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화.
모든 고민을 다 해 놓고, 앞으로 달리 살기 위해서, 더 성공하기 위해서 계획을 짜는 것만을 남겨 두고는 젖은 손으로 콘센트를 끼우다 감전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유품, 나 자신을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바꿔 보겠다는 마음을 가지자마자 나의 삶은 그렇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끝이 나 버렸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이런 정리를 하게 되었냐고?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내 정신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제까지의 삶이 끝이 나길 바랐을 때, 앞으로의 삶까지도 정말로 끝이 나 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웬 하얗고 긴 머리카락과 하얀 옷을 입은 쭈글쭈글한 노인이 서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도대체 몇 시간, 아니 며칠이나 그대로 석상처럼 서 있다.
죽고 난 뒤 경험하게 된 이 상황을 나는 삶을 정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혼자서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내가 나의 죽음까지를 되뇌며 ‘이렇게 하면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 주려나, 저승이란 곳으로 내가 떠나게 될까’ 생각하고 있을 때.
“다 정리했니?”
노인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없고 무료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혹시 이 노인이 신일까 생각했다.
내가 죽고 난 뒤 처음 보였을 때부터 몇 번이고 앞에서 기웃거리며 말도 걸어 보고 했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혼자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며 ‘참 평범하지만 재미없는 인생이었지’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지었을 때, 그가 갑자기 말을 건 것이었다.
중후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를 가졌을 것 같았던 노인은, 의외로 죽기 직전 병원에 누워 있는 어르신 같은 목소리로 멍하니 있는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정리 다 끝났냐니깐?”
“아, 네네. 누구시죠?”
내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나의 삶을 읊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나의 생각을 대략 읽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정말로 회상을 끝내자마자 나에게 끝났냐고 묻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를 내어 보고 나서야 나의 목소리 또한 뭔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노인을 처음 보고 말을 걸었을 때만 하더라도 나의 목소리는 내가 죽기 직전 가지고 있던 걸걸한 목소리 그대로였다.
그런데 지금은 목소리가 무슨 여자 목소리처럼 들렸다. 귀가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목소리가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거울이 없으니 외모가 어떤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아이의 목소리인가?
어쨌든, 이자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허무한 공간, 할 일 없는 공간이 내가 죽은 뒤 가야 할 종착지는 아닐 수도 있었다.
이곳에 계속 있기는 너무 따분했다.
“자, 어떻게 살았다고 생각하니, 너는?”
생각을 읽고 있던 것 아니었나?
“입으로 얘기해. 혼자서 불손한 생각하지 말고!”
생각을 읽고 있기는 한가 보다.
“아, 네. 저……. 그냥 평범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요?”
특별히 죄를 짓고 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평범하게, 너무 평범해서 정리를 해서 말을 하려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평범하게 살아왔다.
“행복했니?”
행복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사람이 누구나 모든 것을 만족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기에 나도 그냥 이게 내 삶인가 보다 하고 순응하며 살았던 것이지 특별히 행복하지는 않았다.
“행복이요? 그냥, 특별히 불행하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특별히 행복한 것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진심이었다.
평범한 삶을 바랐으나 평범한 삶은 평범하게 끝이 났다.
“만약 다시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니? 지난번과 같은 그냥 불행하지도 않고 크게 행복하지도 않는 삶? 아니면 조금은 다른 삶?”
“무슨 말씀이세요? 다시 살 수 있나요, 제가?”
“사람은 누구나 여러 번 사는 걸세. 단, 대부분은 본인이 그것을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자각하지 못하지만 여러 번 산다?
상상은 여러 번 해 본 일이었다.
만약 내가 죽고 나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이전 삶보다 조금은 더 대단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런 것은 상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저는 두 번째 태어난 겁니다.’ 혹은 ‘이번에 세 번째 삶이네요.’라고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으니깐…….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신 같은 할아버지가 다시 살고 싶냐 묻는 것을 보니, 혹시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나 싶었다.
물론 해 보기 전 까지는 믿지는 못할 일이긴 했다.
어서 빨리 확인을…….
“살 수 있나요? 제가 다시?”
생각해 보자.
내가 죽었던 것은 물 묻은 손으로 전기 콘센트를 만져 감전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살게 되면, 정확히는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죽지 않았을 뿐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부터 확인했다.
“제가 혹시 죽은 게 아닌가요? 아직 안 죽었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젊은데 벌써 머리가 안 돌아가?”
