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43화 (243/305)

106, 삼생삼사 십리도화(三生三死 十里刀火). (4)

고금을 통틀어 신선들과 바둑을 두고, 하룻밤 꿈에 평생을 살며, 개똥밭을 구르다 절대지경의 고수가 되는 세상이 바로 강호였다.

하나 그것은 그저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했다.

비급을 얻어도 이해를 해야 하고, 영약을 먹어도 받쳐줄 체력이 있어야 했다.

비를 피하려고 동굴에 들어갔다.

운 좋게 비급을 얻었다.

한데 만약 그가 초자나 엽사였다면 비급은 그림의 떡이다. 지금도, 내일도, 죽을 때까지 비급을 부여잡고 골머리를 앓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강호는 가문과 사문을 따졌다.

가문과 사문이라는 뿌리는 햇빛이라는 기연을 받쳐줄 수 있는 커다란 영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한데 남천휘는 뿌리가 없다.

반 년 전만 해도 유산을 받아 놀고먹으려던 한량이 아닌가. 심지어 곡부는 물론이고, 산동성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갑자기 기연을 얻어서 초절정의 고수가 되었다고 한다면 믿을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라니.

나노 플레이트 라니.

재이라니.

◎ 부르셨습니까?

아니, 들어가.

남천휘조차 가끔은 꿈이 아닐까 싶을 만큼 믿지 못할 기연이었다.

그러니 봉황곡주나 청도문주는 물론이고, 백결공조차 남천휘의 무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눈으로 봐도 믿지 못할 정도였으니 몇 마디 말로 어찌 진실을 전할 수 있으랴.

‘그렇다고 저 미친놈을 무시할 수도 없고.’

남천휘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달파란을 바라봤다.

그조차 만만치 않았던 금산혈주를 일격에 격살한 존재였다.

망자니, 꼭두각시니 하는 것으로 보아 저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일청대사의 달마시안은 일원의 무리에게 몇 배의 위력을 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달파란 또한 저들에게 효과가 있는 격살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 그럴 거야.

‘나 겁먹은 거 아니다?’

◎ 나가도 됩니까?

아니다. 다시 들어가.

남천휘는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달파란을 바라봤다.

확실히 재이의 존재는 세상만사를 쉽게 만든다.

이런 것이 있으니 저런 것도 있을 수 있지.

“어디서 비천무상도를 배운 거지?”

달파란은 애가 탄 듯 재차 물었다.

마음을 가라앉혔기 때문일까.

달파란의 모든 것이 이상했다.

애초에 누구한테 배웠는지를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꿈에서 배웠는데.”

일단 한 번 미끼를 던져봤다.

안 믿으면 말고.

한데 반응이 확실했다.

미끼를 물다 못해 씹어 먹을 반응이 돌아왔다.

“그렇군! 꿈에서 배웠군. 그랬어.”

아저씨, 왜 이해하는 거야.

달파란은 눈을 부릅 떴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마치 좌우로 갈라지는 것처럼 번들거렸다. 동시에 그의 일갈이 들려왔다.

“자! 말해봐라. 내가 누구냐?”

미친놈이다. 미친놈이 확실해.

그래도 면전에 대고 미친놈이라고 하면 싸우자고 덤빌 것 같았다.

그 때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 신화급 무공이 감지되었습니다.

- 불완전한 ‘칠야호리술’이 발동합니다.

눈깔 두 개로 나눠지는 게 신화급 무공이었어?

‘별 느낌 없는데?’

◎ S급 특기 ‘불굴’로 방어합니다.

남천휘는 소리없는 탄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면 처음 특기 목록이 개방되었을 때 불굴을 얻은 것이야 말로 천우신조나 다름없다.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받았으니 감사히 쓰도록 하자.

남천휘는 황급히 남위기로 칠야호리술(七夜狐狸術)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놀라웠다.

신마대전의 한 축인 사령신(邪靈神).

그가 선보였던 절세신공 중 하나였던 미혼공의 이름이 바로 칠야호리술이었다.

이제야 조각이 맞춰지며 어렴풋이 그림이 엿보였다.

일원과 달파란의 기운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전자가 명백한 마기라면 후자면 온갖 것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그러니 일원은 곧 괴겁천마의 계파가 아닐까 싶다.

일단은 분위기에 휩쓸려주마.

“달파란.”

남천휘가 무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한데 달파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다!”

“쌍미랑?”

“그것도 아니야!”

남천휘는 그 순간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래, 아닐 줄 알았다.”

