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작전명: 발귀리(拔歸離).
133, 작전명: 발귀리(拔歸離).
정마대전(正魔大戰).
정사마가 대립할 때 빠지지 않고, 마지막 결말을 의미하는 듯한 용어가 바로 정마대전이다. 대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력으로 부딪쳤고, 어느 한쪽이 지리멸렬해야 끝나지 않던가.
정파의 무인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호승심을 보였고, 누군가는 이권을 탐했으며, 누군가는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몇몇은 아예 야음을 틈 타 짐을 싸서 도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대평에 남은 정파의 무인은 만여 명에 이르렀다.
“쭉정이를 걸려내고, 즉시 전력만 남았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반응도 존재했다.
“하나 대규모 전투에서 머릿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력을 보입니다. 경천쌍도의 정보에 의하면 적은 드러난 것만 일만칠천이고, 숨은 전력을 더하면 이만을 넘길 겁니다.”
이처럼 부정적인 반응도 존재했다.
하나 맹주와 총군사를 비롯한 중진들은 정마대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천휘의 상세한 보고서를 통해 승기를 잡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들은?”
“열흘의 시간을 주었으니 반드시 도착할 겁니다.”
맹주는 총군사의 호언장담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열흘만 기다리면 된다.
열흘 후 정파는 백 년 전의 수치를 만회하기 위한 원정을 떠나게 될 터였다.
모용세가의 삼신삼세존(三神三世尊).
복주 무이산의 무이신궁(武夷神宮).
호남 장가계의 장가칠검(張家七劍).
산동 악릉의 은자림(隱者林).
이와 같이 강호의 환란마저 도외시한 채 은거했던 기인들이 심산유곡을 떠났다. 저들은 제각기 모종의 이유로 지난 백 년 간 강호를 등져야 했다.
하나 그 이유를 뭉뚱그려 명확한 한 가지를 만든다면 사마천세의 피해자가 될 터였다.
그들은 정마대전의 대상자가 괴겁천마와 사령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망설임없이 하산하여 무림맹에 합류했다.
이 또한 남천휘의 언질을 받은 사마의가 해낸 쾌거였다.
사마의는 남천휘의 안목은 부처를 뛰어넘은지 오래라고 장담했다. 그렇기에 은거기인의 목록을 받자마자 현월회의 총력을 기울여 소문을 퍼트렸다. 그리고 누군가 긍정적으로 말했듯 쭉정이를 걸러낸 자리에 은거기인들이 채워진 셈이다.
“나는 정마대전을 협의지심으로 포장하지 않겠다. 오늘 정파는 지난 백 년 간 마음에 담아뒀던 응어리를 풀러 간다. 지극히 사적인 싸움이며, 나라의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처절한 싸움이다. 그러니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망설임 없이 뒤를 따르라.”
무림맹주의 솔직한 연설은 무인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만 명의 정파인이 수천 대의 마차에 올라 길을 떠났다.
“기점마다 마차를 정비할 인력이 준비됐고, 곳곳의 객잔과 주루를 포섭했으니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또한 무진철원의 지원으로 원하는 이들에게 병장기를 내어줄 것입니다.”
“무진철원의 섬서 지부가 여산에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총군사가 부채를 흔들며 전방을 가리켰다.
“합류지점은 섬서의 여산이다.”
“존명!”
*
무림맹의 진군은 매우 느렸다.
마치 적에게 시간을 주려는 것처럼 느릿하니 곳곳에서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병법에 일가견이 있는 자들은 총군사를 찾아가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맹주와 총군사는 요지부동이다.
두 사람은 매번 같은 이유로 중진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의 근거지를 치러 가는 길이니 맹의 주력을 온전히 보전하는데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이제는 맹주와 총군사가 겁쟁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누가 내 욕을 이리 하는가?”
칠절신군은 쉴 새 없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그는 여산에 도착한 이후 버릇처럼 귀를 매만졌다.
총군사는 피식 웃더니 칠절신군을 따라 귀를 후벼 파기 시작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장수가 확정되었군요. 이렇게 욕을 먹으면 오래 살지 않을 수가 없어요.”
맞은편에 앉은 사마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귀를 후비고 싶지만, 예의가 아닌 듯하여 참도록 하겠습니다.”
