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304화 (304/305)

137, 지존행(至尊行).

137, 지존행(至尊行).

본래 철투는 심상을 구현함으로서 가상의 적을 소환하는 기능이다. 심상의 구현 장소에서는 부상과 죽음이 결정되지 않으며, 체력과 내력의 회복은 매 라운드마다 초기화됐다. 또한 철투의 실행비용은 매 경기 당 VIP 100포인트였다.

그러니 남천휘는 포인트를 지불하는 한 무한대로 괴겁천마와 싸우는 것이 가능했다. 심지어 철투 내에서 얻는 정신적 깨달음과 육체적 숙련도는 현실 내에 반영되지 않던가. 다만 VR과 달리 시간의 흐름이 현실과 동일하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리라.

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괴겁천마를 말살할 수 있는 방법은 철투가 유일했다.

놈은 혼백의 상태로 자연지기와 융화된 상태였다.

그러니 철투로 인한 타격은 다른 상대와 달리 영혼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이기면 좋고, 져도 손해볼 것은 없다.

재이의 말에 의하면 동전만 넣으면 쉼 없이 계속 할 수 있는 것는 놀이가 아니던가.

띠링-

그 순간 남천휘 앞에 수많은 풍광이 나열됐다.

장소를 선택할 차례였다.

남천휘는 영문 모를 표정을 하고 있는 괴겁천마를 향해 물었다.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이 놈! 이게 무슨 수작이냐?”

괴겁천마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표정을 굳혔다.

하나 아직 철투가 실행되지 않았으니 놈은 일정 공간 이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백 년 만에 몸을 되찾았거늘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상황에 이성이 마비된 듯했다.

쾅쾅쾅쾅!

남천휘는 괴겁천마를 뒤로 한 채 읊조렸다.

‘흐음, 어디가 좋을까?’

그러던 중 사령신이 떠올랐다.

놈은 여전히 인벤토리 안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맛보고 있을 터였다.

수미쌍관이라고 했으니.

“너도 대두동에서 고통을 맞이하여라!”

남천휘의 일갈에 주변 풍광이 바뀌기 시작했다.

새하얀 공간에 땅이 생겼고, 풀이 자랐다.

그리고 대두동의 풍광처럼 땅을 비집고, 절벽이 솟구쳤다. 우후죽순 격으로 생성된 절벽에는 남추가 수련했던 백여 개의 동굴이 뚫렸고, 이내 마지막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대두상이 등장했다.

지이이이잉-

괴겁천마는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채만한 석두가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절벽 위에 안착한 후 각도를 잡았다. 정확하게 대두동을 내려다보는 위치였다.

“하아.”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마치 대두동에 돌아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남추야! 이 조상님이 네 원한을 풀어주마! 똑똑히 지켜보도록 해!”

괴겁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패륜아를 보듯 인상을 썼다.

하나 대두상이 안착하는 순간 대두동 전체가 요동을 칠만큼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ROUND 1.

그러자 괴겁천마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남천휘와 일장 거리를 두고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괴겁천마의 놀란 표정으로 보아 그가 의도한 행위는 아닐 터였다.

웅혼한 징 소리와 함께 알림이 계속됐다.

- FIGHT!

동시에 남천휘와 괴겁천마의 제약이 풀렸다.

“이 놈!”

괴겁천마는 눈에 불을 켜도 달려들었다.

둥! 둥!

발을 놀릴 때마다 대지가 울리는 듯했다.

남천휘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괴겁천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을 느꼈다.

‘저게 군림마보겠군.’

이미 남위기를 통해 군림마보(君臨魔步)에 관한 모든 정보와 대응책을 파악한 상태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마주한 군림마보는 엄청났다.

군림마보를 펼치는 순간 칠공에서 피를 쏟고, 절명한 자도 있다지 않던가.

하지만.

◎ S급 특기 ‘불굴’이 발동합니다.

압박감은 사라졌다.

괴겁천마는 남천휘의 지척에 이르자, 양 어깨를 뒤로 했다. 날갯죽지가 맞닿을 것처럼 한껏 어깨를 뒤로하더니 벼락처럼 전방으로 양 팔을 뻗었다.

촤아아아아악!

