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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246화 (246/305)

108, 누구를 위한 금제인가?

108, 누구를 위한 금제인가?

백결공은 무림맹 역사 상 가장 어린 나이에 문상의 자리에 등극했다. 그러니 차기 총군사는 백결공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강호의 중진 중 구파오가의 직계라고 해도 백결공의 위상에는 미치지 못할 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준비된 사람처럼 고결함을 중시했고, 온화한 표정으로 사람을 다했다.

하나 오늘의 그는 달랐다.

그는 봉두난발을 한 채 쉼 없이 달렸다.

그렇게 산동성을 벗어나 열흘 넘게 내달린 끝에 섬서성에 진입했다.

중원십삼성 중 어디인들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나 하남과 호북, 그리고 섬서는 강호인들에게 중지였다. 소림과 무당, 그리고 화산이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섬서성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관도를 오가는 무인들의 숫자가 몇 배로 늘어났다. 화산(華山)의 매화를 엿보려는 강호초출과 인맥을 쌓으려는 명숙들이 가득했다.

백결공은 낡은 방갓으로 얼굴까지 가린 채 잰걸음으로 화산을 떠났다. 그리고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 인근의 여산(驪山)을 앞에 두고서야 숨을 돌렸다.

여산은 화려한 풍광과 달리 오가는 이가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쪽의 화산과 남쪽의 종남산이 자리했으니 무인들의 발길이 뜸한 것은 당연했다.

반면 화려한 옷차림의 부호들이 자주 보였다.

진시황 시절부터 온천으로 유명했고, 당태종과 당현종을 거쳐 화청각이라는 대규모 위락단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온천과 더불어 기루가 즐비했으니 돈 많은 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백결공은 화청각 인근의 온천 중 가장 화려한 장백지(薔帛池)에 들어섰다. 몇 개의 표식을 남기고, 암구어를 주고받은 끝에 장백지의 내실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반 각 후 수려한 풍모의 노인과 마주앉았다.

“비신 사마천이 일원의 중추이신 좌사를 배알합니다.”

그는 사부인 좌사를 앞에 두는 순간 도망칠 때보다 더욱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사부의 인자한 미소에 속아 유명을 달리한 자가 어디 한둘이던가. 백결공이 각 성의 수석을 다루던 방법 또한 사부에게 배운 것이다.

“이제는 백결을 백결이라 부르지 못하겠구나.”

좌사는 백결공의 더러운 차림을 빗대어 말했다.

하나 백결공은 그 말만으로도 사약을 들이킨 사람처럼 부르르 떨었다.

“몸은 더럽혀졌으나, 마음은 여전히 일원을 향하니 기회만 주신다면 영혼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받들겠습니다.”

솨아-

뜨뜻미지근한 기운이 백결공을 일으켰다.

“날이 아직 춥다. 마셔라.”

어느새 백결공의 앞에는 향이 좋은 차가 놓여 있었다. 하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독고(毒蠱)가 배합된 차였다.

차에는 자고가 섞여 있었고, 좌사는 모고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차를 마시는 순간 자고를 통하여 심신을 지배받게 될 터였다.

좌사의 십이망자는 모두 독고를 복용했다.

그렇기에 백결공 또한 금산혈주를 비롯한 망자들의 생사를 보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모고가 활동을 멈추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하나 백결공은 망설임 없이 차를 들이켰다.

이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 이제 어찌할 생각이더냐?”

백결공은 눈을 빛냈다.

“제 존재를 알아버렸으니 비경회가 맹 내의 수하들을 정리했을 겁니다. 하나 그들은 유사시에 버려둘 미끼였습니다. 그러니 각성의 수석들에게 연통을 돌려 장강 이남을 도모할 생각입니다.”

“비경회가 골치였는데 일이 묘하게 풀렸어. 무림맹이 현월회를 인정한 탓에 지금껏 잠잠하던 강호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네가 수석들을 움직여서 만들어내려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파장이지. 일원으로 보았을 때 네 실수는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월회를 통해 강호가 환란의 초입으로 들어섰으니 네게 상을 줘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제게 장강 이남의 권한을 주신다면 반드시 맹에 대적할만큼 거대한 세력을 일으키겠습니다. 오늘의 작은 실수가 지워질 만큼······.”

백결공은 말끝을 흐렸다.

좌사의 반응이 전무했다.

그는 말없이 차를 홀짝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백결공은 미간을 좁혔다.

