조금 많은 편이라 남은 하나를 사용할 강사를 채용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동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학원생을 늘리는 정도로, 강사 네 명에 총 수강생 백을 조금 넘는 수준.

일인당 학원비가 15만 원으로 일주일에 세 시간씩 수업을 해 주고 있었다.

이 상태로도 학원의 유지는 가능하겠지만, 점차 주변에 학원가가 형성되면 곧바로 망하기 쉬운 크기다.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기 전 선점 효과를 바탕으로 규모를 키워야 했다.

이미도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수업이 끝나고 유현덕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유현덕 선생님, 신성 학원 원장 이미도 입니다. 시강 일시 말씀드리려 전화 드렸습니다.”

-아, 네. 말씀하세요.

“내일 12시부터 6시 사이에 가능하신 시간이 있으신가요?”

-3시부터 4시까지 수업이 없습니다. 그때 뵈도 될까요?

“네, 좋습니다. 그러면 내용은 오셔서 확인하시고 30분 준비, 30분 시강으로 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본인의 강의실로 들어간 이미도는 자신의 서류철에서 유현덕의 이력서를 꺼내 보았다.

스펙만으로 홍보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전혀 아니다.

유현덕처럼 보통 대학 신입생 나이의 강사라면 보조 수준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와 함께 학원을 끌어간다면 자신의 꿈이 어느 정도 이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부를 넘어서겠다는 꿈을…….

* * *

시강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 아까 그 원장은 나를 좋게 보고 있었다.

다만 걸리는 점이라면 같은 영어과 대표 강사인 주현필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썩 좋지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단순히 자신의 보조 강사로 생각하고 허드렛일이나 시켜 볼까 했는데 나이에 맞지 않게 대단해 보이는 녀석이 들어오려고 했으니…….

학원을 나와 다시 학교 기숙사로 걸어가던 나는 도서관이나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보려는 것보다도 도서관 컴퓨터가 조금 쓸 만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죽는 시점에서 엄청나게 발달했던 인터넷, 모바일 기술의 혜택을 받다가 과거로 돌아오니, 도대체 이때는 어떻게 스마트폰 하나 없이 살아갔나 싶었다.

나도 분명 그 나이 때는 그런 것 없이도 잘 살았는데…….

뉴스를 확인하거나 뭔가 문서를 찾아보려면 엄청나게 느려 터진 컴퓨터를 사용해야만 했고, 그마저도 검색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나는 이때 아마도 신성 학원에 들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곧바로 찾아본 것이 그 해의 교육정책이 나의 기억과 일치하는지, 그리고 학원이 위치한 주변 지역 학교들의 홈페이지였다.

2000년 스무 살의 나이로 대학 입학.

내가 죽었던 해는 2017년이었다.

그간 대입 전형의 변화를 떠올리고 싶었으나, 내가 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였다. 그 전 시기는 기억에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2006년부터 어떤 것이 중요해지는지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 2005년까지가 문제였다.

이 시기의 변화는 어땠는지 대략적인 상황만 알고 있어 그때그때 확인이 필요했다.

자, 어디부터 살펴야 하나. 우선 교육부.

대입 전형 부분을 살펴보니 일단 가장 눈의 띈 것은 특차, 수시, 수능 전형 등 여러 가지 전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 애매한 시기지만 곧 국제학부가 인기를 끌기 시작할 것이다.

2000년대는 영어가 엄청나게 강조되는 시기, 이 시기에 바짝 벌어 둬야 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길게 가지 않는다.

2010년대 초중반을 지나며 영어의 인기가 줄고 결국 2016년부터 수능에서 영어만 절대평가로 바뀌게 된다.

그 전에 이쪽 분야에서 승부를 보고 다른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2010년대 중반까지 내가 삶을 두 번 사는 것의 이점을 최대화시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나온 결과물을 통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계획이야 얼마든 거창하게 세울 수 있지.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실현시키느냐인데…….

“현덕!”

“아야……. 누구야? 어? 준서? 여긴 어쩐 일이야?”

누군가 나의 등짝을 갑자기 후려쳤기에 돌아봤더니 준서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내 대학 동기, 그리고 내가 이전 생애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 죽기 전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였다.

기억하기론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씩 만나 커피숍을 가서 했던 이야기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울해지고 어두워졌다.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으나, 정작 우리 스스로에게는 미래가 없는 세대, 그것이 바로 우리 세대를 의미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대화의 내용이 밝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때는 뭐든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기였기에, 그의 얼굴은 익숙하나 표정은 이전 생애에 봤던 것과는 달리 즐거움 가득한 표정이었다.

“뭘 하느라 그렇게 뚫어져라 모니터를 보고 있어?”

“응? 아니, 그냥 뭐 좀 찾아보는 중이야.”

“찾아봐? 요즘 엄청 바쁜 척하고 돌아다니던데, 일이라도 구한 거야?”

이전에 그에게는 술자리에서 학원에서 일을 하겠다고 말했었다.

사실 이때만 하더라도 학교의 근무 조건이 괜찮았기에 집안 사정이 허락하는 한 그대로 공부를 이어나가 바로 임용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시기는 길지 않을 것이었다. 몇 년 내에, 우리가 대학 졸업반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런 사실들을 알려줄 수는 없기에 나는 그냥 집안 핑계를 대고 학원을 알아본다고 했던 것이었다.

“응, 잘될 것 같아. 한 군데 알아봤어. 시강만 내일 하고 오면 돼.”

“오, 벌써? 잘되면 좋겠네.”

“너는 계속 공부하는 거야? 임용시험?”

“그렇지 뭐. 그래 봐야 일단 군대나 다녀오고.”

그렇다.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가 있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인생 최악의 시기.

군대였다.

완전히 잊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잊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 군대를 한 번 다녀온 입장이기에.

젠장할, 군대를 두 번 가야 하다니. 이건 최악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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