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54화 (254/305)

111, 운수좋은 날. (3)

남천휘는 진저리를 쳤다.

백두에게서 전해지는 살기와 투기가 유형화되어 전신을 헤집었다.

‘강하다. 진짜 강해.’

상대는 만서각에서 봤을 때보다 더욱 심한 상태였다. 당시 백두가 광증을 일으켰을 때 눈동자가 두 개로 나뉘었다. 붉은 눈동자가 두 개로 나뉘는 광경은 더업이 흉물스러웠다.

다행히 진정이 되어 제 모습을 찾지 않았던가.

하나 지금은 완전히 개화되어 눈동자는 두 개가 됐다. 심지어 붉은 눈동자가 한없이 확장되며 눈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온 몸이 붉게 물드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불현 듯 쓸데 없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제 백두가 아니라 적두라고 불러야겠네.’

◎ 위기 상황입니다. 집중해주세요.

남천휘는 자신의 농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재이를 보며 인상을 썼다.

‘이 상황을 만들어놓은 게 너렷다?’

◎ 제갈세가 관련 퀘스트가 등록된 상태입니다.

- 시스템은 정해진 이야기를 따라 진행될 뿐입니다.

쳇! 그리고 너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여유롭게 지켜보겠지.

하나 재이의 말이 맞다.

제갈세가에 도착한 이후 연이은 기연 탓에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바로 메인 퀘스트다.

.

《3-2, 우리 집에 왜 왔니?》

- 특정 대상인 ‘xxx’와 조우 시 완료됩니다.

※ 퀘스트 완료 시 특별한 선물이 지급됩니다.

특정 대상이 누구일까?

아무래도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표가 아닐까 싶다.

일원의 주구가 분명한 놈을 만나야 싸움을 하든, 무언가를 얻어내든 하지 않겠는가.

‘빌어먹을 백두 놈!’

백두에 대한 짜증이 치밀었다.

놈으로 인해 여기까지 왔고, 이제는 놈의 난장까지 받아줘야 할 형국이 아닌가.

“크아아아아!”

얼씨구. 백두는 붉어진 얼굴로 괴성을 내질렀다.

마치 이무기가 승천을 하지 못해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 남천휘에게는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백두는 몇 번이나 초옥이 존재했던 공간으로 진입하려 했다. 하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튕겨져 나갔다.

그러니 백두의 꼴이 우스울 수밖에.

‘쯧쯧, 미친놈인줄은 알았지만, 진짜 미친놈일세.’

그 때 백두가 남천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때마다 붉은 기운이 입김처럼 흘러나왔다.

“만변! 만해! 휘발!”

백두는 진입이 불가능하자, 주술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세 단어를 연호했다.

아! 잊고 있었다.

남천휘는 혀를 찼다.

그러고보니 놈은 처음부터 자신이 아니라 등 뒤의 만변만해휘발액에 반응하는 듯했다.

‘그나저나 이건 뭐지?’

초옥 전체가 돌풍에 휘말린 것처럼 산산조각 났음에도 불구하고 만변만해휘발액이 담겨 있던 통나무는 자리를 지켰다.

이번에는 축복받은 확인서를 사용했다.

《만변만해휘발액》

- 등급 : 신화(神話)

- 융중산 천주봉의 영기가 축적되었습니다.

- 흡입 시 뇌 활동이 증폭됩니다.

- 특정 아이템을 제외한 모든 인위적인 물품과 접촉 시 녹여버립니다.

이제야 지붕이 뚫려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초옥에 신무대전이라는 과분한 명칭을 붙이고, 신무대진을 둘러 출입을 통제한 연유 또한 밝혀졌다.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라······.’

한데 남천휘는 만변만해휘발액을 보며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위기가 있는 이상 총명과 우둔의 경계는 모호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스템이 이걸 먹으라고 준 건 아닐 테고.’

결국 마지막 줄의 설명에서 해답을 찾아야 했다.

‘특정 아이템을 제외하면 다 녹여버린다.’

그가 아이템을 살피는 사이에도 백두는 광분하여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하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을 뚫지 못했다.

쾅! 쾅! 쾅! 쾅!

남천휘는 그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그거 안 깨져.”

백두가 시스템의 힘을 뛰어넘을 만큼의 고수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남천휘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던 중 만변만해휘발액이 담긴 통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높이가······.’

손을 뻗어 통나무와 자신의 허리 높이를 가늠했다.

익숙한 높이였다.

용린쌍도를 허리에 찼을 때와 같은 높이 아닌가.

통나무는 마치 도갑(刀匣)과 같았다.

‘이거 할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걸까?’

◎ 특정 정보에 대한 접근이 제한됩니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퀘스트를 통해 상위 정보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할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정확한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시스템은 할아버지의 행보와 깊은 관련이 있어.’

촤라라락!