좌사의 세 제자 중 대제자인 파진악은 망자를 관리했고, 둘째인 자신은 맹에 세력을 심었다. 그리고 막내인 망월량은 장강 이남에서 일원의 이념을 퍼트렸다. 하여 맹을 빼앗긴 이상 장강 이남에서 망월량의 세력을 흡수할 요량이었다.

“백결아.”

좌사의 느긋한 한 마디에 백결공은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하늘께서 이르시길 대강남북의 변화는 손안에 있다고 하셨다. 하나 몇몇 존재만은 하늘의 이치를 따르지 않는다고 근심이 가득하시다. 양곡창고에 쥐새끼가 들어오면 어찌 해야 하느냐?”

“처음에는 제 먹을 만큼 갉아먹겠지만, 빠르게 수를 불려 창고 전체를 어지럽힐 것입니다.”

철그렁-

백결공은 자신 앞에 굴러온 철패를 바라봤다.

일원이라 적힌 두 글자를 제외하면 평범한 철패였다. 한데 철패와 연결된 끈에 작은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네 사형에게 가라.”

좌사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앉았다.

백결공은 철패를 소중히 쥔 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장백지의 후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후끈한 열기가 휘몰아쳤다. 좌사는 별호인 흑천괴뢰에 걸맞게 강호의 금지된 비술을 아낌없이 온천에 쏟아부었다. 그러니 이곳은 흑천괴뢰의 비술이 총망라된 기연의 온천이나 마찬가지였다.

온천에는 이미 선객이 자리했다.

백결공은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던 파진악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사형.”

“한결 공손해진 모습을 보아하니 백결 답지 않군.”

“저 같이 비천한 존재가 일원 아래에서 공손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한껏 날 선 대응도 잠시였다.

백결공은 상체를 드러내고 있는 파진악을 보며 눈을 부릅 떴다.

“사형.”

파진악은 왼쪽 팔을 잘린 상태였다.

어깨부근의 흉터로 인해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잘렸다기보다 뜯겼다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사부다.”

백결공은 미간을 좁혔다.

“사파의 아버지라는 그······.”

파진악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는 사파를 부정한다더군. 종잡을 수 없는 존재였다. 무엇보다······.”

그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일렁였다.

“망자와 상극이었다. 놈 앞에서 망자는 맥을 추지 못했어. 심지어 나조차 놈을 앞에 두고는 칠 할의 능력도 발휘할 수 없었다.”

백결공은 말을 잇지 못했다.

파진악은 고압적일지언정 거짓을 논하자는 가 아니지 않던가. 그러던 중 망월량이 자신에게서 망자를 받아갔을 때가 떠올랐다.

- 만약 제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정(正)과 반(反)의 만남을 가장 경계하소서. 두 개의 변수가 조화를 이룬다면 병법으로는 파해할 방도가 없습니다.

정은 남천휘를 뜻할 터였다.

그렇다면 반은 사부가 아닐까 싶다.

백결공은 만서각에 난입했던 대머리 괴인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형, 그 사부라는 자가······.”

파진악은 백결공의 이야기를 들은 후 무거운 숨을 토해냈다. 그 순간 잔잔했던 수면이 파도처럼 격하게 휘몰아쳤다.

“두 놈이 만났다면 때가 온 것이나 다름없다.”

백결공은 고개를 숙인 채 슬쩍 파진악을 올려다봤다. 파진악 또한 실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자신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좌사께서 네게 하사하신 것을 다오.”

그는 어쩔 수 없이 철패와 주머니를 건넸다.

파진악은 주머니의 내용을 살피더니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좋군. 아주 좋아. 백결, 호북의 수석을 움직여라. 나는 망자를 모조리 이끌 것이다.”

철그렁-

백결공은 파진악의 눈치를 보며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주머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건 뭐야?’

손바닥만한 천에 두 줄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 호북(湖北) 복룡산(伏龍山).

- 북동(北東) 삼백이십 리.

대화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남천휘와 사부의 위치를 뜻할 터였다.

‘이걸 어찌 알았지?’

백결공은 빠르게 궁리했다.

‘하늘’이 내려주었을 계시일 터였다.

한데 지금껏 남천휘에 대한 계시는 없다시피 했다.

파진악도, 망월량도 사부에 대한 계시를 바탕으로 움직였다.

