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2)
남천휘가 의당에서 나오는 순간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 산동성의 정보 변경에 대한 검색이 끝났습니다.
- 30일 전에 조사됐던 내용과 오늘의 내용을 비교 분석하여 외인의 동향을 파악합니다.
지도를 확장하는 순간 태산 인근에 붉은 점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일견하기에도 수백 개가 넘었고, 경계 대상으로 파악되는 고수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르렀다.
‘개새끼들이 주인 허락도 없이 겁나게 기어들어왔네.’
남천휘는 재이가 나노플라스트를 통해 수집한 내용을 빠르게 훑어봤다.
‘일원 전체가 나타난 건가?’
고수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다.
“사 군사! 소혜는?”
사마의가 기다렸다는 듯 등장했다
“예, 회주. 소군사는 가주 대리를 비롯해 내원의 가솔을 챙기고 있습니다. 사건이 태산에서 일어났기에 대화동보다 신공부 쪽으로 퇴로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피난인가?”
“짐은 다 쌌습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혜의 혜안은 때때로 남천휘도 놀랄 정도가 아니던가. 엄밀히 말하자면 늘 놀랐고, 늘 남천휘보다 한 발 앞섰다.
“출발 준비하라고 해. 우리가 움직이면 바로 이동해야 할 거야.”
“존명!”
사마의는 수하를 내원으로 보냈다.
“곡부남가 근처의 상단과 표국은 어찌 할까요?”
“놈들이 근처에 있어.”
남천휘의 말에 사마의는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하나 양민과 섞여 있는 적을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냥 지켜보는 정도야. 그러니까 사람을 남겨 두고, 우리가 출발하면 바로 빠져나가라고 해.”
사마의의 호흡이 가빠졌다.
“알겠습니다.”
“현재 동원 가능한 전력은 어느 정도지?”
남천휘의 말에 사마의는 이미 계획을 세워놓은 듯 보고했다.
“현월사대가와 남오행대가 대기 중입니다.”
본래 곡부남가의 핵심은 칠야대와 창월대였다.
한데 그 사이 신교대를 졸업한 후기지수들을 묶어 새로운 타격대를 만들었다.
“백룡대와 흑린대도 현장 투입이 가능해?”
“예, 청도 쪽 치안은 백룡과 흑린이 맡았습니다. 황보세가의 영역까지 도맡아했으니 실전 경험은 충분합니다.”
현월사대는 남천휘가 잠재능력을 보고 직접 뽑은 후기지수들로 이뤄졌다. 반면 남오행대(南五行隊)는 사마의와 소혜가 머리를 맞댄 후 뽑은 낭인과 빈객들이다. 실전 경험이 충분하고, 제법 명성을 날린 자들만 골라 뽑았단다. 곡부남가에만 들어오면 영약과 은자가 매달 지급되니 적이 없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동아줄이나 마찬가지였다.
남화대, 남수대, 남목대, 남금대, 남토대.
소혜의 괴이한 작명 능력으로 만들어진 타격대가 무려 다섯이다.
그러니 총원은 구백 명에 이르렀다.
불과 반 년 사이에 곡부남가는 구파를 뛰어넘는 성세를 이룬 게다. 그만큼 강호의 정세가 고착화되어 몸 담을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무한하게 지급되는 영약과 병장기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으리라.
“어디까지 동원할까요?”
“전원.”
사마의는 놀라지 않았다.
“예, 그것도 계획을 세워뒀습니다.”
사마의에게는 미안하지만, 적은 일원이다.
그 말인즉슨 괴겁천마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였다.
사령신이 혼백을 되찾았으니 괴겁천마도 육신을 되찾는 중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인간의 심계로 맞설 상대가 아닐 터였다.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황보세가 때처럼 지름길로 갑시다.”
복잡한 계획 대신 정면 돌파를 택한 게다.
“네? 회주! 그 때와 달라요. 위험합니다.”
“타격대 소집해. 준비되는 대로 바로 칠거니까.”
사마의는 난색을 표했다.