그 순간 묵빛의 마기가 뭉쳐들어 검이 됐다.

쩡!

남천휘는 용린쌍도로 튕겨내는 순간 강기가 연이었다. 한데 서너 번 빗겨 내다보니 묘한 기운이 온 몸을 파고드는 듯했다.

‘이거 강기가 아니네.’

신마묵천공(神魔墨天功)은 천마의 진신무공이다.

그러니 강기의 발현은 자연스러웠다.

한데 막상 상대하니 단순한 강기가 아니었다.

‘진체가 따로 있다.’

마치 검이 아니라 검이 만들어낸 잔영을 상대하는 듯했다. 그러니 검강은 잔영에 불과했고, 진짜 검을 찾아야 할 때였다.

터터터터터터텅!

남천휘의 입에서 거친 호흡이 흘러나왔다.

체력 게이지는 방어에 성공해도 미세하게 줄어들었고,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만으로도 내공이 소모됐다.

그 순간 괴겁천마의 몸이 시야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치 이형환위를 방불케 하듯 기척조차 없이 사라졌다. 남천휘가 황급히 호신강기를 온 몸에 둘렀다. 하나 등 뒤에서 스며든 마기가 허리를 베었고, 연이어 어깨를 자르기 위해 쇄도했다.

촤악!

대두상 좌측으로 길게 늘어졌던 남천휘의 생명력 게이지가 3할이나 깎였다. 반면 우측에 존재하는 괴겁천마의 생명력은 가득 차 있었다.

촤악! 푹! 푹! 푹!

결국 이십여 합을 버텨내지 못하고 남천휘의 목이 잘렸다.

“크하하하하하!”

괴겁천마는 양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대소했다.

백 년의 인내가 마침내 보답을 받게 되었다고 여겼다.

한데 남천휘의 시신이 한순간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조금 전에 들려왔던 경쾌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 ROUND 2, FIGHT!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그 때 괴겁천마의 뒤에서 웃음기 섞인 대꾸가 들려왔다.

“뭐긴 뭐야? 2라운드 시작이다. 이 새끼야!”

괴겁천마는 자신이 어느새 처음 있던 자리에 돌아와있음을 깨닫고 대경실색 했다.

“이게 뭔?”

남천휘는 괴겁천마가 의아해하는 사이 기습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백파신공의 초식을 연이어 펼치는 가운데 놈의 신마묵청공을 파해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했다. 하나 이번에도 삼십여 합을 넘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 괴겁천마, WIN!

괴겁천마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축하 음악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여기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

*

남천휘는 철투가 끝날 때마다 싸움을 복기했다.

그리고 그 사이 적립된 포인트를 모두 VIP점수로 변환한 후 특기의 레벨을 올렸다.

A급 5레벨 특기와 A급 5레벨 특기를 합성하면 무작위로 S급 1레벨 특기가 생성됐다.

◎ S급 특기 신필(神筆)이 등록됐습니다.

◎ S급 특기 염제(炎帝)가 등록됐습니다.

붓글씨를 쓰고, 불을 다루는 능력을 어디에 쓰랴.

하나 상관 없다.

특기의 합성은 무한대로 진행됐다.

그리고 신필과 염제를 각기 5레벨까지 올린 후 S급 특기 ‘불굴’을 시야에 띄웠다.

“승급.”

S급 5레벨 특기 ‘불굴(不屈)’은 각기 S급 5레벨 특기인 신필과 염제를 흡수했다.

그리고 시야가 칠채로 물들었다.

두두두두두둥!

나팔과 징 소리가 연이으면서 하나의 특기가 안개를 헤치고 등장했다.

◎ SS급 특기 ‘무심(無心)을 획득했습니다.

-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 상태로 어떠한 오점도 찍히지 않을 만큼 굳건함과 완벽함을 상징합니다.

됐다.

첫 SS급 특기의 획득으로 인한 보상도 이어졌다.

남천휘는 보상의 내용을 확인한 후 VIP 포인트로 전환했다. 아직도 올려야 할 특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 않은가.

“후우.”

남천휘가 손가락을 튕기자, 철투의 알림이 울렸다.

“괴겁천마.”

◎ 같은 대상과 500번 연속으로 싸웠습니다.

- 계속하시겠습니까?

