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신(神).
136, 신(神).
괴겁천마와 사령신은 감옥에 갇혔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공간에 갇힌 이상 벗어나지 못했다. 불멸과 불사를 얻었을지언정 한정된 공간을 떠날 수 없었다.
남추조차 생각지 못한 예외가 존재했다.
바로 시스템의 원칙이다.
시스템은 선주의 생존을 우선시했다.
그렇기에 폭사할 때 스스로 보호 장치를 해제하지 않았던가. 그 후 은신처는 남추의 계획대로 절차를 밟았다.
무려 구십 년 간 출입을 통제한 채 폐쇄됐다.
‘주인님은 선주와 유전 정보가 100% 일치했습니다. 그렇기에 십 년 전 주인님이 위험에 처했을 때 시스템이 재가동됐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는 게다.
탐사선은 자연지기로 운행이 가능했다.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괴겁천마는 자연지기를 운용하여 선체의 일부 기능을 통제할 수 있었단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지. 마도의 극한에 이르렀으니 자연지기를 다루는 능력은 구파의 고인들과 다르지 않았을 거야. 네 말대로 이곳의 연료가 자연지기로 채워진다면 놈이 일부 기능을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걸. 오히려 일부 밖에 얻어내지 못한 게 더 신기하네.’
재이는 칭찬이라도 들은 것처럼 헤죽거렸다.
‘괴겁천마와 사령신이 갇혔던 조사실은 탐사의 기능만 운용이 가능합니다. 선체의 주요 기능은 이곳 주조정실에서만 통제할 수 있지요.“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후훗,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결국 나를 살리기 위해 문이 열렸다는 의미잖아.”
재이는 슬쩍 다가와 남천휘의 어깨를 감쌌다.
‘시스템에게 중요한 건 선주의 안위니까요.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 없어요.’
남천휘는 재이의 팔을 밀어내려 했지만, 허공을 휘젓는 것이 전부였다.
“무슨 개소리야?”
‘네?’
“남추가 희생을 한 덕에 괴겁천마와 사령신이 백 년 밖이 아니라 백 년씩이나 갇혀 있었던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 세상이나 남아났을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왜 죄책감을 가져? 남추가 우리 집안 살리겠다고 개입하지 않았으면 강호가 송두리째 사라졌을 걸. 그렇지 않냐?”
재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리가 있어!’
남천휘는 으스대듯 말했다.
“오히려 강호가 우리 집안에 구십 년 동안 빚을 진 거야.”
‘그렇군요. 정파는 주인님께 정말 잘해야겠어요.’
재이의 호들갑에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남추의 죽음을 지켜본 탓에 한껏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되살아난 듯했다.
“그나저나 세상일은 참 모르는 거로구나.”
남천휘는 자신이 시스템을 얻은 이후에도 이어지는 영상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영상을 보면 괴겁천마는 남았고, 사령신은 떠났다.
괴겁천마는 몸이 없기에 떠날 수 없었고, 사령신은 머리가 없기에 문 밖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따라 자취를 감췄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북해빙궁주인 동화제군이 나타났다.
괴겁천마는 남추의 유인이 함정이라고 반신반의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수족이라 할 수 있는 북해빙궁주에게서 행선지를 알려준 상태였다.
그는 괴겁천마를 만나 묵빛의 기운을 흡수했다.
그리고 무극중사가 되었다.
얼마 후 그가 두 명의 노인을 이끌고 나타났다.
저들이 분명 흑천괴뢰와 마천종일 터였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괴겁천마를 찾아다닌 건 동황제군뿐이다. 흑천괴뢰는 일원을 만들었고, 마천종은 암중에서 마도를 일통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나 괴겁천마가 등장한 이상 그들은 자신의 수하를 기꺼이 상납했다.
그 후로는 남천휘가 예상했고, 체험했던 대로였다.
마침내 영상이 끝났다.
남천휘는 심호흡을 했다.
지금 이 순간은 감정보다 이성을 필요로 했다.
문 밖에는 백 년 간 굶주린 괴겁천마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남천휘는 주조정실을 살폈다.
VR을 통해 한 차례 지켜본 것이 전부인 낯선 공간이다. 그리고 문 밖에는 최종 보스이자, 반드시 없애야 할 적이 존재했다.
‘내 방식대로 한다.’
불굴로 인해 평정심을 되찾았음에도 내린 결론이다.
남천휘의 방식은 간단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손자병법 모공편의 구절이다.
하나 남천휘는 백전백승이 아니면 싸우지 않았다.
지금껏 시스템과 남위기의 힘으로 상대보다 정보의 우위를 지닌 채 싸우지 않았던가.
그 결과 단 한 번도 패배한 기억이 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한다.
1단계는 적을 아는 것이다.
‘괴겁천마가 백 년 동안 이 안에 있었으면서 뭘 했는지 검색해서 알려줘.’
눈 한 번 깜빡일 사이에 수많은 정보가 나열됐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신통하지 않은가.