“회주! 연 소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한 명을 구하고자 수백 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남천휘는 마이에게 보여줬던 정광 가득한 눈빛으로 사마의를 바라봤다.
“군사. 내가 이성을 잃은 것 같은가?”
“아닙니다.”
“그럼 믿고 맡겨 봐. 아! 무림맹과 황보세가, 남궁세가와 무당파에 전서구를 보내. 으음······.”
남천휘는 재이가 수집한 목록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적의에 곡도를 쓰는 놈들이 수백 명이야. 머리에 적건을 둘렀는데 중앙 부근이 피를 물들인 것처럼 검붉어. 이거 누군지 알아?”
사마의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남천휘는 마치 눈앞에서 무언가를 보는 사람처럼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군사! 정신 차려. 준비 되면 바로 출동이야. 그러니 적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네, 네. 지금까지의 정보로는 조금 애매합니다. 몇 가지 걸리는 자들이 있기는 한데······.”
남천휘가 몇 마디를 덧붙이자, 사마의가 박수를 쳤다.
“혈인교! 혈인교입니다. 사마천세 당시 사령교에서 떨어져나와 양민을 학살했던 혈인교의 복장입니다.”
“광혈오주?”
사마의는 확신하듯 대꾸했다.
“예.”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일원이 아닌가?’
적의 정체는 차후에 생각하자.
일단 두목의 팔다리를 잘라놓고 단전을 후려치면 뭐라도 토설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상한 자들이 있군. 몸을 심각하게 훼손했거나, 몸 전체에 자문을 그려놨어. 곱추, 거인, 외팔이, 애꾸도 있고······.”
사마의는 장탄식을 흘렸다.
“허어, 혹시 그들의 숫자가 백입니까?”
“응, 얼추 그 정도야.”
“백인잔결노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목표와 바꾸는 미친 자들입니다. 회주! 재고해주십시오. 저들을 상대로 전면전을 하는 건 위험합니다.”
그 때 양대안과 조상이 흑의를 걸친 채 다가왔다.
“현월사대와 남오행대가 준비를 끝냈습니다.”
남천휘는 사마의를 돌아보며 물었다.
“진법?”
사마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품에서 십여 개의 깃발을 꺼냈다. 그리고 목에는 다섯 개의 호각을 걸었고, 옆구리는 맥궁과 깃의 색깔이 다른 십여 종의 명적을 챙겼다.
“주군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만, 적과 조우한다면 지휘는 제가 하겠습니다.”
남천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가 대규모 인원을 끌고 가는 이유는 저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곡부남가를 건드렸다가는 풀 한 포기 남지 않고 모조리 쓸려나간다는 것을 말이다.
오래 전 사천의 독문으로 유명했던 당가의 가훈이 그랬단다.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가자.”
남천휘가 걸음을 내딛는 순간 사마의의 곁으로 호리호리한 체구의 사내가 다가왔다. 보신경에 특화된 자로 사마의의 말이 되어 줄 자였다.
“평소대로 움직인다!”
삐이이익-
묘하게 귀를 거슬리는 소리가 울리자, 구백 명의 무인이 삼삼오오 흩어지며 자취를 감췄다. 저들은 남천휘가 일러준 지점에서 합류하게 될 터였다.
남천휘는 선두에 서서 이를 갈았다.
‘내 땅에 들어온 이상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
태산의 입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산의 지형이 제남에서 청도 인근까지 이어졌고, 남으로는 곡부 아래의 추성현까지 늘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약초꾼이나 나뭇꾼이 오가는 산길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를 터였다.
하나 남천휘가 향한 곳은 호엽로(虎獵路)라는 곳이다. 오래 전 사냥꾼들이 호랑이를 잡으러 다녔다는 길이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이곳은 산 정상까지 갈림길이 나타나지 않았다.
“몰이 사냥하기도 좋고, 포위하기도 좋은 장소입니다. 그야말로 범의 아가리나 마찬가지지요.”
남천휘는 사마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현월사대와 남오행대의 무인들이 빠르게 운집했다.
