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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264화 (264/305)

117, 진격의 사령신.

117, 진격의 사령신.

입영열차(立令列車)는 우두머리가 바로 서서 줄지어 선 마차를 이끄는 행위였다.

그 말처럼 남천휘가 선두에 서서 줄을 잡아끌자, 줄을 잡고 있던 무당의 문도들이 뒤따랐다.

백여 명에 이르는 문도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한 시가 급한데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사령신이 나타났다는데 위기감이 없군.’

남천휘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밧줄의 길이가 있다 보니 문도들의 거리는 좁았다. 허리만 살짝 죽여도 앞 사람의 등이 닿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백여 명이 줄지어 달리기란 쉽지 않았다.

“앞 사람과 부딪칠 것을 걱정하지 말고 뛰어요.”

남천휘가 외쳤지만, 문도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무당파의 무학은 수백 년 간 내려오면서 첨삭을 더했기에 무궁무진했다. 그러니 저마다 체형과 성격, 성취에 따라 무공을 익혔다. 같은 문파라고 해도 다양한 심법과 보법을 익혔다는 뜻이다.

그러니 아래가 어지러운 건 당연했다.

“구령에 맞춰서 갑시다.”

무당파의 문도들로서는 기함을 토할 행위였다.

도문에 몸을 담았다고 해도 무인이 아니던가.

그간의 수련을 무시한 채 발을 맞추라는 건 보법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제갈세가의 명운이 촌각에 달렸어요.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 합니다! 이 또한 비경회의 비전이니 믿고 따라와 주세요.”

남천휘의 일갈에 문도들은 마뜩찮은 기색을 내비쳤다. 하나 제갈세가와 비경회를 거론하니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왼 발! 왼 발! 왼 발!”

저마다 경지에 이른 무인들이 아니던가.

금세 발을 맞춰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력과 보법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기에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졌다.

“회주, 이건 좀······.”

누군가 참다 못해 항의를 하려 했다.

하나 그는 말끝을 흐린 채 바삐 앞 사람을 뒤따랐다.

발을 맞출수록 속도가 빨라졌다.

마치 비탈길을 구르는 바퀴처럼 말이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 때 저 멀리 남천휘의 일갈이 들려왔다.

“눈길입니다.”

제아무리 무당파의 문도라고 해도 보법 없이 눈길을 달리는 건 위험했다. 그렇기에 문도들은 속도를 늦출 것이라 여겼다.

하나 남천휘의 행보는 상식을 파괴했다.

“속도를 올립니다!”

◎ 눈 위를 뛰고 있습니다.

- 비책 입영열차의 보조 기능이 발동합니다.

- 보조 기능 설국열차가 활성화되었습니다.

- 눈 위에서 이동속도 20% 증가합니다.

그렇지! 이제 슬슬 남쪽 아니냐?

남천휘는 발아래 화살표를 보며 읊조렸다.

일행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니 어느덧 일직선으로 펼쳐진 곳을 내달리는 중이다.

◎ 행렬의 선두가 남쪽을 향합니다.

- 보조 기능 남행열차가 활성화되었습니다.

- 남쪽으로 이동 시 속도 20%가 증가합니다.

하지만 비책 ‘입영열차’의 위력은 지금부터다.

남천휘를 따라 달리던 문도들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분명히 속도는 처음보다 몇 배는 빨라졌다. 이제는 보법을 펼칠 때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뛰는 것만으로 이런 속도가 나오다니!’

무당 무학의 숨겨진 위력이었을까?

그러한 의문도 금세 자취를 감췄다.

그냥 뛰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력을 운용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데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야 할 상황에도 단전은 멀쩡했다. 마치 내력의 샘과 연결된 것처럼 끊임없이 혈맥을 뛰어다녔다.

문도들은 남천휘를 떠올리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 때 남천휘의 외침이 연이어 들려왔다.

“왼 발! 왼 발! 왼 발!”

잠시 후 대열의 중간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이어졌다.

“왼 발! 왼 발! 왼 발!”

작은 읊조림은 이내 거대한 함성이 되었다.

그리고 백여 명의 무인들은 용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남쪽을 향해 질주했다. 누군가 질풍과 같은 행렬을 본다면 감탄을 금치 못했으리라.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이들을 보며 몇날며칠 동안 술자리에서 자랑을 하겠지.

반면 남천휘는 귀가 따가울 정도의 함성을 들으며 쓴웃음을 흘렸다.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활용한 VIP 포인트만 해도 12000점이었다.

VIP 5단계가 점차 멀어지는 듯했다.

‘인생은 말이야. 멀리서 보면 희극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야.’

◎ 심오한 말이군요.

그냥 포인트가 아까워서 한 말이야.