수천 명이 수십 일에 걸쳐서 할 수 있는 일을 찰나간 완성하는 시스템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 현재 괴겁천마의 시스템 간섭률은 14%입니다.
- 현재 괴겁천마가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전에 재이가 말했던 대로였다.
괴겁천마는 나노플라스트를 통해 전해지는 정보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고, 선체의 연료를 자신의 것처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단하기는 한데······.’
남천휘는 정보를 살피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괴겁천마의 지난 백 년 간의 기록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이 새끼가 백 년 동안 제대로 된 수련을 한 번도 안했네.’
시스템은 괴겁천마에게 기능을 빼앗긴 것이 아니다.
그저 통제권을 약간 공유할 뿐이다.
그러니 그의 행적은 시스템에도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하긴 불멸과 불사를 이뤘으니 기뻤을 테고, 몸뚱이를 잃었으니 슬펐을 테지. 그 후에는 시스템의 통제권을 빼앗는데 전력을 다했네.’
이건 호재였다.
지금도 차고 넘칠 만큼 강한 적이 아니던가.
그리고 괴겁천마의 시스템 간섭률이 25%를 넘게 되면 주조정실의 출입 권한이 주어진단다. 일견하기에는 여유로웠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는 일이 아닌가.
남천휘는 쉬지 않고, 남위기를 검색했다.
괴겁천마에 대한 정보라면 사소한 것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필요한 것을 갈무리를 했고, 애매한 것은 따로 표시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파편화됐던 정보가 하나의 흐름을 따라 일목요연하게 펼쳐졌다.
‘으음. 생각보다 명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네.’
괴겁천마는 사마천세 시절에도 몸보다 머리로 살육을 저질렀다. 사령신처럼 앞장서기보다 암중에서 수하들을 조율했다.
그렇다 보니 강호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다. 다만 남추가 몇 번이나 괴겁천마와 무공을 견준 적이 있기에 참고할 수 있었다.
그나마 전력을 다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큰 그림을 그려보면 셋인가.’
사령신은 육신의 고강함만으로 고금제일이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반면 괴겁천마는 마도의 무공을 기본으로 온갖 사술에 능통했다. 특히 환혼술과 미혼술의 경우에는 사령신조차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남추 또한 신체 보호 기능이 아니었다면 괴겁천마의 심공을 견뎌내기 어려웠으리라.
‘아! 신체 보호 기능 때문에 불굴이 자동적으로 생겨났구나!’
남천휘가 특기 목록을 처음 개방했을 때 취득한 것은 다섯 종류였다. 그 중 불굴과 무희의 생성 원인에 대해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백파신공의 일곱 초식을 접하면서 무희에 대한 의문은 풀렸다. 그리고 이제야 불굴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마령강신공, 십지혈강기, 군림마보, 신마묵천공.’
알려진 것이 이게 전부였다.
하나 무공을 검색하는 순간 엄청난 내력이 드러났다. 하나의 마공만 등장했어도 강호는 마도의 것이 되었고, 두 가지가 등장하면 천하는 피로 물들었다.
‘하핫, 괴겁천마와 사령신은 서로를 억제했군. 거기에 남추가 등장하면서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묘한 대치가 이어졌고.’
남천휘는 괴겁천마의 정보를 정리하며 이마를 긁었다. 오랜만에 장시간 머리를 썼더니 두통이 밀려오는 듯했다.
◎ 활력의 재충전을 위해 휴식을 권합니다.
됐다. 이 중요한 시기에 쉴 수야 없지.
남천휘는 거절하려다 눈을 가늘게 떴다.
현재 지도는 축소화되어 주조정실을 상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한데 한쪽 구석이 반짝이면서 퀘스트 표시가 등장했다.
‘이건 뭐지?’
처음에는 침상인 줄 알았다.
하나 손으로 만져보는 순간 투명한 구체가 덧씌워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힐링 캡슐입니다.’
남천휘는 이계의 언어를 해석한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석을 해도 침상의 용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선체는 연료의 보급에 따라 자체적으로 무균 운영을 실시합니다. 힐링 캡슐을 무균 상태에서 자연지기를 받아들여 빠른 시간 내에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능이 포함됩니다.’
한 마디로 잠이 잘 오는 침대라는 뜻이구나.
남천휘가 침상에 눕자, 투명한 뚜껑이 덮였다.
이니 희뿌연 안개가 휘감겼고, 마개와 같은 것이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저절로 입에 닿는 순간 호흡이 한결 편안해졌다.
동시에 운기조식을 하지 않았음에도 단전의 내공이 정화되는 듯했다.
‘진짜 자연지기였군.’
남천휘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힐링캡슐을 활용한다면 그 또한 자연지기를 쌓을 수 있으리라. 공전절후의 무한한 내공도 꿈은 아닐 터였다.
하나 생각을 달리 했다.
상대는 백 년 간 자연지기를 흡입한 악령이 아니던가.
그 순간 한 가지 계획이 뇌리를 스쳤다.
남천휘는 빙긋 웃은 후 눈을 감았다.
적을 알았으니 이제 자신을 알아야 할 차례였다.
‘상태창.’