“주군, 한 번만 더 여쭙겠습니다. 이대로 가실 계획입니까?”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 년 전 혈인교는 교도의 숫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지?”
“예.”
“백 년이 흘렀어. 얼마나 남았을까?”
“아.”
“백인잔결노는 구파의 장로와 양패구사 할 만큼 악독했다지? 사이한 방법으로 강해진 자들이 백 년 동안 살아남았을까?”
사마의는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마천세 시절의 광혈오주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지 못했군요. 백 년이 흘렀으니 당시 정파를 떨게 만들었던 자들은 거의 백골이 되었을 겁니다. 최근 강호에 도는 정보를 취합했을 때 혈인교에 대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은밀하게 모집하는 건 한계가 있지요. 예전과 다를 겁니다. 백인잔결노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남천휘는 피식 웃었다.
“좋아. 이제야 내 군사답군.”
자! 이제 시작해보자.
남천휘는 양팔을 벌렸다.
‘증강현실이었던가? 그거 해봐.’
그 순간 시야에 겹쳐져 있던 정보창이 허공으로 떨어져 나왔다. 예전에는 책을 보는 거리였다면 이제는 벽에 그려진 것을 보는 듯했다.
‘지도.’
지도가 거대하게 확장되었다.
벽 전체에 태산 인근의 지형지물이 표시됐다.
그리고 겹쳐져 있던 정보창은 남천휘를 중심으로 원형을 이뤘다. 손가락을 흔들 때마다 원형으로 엮인 정보창이 회전하며 필요로 하는 것을 보여줬다.
“저기구나.”
적은 호협로를 타고 올라가는 정상에 대부분 모여 있었다. 그리고 연하연의 노란빛도 함께 반짝였다. 그녀의 무사함을 확인하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면 사마의는 무인들의 집결을 기다리다가 눈을 끔뻑였다.
‘제갈세가에 가신다더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남천휘는 사마의의 속내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손가락을 펼쳐 지도에 가져다댄 후 슬쩍 오므렸다. 그 순간 지도가 축소되며 호협로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남천휘는 인상을 쓴 채 읊조렸다.
‘비책 발동.’
일원을 상대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를 활용했다.
제아무리 곡부남가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함이라지만, 수하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지 않은가.
◎ 발동하실 비책(秘策)을 선택해주세요.
남천휘는 비책의 목록을 확인한 후 망설임 없이 읊조렸다.
‘절도지책.’
◎ 절도지책(絶道之策)의 영역을 선택해주세요.
남천휘는 허공에 원을 그리며 말했다.
연하연이 있을 장소 주변으로 거대한 영역이 그려졌다.
“이만큼.”
◎ 해당 지역에 절도지책이 발동합니다.
- 허가받지 않은 인원의 입장이 통제됩니다.
- 허가받지 않은 인원의 퇴장이 통제됩니다.
절도 영역 내에 반짝이는 적의 머릿수만 해도 오백 명이 넘는다.
그러니 절도지책 만으로는 부족할 터였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비책을 모두 실행해.’
산동 각지에서 모아놨던 성소 포인트가 항아리의 밑이 빠진 것처럼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성소 포인트는 음수로 변경됐다.
◎ 성소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 포인트의 과다 소모에 주의하세요.
남천휘는 인상을 썼다.
‘모자라는 건 VIP포인트를 전환해서 충당해.’
◎ 해당 비책이 모두 발동합니다.
남천휘의 눈앞에 존재하는 지도가 각종 비책으로 인해 현란하게 빛났다.
“군사.”
“예, 회주.”
사마의는 깃발을 꺼내 흔들었다.
십여 개의 깃발이 색깔 별로 펄럭였고, 그 때마다 곡부남가의 무인들은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가지.”
남천휘는 느긋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
혈인교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마이를 놓쳤기 때문에 선봉을 빼앗겼다.
백 년 전부터 앙숙처럼 지냈던 잔결대노에게 당했기에 더더욱 울화가 치밀었다. 혈인교주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혈룡팔부 중 한 명이 뛰어 들어와 부복했다.
