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47화 (247/305)

108, 누구를 위한 금제인가? (2)

《3-2, 우리 집에 왜 왔니?》

- 특정 대상인 ‘xxx’와 조우 시 완료됩니다.

※ 퀘스트 완료 시 특별한 선물이 지급됩니다.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특별한 선물이라고 해봤자, 활이겠지.

‘어차피 대머리가 주기로 한 물건인데 이런 식으로 조건을 달아야겠냐?’

◎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습득합니다.

- 이런 식으로 공짜를 바라시면 외모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사부의 머리가 더없이 환하게 빛났다.

저건 분명 재이가 나노 플레이트를 모아서 흩뿌려놓은 것이 분명하리라.

“집백등!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자네도 중년의 멋짐을 깨달은 겐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집백등이라고 부르지도 마.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등불 취급하고 있어. 그냥 회주라고 불러.”

남천휘의 시큰둥한 한 마디에 사부는 헤죽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그럼 자네도 그냥 사부라고 부르게.”

싫다. 이 대머리야!

뜻도 다르고, 어감도 다르지만 그냥 싫어.

남천휘는 사부를 뒤로 한 채 융중산을 올려다봤다.

융중산의 본래 지명은 복룡산이다.

그래서였을까?

산세가 마치 용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듯 험준했다.

‘제갈량이 태어난 곳답게 아주······.’

◎ 무후 제갈량의 탄생지는 낭야군 양도현으로 현재 지명으로는 산동성 기남현입니다.

아! 이렇게 조금 더 똑똑해졌습니다.

‘잘난 척 하기는. 그럼 제갈세가는 왜 여기에 터를 잡은 건데?’

◎ 융중산 인근에 초막을 짓고, 주경야독을 했다는 설이 존재합니다.

- 연관 용어는 ‘삼고초려’와 ‘출사표’입니다.

재이와 함께 천하를 주유하는 것만으로도 대과에 붙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 남천휘에게 있어서 책은 두통을 유발할 만큼 상극이다. 비급이라면 모를까 경서라면 남위기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쯧, 산동성에 자리를 잡았으면 제갈세가는 이미 내 발밑에 있었을 텐데.’

황보세가에 이어 제갈세가까지 차지했다면 용린협이라는 별호는 더 멋있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회주. 어서 가세.”

사부는 제 집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나아갔다.

남천휘는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확실히 융중산 아래는 평범한 저자와 달랐다.

골목마다 정자가 세워졌고, 그 안에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사들이 논쟁을 벌였다. 심지어 다루와 객잔에서도 매담자나 경극을 즐기기보다 서책에 빠진 문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황도에서 대과를 앞둔 유생들을 보는 듯했다.

‘유가의 성지라는 신공부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그러고 보면 신공부는 참으로 이름과 걸맞지 않게 세속적인 문파였다. 다시 태어날 신공부는 부디 외조부의 뜻을 따라 옛 성현의 가르침을 궁구하길 바랄 뿐이다.

한데 그래서 문제였다.

사부는 민머리를 훤히 드러낸 채 제 집처럼 저자를 활보했다. 피만 흘리지 않았을 뿐 투기를 잔뜩 드러냈으니 시선을 끌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문사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대머리를 가리켜 보통 백두(白頭)라 했다. 한데 백두의 다른 뜻은 탕건을 쓰지 못했다는 말로 곧 벼슬길이 막혔다는 뜻이다.

그러니 문사들이 꺼려하는 건 당연했다.

“허어, 백두다. 백두야.”

“아침부터 민머리를 보다니 오늘 일진이 사납겠군.”

이봐요. 그렇다고 침을 뱉으면서 한탄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남천휘는 안타까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자신도 이렇거늘 당사자의 마음은 찢어지지나 않았을까 모르겠다.

“헤헤, 오늘따라 사람이 없군. 무슨 날인가?”

사부는 저자의 패물을 만지작거리고, 주전부리를 잔뜩 사면서 웃었다.

참으로 천진난만하구나.

‘어울리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 달파란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사부라 칭하기는 싫으니까 백두라고 하자.

“백두!”

그 순간 사부가 남천휘를 돌아봤다.

아주 본능적인 감각은 끝내주는구나.

“나 부른 거야?”

“응. 앞으로 백두라고 부를 거야.”

“알았어. 그런데 왜 불렀어?”

백두의 의미는 궁금하지 않은 게냐.