“클클, 요새 사 군사를 욕하는 자들이 많이 늘었더군. 뭐라고 하더라? 맹주와 총군사의 곁에서 아첨만 하는 간신이라던가.”
칠절신군이 말을 보탰다.
“그건 낫지. 밤마다 옷을 벗고 침상에 기어 올라와 맹주와 총군사를 미혹한다는 소문도 있다네.”
사마의는 두 노인의 허물없는 농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이게 다 현월회주 때문입니다. 저도 참 미치겠습니다.”
그 때 문 밖에서 담담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누가 내 욕을 하고 있는가?”
사마의는 굽혔던 허리를 펴고 정자세를 취했다.
“클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드디어 이 모든 사달의 원흉인 경천쌍도가 왔구려.”
남천휘는 문을 열고 들어선 후 히죽 웃었다.
“다 어르신들 잘 되시라고 하는 일이지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들으시면 제 엉덩이를 토닥이고 싶어지실 겁니다.”
사마의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제아무리 남천휘라고 해도 맹주와 총군사를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하나 당사자인 두 노인은 손주의 재롱을 보듯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다.
“클클, 회주의 말대로라면 내가 업고 다녀야겠군.”
“자네가 업게. 내가 키울 테니.”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손을 뒤로 했다.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두툼한 종이뭉치가 잡혔다.
“일단 이것부터 보시지요.”
맹주와 총군사는 호기심 섞인 눈빛으로 종이를 받아들었다. 하나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다면 한평생 받았던 충격보다 더 심하게 흔들릴 것이라 장담했다.
“헉!”
“어어어.”
이것 보라니까.
‘헤헤, 제가 주인님을 열심히 보조한 덕이지요.’
넌 빠져.
정보 차단이나 하는 멍청한 보조는 필요 없다고.
남천휘가 재이를 타박하는 사이에도 맹주와 총군사의 입에서는 탄식이 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천휘가 가져온 정보는 마교나 괴겁천마에 대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무림맹의 요직에 앉은 중진들에 대한 자료였다.
“이게 사실인가?”
“지금껏 제 언행을 보셨다면 아시겠지요. 제가 증거입니다.”
남천휘의 확신 가득한 눈빛에 맹주와 총군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운검당주가 배신자라고? 내 밑에서 이십 년 간 함께 고락을 같이 했거늘.”
“운검당주와 견원지간이었던 청무단주와 백파검대 또한 일원의 하부조직이군요. 백결공을 쳐내고 일원의 잔당을 일소했다고 여겼거늘······.”
그도 그럴 것이 두 노인이 보고 있는 자료에 적힌 자들만 해도 무림맹 중진의 이할 가량 되었다.
“일원 자체가 점조직입니다. 또한 백결공 역시 중간 관리직에 불과했고요. 그러니 다른 줄을 따라 엮인 놈들이 있을 수밖에요. 두 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총군사는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회주. 이런 걸 물어보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네. 한데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군. 도대체 이런 정보는 어디에서 얻어내는 건가?”
남천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저들에게 성소의 공능을 알려준다고 해도 믿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아무도 모르는 비선 조직이 있다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그나저나 명성 1위가 되면 이런 덕도 보는구나.’
재이가 허공에서 슬쩍 상체를 내밀고 엄지를 추켜세운 후 자취를 감췄다.
그도 그럴 것이 남천휘는 무림맹의 성소를 획득하지 못했다. 또한 정마대전을 위해 모인 자들의 면면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무림맹에 속하지 않은 자들도 다수였다.
한데 남천휘는 그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자격을 갖췄다.
남천휘의 명성은 현존하는 강호인들 중 으뜸이다.
그렇기에 그가 획득한 성소에 장시간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정보의 취합이 가능해졌다.
애초에 무림맹이 여산으로 향하는 여로를 결정한 것은 사마의가 아니던가. 그리고 사마의는 남천휘의 명을 받아 진행한 사안이었다.
‘내 땅을 이렇게 오랫동안 지났으니 저들의 속마음 정도는 쉬이 눈치 챌 수 있지.’
탁!
맹주가 종이뭉치를 내려놨다.
그는 조금 전의 웃음기 가득하던 옆집 노인이 아니라 정파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맹주의 표정을 보였다.
