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79화 (279/305)

126, 1 대 100.

126, 1 대 100.

동악(東岳) 태산(泰山).

중원오악 중 으뜸으로 치는 곳이 바로 태산이다.

태산의 주봉은 높이와 수려함이 대단했기에 명산을 거론할 때에는 빠지지 않았다.

무겁고, 가벼움이 하늘과 땅과 같을 때 태산홍모(泰山鴻毛)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였다. 가장 무거운 것은 태산이고, 가장 가벼운 것은 기러기의 털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주봉이 아니라고 해도 태산의 봉우리는 손꼽힐만큼 험준했다. 제남과 곡부는 물론이고, 산동성이 동부인 청도 인근까지 산줄기가 뻗어나갔다.

‘그러면 굳이 호엽로로 올라갈 필요가 없지.’

적을 뚫고 올라가는 건 쉽다.

다만 남천휘의 접근을 알아차린 적이 연하연을 내세울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그러니 적의 눈에 띄지 않고 접근할 방법을 세워야 했다.

그렇기에 남천휘는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지봉(中止峰)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로 대화동이다.

성소와 성소 사이를 이동할 때에는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다. 제아무리 남천휘가 물약을 물처럼 마신다고 해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했다.

최고의 상태에서 적을 마주할 요량이다.

그 결과 연하연과의 거리가 두 배 이상 벌어졌다.

하나 개의치 않았다.

‘발동.’

◎ 비책 ‘축지지책(縮地之策)’이 활성화됩니다.

- 현재 축지지책의 달성도는 1레벨입니다.

- 성소와 성소 간의 이동속도가 2배 증가합니다.

- 10000 성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 기본 소모값 외에 일각 당 1000 성소 포인트가 추가로 소모됩니다.

이미 성소포인트는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VIP포인트를 성소 점수로 환전하여 사용 중이다. 한데 믿었던 VIP 포인트마저 간당간당했다. 사령신을 물리치고 알차가 모아놓은 포인트가 바닥을 보였다.

‘제비야, 너는 나한테 진짜 잘 해야 해!’

남천휘는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이대로라면 늪지대와 가시나무숲도 문제없다.

파팟!

팔황지존보에 축지지책이 더해지니 험준한 산을 오르는 데에도 지치지 않았다.

“후우.”

남천휘는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앞에 두고 침음을 흘렸다. 경사도가 직각도 모자라 자신 쪽으로 더 기운 듯했다.

양손을 쥐락펴락하는 순간 용린쌍도가 잡혔다.

그는 포인트를 소모하여 쌍도의 모양을 낫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절벽을 찍고 오르기 시작했다.

푹!

천천히 올라갈 시간은 없다.

그렇기에 한 번 찍고, 반 장 이상 몸을 띄웠다.

푹!

십여 장쯤 올라오는 순간 두 다리가 절벽에서 떨어졌다. 경사도로 인해 두 팔의 힘으로만 올라가야할 상황이다.

‘벽선단.’

만능이나 다름없는 물약을 한 사발이 들이킨 후 다시 낫질을 시작했다.

푹! 푹! 푹! 푹!

절대지경의 고수라고 해도 오를 수 없을 만큼 깎아지를 듯하던 절벽의 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몇 분 지났지?’

◎ 축지지책 발동 후 9분이 지났습니다.

남천휘는 잠시 한 팔로 의지한 채 몸을 돌렸다.

그러자 흑갈색의 절벽이 아니라 울창한 삼림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비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반칙이야.’

천하에서 가장 험준한 곳 중 하나인 태산의 삼림을 이처럼 빠르게 주파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절대지경의 고수도 이처럼 손쉽게 돌파하지는 못하리라.

‘아! 그렇다고 해서 쓰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이쯤 되면 재이가 트집을 잡아야 할 순간이다.

한데 녀석은 어찌된 일인지 조용했다.

잠시 풍광을 즐기며 숨을 돌리는 사이 재이의 말이 이어졌다.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는 주인님에게 허락된 능력입니다. 누구는 기연을 얻고, 누구는 기연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반칙을 논하지 않는 것처럼 시스템 또한 기연으로 존재할 따름입니다.

한 마디 했다고 발끈하기라도 한 것인가.

‘기연은 하늘이 주는 거지. 그럼 시스템도 하늘이 준 거냐?’

