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주인공 없는 무림대회.
132, 주인공 없는 무림대회.
사마천세 이후 새롭게 무림맹이 만들어졌다.
본래 정파의 집합체란 무림맹뿐 아니라 정도맹이나, 정무련과 같은 이름으로 존재했다.
전란의 시기에는 정파의 총력이 집결하는 장소였다.
그러니 무림맹주란 곧 천하제일인으로 평가되던 시절도 있었다. 하나 지난 백 년 간 강호에서 일어난 큰일이라고 해봤자 사교의 난립이나 낭인들의 혈사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니 무림맹은 개점휴업이나 다름없었다.
구파오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랜 전에 폐업했으리라.
한데 백 년 만에 무림대회가 열렸다.
그것도 역사 속에 존재하던 괴겁천마와 사령신을 막기 위한 모임이 아니던가.
무림대회의 개최를 두고 환호성을 지른 건 입신양명을 꿈꾸는 무인들만이 아니었다. 무림맹의 맹도들 또한 마침내 할 일을 찾아낸 것처럼 즐거워했다.
무림대회의 무대는 천중산과 대별산 중간 지점인 여남(汝南)이다.
여남은 후한 시절 원가의 터전으로 알려졌다.
사대삼공으로 유명한 그 원가를 뜻한다.
그렇기에 여남 인근의 광활한 들판과 작지 않은 호수는 옛 주인의 이름을 빌려 각기 사대평(四代平)과 삼공지(三公池)라 불렸다. 시인묵객이 즐겨 찾던 삼공지로 가기 위해서는 사대평을 지나야 했다. 사대평은 이름 모를 들꽃들이 한가득 피어나는 절경으로 유명했다.
하나 오늘의 사대평은 예전과 달랐다.
들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청석이 가득했다.
삼천 명 이상이 도열할 수 있는 청석을 깔았고, 그 둘레로 무림맹에 가입한 문파들의 깃발이 펄럭였다.
사대평 외곽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풀밭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하게 펼쳐진 천막은 먼 길을 온 강호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원단이 다시 온 것처럼 시끌벅적했다.
“하하! 이게 바로 무림대회지!”
“내가 칼 들 힘은 없어도 즐길 여력은 있다네. 열흘을 걸어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어.”
“내가 말이야. 소싯적에 고갯길에 산적 서른 명을 만났는데······.”
이름 없는 노강호들의 허풍이 연이었다.
“비무대회가 세 번이나 있다면서요?”
“무림맹이 보고를 열었으니 세 번의 대회 중 한 번만 두각을 드러내도 큰 이름을 얻을 수 있소.”
“이번에는 내가!”
“우승은 나의 것이오!”
역시 이름 없는 강호초출들이 호연지기를 발산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무림맹의 하급 무인들은 입가의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강호의 중지가 모였으니 괴겁천마나 사령신이라고 해도 쉬이 모습을 보일 수 없을 게야.”
“죽지 못해 사는 노괴일 뿐입니다.”
“천안당에서 놈들의 근거지만 알아내면 단숨에 목죽을 끊어버립시다!”
사마천세를 글로 배운 이들의 대화였다.
하나 무림맹의 중진 급 이상 되는 이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무대 근처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별호나 얼굴이 알려진 이들은 극소수였다.
‘쭉정이만 모아봤자 의미가 있을는지?’
‘그가 없으면 사령신을 누가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괴겁천마라도 나온다면······.’
시름만 깊어갈 따름이다.
무림맹에 모인 중진들의 표정은 현장에 있는 무인들보다 험악했다.
“무림대회가 내일입니다. 한데 그는 어디 있습니까?”
“현월회의 행렬이 개봉을 지났답니다. 늦지 않을 테니 진정하시오.”
“우리가 지금 발족한지 일 년도 되지 않은 현월회 따위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까? 남천휘! 그 자가 와야 무림대회가 성공한다고요.”
“말이 심하시오. 현월회의 규모가 적풍방에 뒤지지 않을 텐데······. 크음, 이 이야기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시나.”
“임 가주! 말조심하시오!”
“내가 못할 말을 했소?”
무상 하후태경은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무림맹의 대전에서 제 멋대로 떠드는 이들을 칭지하고 싶었다.
하나 단상 위에는 맹주인 칠절신군과 총군사인 광목진인이 자리했다. 그렇기에 하후태경은 짜증 섞인 표정만 지을 뿐 나설 수 없었다.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그는 문상인 백결공이 축출되었을 때만 해도 자신의 세상이 올 것이라 여겼다. 하나 백결공이 축출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무림맹의 모든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하후태경의 머리 위에는 두 명이나 존재했다. 결국 저들은 백결공과 자신을 쥐락펴락하며 맹의 균형을 유지했던 것이다.