‘집백등만 아는 바보.’

그 이름 백두였다.

“제갈세가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백두 주제에 천연덕스러운 말도 잘하는구나.

다행히 남천휘가 화를 내기 전 백두가 손짓을 했다.

“제갈세가는 구파나 다른 오대세가와 달라. 칼로 일어난 무가는 외인의 접근을 달가워하지 않지. 그리고 불심이나 경전으로 일어난 곳은 무인들이 달가워하지 않아. 기껏 웅심을 품고 강호 출도를 했는데 땡중이나 말코한테 붙잡혀서 설교를 듣고 싶지는 않잖아.”

일리가 있어!

남천휘는 인자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수다스러웠던 일청대사를 떠올렸다. 현월회의 행사 전후로 마주할 때마다 설법을 펼치는 통에 한동안 피해 다녀야 했다.

“한데 제갈세가는 오히려 문호를 열었지. 강호의 사문만큼이나 사승관계를 따지는 곳이 유림이야. 그리고 제갈세가는 유림의 대표라고 할 수 있지.”

신공부가 오래 전부터 문을 버렸으니 제갈세가의 독주를 제지할만한 세력은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런 상황인 건가?”

두 사람은 융중산 초입의 다루에 앉아서 저자를 내려다봤다.

문사는 정오로 향할수록 숫자를 더했다.

제갈세가 인근에서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과에 급제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백결공도 천문나진법을 최연소로 통과해서 이름을 얻었다고 하지 않았나.’

백결공은 제대로 된 기반 없이 천무나진법을 내세워 입맹했다고 했다. 그리고 일원의 능력을 사용하여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지 않았던가.

‘어! 잠깐.’

남천휘는 안개가 자욱한 융중산 중턱을 올려다봤다.

백결공이 제갈세가를 뒷배로 삼았다는 건 곧 동류라고 봐도 무방할 듯했다. 그러고 보니 백두가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것도 마냥 호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터였다.

“제갈세가도 일원이야?”

백두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응.”

“그런데 제갈세가에 가면 내 선물이 있다고?”

“그렇지. 자네의 부러진 활보다 훨씬 더 좋은 물건이 있어. 나는 그것을 자네에게 줄 선물할 생각이야.”

뭐랄까?

제갈세가의 의견은 철저하게 배제된 듯하다만.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담이라도 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남천휘는 제갈세가가 일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희미했던 죄책감을 버렸다.

한데 백두는 그런 남천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세가가 어떤 곳인지 몰라? 저 안개가 전부 진법하고 기관 때문에 생긴 거야. 회주는 진법하고 기관에 대해서 잘 아는가?”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지금껏 성소에 설치한 기관과 진법의 횟수만 해도 기십이다. 하나 재이를 통해 명령만 내렸으니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제갈세가의 진법이나 기관을 파해할 수 있어?’

대머리가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요망한 것.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길잡이가 되기는커녕 강 건너 불구경하는 녀석이 되어버렸다.

“그럼 기다리는 것이 답이야. 저쪽에서 우리를 마중 나올 게야.”

남천휘는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백두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억을 잃었지만, 간간히 번뜩이는 경험을 자랑하지 않던가.

“한 잔 해. 느긋하게 기다리면 저절로 길이 열릴 것이야. 기억을 잃었지만, 세상의 순리는 변하지 않더라고.”

사파의 상징 같은 사람이 저러니까 왜일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지.’

남천휘는 피식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어찌됐든 자신과 백두라면 제갈세가는 물론이고, 구파의 어디라도 두렵지 않으리라.

함께 할 때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다.

‘이거 어디서 써먹은 듯한 말인데······.’

한참을 궁리한 끝에 용봉삼협이라 함께 불렸던 공태령을 떠올렸다. 신공부의 압박에서 벗어나 천하를 주유하고 싶다던 녀석이다. 지금쯤 어디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건투를 빌어주자.

남천휘는 산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잔을 들었다.

‘너를 위해 마셔주마!’

그렇게 차를 한 입에 털어 넣었을 때였다.

“비켜서시오!”

저자의 끝에서 녹의를 걸친 수십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쟁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경공까지 펼치며 달리는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아침부터 어디를 저리 급하게 가는 건가 했더니 이리로 오네?’

그 때 백두의 느긋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딱 맞춰서 왔군.”