남천휘는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리고 재이는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하늘의 기연이라며 대꾸했어야 했다.

한데 녀석은 뜻밖의 대답을 돌려줬다.

◎ 최상의 정보에 대한 접근이 허가되었습니다.

- 남위기의 상세 검색을 통해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최근 들어 상위 정보에 대한 제한이 풀렸다.

하지만 시스템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제한이 풀렸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늘이 아니야?’

남위기의 상세 검색을 통해 확인하란다.

남천휘는 한 숨을 흘렸다.

재이는 상세 검색을 만능처럼 사용했지만, 한 가지 필요 요소가 존재했다.

천상의 언어로 키워드라는 것이다.

바다 속에 수많은 물고기가 살지만, 이름을 모르는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핵심 단어부터 찾으란 얘기네?’

◎ 주인님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녀석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감성적이야?

그나저나 뜬금없이 증강현실인지로 나타나지 말아줄래. 공중에 둥둥 뜬 채로 주먹을 불끈 쥐어봤자, 조금도 힘이 나지 않아.

하마터면 손을 놓칠 뻔했다.

‘그럼 이만!’

남천휘는 재이가 물거품처럼 흩어지는 모습에 헛웃음을 지었다.

‘승천 하냐?’

어쨌든 잠시 숨을 돌렸으니 이제 절벽을 지나야겠다. 그러고 보면 다시 한 번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음을 되새기게 된다.

남천휘는 현재 비책과 성소의 힘으로 체력 소모 없이 태산을 오르는 중이다. 그러니 비책과 성소의 힘만 유지된다면 쉬지 않고 천하를 주유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하나 지금까지의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불가능할 터였다.

체력은 소모 되지 않고, 내력을 채울 수 있지만, 활력만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정신적 피로는 특기 ‘불굴’로도 치료가 불가능했다.

그저 숙면이나 휴식을 취하거나, 기분 전환을 통해 활력을 충전해야 할 터였다.

이것은 혈투에도 해당하는 사항이다.

지난 날 사령신과 싸웠을 때 남천휘는 물약을 끊임없이 흡입했다. 그로 인해 사령신은 무한한 힘을 지닌 자와 대적하는 기분일 터였다. 하나 진짜로 혈투가 끝없이 이어졌다면 누가 먼저 지쳤을지는 확답할 수 없으리라.

“일단 산부터 넘고!”

남천휘는 절벽 위를 흑린 곡괭이로 찍은 후 몸을 띄웠다.

푹!

절벽 위에 올라서자 또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하나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않고 돌밭을 질주했다.

파팟!

비천무상도로 만들어낸 내력이 팔황지존보의 힘을 빌려 날뛰었다.

마침내 중지봉과 맞닿은 봉우리에 발을 들였다.

기암괴석 사이를 뚫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 중지봉의 정상일 것이다.

그는 잠시 멈칫했다.

저 멀리 전서구로 보이는 비둘기가 보였다.

한데 비둘기가 일정한 공간을 이리저리 오갈 뿐이다.

남천휘는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제대로 되고 있네.’

*

태산 중지봉의 초입은 본래부터 인적이 드물었다.

한데 어느 순간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돌았고, 이내 범상치 않은 인상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가 삼백 명을 넘겼다.

“모두 모였는가?”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나섰다.

혈인교의 부교주였다.

그는 산 아래에서 곡부남가의 동향을 파악했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위아래에서 적을 포위하기로 약조를 한 상태였다.

“곡부남가가 전력을 동원했다.”

부교주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혈인교다.”

부교주의 한 마디만으로도 교도들의 눈동자에 살기가 맺혔다. 그들은 구백 명이 여러 갈래로 흩어진 것을 알지만,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우리는 혈인교다.’

백 년 전 천하를 짓밟았던 광혈오주의 한 축을 차지한 혈인교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다.

“오늘따라 안개가 자욱하구나.”

눈치 빠른 교도가 말을 덧붙였다.

“하늘이 돕는 듯합니다.”

“그렇다! 지금 당장 정상의 교주께 전서구를 보내라. 우리가 아래에서 호응한다면 적은 지리멸렬하여 전멸할 것이다.”

교도들은 말없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파다다닥!

십여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부교주가 중지봉을 가리켰다.

“혈인교의 천하를 만들러 가자!”

삼백여 명의 무인들이 호기롭게 달려갔다.