지금까지 들었던 거짓말 중에서 가장 믿기 힘든 거짓말이었어. 저 얼굴에 저 머리로 달파란이나 쌍미랑 이라면 염치가 없는 거지.

달파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칠야호리술이 먹히지 않는군.”

“그러네.”

남천휘는 달파란의 매순간이 의아했다.

자신의 비기가 파훼당했음에도 오히려 후련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닌가.

“그렇군. 참으로 이상하군.”

이번에는 울상이다.

하나 금산혈주를 한 방에 격살한 자가 울상을 지어봤자 조금도 안쓰럽지 않았다.

“분명 내 이름을 찾아줄 것이라 했는데······.”

달파란의 혼잣말에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기억을 잃었나?’

사령신의 후예일지도 모르는 자가 기억을 잃었다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으으! 이건 아니잖아!”

달파란의 목소리는 쇠를 긁는 것처럼 거칠게 변했다. 동시에 눈동자에만 머물렀던 시뻘건 기류가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일견하기에도 폭주 직전의 광경이다.

“이건 아니다!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란 말이다!”

광기로 물든 눈동자가 남천휘를 향했다.

끼기기기기긱-

무게만 해도 천근에 가까울 서가들이 외부로 유형화된 기운이 밀려났다. 남천휘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을 만큼 거대한 내력이었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이대로라면 만서각의 보존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성소를 얻겠다고 목숨을 내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남천휘는 비천무상도로 일궈낸 내력을 빠르게 휘돌리려 했다. 그 순간 장난기를 배제한 재이의 기계적인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 히든 퀘스트 ‘산혼산신’이 발동했습니다.

- 산혼산신(散魂散身) 중 산혼자와 접촉 중입니다.

- ‘취백등(取魄燈)’을 읊조리는 순간 퀘스트가 수락됩니다.

산혼자(散魂者)? 산신자(散身者)?

남천휘는 달파란의 눈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혼백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두 개로 나뉘었던 눈동자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취백등.”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마치 삼장법사가 금고아를 다룬 것처럼 달파란의 기세가 자취를 감췄다. 하얗게 변하던 눈이 제 모습을 찾았고,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번쩍였다.

‘부담스럽다.’

달파란이 감격에 겨워 말했다.

“취백등이라니!”

남천휘는 달파란은 진정시키듯 손을 내저었다.

“잠깐만 진정합시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말해봐요. 내가 일단 들어는 볼게.”

달파란은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는 한쪽에서 멀뚱히 서 있던 법륜살을 응시했다. 법륜살은 반쯤 넋이 나가 있다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나, 나는 신경 쓰지 마시오.”

달파란은 이제 남천휘를 바라봤다.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한 후 달파란에게 처리하라며 턱짓을 했다. 그러나 달파란은 난감한 듯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외인 앞에서 말하는 건 좀 곤란하군.”

“아까 보니까 조금도 곤란하지 않게 처리하던데?”

달파란은 언제 광기를 표출했냐는 듯 웃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인자한 미소를 지닌 대머리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하나 뒤이은 그의 말에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 내가 최근에 무지막지한 놈을 만났거든. 힘을 소진했더니 망자는 한 명 정도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야.”

뭐가 이렇게 제멋대로야?

남천휘는 혀를 찼다.

‘어쩐지 금산혈주를 너무 쉽게 죽이더라니.’

법륜살이 뒷걸음질 쳤다.

자신과 동수였던 금산혈주와 무명초자가 죽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키웠던 수하들마저 전멸한 상태가 아닌가. 제아무리 망자라고 해도 불구덩이에 뛰어들 만큼 혼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냥은 못 보내지!”

퀘스트는 ‘삼생삼사 십리도화’였다.

어찌됐든 세 명이 죽어야 한다면 일원의 하수인인 저들이 되어야 마땅했다.

남천휘가 가볍게 몸을 띄웠다.

하나 법륜살은 더욱 빠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쌍륜을 휘둘러 양쪽서가의 책을 있는 대로 집어던졌다.

누군가에게는 중요할 수도 있지만

남천휘에게는 낡은 종잇장에 불과했다.

촤라라라라락!

수십 권의 책이 한순간에 갈가리 찢겼고, 죽간은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그 중 대부분은 법륜살을 향해 꽂혀들었다.

“흥!”

법륜살이 일륜과 월륜을 교차하여 빠르게 전방을 방어했다. 일륜과 월륜을 따라 묵빛의 기운이 채찍처럼 휘몰아쳤다.

남천휘는 인상을 썼다.

마기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평정심에 금이 가는 듯했다. 짜증과 분노가 뒤섞였고, 투기는 이내 살기로 변하여 주변을 집어삼켰다.

