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실행하시겠습니까?
135, 실행하시겠습니까?
그 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다.
오싹함.
남천휘는 찰나간 괴겁천마를 마주하며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안개가 사람의 형상을 한 채 혀를 날름거리고 있으니 오금이 저리는 것은 당연했다. 한데 재이도 비슷한 경우였지만, 딱히 두렵지 않았다.
검은 안개와 흰 안개의 차이일까?
애초에 살의와 적개심의 유무일 터였다.
괴겁천마는 백 년 간 쌓아왔던 분노와 살의를 남천휘에게 집중했다. 사령신처럼 생각 없이 힘을 발산할 수도 없었으니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진짜 퀘스트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네.’
남천휘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알림이 울렸다.
띠링-
◎ 퀘스트 《3-4, 주조정실을 점거하라.》가 완료되었습니다.
-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안 인가가 최상급으로 조정된다고 했던가?
그 순간 보상의 힘이 발휘됐다.
빛 한 점 들지 않았던 공간에 형형색색의 빛이 뿜어져나왔다.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다.
‘추락할 때 남추가 있던 공간이야.’
지금껏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려니 조금 겸연쩍기는 했다. 하나 감정을 정리할 사이도 없이 온갖 기음이 터져 나왔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귀가 울릴 정도였다.
‘주인님, 공기 정화 기능이 발동했어요!’
재이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부여잡은 채 외쳤다.
남천휘는 이미 기막을 쳐놓은 터라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저 재이의 몰골을 보고 혀를 찰 뿐이다.
‘어차피 현실도 아니면서 그런 흉내는 왜 내는 건데?’
재이는 혀를 빼물며 배시시 웃었다.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조금 들떴네요.’
그래봤자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면서.
이 와중에서 강풍이 몰아치며 먼지를 휘감았다.
그리고 갑자기 생겨난 구멍이 백 년 간 쌓여 있던 먼지를 빨아들였다.
“그나저나 난주 상황은 어때?”
지도를 펼쳐보려 했다.
그 순간 전면의 벽이 하얗게 빛나더니 그림을 만들어냈다. 횡으로 삼 장, 종으로 일 장이나 되는 크기였다. 황궁에나 걸릴 법한 거대한 그림이 아닌가.
한데 그것이 움직였다.
‘현재 나노플라스트를 통해 전송되는 난주의 상황입니다.’
남천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VR로 단련이 됐음에도 상식을 벗어나는 광경에 넋을 놓을 뻔했다.
그 순간 천장에서 기다란 막내가 내려왔다.
그리고 손잡이처럼 생긴 것이 솟구쳤다.
‘VR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화면 전환이 가능합니다.’
남추가 온 세상은 도원경보다 더 놀라운 이능으로 가득한 듯했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연발하면서 손잡이를 이리저리 놀렸다. 그럴 때마다 화면은 원하는 곳을 비췄고, 심지어 원근까지 조절할 수 있었다.
놀람은 잠시였고, 잠시 전황에 집중했다.
남천휘의 예상대로 마교는 불리한 상황에서 후퇴가 예정된 듯보였다. 수세에 몰린 마교가 맥없이 후퇴하는 가운데 별동대가 배후에서 등장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이미 적의 수괴는 마천종과 흑천괴뢰가 전부였고, 이쪽은 구파오가와 은거기인들이 총출동했다.
“화려하네.”
무림맹과 마교는 천하에 존재하는 온갖 고절한 무공들을 선보였다. 만약 이것을 따로 판매할 수 있다면 강호의 경극단과 매담자들은 한날한시에 백수가 되어 개방의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다.
한데 그러던 중 화면 하단에 반짝이는 숫자가 보였다. 재이가 기다렸다는 듯 숫자의 옆으로 다가서더니 말했다.
‘선장님의 마지막 영상입니다.’
남천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장이라는 호칭과 이곳의 연관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퀘스트를 받지 않아도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은 기꺼웠다.
‘실행’
그 순간 공간이 암전되며 난주의 상황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영상이 재생됐다.
시작은 남추가 처음으로 강호에 개입했던 시점인 듯했다.
남추는 곡부에 난입한 마교도를 쓸어버렸다.
한 호흡에 호랑이의 가죽을 벗기는 실력을 지니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돌아왔어도 놀랄 일은 아니다.
포목점을 운영하던 남 공도, 부인인 양 부인도, 자식인 연복도 웃음을 되찾았다. 남추는 처음으로 가족을 만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
‘좋은 사람.’
