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채굴.
110, 채굴.
제갈세가는 마치 금광(金鑛)과 같았다.
그것도 금맥이 사방으로 뻗어 있는 노다지였다.
도끼질을 해도 금, 곡괭이질을 해도 금.
‘채굴이다!’
남천휘는 최선을 다하여 금을 캤다.
◎ 진법에 이어 바둑에서도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 B급 특기 ‘기진(棋陣)’을 획득했습니다.
- 대규모 회전에 대한 판단력이 상승합니다.
이런 특기가 부산물로 여겨질 정도였다.
남천휘가 엄지와 검지를 튕기자, 시비가 물을 건넸다. 쉴 새 없이 입을 놀린 탓에 갈증이 심했다. 그러나 입술에서 경련이 일어날 때까지 침을 튀겨가며 설파했다.
“졌습니다.”
열아홉 번 째 대적자는 악보에 재주를 보였다.
음률을 논하고, 음악을 자랑했다.
하나 남천휘가 창해일성소와 소도회 서곡을 비롯해 쉬이 알려지지 않은 음악으로 상대하니 금세 꼬리를 말았다.
띠링-
◎ 팔황지존보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떴다!
팔황지존보의 숙련도를 6까지 올렸다.
숙련도가 3성에 이르면 첫 번째 스킬이 활성화된다고 했다.
“다음!”
남천휘의 호기로운 외침에 눈빛이 형형한 노문사가 맞은편에 앉았다.
“지난 수십 년 간 대강남북을 떠돌며 도검창의 장단점을 살펴왔소. 그대는 도를 사용한다고 들었으니 어디 한 번 재주를 겨뤄봅시다.”
노문사의 말에 남천휘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설명만 들어도 숙련도 상승이 보장된 듯하지 않은가.
하나 결과는 꽝이다.
‘개뿔! 병장기를 아무지 잘 알면 뭐해. 그걸 다루는 사람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잖아.’
당연히 숙련도가 오를 것이라 믿었기에 실망은 배가 됐다.
◎ 성공할 것이라 믿었던 것은 실패하고, 실패할 것이라 미루어 짐작했던 것이 성공하는 상황이야 말로 삶이 아닐까요?
시스템 주제에 달관한 사람처럼 말하지 말라고.
‘그래, 마치 회회회판 같구나. 뜰 것 같은데 안 뜨고, 이제 하지 말아야겠다고 포기하려는 순간 떠버리잖아.’
◎ 주인님의 말이 옳습니다.
- 회회회판이야 말로 희노애락이 담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다 조만간 불가에 귀의하시겠어.
남천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다음!”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것이 세상의 순리라더라. 하나 이처럼 내려가다가는 땅속에 파묻혀서 지옥 구경까지 할 판국이다.
잡다한 특기가 몇 개나 활성화됐지만, 대충 확인한 후 합성해버렸다.
“졌소.”
“다음!”
“졌습니다.”
남천휘가 시크둥해하는 것과 달리 점차 장내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단한 자로군.”
애초에 천문나진법은 제갈세가의 가솔이 아니라 빈객의 임무였다. 그들로서는 상대가 탈락해야 자신의 값어치가 올라가기에 기를 쓰고 천문나진법의 난이도를 상향했다.
하나 문사들은 남천휘의 해박함에 적아를 넘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경쟁의식과 질시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벽으로 여겼다.
“어린 나이에 어찌 저처럼 해박할 수 있단 말인가. 만박이라는 말은 저 청년에게만 해당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소.”
“얼른 내 차례가 왔으면 좋겠군.”
잠시 후 들뜬 얼굴의 문사가 남천휘를 마주했다.
“당신은 누구요?”
남천휘는 갑작스런 질문에 미간을 좁혔다.
본래 천문나진법은 철저하게 실력을 검증하는 자리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이름과 별호, 출신 배경이나 사문은 묻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회주야. 현월회주.”
멀뚱히 앉아 있던 것이 지루했던 것일까.
백두가 냉큼 질문을 받아 답했다.
한데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소요가 일었다.
“현월회주라고? 저렇게 젊었던가?”
“현월회라면 신공부의 부덕과 비도를 바로잡은 공맹의 후예가 아닌가!”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이 분위기 뭐지?’