힘은 없지만 그래도 중후한, 나름 진중한 노인인 줄 알았는데 갑작스런 어조의 변화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무슨 노인에게 움찔거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화난 노인이 무서운 법이다.
혈기 넘치는 젊은 사람의 위엄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이나, 나이든 노인의 위엄은 왜소해진 육체 속에 한없이 커질 수 있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이사장님을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공간, 조금 이상했다.
방도 아닌 것이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모를 그냥 넓은 땅덩어리 같은 형태.
이승인지 저승인지, 아니면 중간에 끼인 공간인지 모를 곳에서 나는 웬 노인과 다시 살고 싶냐, 아니냐는 이상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뇨, 그건 아니지만…….”
“다시 살고 싶으냐?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
다시 노인의 표정이 편안하게 바뀌었기에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노인의 물음에 답을 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다시 살고 싶은 것일까, 나는?
만약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잠시 만요. 생각 좀 해 봐도 될까요?”
“무슨 생각? 그리 오래 걸리니? 나는 그만한 시간이 없어. 지금 당장 너만 죽어서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
이제야 왜 이 노인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석상처럼 보였는지 알았다.
아마도 다른 죽은 사람들에게 나에게 제시한 것과 같은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고 다녔겠지.
어쨌거나 시간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냥 확 결정을 내리기에는 삶이란 것의 무게를 알기에 몇 가지 짚고 나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질문을 해도 될까요?”
소심스럽게 물어봤을 때, 그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스몄다.
정말 살짝.
“그럼. 되고말고.”
“제가 다시 살게 되면, 그러면 죽을 때의 그 상태로 돌아가나요?”
죽기 싫었지만 이미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갈 생각은 크지 않았다.
죽는 것 자체는 두려우나, 막상 이미 그 경계선을 넘고 보니 다시 돌아가는 것 자체가 더 두려웠던 것이었다.
만약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커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지만, 그게 아니라 단순히 죽은 시점의 나로 돌아가 죽은 적이 없던 것처럼 살게 되는 것이라면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내 생각을 읽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로군.”
“네! 맞아요.”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지 않고 아예 새로 시작할 수도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예 다른 사람으로 시작하겠다고 결정하지.”
이것으로 결정은 내려졌다.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전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
“행복? 행복이라……. 행복을 줄 수는 없다. 너의 행복이 다른 이들의 행복, 아니면 나의 행복과는 다를 테니.”
“그럼 더 잘살고 싶어요.”
“잘산다? 경제적으로 말이냐? 그것 또한 줄 수 없다. 조건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가지고 잘살든지 말아 먹든지 여부는 결국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려 있거든.”
신이기에 뭔가 나의 삶 자체를 굉장히 풍요롭게, 또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그래도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도 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면, 그리고 저런 것들을 요구하고 받았더라면 세상에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은 처음 태어난 몇몇을 제외하고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는 없었다. 딱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기억만이라도 가지고 갈게요. 제가 살아온 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나요?”
이런 요구는 상당히 진부했다.
죽은 사람이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과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 성공하는 구조.
무슨 회귀물 장르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건 원래 어느 정도 네가 가지고 가게 되어 있어. 그러니 굳이 나에게 바라지 않더라도 너의 절박감에 따라 필요한 만큼 기억하게 될 거야.”
정말 다시 살려주는 것밖에는 못 하는 노인인가 보다.
잠시 내가 필요한 것이 있나 생각하느라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이 노인이 시계도 없는 자신의 손목을 마치 시계를 보는 것처럼 바라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자, 이제 가야겠네. 결정은 내렸나?”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그럼 그냥 다음번에 결정을 내려.”
“다음번이요? 언젠데요?”
“천 년 뒤.”
“잠깐만요. 저, 살아난 뒤에 다시 죽게 되면 또 다시 이렇게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나요?”
“딱 세 번만. 너는 이번이 첫 번째야. 그리고 보통 두 번째 삶은 첫 번째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지. 마지막 세 번째는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이걸 물어본 것은 네가 거의 처음인 것 같구나. 보통들 그냥 살려 달라고만 하는데…….”
세 번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
내가 살아오며, 아니 지금은 이미 죽긴 했지만 어쨌든 이렇게 흥분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살고서도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았다니……. 아직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뭘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 전에 먼저 가겠다는 결심을 말해야 했다.
“다시 살아 보겠습니다. 전 생애보다 부모님의 경제적 여건을 조금만 더 풍요롭게 해 주세요.”
“그럼 네가 돌아갈 시대는 내 마음대로 설정하마. 다음에 볼 날에는 부디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말을 듣기를 기대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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