남천휘는 백룡도와 흑린도를 꺼냈다.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건 팔 할이 시스템이다.

하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비천무상도와 용린쌍도는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백두는 사령신과 관련이 있고, 사령신은 할아버지와 연결됐지. 그런 백두가 여기로 나를 이끌었다면······.’

유일하게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건 용린쌍도 뿐이다.

남천휘는 용린쌍도를 통나무에 꽂았다.

쌍도가 녹아내릴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망설임은 없다.

그리고 그 결단은 광휘로 보상받았다.

솨아아아아-

예상대로 용린쌍도는 만변만해휘발액의 수면까지 잠겼다. 그 순간 무지개가 생긴 것처럼 칠채(七彩)의 빛을 발산했다. 그리고 잠시 번쩍였던 빛이 사라졌을 때 용액은 휘발액이라는 이름답게 자취를 감춘 후였다.

‘흡수?’

남천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용린쌍도를 뽑았다.

순백의 나신처럼 새하얗던 도신의 결을 따라 영롱한 빛이 쉴 새 없이 번뜩였다.

띠링-

◎ 용린쌍도의 보조특기로 만변이 추가됩니다.

◎ 용린쌍도의 보조특기로 만해가 추가됩니다.

◎ 용린쌍도가 완성됐습니다.

◎ 추가 공격력이 +300 증가합니다.

◎ 내력이 바닥났을 때의 강기 사용이 2회에서 3회로 증가합니다.

◎ 내구도 무제한으로 변경됩니다.

남천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회회회판으로 주지 않던 보상을 이런 식으로 퍼주는 걸까?

좋아도 너무 좋았다.

‘완성이라고?’

남천휘는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용린쌍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확인서 만변.’

《만변(萬變)》

- 특정 무기에만 부여되는 특기입니다.

- 특정 무기의 형태가 자유롭게 변화합니다.

※ 소유자의 기억에 의지하여 형상화됩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고금을 통틀어 기형 병기는 언제나 존재했다.

팔목이나 허리에 둘렀다가 사용하는 연검이나 검 속에 검을 숨기는 모자검을 떠올려 보라.

하나 용린쌍도의 만변은 상식은 넘어서는 신능이었다. 마치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닌 것처럼 손에 쥐고 있어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활.’

남천휘는 부러진 질풍뇌격궁을 떠올렸다.

◎ 만변의 활성화로 VIP 1000점이 소모됩니다.

동시에 용린쌍도가 뭉개지더니 저절로 활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봐도 기억 속의 질풍뇌격궁과 똑같았다.

무게와 길이, 탄성과 무늬까지 그대로 구현됐다.

“아.”

VIP 등급을 올리기 위해 포인트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나 남천휘는 손에 익은 활을 쥔 이상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이거 꿈은 아니지?’

재이의 대답을 기다리기보다 만해에도 확인서를 사용했다.

‘이건 만변보다 별로네.’

만해는 분쇄와 참격처럼 적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힘을 지녔다. 다만 상대의 부정적인 기운을 제거하는 위력을 보일 뿐이다.

아마 사마외도에게 즉효겠지.

‘공격력 증가에, 강회 횟수 증가, 거기에 더해서 내구도까지 사라졌어.’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소혜에게 수리를 맡길 수 없게 되었지만, 어쩌면 차라리 잘된 일이리라.

그는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대체 어떤 시련을 주시려고 이런 것까지 선물한단 말인가.’

시스템은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

강화된 용린쌍도를 사용해야 할 고난이 끊이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기연이 반가우면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만변! 만해! 휘발!”

아! 또 잊고 있었네.

남천휘는 초옥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백두를 돌아봤다. 며칠 동안 함께 했지만, 단 한순간도 동료라고 여긴 적이 없다.

기억을 잃은 사령신의 후손.

심지어 남위기를 통해 검색한 그의 행적은 경악스러웠다. 시비를 걸면 죽였고, 앞을 막아도 죽였으며, 도망치는 상대까지 쫓아가서 죽였다. 그리고 남위기를 시간 순으로 정렬한 후, 제룡장의 멸망까지 확인했다. 그런 그를 지금껏 옆에 둔 이유는 비천무상도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함이었다. 한데 저리 본색을 드러내는 걸 보니 오월동주(吳越同舟)도 이제 끝낼 때가 온 듯했다.

“크아아아! 만변! 만해······.”

“그래, 휘발. 도대체 너 뭐냐? 여기 왜 온 거야?”

남천휘는 미간을 좁힌 채 물었다.

백두가 자신을 이곳까지 이끈 이유는 질풍뇌격도에 대한 보상 때문이다. 한데 이곳에서 찾아낸 건 활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만변만해휘발액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 도대체 뭘 하고자 했던 걸까?’

어차피 경계는 여전하기에 호기심을 풀고자 했다.