◎ 이 시대의 기조는 유불도(儒佛道)를 기반으로 하기에 문사들에게 있어서 유림의 성지란 곧 뿌리를 의미합니다.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말하기는.
‘너 오늘 좀 이상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참기로 했다.
성별은 확실하지 않지만,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남천휘가 재이의 심기를 살피는 사이에도 소요는 계속됐다.
“살아있는 공맹의 후예를 내 눈으로 보다니.”
찬사가 너무 심한 걸?
‘너 알고 있었냐?’
◎ 저는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 자격이 되지 않으니 알려주지 않았겠지.
더 말을 걸었다가는 기간 대비 성장률을 거론하면서 면박이나 주겠지.
그러니까 불퉁한 녀석보다 기연이라도 얻은 사람처럼 눈을 빛내는 문사를 바라봤다.
“신공부가 뜻을 잃은 이후 유림은 제갈세가를 중심으로 뭉쳤소. 한데 이런 상황에서 공맹의 뜻을 이은 선사를 보게 되다니 참으로 영광이외다.”
선사(先士)가 나온 것으로 보아 조만간 유림의 성자로 추앙받을 수도 있겠구나.
아니나다를까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 일정 수준을 넘어선 문사들의 호감을 샀습니다.
- A급 특기 ‘선사’를 획득했습니다.
- 어느 정도 유림의 중지를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기 ‘선사’는 사마외도의 악명을 얻을 시 삭제됩니다.
A급이 오랜만이기는 한데······.
‘합성.’
유림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일단 입이 아파.
S급 특기 ‘통찰’에 먹이는 순간 레벨이 상승했다.
이제 통찰 레벨은 3이 되었다.
천문나진법을 끝낸 후 신무대진인가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통찰 레벨을 올린 건 그 때가 되어서야 효력을 발휘하리라.
“회주와 대담을 하게 되어 영광이오. 내가 회주와 논할 것은 약학이외다. 혹여 약학에도 조예가 있으시오?”
현월회주인 것이 밝혀지는 순간 대우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적이 아닌 동료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제갈세가에 대한 충성이 약화되었음을 의미했다.
순간 좋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합시다.”
약학(藥學)을 논했다.
약은 활력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지 않던가.
혈도와 혈인도의 힘을 빌렸고, 남위기까지 활용했다.
게다가 남천휘에게는 S급 특기 ‘의술’이 있지 않던가. 무엇보다 남천휘는 꿍꿍이가 있었기에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문사의 귀를 사로잡았다.
“아아!”
문사는 남천휘와 대화를 나눌수록 탄성을 흘렸다.
지금까지 남천휘를 상대했던 자들은 적으로 여겼기에 패배를 부끄러워했다. 하나 이제는 동료로 생각했기에 가감없이 감정을 내비쳤다.
“제가 졌습니다. 회주는 당대의 의성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게요.”
남천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현월회에는 저보다 조예가 깊은 사람이 있으니 고개를 들 수 없군요.”
“그가 누구입니까? 현월회에 가면 볼 수 있나요.”
됐다. 낚였다.
이곳이 산삼밭이라면 마냥 뽑아먹기만 해서는 아쉽지 않겠는가. 후원의 텃밭에 씨앗을 뿌려두고 계절마다 복용할 수 있다면 천자도 부럽지 않으리라.
“그럼요.”
문사는 눈을 빛냈다.
“그렇군요.”
그는 제갈세가에서 받은 것을 모두 내려놓은 후 세가를 뒤로 했다. 무인이 비급을 위해 가족도 버린다면 문사는 지식을 위해 그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었다.
“장 학사! 어디 가시오?”
제갈우가 황망한 표정으로 불렀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이걸 어쩐다?’
본래 세가나 방파가 빈객을 받아들일 때에는 몇 가지 제약을 걸기 마련이다. 지금껏 먹여주고, 재워줬거늘 써먹지도 못하고 떠난다면 손해가 아닌가.
하나 제갈세가는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문사들은 제갈세가가 아니면 갈 곳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천하제일지자의 가문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돈을 뿌리지도 못했다.
그 결과 문사는 아무 제약도 없이 현월회라는 텃밭의 씨가 되기 위해 떠날 수 있었다.
‘에헤라디야! 씨를 뿌려라!’
남천휘는 잠시 주춤했던 대담을 빠르게 이어갔다.
그리고 문사들은 저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고, 패배를 인정했다.