‘나쁘지 않은데?’

남천휘는 적당한 고양감에 히죽 웃었다.

비천무상도는 오롯이 정파의 무학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자연을 그대로 빌려와 몸에 담아둔 것이 아닌가.

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검은 건 검게, 붉은 건 붉게.

남천휘가 주먹을 말아 쥐는 순간 끈적한 기운이 뭉쳐들었다.

일반적인 마기는 역리(逆理)를 근간으로 한다.

하나의 위력을 내야할 대자연의 기운을 역으로 돌려 둘, 아니 셋으로 만들었다. 심신의 폐해가 있을지언정 위력은 보장할만 했다.

한데 남천휘의 기운은 달랐다.

마기처럼 보였지만, 이 또한 순리(順理)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당연했다.

그렇기에 폐해 없이 위력만 드러났다.

텅!

남천휘의 주먹이 꽂혀드는 순간 공간에 파장이 일었다. 동심원처럼 밀려나간 공간의 파장이 법륜살의 일륜과 월륜을 두들겼다.

터터텅!

이 또한 현월강기처럼 탄기를 응용한 것이다.

범인에게 탄기랑 경지를 상징했다.

하나 남천휘는 대자연의 기운과 상통하는 단계가 아니던가. 그러니 주먹에 머물렀던 기운을 공간으로 옮겨놓고, 멀리 떨어진 법륜살에게 보내는 건 숨을 쉬듯 자연스러웠다.

“크헉!”

법륜살은 대경실색하여 뒷걸음질쳤다.

남천휘에게는 당연했지만, 그에게는 믿을 수 없는 기사나 다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천휘가 만들어낸 묵빛의 권기는 마치 유성처럼 허공에 꼬리를 남긴 채 꽂혀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힘겹게 권기의 반탄력을 상쇄하는 순간 허공에 남아 있던 잔영이 순차적으로 자취를 감췄다.

‘절대지경의 고수라는 얘기는 없었는데?’

불현 듯 백결공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나를 함정으로 밀어 넣은 건가?’

봉황곡주와 함께 곡부남가를 공격하라고 했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좌사의 대제자인 파진악과 접촉했기에 원한을 산 듯했다.

남천휘가 재차 달려들었다.

법륜살은 자신도 모르게 잔뜩 움츠려든 채 수세에 몰렸다. 만에 하나 남천휘가 절대지경의 고수라면 승패는 자명했다. 그러니 처음부터 몸을 뺄 생각으로 기회를 노렸다.

남천휘가 법륜살의 속내를 모를 리 없다.

‘벌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버리자!’

타탓!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졌다.

오행군림보를 대성한 후 궁신탄영(弓身彈影)의 스킬 레벨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섬전(閃電)과 같은 움직임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어느새 남천휘의 손에는 죽간이 들려 있었다.

쾅!

법륜살은 죽간을 산산조각 냈다.

하나 그로 인해 온 몸으로 쏟아지는 파편을 받아내야 했다. 그가 쌍륜을 어지럽게 휘두르는 사이 남천휘가 몸을 돌렸다.

‘본래 벌은 무리를 이루는 법!’

남천휘의 신형이 사방으로 찢겨나갔다.

잔영은무(殘影隱霧) 역시 오행군림보를 대성한 후 크게 변화했다. 둘로 나뉘었던 잔영은 넷으로 늘어났고, 스킬을 펼칠 때마다 광풍이 휘몰아치며 흙먼지가 자욱하다. 그로 인해 넷으로 늘어난 잔영마저 안개에 가려져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달파란은 그 모습을 보며 소리 없는 탄성을 흘렸다.

‘운향성세! 비왕등천각! 옥소탕음에 이어 사상무계영까지! 희미했던 기억의 조각이 맞춰진다. 비천무상도가 확실해!’

남천휘의 잔영이 번쩍일 때마다 죽간이 날아들었다.

쾅! 쾅! 쾅! 쾅!

법륜살의 마기가 살아 움직이듯 퍼져나가며 죽간을 박살냈다. 그는 네 개의 잔영이 만들어낸 공세를 무력화한 후 숨을 헐떡였다.

“헉! 헉! 헉!”

법륜살의 정수리는 땀으로 번들거렸고, 눈동자는 빠르게 좌우를 오갔다.

‘어디냐? 어디야?’