“교주! 교주!”
“뭐냐?”
“적입니다.”
혈인교주는 미간을 좁혔다.
잔결대노가 마이를 유인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것이 불과 일각 전이다. 지금쯤이면 서찰이 곡부남가에 닿지도 않았을 시간이 아닌가.
그는 오만할지언정 자만하지 않았다.
“누구냐?”
“다수입니다.”
“곡부남가다! 놈들이 이곳을 어찌 알았지?”
혈룡팔부는 대꾸하지 못했다.
혈인교주 역시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다.
“당장 일대를 내려 보내서 매복을 해라. 이미 구덩이와 함정을 곳곳에 파놨으니 분명 통할 것이다.”
“존명!”
수하가 빠르게 사라졌다.
잠시 후 혈룡팔부가 모두 도열했다.
“흐음, 찜찜하군. 놈들이 어떻게 알았지? 일단 만독노옹께 연통을 넣어라.”
수하들은 저마다 득의의 혈소를 지었다.
만독노옹에게 있어서 산은 하독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니 적은 산을 올라오는 중에 중독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싸우지도 못한 채 전멸할 수도 있겠군.’
잠시 후 만독노옹이 뒷짐을 진 채 나타났다.
혈인교주는 먼저 손을 모아 포권을 했다.
사령신에게 있어서 광혈오주란 귀찮은 일을 덜어주는 존재였다. 그러니 서열을 정해주거나, 특별한 임무를 맡기지 않았다. 심부름꾼에서 심력을 허비할 만큼 열심히 사는 자가 아니지 않던가.
그렇기에 광혈오주끼리 서열을 정했다.
그 중 으뜸이 바로 만독노옹이다.
강호인은 제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지녔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위협을 경계하는 법이다. 머리 좋고, 독을 쓰는 만독노옹을 적대할 리 만무했다.
“많군.”
만독노옹은 산 아래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하면?”
혈인교주가 조심스럽게 묻자, 만독노옹은 자색의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더 좋아.”
만독노옹이 손가락을 튕기자, 십여 명의 벙어리가 제 팔뚝만한 대나무통을 가지고 나타났다.
“혈염죽천향이라고 이름을 붙였네.”
혈인교주는 독의 이름 따위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독의 효능이 궁금할 따름이다.
“혈염죽천향에 당한 자는 칠공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지. 그리고 그 피는 또다른 독이 되어 주변을 오염시킬 것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혈인교주는 입꼬리를 올렸다.
“한 명만 죽어도 금세 전염이 되겠군요.”
만독노옹은 자부심 가득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저들이 모두 초절정 고수가 아니라면 이 독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역시 만독의 제왕이시군요.”
“술 한 잔 주겠는가?”
연의에서 나오던 관우와 화웅의 이야기를 흉내 내려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만독노옹은 수하가 술을 가져오기 전 곡부남가가 전멸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쏴라!”
혈인교의 교도가 술을 가지러 간 사이 만독노옹이 호기롭게 외쳤다.
파파파파파파파팡!
주먹만한 독탄이 수십 개나 발출됐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 높이까지 이른 후 빠르게 내리꽂혔다. 한데 독탄은 어느 순간 저절로 갈라지더니 수십 개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바람이 좋군요.”
“클클, 제대로 들어갔어.”
그 때 교도가 술병과 술잔을 가지고 돌아왔다.
“제가 직접 따라드리지요.”
혈인교주는 소매를 걷어 부치고 술병을 기울였다.
한데 술은 잔을 가득 채우고, 만독노옹의 손을 따라 흘렀다. 그러나 혈인교주도, 만독노옹도 신경 쓰지 못했다.
“어.”
만독노옹은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산을 타는 곡부남가의 무인들을 보며 읊조렸다.
“설마 모두가 초절정의 고수란 말인가?”
*
같은 시각 남천휘의 귓가에는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띠링-
◎ 비책 ‘무균지책’이 발동합니다.
- 일정 시간 무균실 내에 모든 위해요소가 제거됩니다.
남천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사냥을 시작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