오랜만에 마주한 상태창은 생소했다.
레벨은 440에 이르렀다.
생명력과 내공 수치는 고정이지만, 회복력이 말도 안 되게 상승했다. 비록 사령신의 보조가 있었지만, 용봉쌍휘를 한 방에 즉사시키지 않았던가. 그러니 각종 능력 수치 또한 최고조에 이르렀을 터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주조정실 내에서 퀘스트를 통해 성장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계획대로 진행해야겠다.
하나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조건이 있다.
남천휘는 시야 상단의 구석을 확인했다.
《SS 등급 공백지가 발견 됐습니다.》
《동조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 8시간 27분 44초 후 동조화 작업이 완료됩니다.
남추의 선체는 지난 백 년 동안 자연지기를 빨아들였다. 그러니 성소가 되기에 자격은 충분했다. 심지어 등급은 처음 보는 ‘SS’였다.
남추와 유전 정보가 일치했기 때문일까.
‘SS’급 성소의 동조 시간은 하루였다.
천우신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일단 내 땅부터 만들고······.’
계획을 진행하면 될 터였다.
*
묘한 광경이었다.
묵빛의 안개는 대기 중에 퍼져 있지 않았다.
마치 거미줄처럼 문에 찰싹 달라붙은 채 일렁였다.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무극중사가 난색을 표했다.
그는 괴겁천마의 명령을 받아 계기판을 몇 번이나 조작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만약 놈이 남추처럼 함께 죽자는 계획이라면······.”
그그그그극-
묵빛의 안개가 심하게 일렁였다.
『닥쳐라! 반드시 열어야 해! 사령신이 없어진 이상 남천휘만이 해결책이다. 반드시 놈의 몸뚱이를 빼앗아야 해!』
괴겁천마 역시 전력을 다해 선체의 시스템에 접속하고 있었다. 하나 백여 년 간 피부에 침투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루아침에 살가죽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 리 만무했다.
무극중사는 말없이 침음을 흘렸다.
이들에게 천하일통은 과정에 불과했다.
괴겁천마는 영원불멸의 군림이 목적이었고, 무극중사는 정파의 말살을 원하지 않았던가. 한데 코앞까지 다가왔던 결말이 어느덧 저만큼 멀어진 듯했다.
‘정마대전도 벌써 열흘 째.’
그 말은 남천휘가 칩거한 시간도 열흘이라는 의미였다. 만에 하나 정마대전이 마도의 패배로 끝나고, 남천휘가 평생 문을 열지 않는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무극중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홀로 천하를 피로 물들여서라도 북해빙궁의 원한을 갚으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기음이 울렸다.
띠이이이이이이이-
동시에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문이 위아래로 갈라지며 자취를 감췄다.
무극중사는 미간을 좁혔다.
혹시 모를 남천휘의 기습을 우려한 게다.
하지만 문 너머에서는 기계음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반면 괴겁천마는 백 년의 기다림을 한 번에 털어낼 듯한 기세로 휘몰아쳤다.
솨아아아아아아!
괴겁천마는 힐링캡슐을 앞에 두고 멈춰 섰다.
남천휘는 투명한 껍질 안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분명 자연지기와 하나가 된 채로 잠에 빠져 있는 게다.
『크하하! 드디어 하늘이 오랜 기다림의 답을 주었구나!』
괴겁천마의 광소를 멈추지 않았다.
영혼을 울리는 굉음에 무극중사는 미간을 좁혔다.
하나 입가에는 한가닥 미소를 머금었다.
남천휘는 자연지기 속에 혼백을 감추려는 듯보였다. 그러나 저 곳이야 말로 괴겁천마가 전력을 개방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던가.
아니나다를까 묵빛 안개가 힐링캡슐로 스며들었다.
솨아아아아-
*
순백으로 가득한 공간.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남천휘는 천장과 바닥이 구분되지 않는 공간에 둥둥 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곳에 한가닥 묵빛의 기운이 뭉쳐들었다.
괴겁천마였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으니 더없이 좋구나.”
그는 환희를 감추지 않았다.
혼백에 담긴 것이 많을수록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나씩 지우고, 버리고, 닦아내야 괴겁천마의 것으로 삼을 수 있을 터였다.
한데 순백의 공간만 가득하니 해결책은 간단했다.
괴겁천마의 눈동자에 살기가 맺혔다.
그의 시선이 남천휘에게 꽂혀들었다.
‘저 놈만 없애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 때 남천휘가 눈을 떴다.
숙면을 취한 것처럼 개운한 얼굴이다.
그 표정에서 근심과 긴장은 찾기 어려웠다.
남천휘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넌 인간임에도 불멸과 불사를 이뤘구나.”
괴겁천마는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그렇다. 그러니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음이야.
남천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하나 이 공간에서만은 내가 신이다.”
그 순간 어디선가 청명한 일갈이 들려왔다.
《철투(鐵鬪)가 실행됩니다.》
- 대전 상대를 선택하세요.
남천휘는 히죽 웃으며 읊조렸다.
“괴겁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