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백두야, 또 속냐!! (2)
남천휘는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한 혈화만개공의 영역에서 몸을 뺐다. 등짝이 화끈거렸고, 아랫도리가 후들거렸다.
하나 불굴과 통찰, 그리고 물약의 힘으로 버텨냈다.
파팟!
황금종의 남은 시간은 3분.
남천휘는 오뚝이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입가의 핏물은 더욱 짙어졌고, 팔다리에는 생채기가 가득했다. 지근거리에서 폭발하는 혈화만개공으로 인한 상처가 누적되고 있었다.
그러나 끝끝내 버텼다.
사령신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남천휘가 버텨내는 모습에 인상을 썼다. 단칼에 찢어발기고 싶지만, 남천휘는 매번 미꾸라지처럼 도망쳤다.
“야! 이 나쁜 새끼야. 너는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해버렸어!”
콰콰콰쾅!
남천휘는 인상을 썼다.
한순간 다른 두 가지가 궁금했다.
그만큼 현재의 상황은 위태로움과 거리가 멀었다.
적선단과 벽선단만 있으면 언제까지든 버틸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물었다.
“후우, 후우, 다른 두 가지는 뭐지?”
꽈득!
사령신은 이를 갈며 외쳤다.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에게 물어봐라!”
“엇! 염라도 그 저주만은 피해갈 수 없단 말이냐?”
“닥쳐라! 이 개종자야!”
콰콰콰쾅!
사령신의 눈동자는 세 개로 늘어난 상태였다.
세 개의 눈동자가 품자 형태로 번들거리는 광경은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한데 어째서 기괴하게 번들거리는 눈동자에 물기가 맺힌 걸까.
그래도 여전히 남은 두 가지가 궁금했다.
하나 이번에는 섣불리 말을 걸 수 없었다.
전면에서 폭발하는 혈화만개공을 피하려고 움직였을 때였다. 폭음이 채 사라지기 전 좌측에서 기감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등장했다.
월아혈천수였다.
본래 활처럼 투로가 호선을 그리니 사각을 찌르기에 제격인 무공이다.
“흡!”
통찰의 힘이 아니었다면 옆구리를 베일 뻔했다.
남천휘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고, 입가의 핏물은 아예 쏟아내는 것처럼 진득해졌다.
하나 속으로는 조소를 금치 못했다.
‘슬슬 이성을 잃어가는군.’
혈화만개공은 신공절학을 논할 때 수위에 꼽힐만큼 대단한 무공이다. 구파의 장로라고 해도 죽거나, 중상을 피하지 못할 정도였다.
한데 사령신은 그런 것을 쉴 새 없이 흩뿌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월아혈천수까지 운용했다.
절대지경의 고수라고 해도 힘에 부칠 수밖에 없으리라.
예상보다 순조롭다.
예상보다 사령신이 더 단순한 탓이다.
‘시간은?’
남은 시간 2분 30초.
황금종의 효과가 사라지면 제아무리 남천휘라고 해도 버텨낼 수 없으리라. 적선단과 벽선단의 회복력은 절대영도가 주는 피해량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한 가지를 더 염두에 뒀다.
‘무공총람.’
비천무상도를 시작으로 그 동안 익혔던 무공이 나열됐다. 그 중 남천휘는 마지막에 존재하는 두 개의 무공을 살폈다.
《환마소혼검법(幻魔召魂劍法)》
- 마교십대무공 중 하나.(가치:2000)
- 전설급 검법 숙련도(30/100)
- 스킬1 : 구두마룡참.
※ 직위 ‘무적자’와 특기 ‘불굴’로 인해 마기에 침습당할 위험도가 대폭 하락합니다.
환마소혼검법은 청야노사 송청풍과의 대결에서 엄청나게 성장했다. 영자팔법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그 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던 숙련도가 30까지 올랐다.
그 결과 구두마룡참을 얻었다.
남천휘는 조만간 사령신에게 구두마룡참을 펼칠 생각이다. 비등한 상태에서 상대가 새로운 것을 선보인다면 지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심지어 사령신처럼 호승심이 하늘까지 닿은 자라면 더더욱 그러할 터였다. 그리고 놈의 내력은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건데······.’