아무래도 만렙 찍는 것보다 VIP 5단계가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손쉬운 사령신부터 처리하자!’

◎ 의식의 흐름에 붕괴 조짐이 엿보입니다.

남천휘는 늦겨울의 찬바람을 입안 가득 머금고 외쳤다.

“왼 발!”

*

“왼쪽의 좀 더 틀어라.”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인 제갈학의 일갈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십 명의 가솔은 집채만 한 쇠뇌를 움직였다.

저것은 한 때 전장을 휩쓸었던 기병이다.

혈우연노(血雨連弩).

시위의 중앙은 철로 된 받침대가 놓였고, 그 위에 손가락 굵기만 한 철시 수십 개를 올렸다. 천잠사를 꼬아 만든 활줄이 튕겨지는 순간 수십 발의 철시가 전방을 찢어발길 것이다.

그런 혈우연노가 무려 서른 대였다.

제갈학은 천주봉에서 내려오는 길을 겨누고 있는 혈우연노를 보며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는 놈을 옭아매는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아예 갈가리 찢어발길 것이다!”

“와아!”

태상가주의 호기로운 외침에 가솔들이 환호성으로 응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혈우연노는 신마대전 당시 사령신의 움직임을 제약한 신병이 아니던가. 심지어 백년 간 개량의 개량을 거듭한 신형이다.

“소천뇌와 팔대 기관은 준비됐는가?”

제갈세가의 가솔들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이미 가주가 바뀌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태상가주였던 제갈학의 손길이 닿은 자가 새로운 가주로 취임할 터였다. 그러니 제갈학의 눈에 띄기 위해서라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제갈표의 수족을 자처하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고향은 제갈세가다.

초계황처럼 더럽다고 때려치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이다.

“소천뇌 정비 끝났습니다.”

소천뇌(小天雷)는 열여섯 개의 철시를 연달아 날릴 수 있는 소형 연발쇠뇌였다. 이것은 혈우연노를 재장전 하는 사이 사령신의 공세를 봉쇄할 것이다.

“팔대 기관의 방향도 바꿨습니다!”

제갈세가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팔대기관이다.

본래 가주의 처소와 장서각 주변에 매설된 최상급 기관이었다. 오래 전 초절정의 고수가 팔대기관을 동시에 발동시킨 후 갇혀 죽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정보였다.

이번에는 기관의 방향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바꿔놓았다. 이 또한 천주봉에서 내려올 사령신을 옭아맬 비책 중 하나였다.

“무인들은 대기하라.”

제갈세가의 가솔들이 전열을 갖췄다.

제갈학은 슬쩍 배후를 살폈다.

연무장의 청석에 꽂혀 있는 용린쌍도가 시선을 끌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도신이 하늘의 햇빛을 반사시켰다. 그리고 눈에서 반사된 빛을 흩뿌리며 예기를 드러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수가 된 듯했다.

‘놈은 아직인가?’

제갈학은 침음을 흘렸다.

남천휘를 기다리는 듯하지만, 속내는 전혀 달랐다.

그는 백 년 간 발전한 제갈세가의 위력을 믿었다.

반면 사령신은 백 년 간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기관과 진법은 지식이 쌓일수록 위력을 더할 터였다. 하나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쇠락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절대지경의 고수가 되면 노화를 막는다고?

‘늦추는 것과 멈추는 건 하늘과 땅 차이지.’

그렇기에 제갈학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강해졌고, 사령신은 약해졌다.

만약 제갈세가의 힘으로 사령신을 잡을 수만 있다면 강호의 정세가 완전히 뒤집힐 것이다.

그는 단순히 가주 자리를 되찾을 뿐 아니라 강호의 상징이 될 터였다. 그리고 강호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고금제일인이 되리라.

‘놈이 오기 전에 사령신을 잡을 수 있다면······.’

저 반짝이는 것도 새 주인을 찾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하아.”

제갈학의 검붉은 혀가 갈라진 입술을 몇 번이나 훑었을 때였다.

콰콰콰콰콰쾅!

산울림처럼 사방에서 들려오던 굉음이 점차 한곳으로 뭉쳐들었다. 그 말인즉슨 신무대진의 한계가 다가왔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곧 사령신이 등장할 것이다.

“전투 준비!”

“존명!”

제갈세가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선대에서 사령신을 상대했던 계획을 보완하여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제갈세가의 가솔들은 사기가 충천했다.

과거의 유물이나 다름없는 사령신의 악행은 오늘 이 자리에서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 여겼다.

쿵!

짧은 울림이 바람을 타고 자취를 감췄다.