“지금 당장 이 놈들이 한데 모아 처결해야겠군! 정마대전을 앞두고 사기를 끌어올리기에 제격이야.”
총군사가 맹주를 만류했다.
“맹주, 잠시 기다리시지요. 회주가 이걸 가져와 우리에게만 보인 까닭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은가?”
역시 머리 좋은 사람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배신자로 판명된 자들에게는 이미 눈을 붙여놨습니다. 그러니 저들의 동향을 확인할 수 있는 이상 역으로 이용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눈? 아! 그 비선조직.”
남천휘는 총군사의 감탄성에 어색하게 웃었다.
‘나노플라스트를 띄워놨으니 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이용을 한다고?”
맹주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만인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으니 위험보다 안정적인 선택을 우선시하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가 적의 정보를 모른다면 당연히 쳐내는 것이 맞지요. 하지만 우리는 적의 진형과 함정, 배치까지 명확하게 알고 있지 않습니까.”
총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진군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니던가.
강호의 싸움은 나라의 전쟁과 다르다.
그렇기에 병법에 치우치기보다 개개인의 무력에 의존했다. 하나 싸우는 숫자가 열을 넘기고, 만에 이른다면 이 또한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천휘와 같은 절대지경의 고수가 아니라면 수백 명에게 둘러싸이는 순간 힘이 다하는 것이 당연했다.
“좀 더 듣고 싶군.”
“일단 지형을 보자면······.”
남천휘가 지도를 펼쳤다.
군부의 검증된 지도나, 맹에서 몰래 만든 지도보다 훨씬 더 자세했다.
“이 선의 넓이와 높이를 뜻하는 건가?”
“네.”
남천휘는 재이에게 배운 지도 작성법을 토대로 자신의 뜻을 펼쳐나갔다.
“이쪽에 함정이 다수 배치되어 있지만, 마교의 핵심 전력이 아닌 천명지괴의 후손들이 담당합니다. 그러니까 기관진식만 파해한다면 오히려 적의 뒤를 잡을 수 있는 요처지요.”
“별동대를 파견하겠다는 것이군.”
“네. 제가 직접 인솔합니다.”
“자네라면 믿을 수 있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 작전은 이렇습니다.”
밤은 충분히 길었다.
남천휘는 야음을 틈 타 별원을 빠져나갔고, 맹주와 총군사는 이른 아침부터 대회의를 소집했다.
“이제 감숙성 난주까지는 하루거리일세.”
무인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느릿한 진행으로 인해 좀이 쑤신 게다.
그리고 이내 맹주의 입에서 저들이 기다리던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오늘 하루만 휴식한 후 전속으로 진군하여 감숙성 난주에 자리를 잡은 마교도를 몰아내겠다!”
“와아아아아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루라도 기다려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당장 적을 쓸어버리시지요!”
맹주는 한순간 내공까지 일으켜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전을 요구하는 자가 배신자로 판명 난 운검당주였다.
“어차피 적이 우리의 존재를 모를 리 없지 않은가. 그러니 마지막으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병장기를 정비하세나. 그리고 내일 하늘에 제를 올려 우리의 명분을 만천하에 밝힌 후 떳떳하게 진군할 것이다!”
맹주를 대신해 총군사가 나섰다.
무당파의 도인이 제사를 거론하니 무인들은 불만 섞인 표정을 지을 뿐 대놓고 반박하지 못했다.
“자! 향후 계획은 지금까지와 같네. 그러니 하루 뒤 정명한 얼굴로 다시 보세!”
맹주의 일갈을 끝으로 대회의가 끝났다.
하나 몇몇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게 별원으로 호출됐다.
그렇게 모인 자가 칠십 명이다.
남천휘가 검증을 끝낸 정파의 협객들이다.
“저희들을 은밀하게 부르신 이유가?”
맹주와 총군사는 남천휘의 정보를 그들과 공유했다.
잠시 후 소요가 잦아들었을 때 맹주가 씹어뱉듯이 읊조렸다.
“자네들은 오늘 밤 한 발 먼저 이동한다.”
총군사가 말을 이었다.
“작전의 명칭은 발귀리일세.”
누군가 발귀리(拔歸離)를 입에 담았다.
“그래, 우리는 적을 뽑아낸 후 돌아갈 것이고, 웃는 얼굴로 이별을 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