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내막강
3, 내막강
사부에게 물었다.
“검을 쥔 상대를 이기고 싶습니다.”
“주먹으로 검을 부러트려라. 검을 잃은 검사는 한 주먹거리에 불과하다.”
사부에게 물었다.
“창을 쥔 상대를 이기고 싶습니다.”
“긴 무기를 쥔 자들은 모두 겁쟁이다. 그러니 단호하게 달려들어서 창의 중간을 부러트려라.”
사부에게 물었다.
“활을 쏘는 자는 어찌 합니까?”
“화살을 피한 후 다시 장전하기 전 주먹을 날려라.”
사부에게 물었다.
“독을 쓰는 자는 어찌합니까?”
“독을 뿌리기 전에 일격을 날려라. 놈은 자신의 독에 중독되어 죽을 것이다.”
사부에게 물었다.
“계책에 능한 자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놈들이 제일 쉬웠다. 자고로 머리로 흥한 자, 머리로 망한다고 했어. 놈의 대가리를 두부처럼 으깨버려라.”
아이는 눈을 빛냈다.
이렇게 쉽게 강해질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사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주먹을 단련할 수 있습니까?”
“매일 같이 팔굽혀 펴기 천 번을 해라. 팔을 단련해야 주먹이 강해진다.”
“그렇군요. 그것으로 족합니까?”
“주먹은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완벽한 무기다. 그럴 리가 없지. 윗몸 일으키기도 천 번씩 해라. 육신이 강해지면 모든 힘은 오롯하게 주먹에 깃들 것이다.”
“역시 사부님은 대단하십니다.”
사부는 사람의 머리통만한 주먹을 흔들며 웃었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천 번씩 한 후 매일 같이 백 리를 뛰어라. 육신이 균형을 이룰 것이고, 강화된 몸뚱이로 내뱉는 호흡은 기합이 될 것이다.”
아이는 고개를 조아렸다.
“저도 강해지고 싶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한 가지만 묻겠다. 왜 강해지고 싶은 게냐?”
사부의 말에 아이는 결연한 눈빛을 드러냈다.
“동생을 지키고 싶어요.”
사부는 아이를 일으켰다.
“그것으로 족하다. 너를 제자로 받아주겠다.”
그 날 아이는 사부에게 선물을 받았다.
“이게 뭔가요?”
“검이다.”
“저는 주먹을 쓰고 싶은데요.”
사부는 이번에도 단호하게 말했다.
“네 주먹은 감자 같아서 수련해도 한계가 있어. 그러니 그냥 검이나 익혀라.”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
한겨울의 매화는 고아한 정취를 자랑한다.
그렇기에 사내의 백의무복에는 흰 매화가 옅게 새겨졌다. 소매의 끝은 붉었으며, 붉은 매화를 옅게 그려 넣었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게 질끈 동여 맨 영웅건에도 매화가 존재했다.
하물며 허리춤의 요대와 검에도 매화가 보였다.
온 몸을 매화로 치장한 듯한 청년은 언덕 아래 보이는 전각군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좋네요.”
사부는 코웃음을 쳤다.
“네 집도 아니거늘 뭐가 그리 좋은 게냐?”
청년은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황보세가잖아요. 황보세가는 산동 북부의 입구와 같습니다. 그러니 황보세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집에 돌아온 것 같네요.”
“네 가문과 황보세가의 사이가 좋던가?”
사부의 말에 청년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좋고 말고 할 것도 없지요. 황보세가는 본 가의 존재 자체도 모를 것입니다.”
“하긴 네 가문은 상행에 치중했지. 강호의 방파라고 보기에는 어중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두 사람은 황보세가로 향하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의 말처럼 좋은 말과 좋은 행동만 한다면 다 잘 될것이라 여겼지요. 하나 동생이 납치당한 후 깨달았습니다. 힘이 없다면 가진 것조차 지킬 수 없음을 말입니다.”
“집착은 미혹이다. 과하게 몰두하면 너 스스로를 망칠 게야. 네 동생을 지키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평정을 잃는다면 너, 자신도 지킬 수 없으리라.”