‘쯧, 이번 일만 끝나면 내 세상이 오겠지.’
하나 아쉬워할 뿐 원망하지 않았다.
윗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하나 짜증까지 삭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당금 강호에서 가장 큰 명성을 얻고 있는 남천휘가 도착하기를 내심 기다렸다. 제아무리 이름을 얻어봤자, 시기를 잘 탄 애송일 뿐이다.
하후태경은 검존이라는 위대한 별호를 남천휘로 인해 한 번 더 빛낼 요량이었다.
‘어린놈이 재깍재깍 올 것이지.’
반면 무림맹주와 총군사는 남천휘의 부재를 개의치 않았다. 남천휘의 지난 행적을 보면 의미가 없었던 적이 없지 않던가. 분명 무림대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오리라.
[중재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광목진인의 전음에 칠절신군은 향차를 홀짝였다.
[저러고 사는 위인들일세. 어차피 대세에 영향을 주지도 못할 것이고,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는 할 일도 없잖아. 그냥 두시게. 저렇게 힘을 좀 빼놔야 나중에 인솔하기가 쉬워지니까.]
[그도 그렇군요. 요즘 몸은 어떠십니까?]
칠절신군의 가느다란 눈매에서 기광이 흘러나왔다.
[죽을 때가 다가와서일까? 더없이 좋군. 괴겁천마나 사령신 중 한 명은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광목진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혼자는 못데리고 가십니다.]
[지금 무림맹주를 무시하는 건가?]
[구파에서 고르고 고른 여덟 명과 함께 가셔야지요. 그래야 저승 가는 길에 말동무도 하고, 부려먹기도 할 테고요.]
[그들은 여전한가?]
[구파의 절예를 대성했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첫 운기조식을 시작할 때부터 오늘만 기다렸던 협객들입니다. 당연히 여전하지요.]
칠절신군 역시 헛웃음을 흘렸다.
당금 강호에서 괴겁천마나 사령신을 홀로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남천휘가 유일했다. 하나 남천휘는 혼자였고, 적은 두 명이 아니던가.
그러니 다른 하나를 무림맹이 상대해야 했다.
그걸 위해 뽑은 것이 기사객(旣死客)이다.
별 뜻은 없다.
그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그들은 비경회가 탄생했을 때부터 오늘을 기다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군. 다만 신비인에서 남천휘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말이야.]
칠절신군의 전음에 광목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무림맹은 신마대전 당시 정파를 대표했던 정천칠공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기사객을 준비하라는 유명을 남겼다.
결국 그들에게 신비인이 있었다면 지금의 무림맹에는 남천휘가 있는 셈이다.
[잘 될 겁니다.]
[잘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테니까. 끝이지. 끝. 완전한 끝.]
두 사람은 명숙과 장로들의 입씨름을 지켜보며 시간을 축냈다. 현월회의 군사인 사마의는 무림맹과 한 몸처럼 움직이지 않던가. 무언가 상황이 변한다면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해줄 터였다.
한데 그들도 예기치 못한 손님이 들이닥쳤다.
피에 젖은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뭉쳤고, 망나니처럼 산발을 했다. 하나 여기저기 찢긴 도복은 일견하기에도 값비싼 화의였다.
초췌한 안색의 노도인은 대전에 들어선 후에야 무릎을 꿇었다.
“하아, 하아.”
하후태경은 검배에 손을 올린 채 다가갔다.
“누구냐?”
그러자 노도인을 데리고 온 수하가 귀엣말을 하며 서찰을 건넸다.
하후태경을 마뜩찮은 표정으로 서찰을 확인한 후 눈을 부릅 떴다. 그리고 서찰과 노도인을 번갈아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이, 이.”
광목진인이 단상 아래로 내려가 하후태경의 손에서 서찰을 받아들었다. 그 역시 서찰을 확인한 후 미간을 좁혔다.
“보셔야 할 것 같군요.”
칠절신군은 두 사람의 손을 거친 서찰을 받아들 때부터 인상을 썼다. 서찰을 만진 것만으로도 혈향이 물씬 풍겼다.
“이건······.”
무림맹주인 칠절신군에게로 이목이 집중했다.
그는 나직한 한 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초대장이군.”
“맹주, 초대장이라니요?”
“그나저나 이 노인은 누구입니까?”