남천휘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주변 환경이 다시 대두동으로 변화했다.

현재 전적 500전 74승 426패.

그 말인즉슨 426번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증거였다.

하나 남천휘는 500번에 달하는 생사비무를 통해 무한한 깨달음과 육체의 단련을 이뤄냈다.

그 증거로 최근 100전을 따져보면 35승 65패였다.

‘다음에는 특기 도수를 SS급까지 올리겠어.’

솨아아아아-

괴겁천마가 나타났다.

“이 놈! 이게 도대체 무슨 환술이더냐?‘

남천휘는 코웃음을 쳤다.

상대는 인외비경을 엿보고, 혼백의 상태로 백년을 살았으며, 선체의 비밀까지 어느 정도 파악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이 우습기만 했다.

“그래, 환술이다. 네가 자랑하던 환술에 당하니까 기분이 어떻더냐?”

“죽여버리겠다!”

괴겁천마가 발악을 하듯 신마묵천공을 극성으로 펼친 채 달려들었다.

남천휘는 허공을 한 번 힐끔 본 후 읊조렸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

남천휘는 철투를 실행했다.

괴겁천마와 지금껏 몇 번이나 싸웠는지는 잊은 지 오래였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 전에 100000번 째 철투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으리라.

3할에 불과했던 승률은 어느덧 9할에 육박했다.

이제는 싸웠다하면 이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나 남천휘는 여전히 철투를 이어갔다.

그가 죽었다가 살아나듯 괴겁천마 또한 몇 번을 패배해도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철투에 이입된 영혼까지 베어버릴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이 싸움은 무한하게 계속될 터였다.

“놈!”

괴겁천마가 히죽거리며 달려들었다.

놈 또한 이제는 철투의 상황에 적응했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패배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떤 때에는 오히려 으스대며 철투를 끝내지 않는 한 자신과 함께 영겁의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라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남천휘는 신중하게 신마묵천공을 빗겨 쳤다.

그는 괴겁천마와 달리 여전히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반드시 이기겠다는 결의 또한 퇴색되지 않았다.

놈을 소멸시키고 돌아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남천휘가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였다.

터텅!

이미 괴겁천마의 무공은 손금을 보듯 자세하게 파악한 상태가 아니던가.

놈의 검강의 심검의 한 부류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면전으로 내리꽂히는 강기를 도외시한 채 놈의 가슴을 향해 현월강기를 흩뿌렸다.

콰콰콰콰콰쾅!

괴겁천마의 상반신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이내 철투가 마무리됐다.

모든 특기는 SS급이 되었다.

하나 SSS급 특기로의 승급은 불가능했다.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에도 끝이 존재하는 것이다.

남천휘는 그 즈음부터 특기와 시스템에 몰두하는 대신 무공 자체에 전념했다. 어쩌면 이 시기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무인의 자세를 취하게 된 것이다.

깨달음.

어렴풋이 보이는 무언가를 향해 몇 번이나 뛰었고, 몇 번이나 손을 뻗었다.

저것만 잡으면 될 것 같은데······.

하나 수면에 비친 달을 대하듯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잊고 있던 알림이 울렸다.

◎ 대상자의 레벨이 500에 이르렀습니다.

- 풀 레벨을 달성한 기념으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게 만렙이었어?

남천휘는 오랜만에 감정을 드러냈다.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를 위한 레벨업 시스템이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이제 괴겁천마와 싸우기 직전 받았던 메인퀘스트 3-5를 끝내면 모든 것이 마무리 될 터였다.

《3-5, 소멸.》

- 인세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악귀를 처단하라.

- 억조창생의 내일은 대상자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 퀘스트 달성 조건 - 괴겁천마의 소멸.

※ 보상은 없습니다.

크핫! 보상이 없단다.

남천휘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보상이 없다는 건 그 이후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는 후련한 마음으로 재차 철투를 실행했다.

“한 판 더 가자!”

가볍게 괴겁천마를 찢어발겼다.

- ROUND 2, FIGHT!

괴겁천마는 혀를 차며 등장했다.

그 또한 철투가 진행되는 사이에도 탈출하기 위한 방편을 궁리했으리라. 한데 비장의 한 수라고 여겼던 것이 통하지 않은 듯했다.