그 순간 장막처럼 펼쳐졌던 먼지구름이 묘한 반응을 일으켰다. 마치 누군가 잡아끄는 것처럼 한 방향으로 휘몰아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법륜살이 반응하기도 전에 와류(渦流)를 그렸다. 와류는 만들어진 것보다 빠르게 줄어들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남천휘의 손날이 등장하는 순간 엄청난 기의 폭풍이 응집됐다.

‘맙소사!’

법륜살로서는 남천휘가 절대지경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쇄애애애액!

손끝이 법륜살의 아랫배를 노렸다.

쌍륜이 교차하여 손을 감싼다.

이대로 쌍륜을 좌우로 잡아당긴다면 가운데 끼인 손은 조각조각 잘릴 터였다.

하나 남천휘는 흙먼지로 시야를 가리며 2초의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완성된 일기당천을 내지른 상태였다.

콰쾅!

현월강기와 보이는 것이 다를 뿐 내포된 것은 같다.

법륜살의 일륜과 월륜이 쪼개졌다.

묵철을 섞어 만든 기병이 내공을 이겨낼 수 없었다.

하나 법륜살은 아까워할 사이도 없이 보신에 힘써야 했다.

남천휘의 손날은 여전히 아랫배를 노렸다.

“크흑!”

법륜살은 자신의 혈도를 빠르게 눌렀다.

그 순간 비대했던 몸뚱이가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포대 같던 뱃살이 움푹 파였다.

남천휘의 손은 허공을 꿰뚫었다.

꽈득!

수도(手刀)는 장심(掌心)을 전면으로 한 채 다섯 손가락을 굽혔다. 호조(虎爪)를 만듦과 동시에 손목을 꺾어 옆구리를 긁었다.

쉬리리릭!

하나 이번에도 허공을 휘저어야 했다.

법륜살의 허리가 미꾸라지처럼 휘더니 내력을 흘려내는 것이 아닌가. 남천휘는 엄지를 펴고, 네 손가락을 붙인 채 호구(虎口)로 법륜살의 갈비뼈를 올려쳤다. 제아무리 법륜살의 유가기공(油迦奇功)이라고 해도 변화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콰직!

남천휘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호구가 법륜살의 갈비뼈를 으스러트렸다. 호구는 갈비뼈를 하나만 부순 채 사라지지 않았다. 유가기공으로 인해 법륜살의 몸뚱이는 유연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쇄골이 으스러질 때까지 살이 늘어나버렸다.

“크아아아아!”

남천휘는 반대편 손으로 책상을 치듯 법륜살의 가슴을 찍었다.

둥-

심장이 터졌다.

그 증거로 법륜살의 칠공에서 검붉은 피가 흘렀다.

털썩!

남천휘가 자세를 바로 하고, 법륜살이 쓰러졌다.

그 때 달파란이 박수를 치며 연호했다.

“좋군! 좋아! 비천무상도는 여전하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아군이야? 적이야?’

재이가 찬양하듯 고조된 음성으로 알렸다.

◎ 삼생삼사가 이뤄졌습니다.

- 정사마 중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 정사마 중 하나가 사라지거나, 패퇴하면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패퇴의 경우에 대비하여 전장의 통제가 해제됩니다.

‘큰 덩어리 셋이 죽은 건 맞지. 한데 살아 있는 건 대머리와 나 뿐이잖아?’

남천휘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대머리는 남천휘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두려웠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누가 있어. 여기 어디 숨어 있는 것 같은데?”

남천휘의 읊조림에 대머리는 손바닥을 쳤다.

“아! 아까 밖에 허여멀건 한 놈이 숨어 있더라고.”

“갑자기 나타났으면서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 서위의 계파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지. 한데 망자가 아니라서 그냥 뒀어. 내가 머리는 벗겨졌어도 살인마는 아니거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지 마!

남천휘는 이를 갈며 물었다.

“지금은 어디 있는데?”

대머리는 슬쩍 창밖을 보더니 눈을 끔뻑였다.

“없네. 도망쳤군.”

남천휘는 미간을 좁힌 채 이마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퀘스트를 어중간하게 끝냈더니 백결공에게 도망칠 기회를 줘버렸다.

‘이게 다 네 탓이야!’

◎ 대머리 탓이지요.

너까지 대머리라고 하지 마!

남천휘가 인상을 쓰는 사이 달파란이 슬쩍 다가섰다.

“피라미는 잊고, 우리 중요한 이야기를 해보세. 자네와 나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은 것 같아.”

떠돌이 약장수처럼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달파란이 눈을 빛냈다.

“몸의 대화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어. 자! 그러니······.”

남천휘는 귀찮음에 딴청을 피우다가 화들짝 놀랐다.