《팔황지존보》
- 보신경의 극의(極意)
- 무공 등급 : 신화(神話)
- 정(正)과 반(反), 순(順)과 역(逆)의 대립마저 포용할 수 있으며 절대지경의 단초가 됩니다.
- 숙련도(22/100). (가치 : 무가지보)
남천휘가 지닌 무공 중에서 최고를 꼽자면 공교롭게도 비천무상도가 아니라 팔황지존보였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
이것만으로도 팔황지존보에 대한 신뢰가 대폭 상승했다.
하나 따지고 보면 의아할 것도 없다.
비천무상도는 그 자체로 대단한 도법이자, 심법이다.
그러나 완벽을 논한다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용린쌍도의 무기 정보에 답이 나와 있지 않은가.
- 특정 심법 사용 시 공격력 50% 상승.
- 특정 무공 사용 시 공격력 50% 상승.
이것이 용린쌍도의 보조 기능 중 하나였다.
하나 남천휘는 비천무상도를 익혔음에도 보조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비천무상도와 용린쌍도는 백파도 남추와 관련이 있다.
그 말인즉슨 비천무상도가 완전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아마도 비천무상도의 마지막 단계인 비천의 숙련도를 100까지 올린다면 완전한 무언가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볼 일이다.
‘관건은 팔황지존보의 숙련도야.’
남천휘는 ‘도전! 황금종’ 퀘스트를 통해 팔황지존보의 숙련도를 올렸다. 그리고 팔황지존보의 숙련도는 사령신과 대적하는 사이 빠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30까지 남은 숙련도는 8.’
숙련도 30은 곧 삼성의 성취를 의미했고, 첫 번째 스킬이 개방됨을 의미했다. 하나 이대로라면 제한 시간 내에 숙련도 30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언가 다른 수를 생각해내야 했다.
그러던 중 남천휘의 시선을 끄는 광경이 있었다.
혈화만개공으로 인해 공간이 폭발했다.
한데 일장 밖에 위치한 바위가 살아 있는 것처럼 부르르 떨더니 수백 개의 비침을 발출하는 것이 아닌가.
‘아! 여기는 제갈세가의 내원이었지.’
내원 중에서도 심처였다.
그러니 수많은 기관이 펼쳐져 있으리라.
‘기관을 이용하면 좋겠는데.’
기관진식이 사령신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잠깐의 관심이라도 돌릴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쯧.”
남천휘는 침음을 내뱉었다.
아직 제갈세가의 성소는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리고 기관진식을 알고 있을 제갈학이나 제갈표는 천사강림 밖에 있지 않은가.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아주 잠깐이라도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면 통찰의 힘을 빌어 기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응?’
남천휘는 눈을 빛냈다.
예기치 못한 조력자가 나타났다.
*
무당파는 무당산 곳곳에 퍼져있던 도관의 집합체였다. 진무대제라 불리는 장삼봉이 도학을 펼쳤을 때 무당산 곳곳에 자리한 암자와 도관의 주인들이 스스로 제자를 자처했다.
그렇기에 강호의 방파로서 검문(劍門)이라 불렸지만, 구도(求道)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당대 무당제일검인 청송진인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그의 고강한 무위 또한 구도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그러니 외부의 드러난 것보다 내부의 조화를 꾀했다. 무당파의 기본적인 복색만 갖춘 것 또한 그런 의미였다.
미남과 추남, 장신과 단신, 좋은 인상과 나쁜 인상을 따지지 않았다.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하거늘 구애받을 이유가 없을 터였다.
하나 남천휘의 도발은 흘려 넘길 수 없었다.
아니, 뼈아팠다.
그는 정수리까지 벗겨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침음을 흘렸다.
‘사람의 외형으로 호불호를 나누는 건 법도에 어긋나거늘······.’
남천휘에 대한 짧은 인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다소 경박해보였지만, 일관된 언행은 거짓이 없음을 증명했다. 게다가 그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일청대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않던가.
그래, 상대는 그런 사람이다.
반면 사령신 또한 보이는 그대로의 존재였다.
사이(邪異)가 분명했다.
‘그래, 애초에 그릇된 자를 상대할 때 정도를 따지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지.’
청송진인은 남천휘가 악을 징치하기 위해 스스로 악을 자처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저런 나쁜 짓을 망설임 없이 저지르는 것이겠지.
‘나라도 알아주자.’
머리카락은 없을지언정 포용력만큼은 잃지 말자.
