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78화 (278/305)

125, 지갑전사(地鉀戰士).

125, 지갑전사(地鉀戰士).

사마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견하기에도 맹독처럼 보이는 녹무가 흩날리지 않았던가. 기세 좋게 달려 나갔던 무인들이 주춤했을 정도였다.

한순간 남천휘를 의심했다.

행여 적의 독공을 예상하고 가솔들을 미끼로 내운 것이라 여겼다.

‘아! 마의야, 마의야. 아직 멀었구나.’

책으로 세상을 봤고, 머리로 천하를 경영했다.

하나 현실은 이상과 천양지차였다.

남천휘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미 황보세가의 자식에게 맞아죽었을 운명이 아니던가.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처럼 많다는 강호의 격언이 새삼 뇌리를 스쳐갔다.

그는 심호흡을 한 후 입꼬리를 올렸다.

군사라고 해서 세상을 어렵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대단한 주인을 만났으면 남보다 조금 편하게 살아도 될 터였다.

“사냥 좋지요!”

사마의는 호기롭게 외친 후 목에 걸고 있던 호각을 물었다.

삐이이이이이-

날카로운 호각소리와 함께 십여 개의 깃발을 찢어져라 휘돌렸다. 그것만으로도 우왕좌왕하던 무인들이 혼란을 수습했다.

남천휘는 그 모습에 내심 탄성을 흘렸다.

‘호각 소리와 수신호만으로 진정시킨걸 보면 진짜 제대로 훈련을 했군.’

마치 특기 목록에 존재하는 평정지책(平靜之策)이 현실화된 듯했다. 평정지책은 회 당 10000 성소 포인트가 소모된다.

남천휘는 절약했다는 생각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시야 상단을 확인했다.

◎ 발동된 비책의 잔여시간이 표시됩니다.

비책 잔여시간이 시야 구석에 나열됐다.

전 재산을 쏟아 붙다시피 만들어놓은 광경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나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꿀꿀한 기분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눈앞에 있지 않은가.

*

혈인교주는 미간을 좁힌 채 인상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앞에 혈룡팔부가 선 채로 명령을 기다렸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옆을 힐끔거리며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만독노옹이 원인이다.

그는 혈염죽천향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혈염죽천향이 최고의 독은 아닐지언정 어디 가서 사람 죽이기 좋다는 자부심을 드러낼 정도는 되었다. 한데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했으니 심기가 상한 상태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

그는 산 아래서 잡목을 제거하며 산을 오르는 곡부남가의 가솔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묵중수를 가져와라.”

묵중수(墨重水)는 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결코 물과 섞이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몸에 흡수되는 순간 결코 사라지지 않고, 독을 퍼트렸다.

혈염죽천향보다 더 위험한 독이다.

“곡부남가의 우물에 풀려고 했지만, 화살로도 충분하지.”

독을 다루는 아귀(啞鬼)들이 연노를 가져왔다.

스무 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연노였다. 하지만 작은 크기로 인해 사람을 상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 만독노옹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

“크큭, 감히 잠자는 독룡을 깨우다니!”

화살촉에는 주먹만한 호리병이 붙어 있다. 그리고 호리병 뒤에 매달린 손톱만한 화약이 폭발하는 순간 내용물을 공중에서 살포하게 될 터였다.

“준비됐습니다.”

만독노옹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화살비가 내리는 순간 최소한 삼분지 일은 거동을 할 수 없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 독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직한 읊조림은 곡부남가가 아니라 혈인교주에게 보내는 신호일 터였다. 그는 광혈오주의 수장 자리를 내려놓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쏴라!”

*

남오행대 중 남수대(南水隊)가 전면을 맡았다.

물이 흐르듯 흩어지고, 모이는 것에 능했기 때문에 선봉에 섰다.

남수대주인 호연총은 불혹을 훌쩍 넘긴 중년 고수였다. 그는 수신호만으로 백여 명의 대원을 배치했다. 그리고 눈과 귀로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려올 사마의의 신호를 기다렸다.

“이조, 좌측의 숲. 삼조, 우측의 바위. 나머지 천천히 이동한다.”

호연총의 별호는 활생검객(活生劍客)이다.

절정을 갓 넘긴 그는 사실 남오행대의 대주를 맡기에는 성취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주가 된 까닭은 지금껏 강호행을 통해 보여준 특유의 감 때문이다. 눈썰미가 좋고, 성격이 꼼꼼하기에 위협에 대한 반응이 빨랐다. 그리고 남수대의 대원들은 그것을 곁에서 지켜봤기에 호연총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대주!”

호연총은 일조장의 신호가 있기 전부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살입니다!”

그는 수하들의 외침에도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속도가 느리다! 화살이 아닌 다른 것이야. 독이다!”

수하들은 빠르게 피할 곳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화살은 허공에서 미약한 파열음과 함께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은빛의 액체가 쏟아져내렸다.

“큭!”

호연총은 재빨리 피풍의로 몸을 감쌌다.

후두두두두두두둑!