한데 그건 백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잠시 눈을 끔뻑이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 뭐지? 왜 온 거지?”

미친놈에서 다시 기억상실자가 되었다.

그러다니 숨을 두어 번 고른 후 다시 광증이 폭발했다.

“크아아아아아!”

쾅! 쾅! 쾅!

남천휘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주변을 살폈다.

백두를 처리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하기 위함이다.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또 무슨 퀘스트라도 주려고?’

◎ 만변만해휘발액이 소모됐습니다.

- 제한 구역이 해제됩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믿었던 방벽이 사라진다는 알림과 함께 시야 구석에는 오랜만에 검은 막대가 생성됐다.

검은 막대는 빠른 속도로 하얗게 변했고, 동시에 용린쌍도가 도명을 울렸다.

지이이이이이이이이잉-

고유 특기인 ‘경고’가 활성화된 것이다.

쩡-

남천휘가 궁리할 사이도 없이 아무도 없던 허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백두의 주먹은 불덩이가 된 것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마침내 산산조각 났다.

‘쯧.’

남천휘는 마뜩찮은 표정을 보였다.

백두의 광증이 도졌다고 해서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남천휘는 그 때보다 강해졌고, 용린쌍도가 완성됐다.

공격력 300 증가의 힘을 보여주마.

촤라라라라락-

남천휘는 만변을 사용해 질풍뇌격궁을 용린쌍도로 바꿨다.

‘어! 그러고 보니 되돌릴 때도 천 점을 소모하는 거냐?’

◎ 용린쌍도의 원형은 본래 도가 아니니까요.

인색한 녀석 같으니라고.

남천휘는 붉은 강기가 휘감긴 주먹이 지척에 이르는 순간 상체를 뺐다. 지금껏 몇 번이나 백두와 비무를 하지 않았던가. 생사결은 아니었지만, 초식의 투로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분화되겠지.’

예상대로 강기가 좌우로 흩어졌다.

그만큼 백두의 권격은 빠르고 강력했다.

정면을 찔렀음에도 권영(拳影)은 이미 좌우에서 짓쳐들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내준다면 상반신 전체를 권역에 두려 할 터였다.

‘그건 안 되지.’

백룡도로 쳐냈다.

그 순간 도신이 칠채로 물들며 일렁였다.

신비롭다. 그리고 강력했다.

쩡!

백두는 남천휘의 내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이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콧김을 뿜으며 재차 달려들었다.

마르지 않는 내공과 불사를 방불케 하는 육신.

그것이 백두의 힘이다.

‘장기전으로 가면 곤란해!’

남천휘는 백두가 탄력을 받기 전 빠르게 공간으로 짓쳐들었다. 그리고 아낌없이 현월강기를 흩뿌리며 백두를 압박했다. 그 때마다 도신에서 칠채의 광영이 번쩍였고, 천주봉 정상에는 때 아닌 무지개가 만들어졌다.

“크아아아아!”

공격력 300의 위력 때문일까.

백두는 평소와 달리 맥을 못 췄다.

이러다가 놈을 이기는 것도 가능할 성 싶다.

촤아아악!

마침내 현월강기가 백두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초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저처럼 정통으로 얻어맞으면 육신이 잘려나갔을 것이다.

하나 백두는 피를 흘릴 뿐 근육조차 상하지 않았다.

“으으으.”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백두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는 귀에 파리가 들어간 사람처럼 머리를 흔들며 신음을 흘렸다.

“으으으으.”

남천휘는 재빨리 나아갔다.

불길한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백두를 제거할 생각이다.

‘죽어!’

쇄애애애애애액!

백두는 반쯤 넋이 나간 듯 물끄러미 백룡도를 응시했다. 그러다 미간에 꽂혀들기 직전 손을 뻗더니 백룡도를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아. 아. 아.”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본능이 위험을 경고했다.

무엇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격돌할 때마다 칠채가 일렁였다. 한데 이번에는 아무 빛도 발현되지 않았다. 강기의 위력은 여전했지만, 칠채의 부재는 불길하기 짝이 없다.

그 순간 재이가 빠르게 외쳤다.

◎ 산혼자가 기억을 되찾고 있습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예상대로 칠채는 남천휘가 아니라 백두를 위한 안배인 듯했다.

‘칠채를 흡수한 건가?’

그 때 예기치 못한 알림이 울렸다.

◎ ‘3-2, 우리 집에 왜 왔니?’가 완료되었습니다.

- 특정 대상인 ‘xxx’와 조우했습니다.

- 특별한 보상으로 백파도 남추의 영상이 등록되었습니다.

그 순간 백두가 반응을 보였다.

두 개로 갈라졌던 눈동자가 셋으로 나뉘는 중이다.

품(品)자 형태로 갈라지는 눈동자를 보는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불현듯 퀘스트 정보에 적힌 ‘xxx’가 누구인지 예상됐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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