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4화.
제2강 새롭게 사는 인생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니 최고의 삶을 살아 보자!’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세상에, 나의 과거 삶으로 돌아오며 간직한 마음이었다.
내가 돌아온 시점은 죽기 직전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애매하고 슬픈 현실에서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정확히 할아버지에게 이때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짐짓 아버지가 퇴직하시기 전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깨어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달력을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다시 살아나자마자 죽어 버린 바로 전 생애에서는 날짜도 확인하지 못했었다.
그 아이와 나의 일생이 시간상으로 겹친다면 언젠가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바로 8월 19일.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버지가 퇴직을 하신 그날이었다.
그렇다면 밤 11시 쯤 아버지가 술을 잔뜩 드시고 들어오실 것이다.
자, 이제 작은 것부터 바꿔 볼 시간이다.
“엄마, 저 밥 좀 주세요.”
“밥? 웬일이니? 아침 잘 먹지도 않고 학교 나갔잖아?”
말씀은 저렇게 하시면서도 밥은 항상 차려져 있었다.
내가 오늘 아침을 먹으려는 것은 10년 뒤 힘든 사회생활을 하며 버틴 힘이 바로 아침밥이었기 때문이지만 8어머니가 알 리는 없었다.
후다닥 차려놓은 밥을 먹고는 신발을 신고 바로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까지 거리는 대략 20분, 그리고 나는 달려서 그 거리를 10분으로 줄여 보기로 했다.
힘은 들겠지만 운동을 해야 이제부터 내가 겪을 힘든 일들을 조금 더 잘 버텨 낼 거라 생각했다.
매일 매일 10분간의 달리기.
그것이 내 삶을 바꾸는 일의 첫 번째였다.
‘헉 헉. 죽겠네, 이거. 이렇게 약했었나.’
절반쯤 달리니 숨이 차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죽어 본 적도 있는데 이 정도 못 버티겠나 싶어 계속 달렸다.
학교 입구가 보일 때쯤 달리던 것을 멈추고 걸어서 교문을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좋은 아침이다!”
교문 지도를 하시던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곧바로 교실로 들어간 나는 교과서를 폈다.
10년도 전에 읽었던 교과서.
물론 당시에 많이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되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정도의 수준인 나에게 이런 고등학교 교과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전교 1등까지는 괴물들이 있으니 모르지만, 그래도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는 있을 것이다.
내 계획은 돈을 버는 것. 공부를 최고로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성적이 너무 좋지 않으면 부모님께 불안감을 안겨 드릴 테니 어느 정도의 점수는 맞춰 볼 것이다.
오늘 당장 중요한 일은 성적이나 공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오늘 저녁에 퇴사를 하고 술에 취하신 상태로 귀가하신다. 그러고 나서 나나 엄마도 모르게 건강이 급격이 나빠지실 테고.
내가 막아야 할 미래는 바로 그것이었다.
돈 문제.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에 보탬이 되는 것.
결국 내 미래의 성공도 거기서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소소하지만 차근차근 밟아 가자!’
오랜만에 돌아온 고등학교의 생활은 힘들었다.
내가 가르치던 애들도 고등학생이었지만, 역시 애들이 왜 수업 시간에 그리 자는지 여실히 이해할 수 있는 하루였다. 학생 체험이랄까?
학교가 끝나고 10시에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집까지 달려서.
그리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
오랫동안 일했던 회사에서 퇴사를 당하고, 평소 마시지도 않던 술에 취해 돌아온 그에게 내가 했던 유일한 말이었다.
내가 힘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슬슬 다가오자, 내 기억에 뚜렷이 박혀 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떠올랐다.
괜스레 눈물이 났지만, 지금 생에서는 아직 살아 계신다. 바꿀 수 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곧바로 뛰어나갔다.
문을 열었더니 역시나 내가 어릴 적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술에 취한 아버지가 서 계셨다.
“윽! 술 냄새!”
“어라? 아빠는 술 마시면 안 되니?”
애처럼 굴기는 쉽지 않았다. 내 나이는 이미 서른일곱까지 갔었다. 물론 지금은 고등학생일 뿐이지만…….
먼저 아빠를 꼭 껴안으며 그에게 준비했던 말을 했다.
“아빠, 힘든 일 있으셨어요? 힘내세요. 저도 힘이 되어 드릴게요, 이제. 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버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내 품에 안겨 계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지는 아침이 되자 조용히 출근하는 것처럼 나가셨다.
아마도 새로운 일을 구하러 나가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내 예상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전과 같은 괜찮은 중공업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건실한 중소기업의 경력직으로 들어가셨다고 했다.
일단 이 시기 과거의 내가 겪었던, 아니 아버지가 겪으신 하나의 문제는 일단락된 것 같았다.
이제 남은 일은 내가 성공하는 일. 그것도 어머니나 아버지가 전 생애처럼 기다리다 지치시기 전 성공하는 일이었다.