황급히 내공을 휘돌려 언제든지 독기에 대응할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은빛의 액체는 피풍의를 적실뿐이다.

‘이거 뭐지?’

호연총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눈을 끔뻑였다.

“대주, 이거 미끌거리기만 할 뿐 아무 영향이 없습니다.”

수하 중 한 명이 장포에 묻은 묵중수를 만지며 말했다.

“아직 모르는 일이야. 섣불리 만지지 말고······.”

그 때 사마의의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허공으로 붉은 천을 매단 화살과 푸른 천을 묶어놓은 화살이 솟구쳤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명령이란 말인가?’

사마의의 명령은 간단했다.

- 비독(非毒), 속행(速行).

한 마디로 모든 독을 무시하고, 빠르게 올라가라는 의미였다.

호연총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후 수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올라간다!”

그가 남천휘와 대면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남천휘가 아니라 사마의와 가주 대리인 남천홍을 믿고 움직였다.

그들은 자신과 수하들을 예로 대했고, 법으로 다스

렸으며, 인으로 포용했다. 지금껏 부모를 제외하고 자신을 이렇게 믿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못했을 은자 이백 냥짜리 검을 만지작거렸다, 은사에 철을 덧대어 만든 은자 스무 냥짜리 호심갑(護心鉀)을 가슴에 두른 채 노루 가죽으로 만든 은자 열두 냥짜리 신발을 신고 뛰었다. 그러자 열흘 마다 지급된 은자 백 냥짜리 청명단으로 만들어진 내력이 천리마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녹빛 독무도 아무 영향이 없었어. 그러니 독은 의미가 없다!”

호연총은 사마의를 믿었다.

사마의를 믿는 자신의 감도 믿었다.

‘사 군사라면 분명 태산에 대비책을 세워놨으리라!’

그렇기에 그는 은자로 쌓아올린 충성심을 담아 일갈을 내질렀다.

“곡부남가를 위협하는 적을 물리쳐라!”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라 같은 마음인 대원들이 일제히 호응했다.

“쳐라!”

*

“적이 백 장까지 접근했습니다.”

혈인교주는 수하의 보고에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몸을 일으켜 산 아래가 보이는 장소로 이동했다.

“더 하실 게 남았소?”

조롱 섞인 질문이다.

하나 만독노옹은 멀뚱히 선 채로 자신의 수하인 아귀들을 지켜봤다. 잠시 후 아귀가 검붉은 피를 토하며 허물어졌다. 그리고 이내 다른 아귀는 뼈가 녹아내린 듯 흐느적거리며 주저앉았다. 다양한 독을 섭취한 아귀들은 중독된 채로 절명했다.

만독노옹은 십년 넘게 키워온 아귀들이 떼죽음을 당했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아귀가 칠공에서 피를 쏟아내는 것을 본 후에야 한 마디를 읊조렸다.

“독에는 문제가 없어. 그렇다면 도대체······.”

그는 진저리를 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혈인교주는 혼란스러워하는 만독노옹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정신 차리시오! 수백 명이나 되는 적이 모두 초절정 고수라도 된단 말이오?”

그 말인즉슨 만독노옹의 독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적이 건재하기에 만독노옹은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지켜보시오. 혈인교는 본래 나라를 쥐락펴락 할 만큼 성세를 자랑했었지. 그렇기에 대규모 회전이라면 강호방파와 비견할 수가 없을 만큼 뛰어나다오.”

혈인교주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말을 덧붙였다.

“저들은 천! 지! 인! 모두 불리한 상태요. ‘하늘’이 우리를 보우하시니 천을 얻었고, 우리는 아래에서 힘들게 올라오는 적을 상대할 수 있으니 지를 얻었고, 무엇보다 남천휘의 정인인 계집을 인질로 잡고 있으니 인을 지녔지. 안 그런가?”

혈룡팔부는 만독노옹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기 위해 더욱 열성적으로 호응했다.

“그렇습니다!”

“정찰조로 서른 명을 편성해서 파견해라!”

혈인교주는 병법에 능통한 장수라도 되는 양 말을 덧붙였다.

“놈들은 만독노옹의 독을 막고, 이곳까지 올라오기 위해 심력을 소모했다. 그러니 적의 수준을 파악한 후 공격을 시작하겠다!”

“존명.”

혈인교의 교도는 이미 마음 깊이 세뇌가 됐다.

그렇기에 죽을 수도 있는 임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숫자 열을 헤아리기 전 서른 명의 적의무인이 숲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잠시 후 정찰조가 돌아왔다.

“교주께 아뢰옵니다. 적들은 초절정의 고수가 아니었습니다.”

혈인교주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났고, 만독노옹의 얼굴에는 수심이 드리워졌다.

“클클, 당연한 소리. 그래서?”

“적이 몰려와 오래 싸우지 못했지만, 무위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혈인교주는 손을 내저어 수하들을 물렸다.

“무슨 수를 쓰기는 썼군. 하나 칼과 칼이 부딪치는 싸움에서 꼼수는 통하지 않아. 적이 이십 장 이내로 접근했을 기습한다!”

“존명!”