“와아아아아!”

일각 후 다시 함성이 들렸다.

“와아아아아!”

하나 선두에 섰던 교도를 시작으로 함성이 잦아들었다. 선두에 선 교도는 눈을 끔뻑이며 한참동안 주변을 살폈다.

“어.”

아무리 살펴봐도 일각 전 결의를 다진 장소가 아닌가. 그들은 분명 산을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중지봉 초입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멍청한 새끼!”

부교주는 선두에 선 교도의 목을 벴다.

촌각을 다투는 대업이 코앞이다.

시간을 끌었으니 죽음으로 사죄하는 것이 당연했다.

“가자! 혈인교의 천하를 만들러 가자!”

부교주가 다시 한 번 일갈을 내질렀고, 혈인교도들이 호응하듯 소리쳤다.

“와아아아아!”

그리고 일각 후 부교주를 선두로 한 삼백여 명의 교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부교주는 자신의 실책을 눈치챈 듯 헛기침을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야?’

그는 분명 산을 올랐다.

전후좌우로 움직이면서 길을 잃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하나 삼백 명이 상승감을 느끼며 산을 올랐는데 다시 초입으로 돌아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이미 길잡이의 목을 벤 후였다.

부교주는 자신을 보며 눈알을 굴리는 교도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몇 놈을 더 본보기로 베어야 하나?’

그 때 눈치 빠른 교도가 허공을 가리켰다.

“부교주! 하늘을 보십시오. 전서구가 이상합니다.”

부교주는 하늘을 올려다본 후 인상을 썼다.

전서구 한 마리가 돌아온다. 하나 비둘기는 부교주에게 내려앉는 대신 일정한 영역에 이르자,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다른 비둘기가 등장하더니 같은 방식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부교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후훗! 하늘이 돕는 것이 아니라 ‘하늘’께서 우리를 보우하시는구나!”

“그렇다면 이것은 진법이란 말입니까?”

수하의 말에 부교주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분이 아니라면 이런 조화를 누가 부릴 수 있겠느냐?‘

“하면 저희들은 어찌 해야 합니까?”

부교주는 평평한 바위로 다가갔다.

“지금부터 힘을 비축한다. 잔당이 하산한다면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처리해야 할 것이다!”

“존명!”

교도들은 저마다 쉴 자리를 찾아 흩어졌다.

부교주가 바위에 엉덩이를 붙이려는 순간이었다.

“앉지! 마!”

여인의 뾰족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부교주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갑작스레 등장한 여인을 바라봤다.

“너 뭐야?”

“천수련이다.”

“네 년의 이름을 내가 어찌 알아! 뭐 하는 계집이냐고 묻지 않느냐?”

스릉-

천수련은 천응검후에게서 물려받은 천수검을 뽑아들었다.

“저승사자다. 이 쥐새끼야!”

부교주는 자신을 모욕하는 말에도 폭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네 년 혼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천수련은 히죽 웃었다.

“혼자 왔다고 안 했는데?”

“뭣이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범상치 않은 기도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용세가의 속가인 청하문의 청하오검.

황보세가와 신공부의 장로를 비롯하여 산동성 동부의 문주들이 나타났다.

부교주는 스무 명 남짓한 고수들의 기도에 미간을 좁혔다.

“흥!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천수련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믿는 구석은 아직 안 왔는데?”

부교주가 인상을 쓸 때 등뒤에서 느긋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허허, 이제 왔네.”

청수한 인상의 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부교주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천수련과 함께 등장한 고수 중 가장 위험한 자를 꼽자면 청하오검이다. 한데 등 뒤에 나타난 노인에게서는 조금의 위협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경계해야 했다.

“당신 누구요?”

“나? 이검일세.”

부교주는 눈을 부릅떴다.

“창천제일검!”

이검 남궁재야는 쓴웃음을 흘렸다.

“아니야. 손녀를 시집보내지 못한 못난 할아비일 뿐이지.”

그가 검을 뽑자, 백광(白光)이 넘실거렸다.

“그러니 이 비통함을 검에 담에 자네에게 전해줄 생각이야.”

부교주는 한 걸음 더 물러선 채 일갈을 내질렀다.

“쳐라!”

천수련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교도를 쳐낸 후 중지봉을 올려다봤다.

‘꼭 데리고 와요.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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