청년이 고개를 숙였다.
“잊지 않겠습니다.”
사부는 제자가 의기소침할 것을 우려한 듯했다.
제자의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 너를 믿지 말고, 너를 믿는 이 사부를 믿어라. 네가 네 가문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후훗, 황보세가 만큼요?”
사부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황보세가가 우습더냐? 무려 오대세가에 속하는 방파란다. 이 사부조차 함부로 여길 수 없는 곳이지.”
“저들이 우리를 반겨주겠습니까?”
“저들이 아무리 광오해도 이 사부의 이름값 또한 녹록치 않단다. 분명 좋은 옷과 음식, 그리고 잠자리를 대접할 게다.”
제자는 송구한 표정을 지었다.
“불민한 제자가 사부께 폐를 끼치는군요.”
사부는 제자의 우려를 기특해하며 말했다.
“녀석! 지난 십 년 간 산중에서 수련만 하느라 네 꼴은 말이 아니야. 십 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때 빼고, 광을 내야 하지 않겠느냐?”
“사부님 덕분에 제가 호강을 하는군요.”
“녀석! 그 뿐이더냐? 내가 황보세가에 일러 너를 정식으로 강호에 소개하마. 황보세가 또한 너를 눈여겨보게 될 것이다.”
제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부님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가 강호에 첫 발을 들이는 날이다. 이 사부 또한 최선을 다해 네 얼굴에 금칠을 해주마. 그렇게만 된다면 네 동생도 너를 자랑스러워하리라.”
하나 두 사람의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황보세가의 정문은 굉천뢰라도 터진 것처럼 엉망이다. 그리고 정문을 지켜야 할 세가의 가솔들은 자취를 감췄다.
“사부님.”
“검을 뽑아라.”
사부는 청년이 검을 뽑자, 주먹을 불끈 쥔 채 앞장을 섰다.
“지난 백 년 간 강호는 평화로웠다. 한데 오대세가 중 황보세가의 입구가 이런 꼴이라니······.”
“설마 사마외도의 무리가 침범이라도 한 것일까요?”
제자의 물음에 사부는 말을 아꼈다.
하나 외원의 상태를 살펴보니 대단한 자가 난동을 부린 것이 분명했다.
‘마교라도 난입한 겐가?’
그는 발소리를 죽인 채 내원에 들어섰다.
그곳은 이미 싸움이 한창이다.
다섯 명의 노인이 한 명을 둘러싼 채 합공을 펼쳤다. 사부는 그들의 합격진을 유심히 살핀 후 탄성을 내뱉었다.
“허허, 청하문의 낙화유망검진이 아닌가.”
제자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예전에 내가 얘기했지. 청하문은 모용세가의 일문이다. 저들의 낙화유망검은 유검(柔劍)의 극의에 달한 비류검사의 절예란다. 모든 것을 흘려내고, 모든 것을 비껴내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검에 대한 조예가 상승한다는 평이 있었지. 저 청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하리라.”
하나 잠시 후 다섯 명의 노인은 검을 거꾸로 쥔 채 패배를 자인했다. 그 뿐 아니라 마지막에 나선 황보세가의 가주까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사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약관을 겨우 넘긴 듯한 청년이 황보세가를 홀로 대적하고 있었다.
“정파의 기도가 분명하다. 어디서 저런 대단한 고수가 등장했단 말인가.”
“제 동생입니다.”
제자의 나직한 한 마디에 사부는 눈을 끔뻑였다.
“네 동생?”
“예. 남천휘라고 합니다.”
“남천휘라면 네가 지켜줘야 한다는 그 동생이 아니더냐?”
제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부는 축 쳐진 제자의 어깨를 감싸며 한 마디를 건넸다.
“돌아갈래?”
“네.”
사부는 축 쳐진 제자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좋아! 이번에야 말로 주먹을 배워보자.”
제자는 주먹이라는 말에 눈을 번뜩였다.
“다음에 하산할 때에는 저 녀석보다 강해져서 반드시 지켜줄 겁니다!”
사부는 먼 산을 바라봤다.
'그런 약속은 섣불리 해서는 안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