남천휘가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수십 명의 무인들이 다루의 이층에 모습을 보였다. 처마를 잡고 뛰어오른 자들이 창문마저 점거했다. 제갈세가가 아무리 문을 숭상한다고 해도 강호의 방파인 이상 무인을 양성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다만 저들의 적개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천휘는 그 이유를 묻고자 했다.

하나 백두가 한 발 빨랐다.

그는 제갈세가의 무인이 삿대질을 하는 순간 이미 몸을 날렸다.

“엇!”

어쩌면 절대지경의 고수일지도 모르는 자의 기습이다. 제갈세가의 무인이 검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주먹이 꽂혀들었다.

콰직!

일장의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졌다.

그리고 백두는 양떼에 뛰어든 늑대처럼 흉성을 드러냈다.

퍼퍼퍼퍼퍼퍽!

삽시간에 십여 명이 튕겨나갔다.

창문에 있던 놈은 창밖으로, 계단에 있던 놈은 아래로 떨어졌다.

남천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길이 열린다며?’

백두 식의 순리는 피와 비명을 동반했다.

일각도 지나지 않아 서른 명이 넘었던 무인들은 모조리 혼절한 채 다루 밖으로 내던져졌다.

“후우, 며칠만에 몸을 풀었더니 아주 상쾌하군.”

저 놈은 혹시 머리카락만 빠진 것이 아니라 뇌도 같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으며 물었다.

“저들이 왜 너를 공격하는 거지?”

공격은 백두가 먼저 했지만,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지금은 같은 편이 아닌가.

“일전에 무한에서 일원의 하부조직을 없앤 적이 있었지. 내가 망자 계열이라면 아주 개 코처럼 냄새를 잘 맡거든.”

그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개 흉내까지 냈다.

“그 때 살아남은 놈들 중 나를 알아보는 자가 있었나 보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이제야 백두가 투기를 드러낸 채 저잣거리를 활보한 까닭이 이해됐다. 자신이 갈 수 없으니 저들을 불러낸 것이다.

‘그런데 왜?’

제갈세가 전체를 상대할 것이 아니라면 이처럼 과격하게 행동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의아한 점은 그 뿐이 아니다.

지금껏 남천휘가 판단한 백두는 명백한 사(邪)였다.

어린아이의 치기에서 비롯된 어긋남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이함을 추구했다. 그의 성격과 무공, 그리고 행동마저 좌도(左道)임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저것들은 왜 살려둔 거지?”

다루 밖에서 앓는 소리를 내는 자들을 보면 살았다고 마냥 좋아할 상황은 아닐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지 중 한 곳이 꺾이거나, 부러졌을 만큼 중상을 입었다. 원래의 백두였다면 저들은 신음조차 내지 못했으리라.

‘이유가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닐 터였다.

백두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건 공태령이 알고 보니 여자였다는 소리만큼 허무맹랑했다.

“아이고, 죽겠다.”

백두는 탁자에 앉아서 이마에 가득 맺힌 땀을 닦았다. 그리고는 목이 타는 듯 주전자 째로 찻물을 들이켰다.

“너 왜 그래?”

남천휘의 물음에 백두는 한 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평범한 놈들을 상대하는 게 더 어렵네. 한 대 칠 때마다 다시금 혼백이 흩어지는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백두는 흑천괴뢰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망자를 일수에 때려죽이고, 시스템의 보정을 받은 자신을 쥐락펴락하는 존재였다.

남천휘는 솔직하게 물었다.

그러자 백두는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대꾸했다.

“이상하게 망자는 내게 힘을 쓰지 못해. 한 대 치면 부러지는 나뭇가지 같지.”

“나한테는?”

자신이 망자가 아닌 이상 말이 되지 않았다.

백두는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몰라.”

“뭐라고?”

“그냥 회주와 싸울 때면 힘이 솟구쳐! 심지어 기억마저 돌아오는 것 같아. 게다가 지치지도 않아. 마치 금제를 당한 것 같아. 자네와는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그런 금제 말이야.”

어떤 놈이 이따위 금제를 걸었던 말인가?

백두는 숨을 돌린 듯 심호흡을 하더니 손바닥을 내밀었다.

“쳐봐.”

남천휘는 산혼자의 의미를 궁리하며 대수롭지 않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짝!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저자의 골목마다 녹의를 입은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견하기에도 이백여 명은 족히 될 듯했다.

백두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더니 외쳤다.

“내가 여기 있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해하는 남천휘를 향해 말했다.

“이제 자네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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