눈앞의 상대는 멀쩡한 듯 보이지만,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미친놈이 아닌가. 간절한 눈빛을 보내면서 투기를 흩뿌리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라.

“잠깐!”

달파란은 남천휘가 관심을 보이자, 투기를 거뒀다.

내공의 수발이 자유자재인 것으로 보아 엄청난 고수가 분명했다. 한데 남천휘 앞에서는 주인의 관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든다.

간간히 이빨을 드러내서 그렇지.

“이곳은 대화를 나누기 적당한 곳이 아니야.”

달파란은 눈을 끔뻑였다.

“조용하고 좋은데.”

“아니야!”

남천휘가 화를 내자, 달파란은 어깨를 움츠렸다.

“자네의 말이 맞아. 여기는 책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야. 어디 한적하고 좋은 곳에 가서 몸의 대화를 나눠보세.”

몸의 대화라는 말이 흘러나올 때마다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일단 나갑시다.”

“좋아! 저기 뒷산이 좋아 보이는군.”

너무 가깝다.

퀘스트의 명칭이 있으니 최소한 십 리는 가야 했다.

남천휘는 지도를 확대한 후 괜찮은 장소를 골랐다.

“세가의 정문에서 서쪽으로 한참을 가면 북조산이외다. 북조산 정상에서 만납시다.”

달파란은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뭐가 됐든 둘만 있을 수 있으면 만사형통인 듯했다.

‘이건 또 이것대로 찝찝하네.’

달파란이 남천휘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뭐하나? 밤은 길지 않아. 어서 가세.”

“아! 먼저 출발하세요.”

남천휘가 짐짓 사양을 했지만, 달파란은 아이처럼 떼를 썼다.

찝찝하고, 귀찮은 존재다.

“몸의 대화를 하자고 하지 않았소?”

“그랬지.”

“일단 신법으로 우열을 나눠 봅시다!”

“응?”

남천휘가 호기롭기 외쳤다.

“강호의 사내로서 무예를 익혔다면 몸의 균형을 먼저 바로 세웠을 게요. 기본기를 확인하려면 신법이 최고지! 안 그렇소?”

남위기에서 급하게 검색한 내용이다.

진위 여부는 알게 뭐야.

달파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군! 후우.”

그가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 두 다리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쓸데없이 내력이 넘치는 대머리라니까.

“셋을 세고 출발하지!”

남천휘는 자세를 취했다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래,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고.

“이봐, 대머리. 아니 달 대협. 혹시 도기를 만든 상태에서도 신법을 펼칠 수 있소?”

달파란은 난색을 표했다.

“글쎄다.”

아, 안 되는 건가.

“칼이 없어서.”

촤랑-

남천휘가 수련용 직도를 건넸다.

“이거 쓰시오.”

“오! 좋은 도야. 왠지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군. 도기를 일으키는 대신 숫자는 내가 헤아리지. 괜찮겠지?”

달파란의 거래에 남천휘는 기꺼이 응했다.

“좋소!”

“셋, 둘, 하나!”

쾅!

만서각의 창문이 통째로 부서졌다.

그 사이로 달파란의 신형이 빛살처럼 튕겨나갔다.

마치 궁신탄영을 쉼 없이 쓰는 것처럼 빠르다.

남천휘는 달파란이 도를 한껏 치켜든 채 내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붉은 도기가 넘실거리며 끊임없이 이어졌다.

“야! 됐지? 대머리가 먼저 도망갔다.”

남천휘는 으스대듯 말을 이었다.

“도에 맺힌 불이 십 리를 갈 것이야. 완벽하지?”

◎ 십리도화는 의미가 없습니다만······.

이건 또 무슨 골패 밑장 빼는 소리지요?

퀘스트 명칭이 삼생삼사 십리도화잖아.

남천휘의 으름장에 재이는 언제나 그렇듯 제 할 말을 이어갔다.

◎ 퀘스트 ‘삼생삼사 십리도화’가 완료되었습니다.

- 보상으로 ‘조상을 공경하는 만큼 천외(天外)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 산혼자와 접촉하세요.

남천휘는 혀를 찼다.

“간다. 가.

만서각을 벗어나는 남천휘의 귓가에 재이의 알림이 이어졌다.

《특급강호인승급체계 제 3막이 해금되었습니다.》

- 제 3막 ‘신마행(神魔行)’이 시작됩니다.

- 상위 정보가 공개로 전환됩니다.

- VIP 최종 등급이 열렸습니다.

- 하부 목록 중 ‘비책’이 개방됩니다.

- 신화급 무공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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