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작전명: 발귀리(拔歸離).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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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작을 입하(立夏)라 한다.
농사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를 지나 본격적으로 더위와 씨름을 하게 되는 시기였다.
하나 입하를 며칠 앞둔 오월 초하루는 강호사(江湖史)에 깊은 족적을 남기게 된다.
오월 초하루의 이른 아침.
무림맹이 총력을 기울여 마교가 점거한 감숙성으로 밀고 들어갔다.
정마대전(正魔大戰).
백 년 전의 혈겁은 정파를 제외한 사마의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사마천세의 신마대전이라 불리지 않았던가. 하나 혹자는 정파의 굴복을 역사에서 지우고 싶었는지 2차 정마대전이라고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후우.”
그러나 정마대전에 직접 발을 들인 이들에게는 생사의 문제일 뿐이다. 맹주의 연설처럼 고상한 명분 따위는 집어치워야 했다.
살기 위해서 싸운다.
유명해지기 위해서 싸운다.
정파의 신성이 되기 위해 칼을 들었다.
비룡대주 또한 그런 무인 중 하나였다.
그는 천안각에서 나눠준 지도를 펼친 채 말을 이었다.
“우리의 적은 마교팔가 내에서도 외공을 익힌 천중마가다. 적의 숫자는 이백 명. 우리는 지도에 표시된 요충지를 탈환한다!”
대주의 말에 호응하는 대원의 숫자는 백여 명 남짓이다. 한데 그들은 두 배의 적을 앞에 뒀음에도 눈을 빛냈다.
“오늘 만두 빚는 기분으로 고기 좀 다져야겠소.”
“덩어리들은 면적이 넓어서 좋아. 아무 곳이나 찔러도 되거든.”
그도 그럴 것이 비룡대(飛龍隊)는 보법과 신법으로 경지에 오른 고수들로 이뤄졌다. 극쾌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외공을 익힌 마인은 덩치 큰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적의 전선을 교란하여 후발대의 점거를 돕는 거다.”
“그러면 명성과 재물은 따 놓은 당상이겠지.”
비룡대주는 날 선 농이 오가는 가운데 입꼬리를 올렸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정마대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하나 무림맹 총군사가 입안하고, 맹주가 수락한 작전은 일견하기에도 완벽했다. 아군의 강함으로 적의 약점을 찌르는 것을 요체로 했을 정도였다.
“출발한다.”
해가 뜨기 전 어슴푸레 빛나는 산등성이를 향해 백여 명의 무인들이 달려 나갔다.
현월회에서 준비한 장원에서 그들이 튀어나오는 순간 산과 들을 가리지 않고 정파의 무인들이 개미떼처럼 쏟아졌다.
병법?
전략적인 면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몇 가지 방편을 준비했을 뿐이다. 그것은 정파와 마도, 양측이 모두 그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전술적인 측면이다.
오직 개인의 무위와 합격술로 인해 승패가 결정될 터였다.
“온다!”
이미 산등성이에 자리를 잡은 마교도의 진지 곳곳에서 혈겁의 서막을 알리는 일갈이 터져 나왔다.
“기관을 가동하라!”
“독을 뿌려라!”
“불을 질러서 안개를 피워라!”
“활을 쏴라!”
삽시간에 시계가 까맣게 물들었다.
독무가 자욱하고, 안개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 사이로 수많은 화실이 비처럼 내리꽂히는 광경이 이어졌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포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옥도의 재현이었다.
“크흑! 해독단을 먹어라!”
“방진! 방진! 방패를 들어라!”
정마의 싸움은 길거리의 시정잡배나 군부의 싸움과 다르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거치적거린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대나무 방패로 전방과 위를 가렸다. 온갖 악다구니를 쏟아냈고, 허기진 이들처럼 해독단을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고상한 대결이나 웅혼한 연설 따위는 없다.
구파의 노고수가 마도의 노마두가 옛 은원을 거론하며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지도 않았다.
그저 죽이는 자와 죽는 자만이 가득했다.
이것이 정마대전의 실체였다.
하나 승리하기만 한다면 생사를 불문하고 무한한 영예를 누릴 수 있으리라.
“화살이 그치면 오대의 앞으로 천기단과 천무단이 나선다!”
이름 없는 산을 두고 정마가 대치했다.
하지만 산 하나만 넘으면 마도의 주력이 위치한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였다.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저 새끼들이 미쳤나!”
팔대가문 중 정방(正方)을 맡은 곳은 거력신궁(巨力神宮)이다. 천중마가(天重魔家)와 함께 외공의 고강함을 자랑했고, 머릿수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나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정파의 무인들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일 정도였다.
“쳐라!”