‘하늘에게 사부를 감지할 수 있는 힘이라도 있는 건가? 있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남천휘를 볼 수 없는 건 더 말이 안 되잖아.’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 파진악이 일갈을 내질렀다.

“백결!”

백결공은 몸을 움츠렸으나, 한 가지를 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형, 복룡산은 우사의 영역입니다. 저희끼리 가도 되겠습니까?”

파진악은 코웃음을 쳤다.

“훗, 차라리 잘 되었다. 사부와 남천휘를 쓸어버릴 때 우사의 세력이 휩쓸려나간다면 하늘께서도 죄를 묻지 않으시리라.”

*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

큰 꿈과 작은 꿈을 가리지 않고, 저마다 바라는 것이 있는 게다. 하나 제아무리 굳건하던 꿈도 세월과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남천휘의 꿈은 곡부남가가 관리하는 다루 중 하나를 물려받아 호의호식하고자 했다. 하나 재이를 만나고 조금씩 꿈의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러다 보니 산동의 패주가 되었고, 현월회의 회주가 되어 명성을 얻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레벨 업으로 수신(修身)을 이뤘고, 곡부남가를 부강하게 만들며 제가(齊家)를 완성했다. 산동성 내에 수많은 성소를 차지함으로서 거미줄 같은 정보망까지 만들었으니 치국(治國)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자! 이제 남은 건 평천하(平天下)다.

제아무리 겸양한 자라고 해도 이쯤 되면 산동성을 벗어나 천하를 논하고자 하는 꿈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천휘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강렬했다.

사내로 태어나 입신양명을 꿈꾸지 않는 자가 어디 있더냐.

남천휘는 무적자라는 직업답게 더없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존재였다. 그러니 산동성을 벗어났다고 해서 불만이 생길 리 만무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소혜가 꽃을 뿌려주고, 천수련과 연하연의 양팔을 감싼 채 응원을 한다. 그리고 현월회를 비롯한 산동의 명숙들이 찬사를 보내는 가운데 길을 떠나야 제대로 기분이 나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마교가 천산을 내려오거나, 외적이 장성을 넘어서 환란이 극에 달했을 때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무림맹의 간곡한 초빙을 받아 뒷짐을 진 채 거드름을 피우는 것도 좋은 방식이리라.

“집백등! 이거 먹어봐. 이게 호북에서 아주 유명한 거위 주둥이로 만든 튀김이야. 내가 기억은 잃었어도 이 맛은 못 잊겠더라고.”

거짓말 하지 마라.

배를 곯다 죽은 귀신이 들린 걸까?

대머리는 객잔과 주루를 가리지 않고, 하루에 스무 끼씩 배를 채웠다.

‘벌써 천 번은 들었겠다. 이 대머리 사기꾼아.’

남천휘는 입맛을 다시며 객잔의 창밖을 응시했다.

수려한 산세가 끝없이 펼쳐진 것으로 보아 평범한 산은 아닐 터였다. 하나 눈이 시원해지는 풍광을 마주했어도 심경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부는 마치 옆집에 맡겨놓은 것을 받으러가는 사람처럼 남천휘를 잡아끌었다. 한데 산을 넘고, 또 넘다보니 어느새 호북성이다. 그 결과 ‘3-1. 강호출도요!’는 자연스럽게 완료가 되었고, 현재 연계 퀘스트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호북성까지 오게 될 줄이야.’

지금쯤 소혜를 비롯한 가솔들은 자신이 없어졌다며 난리법석을 떨고 있을 터였다.

남천휘가 세 여인을 걱정하는 사이 사부가 소매를 잡아끌었다.

“다 먹었으면 갑시다!”

“그래, 가자. 가. 미식 여행을 떠나 보자.”

사부가 억울하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미식 여행이라니. 이건 내가 실수한 것에 대하여 보상을 하기 위한 여정이라고. 복룡산에만 가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남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시겠지.”

한데 한 단어가 신경을 긁고 지나갔다.

남천휘는 걸음을 멈춘 채 사부의 소매를 잡아챘다.

“지금 어디로 간다고?”

“복룡산.”

“복룡산이라면 융중산이잖아.”

사부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당연하지. 호북의 복룡산이라면 융중산 밖에 더 있겠어. 나도 아는 걸 자네가 모르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게.”

하나 남천휘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우리 지금 제갈세가에 가는 건가?”

사부는 대머리처럼 반짝이는 눈망울을 자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역시 대머리 따위는 믿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믿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존재께서 계시를 내렸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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