그 뒤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며 한 가지 깨달은 희한한 사실이 있었다.
내 점수가 생각보다 그렇게 최상위권을 찍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절묘하게 딱 영어교육과를 갈 상태가 되었다.
싫지는 않았다. 내 계획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희한한 사실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는 했으나, 사실 일부러 너무 튀지 않는 수준에서 점수를 받으려 한 것도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내가 만약 다른 직종을 선택하고 나갈 경우, 나의 이전 삶의 기억은 별 쓸모가 없게 된다.
교사를 하던 사람이 공부를 갑자기 잘해서 변호사나 의사 같은 것을 하게 된다고 하면, 그 개고생을 전부 새로 해야 하지 않은가.
그리하면 삶을 두 번 사는 이점이 모두 사라진다.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계획은 이전과 똑같이 사범대를 졸업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고, 이차적 목표는 학교에서 잠깐의 경력만 쌓은 뒤에 곧바로 사교육 시장에 진출하여 승부를 보는 것이었다.
학교는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정교사에 한한 이야기이다.
물론 다시 태어난 입장에서 공부를 조금 한다면 이번에는 시험에 합격할 확률도 높단 생각이 들긴 하나, 앞으로 공교육 내의 영어 과목은 2015년 전후로 하향세를 띄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사교육이었다.
교육정책의 큰 기조를 안다는 것은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내가 전 생애에서 교사가 되려고 사범대학을 갔다면, 지금은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넓은 길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어느 정도나 내 기억과 맞아떨어지는지는 앞으로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나는 결국 졸업 후 지방에 있는 한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부모님은 내 점수보다 약간 낮은 곳을 지원한 나를 보고 조금은 아쉬워했으나, 그래도 나의 결정을 밀어주셨다.
여기까지 우리 집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금 밝아지신 아버지의 표정과 어머니께서 일을 나가지 않으셔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대학 생활. 나는 예전 나의 친했던 친구들과 다시 처음부터 친구를 맺고, 술을 마시고, 놀면서 친해졌다.
했던 것을 다시 하려 하니 뭔가 이상하긴 했고, 그들도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에 내가 알던 그들이 아니기는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나는 2학기가 되자마자 곧바로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신성 학원’. 이곳이 나의 첫 번째 돈벌이가 될 장소였다.
그리고 본 이야기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자,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질문은 제가 하고 답변을 선생님께서 해 주시면 됩니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간단하게 해 주시죠.”
학원 강사 면접에서 자기소개는 일반 기업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예컨대 기업체 면접을 준비할 때는 프레젠테이션이니, 자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노래나 율동이니 이런 것들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수 있지만 학원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뭐, 초등학생 대상 학원이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입시 학원, 보습 학원은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도 그런 것들을 잘하는 성격도 아니고 그래서 편하게, 대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현덕이라고 합니다. 교사는 저의 꿈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올해 영강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저이지만 저는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공교육과 사교육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신성 학원에서 제가 자신 있는 영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저의 꿈을 펼치고 싶습니다.”
깔끔한 대답이었다.
자신감 있는 목소리.
사실 이들은 모르겠지만, 아니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학교에서 애들 가르친 경력만 8년이다.
계약직 인생이라 하더라도 실무와 수업에는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신성 학원 원장은 내가 죽을 때의 나이보다 약간 더 젊어 보였다.
내가 서른일곱이었으니 이 여자는 서른다섯 전후?
굳이 어려워할 나이는 아니었다.
“자신이 있으신데요? 혹시 사회 경험 따로 있으셔요?”
“아직 없습니다. 아르바이트나 직장을 가져 본 적도 없고요. 영어 공부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만…….”
“너무 젊은데, 우리 학원 들어오기는…….”
하지만 면접장에는 원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학원의 대표 강사인 주현필 강사.
이자의 이름은 내가 교사를 할 때도 익히 들어봤던 사람이다.
왜 원장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고 이 강사 이름은 기억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 중 몇몇이 이 강사에게 받은 자료를 들고 다녔던 것 같다.
뭔가 조금 재수 없는 인상이다.
“뭐, 괜찮지 않겠어요? 저나 강사님도 나이 조금 더 있을 때 시작했잖아요.”
원장 선생님이 씩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이가 나와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 잠깐 보더라도 꽤나 미인이었다.
내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온 이후에도 그 전에 나의 나이가 바뀌었기에 가끔 이런 부분에 있어 착오가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나한테는 완전 아줌마인데, 이상한 생각하지 말자.
이 나이 먹고 이런 생각을 혼자 한다는 것이 웃겼으나, 내가 어디 보통 사람인가.
나이 서른일곱에 죽고, 그리고 십 대로 다시 돌아왔으니 헷갈리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 애들 가르치려면 영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물건을 잘 팔 수 있어야 해요. 우리한테 현덕 씨를 팔아 보셔요.”
주현필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설마 이 작은 학원의 강사를 뽑는데 정말로 이런 질문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잠시 시간을 가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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