정파의 노고수가 백염을 흩날리며 방패 사이를 뚫고 나타났다. 모용세가의 속가인 청하문의 문주로 유검(柔劍)의 끝을 봤다는 고수였다. 정천칠공 중 한 사람이었던 비류검사(泌柳劍師)의 낙화유망검을 대성했다. 그러니 새외제일검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청하문주를 필두로 수십 명의 무인들이 꼬리를 물고 산을 올랐다.
“다 죽여!”
거력신궁의 궁주가 살기를 흩뿌리며 외쳤다.
하나 무림맹의 무인들은 천명지괴의 후손들이 깔아놓은 기관을 피해서 움직였고, 약식을 설치한 진법을 아이들의 장난처럼 가볍게 파해했다.
한데 그 모습이 얼핏 보아서는 중구난방으로 계획 없이 들이치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어, 어!”
궁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파의 무인들은 철저한 계획대로 조직을 꾸렸고, 공격 방향을 정했으며, 공격 방식까지 숙지한 상태였다.
우리의 강함으로 적의 약한 부분을 깬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천휘의 정보로 인해 거력신궁은 허무할 만큼 빠르게 무너졌다. 거력신궁의 궁도들은 마공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검하고인이 되었고, 정파의 무인들은 마인의 시체를 뒤로 한 채 산을 넘었다.
*
정마대전 발발 한 시진 째.
마천종은 전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적이 양정산과 비몽산, 우각산을 넘었습니다.”
“생각보다 빠르지만, 나쁘지 않군. 적은 동태는?”
마도팔가의 수장인 십비마존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현재 휴식 없이 난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좋아. 좋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꼴이 우습군. 적의 피해는 어느 정도지?”
“이개 대 정도를 척살한 듯합니다.”
마천종은 미간을 좁혔다.
적의 피해가 이백여 명에 불과한 상태에서 난주 외곽이 뚫렸다는 소리가 아닌가.
“우리는?”
“거력신궁과 천중마가의 세력 중 칠 할이 사라졌습니다.”
쾅!
십비마존은 식은땀을 흘렸다.
하나 마천종은 눈에 불을 켜고 인상을 썼다.
“이런 멍청한 새끼들! 적이 속도를 늦추면서 함께 후퇴하라고 했잖아. 놈들의 임무는 적을 난주로 끌어들이는 거였잖아. 고작 그런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수하를 잃어? 뇌까지 근육으로 된 멍청한 새끼들! 마교에서 사령신과 같은 머저리들이 나왔구나! 지금 당장 거천마군과 천암마존을 끌고 와. 내 이 새끼들의 머리통을 직접 떼어주마!”
하나 십비마존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천종은 그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지금 뭐하는 거야? 설마······.”
십비마존은 자신이 잘못을 한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모두 죽었습니다.”
“······.”
“청하문주와 검존 하후태경, 그리고 화산의 매화검수들과 무이신궁의 십팔성화승이 합공을 한 탓에······.”
마천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뭐라고? 그 놈들이 왜 거기 있어? 일원의 정보에 의하면 쾌검과 유검을 쓰는 놈들은 죄다 동쪽의 평량현에 뭉쳐 있다고 했잖아.”
무림맹 내부에 잠입한 간자들의 보고는 동일했다.
그렇기에 마천종 역시 간자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수하들을 배치하지 않았던가. 상성에 맞춰 우위에 설 수 있는 자들을 꾸리느라 수하들과 밤잠까지 설쳐야 했다.
십비마존은 말을 아꼈다.
꽈드득-
마천종은 이를 갈며 손짓을 했다.
“주가효. 나와.”
무림맹에 천안당이 있다면 마교에는 비륜각이 있다.
각기 정보를 다룸에 있어 천하제일을 자부했다.
비륜각주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다가왔다.
“어찌된 일이냐?”
“저도 그것이 이상하여 다시 보고를 올리라 했습니다. 한데 단 한 명도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 묘시 말을 기점으로 모든 비선이 끊겼습니다.”
촤악!
마천종이 소매를 내젓는 순간 검은 기류가 흘러나와 비륜각주의 팔을 잘랐다.
“크흑!”
비륜각주는 피가 철철 쏟아지는 어깨를 감싸지도 못한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천종은 콧김을 쏟아내며 말했다.
“후우, 지금부터 모든 계획을 폐기하고, 전면전으로 승부한다. 빌어먹을 정파의 위선자 새끼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어. 알겠느냐?”
쿵!
십비마존이 무릎을 꿇고 외쳤다.
“존명!”
그 뒤를 팔대마가의 수장들과 마교의 중진들이 연호했다.
“가라! 이 머저리 같은 놈들아. 정파의 씨를 말리기 전에는 돌아오지 마!”
마천종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어차피 계획은 내 취향도 아니었어. 정마대전이라면 모름지기 개싸움으로 끝내야지. 그렇지 않은가?”