그러니 똥 씹은 표정으로 나타났겠지.

남천휘는 두 번째 라운드를 위해 달려 나가려다 시야의 한 쪽에 펼쳐진 퀘스트 창을 살폈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펼쳐놓으면 시계가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퀘스트 창을 치우려 했다.

한데 그 순간 묘한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억조창생의 내일은 내 마음에 달렸다고?’

지금껏 그저 스쳐가는 퀘스트 설명이라고 여겼다.

하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시스템은 무의미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마음, 마음, 마음이라.’

남천휘는 심기일전 하여 호흡을 조절했다.

어쩌면 숙련도 99에서 오랜 세월 멈춰 있었던 백파신공을 대성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

놈을 향해 도를 뻗었다.

하나 끝까지 백룡도를 내뻗지 않고, 갈무리했다.

‘마음‘으로 생긴 의구심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시스템은 의미 없는 것을 보여주지 않아.’

남천휘는 괴겁천마의 공세를 가볍게 넘기며 과거의 기억을 되새겼다. 남위기를 통해 저장된 자료를 불러왔기에 틀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가지 영상을 시청하던 중 멈칫했다.

바로 한껏 늙은 남추가 용린쌍도를 눈 덮인 절벽 아래로 던지던 장면이다.

‘이 영상은 왜 있었던 거지?’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보세가의 무공을 폄하하기 위해 사용하기는 했으나, 어딘가 모르게 부족했다. 당시 황보세가는 남천휘의 무위로도 충분히 찍어누를 수 있는 상태였다.

굳이 영상이 아니었어도 해결될 일이 아니던가.

‘남추는 무기를 버렸고, 황보세가의 조상이 그것을 주웠다. 만약 황보세가의 조상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면······.’

당시 영상의 핵심은 남추가 무기를 버렸던 그 상황이었으리라. 전진교의 교조인 마옥의 충고 또한 뇌리를 스쳐갔다.

하늘을 대신하는 사람.

그러니 구원을 대신하는 건 사람이어야 했다.

굳이 무기를 들 필요가 없으리라.

남천휘는 양 손에 쥐고 있는 백룡도와 흑린도를 내려다봤다. 엄청난 공격력은 물론이고, 부가기능으로 인해 강기조차 가볍게 잘라낼 수 있는 신병이기였다.

‘그래봤자 신외지물이 아니던가.’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주먹을 쥔 채 읊조렸다.

“적립.”

백룡도와 흑린도는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자취를 감췄다.

남천휘는 장탄식을 흘렸다.

괴겁천마의 공세를 막다 보니 어느새 생명력 게이지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하나 개의치 않았다.

철투를 다시 실행하면 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파.”

남천휘가 손으로 가볍게 백파신공의 파(破)를 흉내 냈다. 그 순간 한 줄기 미풍이 일렁이더니 괴겁천마의 어깨 어림을 후려쳤다.

푸슷-

“크흑!”

괴겁천마는 인상을 쓰며 미소 지었다.

“크큭, 많이 약해졌네. 예전에는 한 방에 끝내더니.”

하나 그의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 어, 이거 왜 이래?”

잘려나간 어깨에서 묵빛의 안개가 흘러나왔다.

철투는 본래 괴겁천마 본연의 모습을 구현했기에 평소였다면 살점이 튀고, 피가 흘러야 했다.

한데 마치 혼백만 남아서 일렁일 때처럼 묵빛의 안개가 흘러나올 뿐이다.

그것은 바람을 타고 서서히 옅어졌다.

“어! 놈! 이게 무슨.”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환술이야. 천.”

천(穿)을 펼치는 순간 괴겁천마의 아랫배에 동전만한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곳에서도 묵빛의 안개가 흘러나왔다.

괴겁천마는 갑작스런 상황에 대경실색 하여 뒷걸음질 쳤다. 하나 철투가 실행되는 과정에서 대전장(對戰場)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부!”

남천휘의 읊조림과 함께 괴겁천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올랐다. 그 때마다 먼지가 떨어지듯 묵빛의 안개가 꼬리를 물고 땅으로 흘러내렸다.