남천휘가 봤던 남추는 동굴에서 고행을 하거나, 적과 대치하거나, 쓸쓸하게 눈밭을 걷던 모습이 전부였다.
한데 저 때의 남추는 참으로 행복한 듯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선물로 여기는 것처럼 웃고, 또 웃었다.
아무래도 남추가 온 세상은 이곳과 많이 다른 듯했다. 나무와 꽃도, 동물과 사람도 전부 생소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남추가 처음 재이와 대화를 나눴던 칠주야가 흘렀다. 고장 난 곳을 고치고, 연료를 채웠으니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 남추는 떠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옳으리라.
사람은 때가 되면 죽는 것이 순리였다.
한데 저 시대의 사람은 너무도 쉽게, 너무나 많이 죽었다. 어제까지 남추와 인사를 나눴던 객잔의 점소이는 목을 잘렸고, 잔소리를 하던 다루의 주인은 창에 찔린 채 벽에 박혀야 했다.
그 때부터였다.
남추는 탐사선이라 부르던 은신처에서 나노플라스트를 불러냈다. 그리고 곡부 전체에 뿌려버렸다. 재이의 첨언에 의하면 나노플라스트는 자가 증식이 가능하기에 끝 모르게 늘어날 것이라 했다.
남추는 잘 됐다고 웃었다.
재이는 이 세상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남추는 지금이 혼란이라며 울었다.
결국 먼지처럼 반짝이던 나노플라스트가 퍼져나갔다.
그 때부터였다.
남추는 두 개의 은빛 막대를 들고 강호에 뛰어들었다. 수없이 많은 싸움을 거치고, 수많은 적을 죽였지만 호랑이 가죽만은 벗지 않았다.
마치 그와 이 세계를 이어주는 선물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그리고 남추가 돌아왔을 때 남 공과 양 부인은 시체가 되어 마주하게 되었다.
‘만약 연복마저 죽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남천휘는 끝없이 재생되는 영상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그랬다면 아버지도, 그리고 삼형제도 없었으리라.
남추 또한 그렇게 여겼다.
뿌리가 없는 줄기는 꽃을 피워낼 수 없었다.
그는 연복의 곁에 남았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고, 강호는 뒤집혔다.
암중에서 움직이던 괴겁천마와 사령신이 수면 위로 등장했다. 천하를 돌고 돈 소문이 강호의 변경이라 할 수 있는 산동에 닿았다.
사람들은 사마천세가 도래했다고 절규했다.
정파라 자부하며 어깨에 힘을 주었던 이들은 모조리 무릎을 꿇었다. 구파오가가 근근이 명맥을 이어갔으나, 전세를 역전하기에는 불가능했다.
남추는 다시 강호로 나섰다.
이제는 연복뿐 아니라 지난 십 년 간 동고동락했던 지인들을 위해서였다.
그는 단 한 번도 명예를 탐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대가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음에도 남추의 이름은 곡부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아.’
남천휘는 영상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멋대로 날뛰었던 자신이 부끄러웠을 만큼 남추의 삶은 빡빡했다.
자신을 위해서는 1초도 허비하지 않았다.
그는 미꾸라지가 되었다.
괴겁천마와 사령신마저 관심을 보였을 만큼 사마천세라는 연못을 흙탕물로 만들었다.
사성신위와 광혈오주는 남추를 잡고자 했다.
주인의 눈에 들기 위함이었다.
그 덕에 정파는 재정비할 시간을 얻었고, 결국 정천칠공이 나타나 숨을 돌렸다.
또다시 시간은 흘렀고, 연복은 자식을 낳았다.
남추가 원하던 대로 남가의 대가 이어졌다.
그는 장성한 연복이 강호를 떠나 동해로 향하는 것을 본 후 은거했다.
탐사선의 능력과 강호에서 얻은 기연을 뭉뚱그려 하나의 무공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다.
‘내가 겪은 시스템의 힘은 신과 같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겁천마와 사령신을 죽일 수는 없었던 거야?’
남천휘의 물음에 재이가 순순히 대꾸했다.
‘전투함이었다면 사령신이 있는 지역 전체를 소멸시키는 것도 가능했겠지요. 하나 선장님은 상인이었고, 광물과 약초를 캐낸 후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탐색과 수집을 제외하면 주인님께서 바라시는 그런 능력은 없다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선장님은 강호에서 얻은 무공을 시스템에 접목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대두동은 그런 동네였구나.