그 순간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천주봉 전체를 휘감고 있던 안개가 서서히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제갈세가의 가솔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천주봉의 정경에 말문이 막혔다. 자연의 조화로 인해 안개가 흩어졌다고 보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일견하기에도 사령신이 만들어낸 이적일 터였다.

‘이거······.’

‘위험한데.’

그 순간 천주봉에서 흩어졌던 안개가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안개는 다리처럼 좌우로 늘어진 채 누군가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사령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 속에서도 번쩍이는 정수리를 시작으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몸뚱이가 나타났다. 한 손에는 술병을, 다른 손에는 누군가의 머리를 들고 있다.

그는 보무도 당당하게 안개가 만들어낸 오솔길을 걸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의 안개는 역할을 다한 것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사령신은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그들 중 누구도 사령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사령신은 술병을 높이 들은 후 꺾었다.

쪼르르르륵-

허공에서 맑은 술이 호선을 그렸고,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제갈세가의 가솔들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본능적으로 술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뭔가가 일어날 것이라 여겼다.

한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갈학도 마찬가지였다.

‘이 압박감은 뭐란 말인가?’

사령신의 존재감은 육신이 아니라 혼백을 직접 옥죄는 듯했다.

“쳐, 쳐라!”

제갈학은 실핏줄이 터져서 시뻘게진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제갈세가의 가솔들은 발작을 하듯 혈우연노를 발사했다.

터터터터터터텅!

수백 개의 철시가 전방으로 꽂혀들었다.

본래 혈우연노의 다음 차례였던 소천뇌까지 섞였다.

가솔들의 평정심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하나 사령신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붉스르함 강기의 벽이 펼쳐지는 순간 혈우연노의 철시는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제갈세가의 유서 깊은 전각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사령신은 바닥을 드러낸 술병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흑천괴뢰의 졸자 놈이 담근 술이라서 그런 건가?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군.”

제갈세가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쨍그랑!

마침내 술병은 바닥을 보였고, 이내 파편이 되었다.

술병이 깨지는 것에 호응하듯 주변의 안개가 파도처럼 철썩이며 흩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제갈세가에게 닥쳐올 미래이기도 했다.

사령신은 오른손에 든 머리통을 내밀었다.

“어라? 흑천괴뢰에게 주려던 선물인데······. 네 놈들은 또 마천종의 졸자네.”

그는 수백 명의 가솔 중에서도 후미에 있던 제갈표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제갈표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훗.”

사령신은 피식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머리통과 눈을 맞췄다. 머리통은 흑천괴뢰의 대제자였던 파진악이다. 생기를 잃은 눈동자는 초점이 없다. 사령신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머리라도 남겨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구나. 너를 거둬줄 사람이 없으니 그냥 가라.”

콰직!

사령신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제갈세가의 가솔들을 향해 외쳤다.

“하긴 흑천괴뢰든, 마천종이든 뭐가 중요하랴. 손맛만 있으면 되는 거지. 안 그러냐?”

살기가 진동을 한다.

제갈학은 발악을 하듯 외쳤다.

“팔대기관을 발동하라!”

사방에서 독연이 퍼져나갔고, 철시와 화탄이 난무했다. 온갖 종류의 기병이 활성화되며 시계를 어지럽혔다.

하나 사령신이 손을 뻗을 때마다 기관은 하나씩 파괴됐다.

“크하하하하! 그래, 이 맛이었어!”

콰콰콰콰쾅!

사령신이 지붕에 뛰어올라 주먹을 내리치는 순간 전각 하나가 통째로 무너졌다. 건물의 옆면을 후려치면 태풍에 휘말린 것처럼 파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손길이 인간을 스쳤다.

“으아악!”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었던 자는 운이 좋았다.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채 핏물로 화하여 흩어진 자가 부지기수였다. 한순간 혈우연노를 담당하는 가솔 중 절반이 쓸려나갔다.

사령신이 혈강기를 흩뿌릴 때마다 공간이 갈렸고, 빈 자리를 피가 채웠다.

“맙소사.”

제갈학은 아랫도리가 젖어드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부르르 떨었다. 지팡이가 없었다면 이미 주저앉았으리라. 불현 듯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해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놈들이 지배하던 공포를.

강호라는 새장에 갇혀 있던 굴욕을

괴겁천마와 사령신은 인간의 형상을 한, 아주 거대한 악귀였다.

“크하하하하! 일단 죽어라!”

사령신의 광소가 터져나왔다.

제갈세가의 가솔 중 심약한 자는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이 악몽이 한 시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빌고, 또 빌었다.

살려달라고.

하나 광소(狂笑)는 귀에 달라붙은 것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크하하하하하!”

그 때였다.

혼백을 찢어발길 듯한 광소 사이로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왼 발! 왼 발! 왼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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