“어떤 신분이기에 저런 몰골을 하고 무림맹의 심처에 발을 들인단 말입니까!”
칠절신군은 단상을 박찬 후 노도인의 곁에 내려섰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곤륜의 도인이시다.”
노도인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힘겹게 손을 모았다.
“곤륜의 백천이라 하외다.”
몇몇 안목이 높은 자들이 표정을 굳혔다.
백천진인이라면 강호의 서쪽 방벽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곤륜파의 호법장로가 아니던가.
백천진인은 힘이 다한 듯 피를 쏟아냈다.
“곤륜파는 끝났소. 놈들이 산을 내려왔소.”
곤륜파가 하산을 논한다면 신강의 천산을 의미할 터였다. 그리고 천산은 오래 전부터 강호에 발을 끊은 마교의 총본산이 아니던가.
“마교가 나타났다.”
“정마대전이야.”
중인들의 시선이 맹주가 쥔 서찰에 꽂혀들었다.
칠절신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자기네 앞마당에서 한 판 뜨자는군.”
*
남천휘는 암자 앞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봤다.
성소를 차지하기 위해 종횡무진 했던 것이 벌써 며칠이던가. 마치 가족을 위해 먼 곳으로 돈을 모으러 온 가장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닥치는 대로 먹다보니 남해까지 왔네.’
그는 역사가 짧고, 돈이 많은 방파만 골라서 장악을 했다.
초반에는 성소의 등급이나 의미를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이 짓도 반복되다보니 거점을 만드는 행위 외에는 가치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성소의 개수가 몇 배로 늘어난 탓에 소기의 목적은 이룬 상태였다.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뜰 때마다 성소 포인트가 만 점씩 쌓이는 광경을 보라. 마치 땅에 떨어진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보다 가던 길을 계속 가서 다른 성소를 차지하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남천휘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동조화 하려면 일각 정도 걸릴 테니 한 잔 하고 가야겠다.”
무림대회는 벌써 한참 전에 시작을 했으리라.
하나 주인공이 없는 무림대회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 중요한 건 무림맹의 전력을 품을 수 있을 만큼의 VIP포인트와 성소 포인트가 아닌가.
즉묵노주와 안줏거리를 꺼내놓고 한가로움을 즐겼다.
“저 바다 건너에 해남도가 있겠지.”
‘그 쪽이 아닌데요.’
재이가 슬쩍 지도를 띄우며 딴지를 걸었다.
그래, 이쪽이 아니기는 하네.
“그래서 뭐? 배타고 가다보면 언젠가 나오겠지.”
남천휘는 시무룩한 재이를 뒤로 한 채 지도를 응시했다.
나라의 지도도 이처럼 정확하지는 않으리라.
중원은 물론이고, 한 번이라도 지나갔던 장소까지 모두 기록된 상태였다. 그리고 지도 목록에서 특정 위치를 선택하는 순간 거미줄이 나타났다.
모두 남천휘가 주인으로 등록한 성소였다.
성소와 성소 간의 이동에는 체력과 내력이 소모되지 않는다. 그러니 남천휘는 천하를 밤낮없이 떠돌아도 지치지 않을 터였다. 하나 고작 이 정도의 효과를 누리고자, 개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남천휘는 비책 목록을 띄워 축지지책을 확인했다.
성소와 성소를 이동할 때마다 축지지책을 사용했더니 레벨이 9까지 올랐다. 조만간 백파신공과 팔황지존보보다 축지지책을 먼저 대성할 기세였다.
“아직까지 대규모로 싸움이 붙지는 않았지?”
남천휘의 물음에 재이는 대답 대신 알람을 전했다.
띠링-
◎ F등급 성소를 획득했습니다.
- 새롭게 등록될 성소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성소 이름 짓는 것도 이제는 보통 일이 아니다.
남천휘가 잠시 궁리를 하는 사이 알림이 이어졌다.
‘응?’
◎ 대상자가 100개의 성소를 획득했습니다.
- 축지지책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 성소의 활동으로 인한 포인트 모집량이 1.5배 상승합니다.
길을 걷다가 은자라도 주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한데 오늘따라 재이의 혓바닥이 길다.
◎ 대상자는 천하를 주유하여 견식을 쌓았습니다.
◎ 대상자의 무위와 지혜에 관록이 더해집니다.
◎ 대상자의 명성 수치는 현재 1위입니다.
◎ 해당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깁니다.
◎ S급 보상이 주어집니다.
- 대상자가 원하는 지역에 영구적으로 성소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