*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정상에 뭉쳐 있던 붉은 점이 이동했다.

[사마의.]

남천휘는 정상을 응시한 채 전음을 날렸다.

한데 십여 장 뒤에서 따라오던 사마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참으로 놀라운 경지가 아니던가.’

전음은 내력을 유형화한 후 기의 흐름을 조율하여 상대방의 귓가에 속삭이는 형식이다. 그렇기에 전음을 보내려는 상대를 바라봐야 시전이 가능했다.

한데 남천휘는 전방을 응시한 채 전음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주군은 이미 절대지경을 넘어선 것이 아닐까?’

사마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지경의 고수를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남천휘의 전음은 이어졌다.

[적이 좌우으로 산개 했네. 매복하려나 봐. 매복 지점은 차후에 알려줄게.]

남천휘의 전음에 사마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마치 산책을 나온 것처럼 느긋한 어투에 존경심이 생길 정도였다. 그는 깃발을 흔들어 매복에 주의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남천휘의 전음이 이어졌다.

[선두 오 장 앞 좌우 숲에 매복. 그 뒤로 세 곳, 오십 명 정도의 두 무리가 매복 지점을 우회해서 배후를 노린다.]

사마의는 굳은 표정으로 재빨리 깃발을 흔들었다.

그리고 남수대가 삼 장 정도 나아갔을 때였다.

“쳐라!”

좌우에서 붉은 무복을 입은 혈인교도가 노도와 같이 쏟아져나왔다. 일견하기에 산길을 꽉 매울 만큼 쇄도했다. 숲속까지 진형을 벌리며 포위하려는 듯보였다.

삐이이이이-

남수대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사마의에게 언질을 받았고, 정확한 위치까지 확인한 상태였다.

“후퇴!”

남수대는 썰물 빠지듯 물러났다.

그 자리를 남화대와 남금대가 채웠다.

남오행대에서 가장 고강한 무공을 지닌 자들로 이뤄진 타격대였다.

“추행진으로 돌파한다!”

남화대주의 일갈에 이백 명의 대원은 손발을 맞춘 대로 진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혈인교도와 충돌했다.

사마의는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부디!’

승리는 자신했다.

다만 피해가 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마의는 남천휘가 뒷짐을 풀지 않은 채 지켜보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의 남천휘라면 광분한 호랑이처럼 제일 먼저 달려드는 것이 당연했다. 한데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 관망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남천휘는 사마의의 시선을 느끼며 읊조렸다.

“발동.”

◎ 비책 ‘착취지책(搾取之策)’이 활성화됩니다.

- 적과 충돌할 때마다 10%의 내력을 흡수합니다.

◎ 비책 ‘망원지책(望遠之策)’이 활성화됩니다.

- 소속원의 시야가 30% 확장됩니다.

◎ 비책 ‘무책지책(無策之策)’이 활성화됩니다.

- 매복, 기습, 암습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 비책 ‘평정지책(平靜之策)’이 활성화됩니다.

- 고양감을 느낄 뿐 흥분하지 않습니다.

◎ 비책 ‘합공지책(合攻之策)’이 활성화됩니다.

- 소속원과 뭉칠수록 공격력이 1% 상승합니다.

그리고 혈인교와 남오행대가 충돌했다.

푹푹푹푹푹!

“뚫어라!”

“정상까지 간다!”

남오행대는 어린아이를 상대하듯 혈인교를 다뤘다.

“크흡! 이게 무슨.”

혈인교도들은 사방에서 꽂혀드는 검에 찔린 채 허무할 정도로 쉽게 허물어졌다.

“아.”

사마의는 한순간 넋을 잃은 듯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아무리 혈인교가 예전의 성세를 잃었다고 해도 광혈오주의 한 축이 아니던가. 한데 현월사대도 아니고 남오행대만으로 제압이 가능할 듯보였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고, 자연스럽게 남천휘를 찾았다.

“주, 주군.”

“응?”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본가의 가솔들은 마치 태산의 가호를 받는 것처럼 평소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남천휘는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사마의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켜졌다.

“진짜 태산의 가호를 받는단 말입니까?”

남천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특기 ‘변설을 발동했다. 사마의의 말을 듣고 있자니 새로운 것을 떠올린 게다.

그는 호기롭게 외쳤다.

“태산의 지기를 갑옷처럼 두른 무인들이여!”

비천무상도의 내력을 쏟아부은 일갈은 마치 소림의 사자후를 방불케했다.

“지갑전사는 땅 위에서 무적이다!”

지갑전사(地鉀戰士)라는 호칭에 남오행대의 무인들은 투기를 흩뿌렸다.

“와아아아!”

남천휘는 그 모습을 기본 좋게 바라봤다.

하나 재이의 알림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 어떤 의미로 틀린 말은 아니군요.

뭐가 불만인데?

재이는 대답 대신 속내를 지도에 표시했다.

산 정상 부근의 노란 빛이 격렬하게 번쩍였다.

연하연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려는 게다.

남천휘는 사마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자네에게 맡길게.”

“주군은?”

“나는 제비를 구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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