남천휘는 남추가 머물렀던 대두동이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곳에 신공부의 친우가 다녀갔고, 태산에서는 전진교조인 마옥을 만났다. 남천휘가 익힌 모든 무공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마천세는 끝나지 않았다.
괴겁천마와 사령신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남추는 철신을 찾아갔고, 두 개의 신병(神兵)을 만들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자라고 해도 욕심을 내지 않을 수가 없는 희대의 신병을 만들어냈다.
두 개의 신병이 강호에 나타났다.
하나는 장강 북쪽에, 다른 하나는 장강 남쪽에.
보물쟁탈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성신위와 광혈오주는 신병을 입수하는 즉시 주인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추가 신병에 추적기를 달았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남천휘가 추노를 통해 낙인을 찍듯 그들은 신병을 지닌 이상 남추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날부터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남추는 그들을 죽일 수 없지만, 그들도 남추를 죽일 수 없었다.
강호는 신마대전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정작 괴겁천마와 사령신은 밤낮으로 모기가 왱왱대는 상황을 참아내야 했다. 오죽 시달렸으면 욕심 많은 사령신이 철신을 불러내 신병을 봉인했겠는가.
그리고 결국 남추는 불멸과 불사를 미끼로 두 사람을 유인할 수 있었다.
남천휘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로구나.”
재이가 메인 영상과는 달리 작은 창을 띄웠다.
건물을 위에서 내려 보는 듯한 구조도였다.
‘정확하게는 조사실입니다. 주인님께서 잠시 머물렀던 그 공간이지요.’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남추의 은신처인 탐사선이라는 건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대두동의 공터보다 세 배 이상은 넓은 듯보였다.
재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탐사선의 후미 쪽에서 빛이 점멸했다. 보조 관제실이라는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결국 남천휘는 선두(船頭)에 위치했고, 괴겁천마는 후미에 있는 셈이다.
“저 놈은 왜 저기 있는 거야?”
‘이어지는 영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직접 보시는 편이 이해하기에 좋을 듯합니다.’
남천휘가 다시 커다란 화면을 바라보자, 멈췄던 영상이 재생됐다.
*
“흐음, 쉽게 말하자면 원심분리기와 같은 거야.”
남추의 말에 괴겁천마는 미간을 좁혔고, 사령신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조사실의 중앙에는 사람의 몸통만한 기둥이 가로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기둥의 양 끝에는 알처럼 보이는 타원형의 구체가 달렸다.
“들어가.”
“저 안으로?”
“너를 어떻게 믿고!”
남추는 느긋했다.
“싫으면 말고.”
결국 괴겁천마와 사령신은 구체에 스스로 들어갔다.
자신의 무위에 대한 확고한 자신이 있었기에 거침이 없었다. 잠시 후 기둥은 바람개비처럼 회전을 시작했고, 두 개의 구체는 강렬한 바람을 일으키며 잔영을 남겼다.
“하하하하! 그 안에서 뒈져라!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남추는 박장대소를 했다.
하나 종극에 이르러서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헛웃음을 흘렸다.
남천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돌아갈 것을 포기하고 한평생 어딘지도 모를 세상에서 삶을 바치지 않았던가. 괴겁천마와 사령신의 소멸 앞에서 진이 빠지는 건 당연했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어.’
남천휘는 심호흡을 한 후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아니나다를까 구체 속에서 간간히 원념 가득한 일갈이 울렸다.
“죽여 버리겠어.”
“너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주마.”
남추는 드문드문 울리는 외침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만큼 기구를 믿었던 것이다.
하나 인외비경(人外秘境)을 엿본 괴겁천마와 사령신은 이미 인간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였다.
기구가 활동을 끝냈다.
그리고 한쪽은 육신이 사라졌고, 다른 한쪽은 혼백이 흩어졌다.
쾅! 쾅! 쾅!
사령신은 눈을 뒤집은 채 미친 사람처럼 발광을 했다. 그리고 그가 주먹질을 할 때마다 구체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아!”
남추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결코 깨지지 말아야 할 것이 깨지고 있었다.
반대편의 구체 또한 심상치 않았다.
잠시 무언가 아른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신기루처럼 공간이 출렁였다. 그리고 심령으로 전해지는 듯한 일갈이 터져나왔다.
『내 몸! 내 몸을 어떻게 한 것이냐?』
괴겁천마의 심령음이 울릴수록 공간의 일렁거림은 검게 물들었다.