추(墜)를 쓰니 올라갔던 것보다 몇 천배는 빠르게 내리꽂혔고, 그로 인해 먼지구름처럼 묵빛의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잘라라.”

스팟!

괴겁천마의 무릎 어림에서 일렁이던 바람이 휘감겼다. 무릎 아래가 잘렸고, 잘린 다리는 이내 먼지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이쯤 되니 괴겁천마는 양 팔로 대지를 박찼다.

이 와중에도 살기 위해 공세를 펼치니 악다구니만은 인정해야 할 듯했다.

하나 인정과 별개로 여섯 번째 초식이 펼쳐졌다.

“접.”

남천휘는 자신의 앞으로 끌러온 괴겁천마의 목을 움켜쥐었다.

괴겁천마는 몸부림을 치며 외쳤다.

“네 놈의 자자손손······.”

“소.”

사라지라는 말에 사라지더라.

괴겁천마는 백룡도와 흑린도를 없앨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검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남천휘는 긴 숨을 내쉬는 것으로 오랜 여정을 마무리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십 만 번의 대전을 거쳤으니 짧게 잡아도 족히 수백 년은 흐르지 않았을까 싶다.

남천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개구리도, 개똥이도, 제비도 모두 떠났겠지.

‘주인님, 일어나세요. 제 신발을 사주셔야지요.’

재이의 되바라진 요청조차 웃음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무한한 삶을 살게 된 존재의 여유가 아닐까 싶다.

하나 남천휘가 눈을 떴을 때 처음 마주한 광경은 전쟁터였다. 주조정실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화면에서는 수천 명이 뒤엉킨 채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남천휘는 눈을 끔뻑이다가 나직이 읊조렸다.

“저건 몇 차 정마대전이냐?”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

화면의 중앙 부근에 천수련이 보였다.

천목십이회의 수장들을 이끌고 혈전을 벌이는 그녀의 얼굴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녀의 곁에는 방갓을 쓴 호리호리한 자가 쌍검을 흩뿌린다.

“저 놈은 뭐지? 그 사이 새로운 정인이라도 만든 건가?”

허허, SS급 특기 ‘무심'을 얻었어도 질투는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12, 이제 13초가 흐르고 있습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개똥이의 등장으로 인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재이에게 직접 들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일각도 지나지 않았다고?”

‘그렇습니다.’

“철투는 원래 현실과 동일한 시간이 흐르잖아?”

‘이 경우에는 철투로 만들어낸 가상공간이 아니라 주인님의 마음을 무대로 했기에 일어난 현상으로······.’

남천휘는 재이의 어려운 설명을 귓등으로 흘렸다.

“크하하하하하하하!”

그저 광소를 터트리며 현실을 만끽할 따름이다.

그 때 문 밖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무극중사가 달려왔다.

“하늘이시여! 대공을 이루신 것, 경하드립니다.”

미친놈처럼 웃었더니 괴겁천마라고 여긴 걸까.

‘알게 뭐야.’

남천휘는 가볍게 손을 내저어 백파신공의 마지막 초식인 소(逍)를 펼쳤다. 그러자 무극중사는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가루가 되어 자취를 감췄다.

“하하하하! 이제 만렙도 찍었으니 유유자적하게 놀아보자꾸나!”

재이가 빙긋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시야 한쪽에 퀘스트 창이 생성됐다.

“하지 마. 뭐가 됐든 하지 마.”

하나 남천휘의 간절한 한 마디에도 재이의 알림은 이어졌다.

◎ 시스템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 3.0이 실행됩니다.

- 레벨 제한이 500에서 1000으로 상향됩니다.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 제 4막 지존행(至尊行)이 시작됩니다.

아, 다 때려치고 싶어지네.

띠링-

《4-1 정마대전은 내가 주인공!》

- 주인공 없는 정마 다툼은 의미가 없다.

-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정마대전을 종식시키시오.

- 승리 조건.

※ 흑천괴뢰와 마천종의 사망.

- 패배 조건.

※ 흑천괴뢰와 마천종의 도주.

※ 천수련, 연하연, 소혜, 공태령의 죽음.

남천휘는 한 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한쪽 벽이 열리며 남추가 처음 발을 내딛었던 풍광이 펼쳐졌다.

남천휘는 선체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새 신발은 꿈도 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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