청송진인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던 중 생각지 못한 결론에 이르렀다.
‘엇! 내가 언제부터 이리 여유로웠던가?’
그는 눈을 부릅떴다.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현저하게 줄었다.
육안으로 확인해도 천사강림의 빛깔이 옅어졌다.
사령신은 현재 천사강림과 혈화만개공에 이어 월아혈천수까지 동시에 펼치고 있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절대지경의 고수라고 해도 영향이 없을 수 없었으리라.
‘대단하구나!’
청송진인은 혈화만개공을 피하느라 여념이 없는 남천휘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신마대전의 기록에 의하면 사령신 한 명이 나타났을 때 천여 명의 고수가 모여야 진군을 막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데 오늘날 약관을 겨우 넘긴 남천휘가 홀로 사령신을 대적하고 있었다.
청송진인은 아랫입술을 깨물어 자신의 피를 마셨다.
비릿한 핏물을 삼키는 순간 조금은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
‘우리도 무력하게 있을 수는 없지.’
그는 무당의 제자들을 살폈다.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사령신의 천사강림은 열정과 의욕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래도 절반 이상은 여전히 검을 놓지 않았다.
저들과 함께라면 태청구궁대신의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으리라.
그는 각방을 맡은 제자들과 눈짓을 교환했다.
‘한 번 더 간다!’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도우심일까. 사령신은 남천휘를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기에 사령신의 넓은 등짝이 훤히 드러났다.
꽈득-
청송진인은 송문고검을 고쳐 잡은 채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내 그의 손이 송문고검의 검신을 따라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쳐라!”
한 가지만 빼고 모든 것을 갖춘 자의 빛나는 검격이 사령신의 등짝을 향해 내리꽂혔다.
촤아아악!
본래 혜검의 초식은 단순했다.
맺고, 끊는 두 가지 묘리를 담았을 뿐이다.
하나 단순한 논리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혜검이다.
“흥! 날파리들 주제에!”
그러나 사령신은 한 수 위였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 혜검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가 사령신이다.
사령신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양 어깨에 힘을 줬다. 그 순간 그의 등짝에서 거대한 철벽이 튀어나와 강기를 막았다.
쩡-
공간이 요동을 쳤다.
사령신의 상반신이 살짝 움직였고, 청송진인은 기세좋게 달려나간 것이 무색할 만큼 일 장이나 밀려났다.
하나 표정은 반대였다.
사령신은 날파리로 인한 타격에 짜증이 났고, 청송진인은 혜검이 먹혔음에 기뻐했다. 게다가 태청구궁대진으로 인해 집약된 힘이 청송진인을 떠받들었다.
청송진인은 확신했다.
‘본파의 제자들이 당한 것보다 사령신의 약세가 더 크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이 남천휘였다.
그런 남천휘는 사령신이 아닌 주변 경관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저것 또한 무의미한 행동이 아니리라.
청송진인은 남천휘를 믿고, 검을 고쳐 잡았다.
“오롯이 나에게 쏟아지는 오욕에 감사하며 일출을 보지 못해도 아쉬워하지 말라.”
무당 제자들이 청송진인의 말을 따라 읊조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사령신은 코웃음을 쳤다.
“하아, 이제는 별 거지 같은 것들까지 기어오르는구나!”
터터터터텅!
사령신은 손을 활짝 펴고 내력을 발산했다.
손가락마다 솟구친 혈강기가 채찍처럼 공간을 찢어발겼다. 사령신의 십대무공 중 일곱 번째인 수라혈편지(修羅血鞭指)이다.
위력은 혈화만개공이나 마관광살기보다 약하다.
하나 다수를 동시에 살육하는데에는 이만한 지법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신마대전 당시 수백 명을 반으로 잘라버린 절학이 아니던가.
청송진인은 수라혈편지를 튕겨냈다.
그 순간 호구가 저릿했고, 아랫배가 욱신거렸다.
하나 그는 단전에서부터 끌어낸 듯한 웅혼한 일갈을 내질렀다.
“버틴다!”
무당제일검의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했다. 하지만 청송진인을 비롯한 무당의 제자들은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그들은 목숨과 맞바꾸어 사령신의 십초 식을 끌어냈다.
청송진인은 한쪽 시야가 가려질 만큼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외쳤다.
“버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