남추는 대답 대신 미간을 좁혔다.
구체의 연결부근에서 검은 안개와 같은 것이 일렁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 진저리를 쳤다.
“이런 씨발!”
콰콰쾅!
사령신의 구체가 폭발했다.
동시에 괴겁천마가 구체에서 흘러나와 허공에서 사람의 형태를 취했다.
남추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는 두 존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빠르게 말했다.
“신체 보호 기능 해제. 자폭 기능 활성화.”
괴겁천마의 입 부근이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너!』
사령신이 괴겁천마의 심령음에 호응하듯 남추를 바라봤다.
“으어어어어!”
남추는 장탄식을 흘려낸 후 읊조렸다.
“가동.”
콰쾅!
조사실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리고 남추는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은 채 소멸했다. 괴겁천마의 심령음과 사령신의 중얼거림만이 조사실을 맴돌았다.
*
《선주의 사망으로 선체가 자동 폐쇄됩니다.》
시스템의 알림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남천휘는 눈을 부릅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아.”
남추의 마지막이 이처럼 허망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사그라질 줄 예상이나 했을까.
반면 재이는 머뭇거림 없이 말을 이었다.
‘탐사선 자체는 세상 밖에서 진입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선체를 지녔습니다. 즉 선주께서는 저들에게 불멸과 불사를 선사한 대가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우리를 만든 셈이지요.’
그랬겠지.
그러니 괴겁천마가 백 년 동안 이곳을 맴돌았겠지.
“잠깐! 그런데 사령신은 어떻게 밖으로 나간 거야?”
‘두 가지 변수가 존재했습니다.’
남천휘가 미간을 좁히자, 재이가 영상을 재생했다.
남추의 사망 이후 시간을 빠르게 흘렀다.
재생 자체를 몇십 배나 빠르게 돌린 듯했다.
한데 시간이 흐를수록 괴겁천마의 흑무는 또렷해졌고, 사령신의 인성을 되찾았다.
“저게 어떻게 된 거야?”
‘첫 번째 변수입니다. 선내는 광물과 약초를 보존하기 위해 무균 처리가 기본으로 진행됩니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답이라고 할 수 없잖아.
‘탐사선은 자체적으로 연료를 수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말 돌리지 마라.”
하나 말을 돌리는 것이 아니었다.
‘탐사선은 천연정화연료로 가동됩니다.’
그게 뭐?
‘이곳의 명칭으로는 자연지기라 칭합니다.’
남천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연지기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기술력에 놀란 것이 아니다. 자동으로 자연지기가 뭉쳐든다면 어떤 결론에 이를지 절로 연상이 됐기 때문이다.
“아!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이게 그렇게 연결이 되나?”
재이는 감흥 없이 말을 이었다.
‘사령신은 자연지기의 활성화로 인해 기억을 잃었을 뿐 인성을 되찾았습니다. 반면 괴겁천마는 조사실의 통제권을 얻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렇지.
이계의 문물이나 다름없는 걸 혼백만 남은 채로 체득할 수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기에 선주가 등록한 이동구역을 부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고, 나노플라스트의 정보를 일정 부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힘이 쭉 빠진다.
그냥 혼백이 아니라 이것저것 붙여놓은 괴물을 마주하는 듯했다.
‘그래서 사령신은 어떻게 나간 건데?’
재이는 설명 대신 재생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조사실 내부는 변함이 없지만, 묵빛 안개와 사령신은 수천 개의 잔영이 남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아무래도 탈출로를 찾으려는 듯했다.
그러던 중 속도가 느려지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삐이이이이-
조사실 내부에 경보음이 울렸다.
그리고 저들에게는 들릴 까닭이 없는 알림이 연이었다.
《선주로 등록된 유전자 본체가 외부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선주로의 적합성 판단을 위한 관찰을 시작합니다.》
한 십 년 쯤 지난 듯했다.
재차 경보음이 울렸다.
《관찰 대상이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신체 보호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관찰 대상의 성장을 위한 인스톨이 진행됩니다.》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
잠시 후 기계가 읽는 듯한 무미건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선주의 저장된 기억을 기반으로 관찰 대상의 성장을 보조합니다.》
《삐이이이이이이.》
《언어 해석 완료.》
《지도 작성 완료.》
《임무 생성 완료.》
《습득 가능 정보를 토대로 환경설정이 완료됐습니다.》
《기본 설정 상태로 임시 실행이 가능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남천휘는 진저리를 치며 읊조렸다.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