특기가 활성화됐고, 숙련도가 올랐다.
그리고 대과에 지원해도 급제가 어렵지 않을 유능한 문사들을 대거 확보했다.
“제가 현월회에 간다면 누구를 찾아야 합니까?”
서른아홉 번째 문사가 물었다.
“소혜를 찾으세요. 그 아이가 여러분의 길을 알려줄 겁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현월회의 군사는 사마의라고 들었습니다만.”
“유불도는 물론이고, 실학에도 조예가 깊은 아이입니다. 누누이 말했듯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세요. 제가 누구입니까? 저는 거짓을 논하지 않습니다!”
사실 거짓말이다.
하나 저 자는 현월회에 발을 들이는 순간 소혜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터였다.
사마의나 양대안이 그랬듯.
‘우리 소혜가 그 정도라고!’
마치 장성한 딸을 자랑하는 아버지의 심경으로 소혜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다.
“그럼 다시 뵙기를.”
문사는 포권을 한 후 제갈세가를 뒤로 했다.
제갈우는 아예 나라를 잃은 백성의 표정으로 문사를 응시할 뿐이다.
‘망했다. 망했어. 가주께서는 이 일을 어찌 처리하시려는 걸까?’
하나 가주라고 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을 듯했다.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읊조렸다.
‘퀘스트 창.’
《최후의 일인!》
- 최고 난이도의 천문나진법을 돌파하라.
- 현재 논파 횟수(44/50)
순조롭구나.
마흔다섯 번째 상대는 붓을 쥐고 있었다.
“필법과 서체를 논하고자 합니다.”
분위기가 묘한 상대였다.
문사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현월회주임을 알리기 전에는 적의가 가득했고, 알고 난 후에는 동질감을 느꼈다.
한데 눈앞의 노학사는 지인과 담소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시작하겠소.”
남천휘는 노학사가 먹을 가는 내내 미간을 좁혔다.
‘뭐지?’
노학사는 잠시 후 붓을 적신 후 조심스럽게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마치 생의 모든 것을 담은 듯 경건한 자세였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건 고작 한 글자에 불과했다.
영(永).
이건 남위기를 검색할 필요도 없다.
‘영자팔법인가? 근데 왜 이렇게 낯설지가 않지.’
서법 중 해서(楷書)의 기본으로 여덟 점획을 표시한 기법이다. 조형적 특성을 기준으로 모든 글자에 적용할 수 있는 운필법으로 유명했다.
‘용필과 조직의 방법이라······.’
물론 영자팔법 이후의 모든 정보는 남위기를 검색한 것이다. 노학사는 붓을 내려놓고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후한의 채옹이 숭산에서 신수를 받아 왕희지에게 이어졌소이다. 순서는 아시겠지요?”
영(永)을 쓸 때의 순서대로라면 측(側), 늑(勒), 노(弩), 적(趯), 책(策), 략(掠), 탁(啄), 책(磔)으로 끝나게 된다.
물론 남위기의 힘을 빌렸다.
“네.”
노문사는 남천휘에게 글자를 내밀며 물었다.
“어디가 잘못됐는지 아시겠소?”
모르겠다.
이것만은 남위기의 힘을 빌릴 수가 없었다.
글자의 문제를 말로 검색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데 낯설지가 않다.
모르겠지만,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다.
남천휘는 눈동자로 영자팔법의 순서대로 영(永)을 그렸다. 그러던 중 일곱 번째 획에서 시선을 멈춰야 했다.
쫄 탁(啄)
‘부리로 먹이를 쪼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영자팔법의 일곱 번 째 획인 삐침 별(丿)은 상우에서 하좌로 베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났다.
‘이거 환마소혼검법의 투로잖아.’
남천휘는 ‘측’부터 ‘탁’까지 모든 획을 환마소혼검법의 투로에 대입했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 말인즉슨 환마소혼검법이 영자팔법에서 비롯됐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이거 마교에서 만든 거라며?’
그 순간 재이가 알림이 연거푸 들려왔다.
◎ 환마소혼검법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무려 서른 번이나 이어진 알림이었다.
‘글자 하나 봤다고 숙련도 30이 올라?’
이쯤 되면 제갈세가에 대한 고마움마저 생길 지경이다.
‘앞으로 융중산을 보며 세 번씩 절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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