사라락-
흑천괴뢰가 장막을 걷어냈다.
“흐음, 뒤에서 듣고 있는 것도 곤욕이군. 개싸움이 좋기는 한데······.”
마천종이 으르렁거렸다.
“닥치고 내 말 들어. 일원에서 건네 준 정보만 믿고 배치를 했다가 이 꼴이 났잖아.”
흑천괴뢰의 입가에 조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하늘께서 계신 마당에 협박을 하다니. 간도 크군. 그보다 내가 너를 두려워할 성 싶더냐? 그깟 정파 나부랭이를 반나절도 막지 못하고 팔가 중 두 곳이 무너졌어. 나야 시체를 놀려 힘을 쓴다지만, 네 놈은 마도가 무너지면 어떻게 힘을 쓰려는 거냐?”
“다른 건 몰라도 지금 네 놈을 찢어발길 수는 있지.”
“한 번 해볼까?”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 애초에 적으로 시작해서 동지가 된 상태였다. 하나 두 사람은 투기를 한껏 흩뿌렸다가 서서히 갈무리를 했다.
한 때 천하를 쥐락펴락했고, 지난 백 년간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렸던 그들이다. 한순간의 감정으로 대업을 그르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네 수하들도 모아라.”
“하나 내 수하들은 남천휘를 상대하기······.”
흑천괴뢰가 미간을 좁혔다.
잠시 후 그가 물었다.
“놈은 어디 있지?”
“그거야 당연히······.”
마천종은 심드렁한 표정을 짓다가 말끝을 흐렸다.
흑천괴뢰가 인상을 썼다.
“나만 듣지 못한 게 아니었군. 십비마존의 보고서 중 남천휘나 구파의 장문들에 관한 행적은 없었네. 나는 놈과 많이 부딪쳤기에 행동습성을 알아. 놈은 결코 뒤에서 기다리지 않아. 오히려 제일 먼저 날뛰어서 휘저을 놈이지.”
“정마대전이 일어났어. 한데 놈은 어디 있단 말인가?”
“보고를 하지 않은 지역이 있잖아.”
마천종은 슬쩍 창밖을 응시했다.
난주의 북쪽에 위치한 천관산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솟구친 채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천관산. 놈이 북쪽에서 올 리 없으니 보고할 것도 없었어. 잠깐! 놈은 분명 어제 은밀하게 맹주를 만난 후 사라졌어. 게다가 놈이 구파의 장문들과 움직인다면 속도는 더욱 느리겠지. 그렇다면 최소한 삼 일은 걸려야 할 거리야.”
흑천괴뢰는 고개를 내저었다.
“놈에게는 무극중사와 비슷한 능력이 있다. 지금껏 놈의 행적을 쫓다보면 말도 안 되는 거리를 이동한 경우가 많아. 심지어 사령신과 싸웠던 제갈세가에서는 무당의 문도 백 명을 이끌고 하루거리를 반 나절만에 주파한 경험도 있어.”
“그렇다면 맹주와 만난 것도 일부러 들켰다는 건가?”
“놈은 이미 일원의 명단을 입수했다. 그러니 일부러 행적을 노출했고, 일원의 보고를 역으로 이용했지. 그러니 지금 텅텅 비어 있는 이곳을 노리려면 북쪽의 천관산이 제격이야.”
마천종과 흑천괴뢰는 잠시 서로를 응시했다.
“천관산이군.”
“그래, 천관산이다.”
흑천괴뢰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대로 이뤄지는구나.”
마천종인 박장대소를 했다.
“크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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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휘는 작전 발귀리를 성사시키기 위해 별동대를 운용했다. 이백여 명이라는 초라한 숫자였지만, 면면만 본다면 마교를 상대로 자웅을 겨룰만큼 고르고 고른 전력이었다.
구파의 장문은 물론이고, 장문에 비견되는 고수를 가려서 뽑았다. 거기에 더하여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은거기인들까지 섭외한 상태였다.
“곧 천관산입니다.”
남천휘의 말에 무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삼 일 동안 쉬지 않고 달렸어야 할 거리를 세 시진 만에 주파한 게다. 비록 밧줄을 쥐고 마차 놀이를 하듯 뛰어야 했지만,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입영열차라니... 평생 이것만 타고 싶군.”
화산의 장문인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혈전을 코앞에 뒀음에도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남천휘는 히죽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미 옥문관의 성소를 획득한 후였기에 여산에서부터 비책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가 나타나면 아주 깜짝 놀랄 겁니다.”
“하나 회주의 정보대로라면 우리 앞에 장애물이 있지 않소이까.”
남천휘는 지도에 적힌 적의 규모를 확인한 후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