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37화 (237/305)

104, 머리가 좋아졌다. (3)

띠링-

◎ ‘도로마무(刀露摩舞)’가 활성화됩니다.

- 칼로 이슬을 갈아내듯 섬세한 검무입니다.

- 5M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이 증폭됩니다.

“도로마무, 도로마무. 도로마무!”

검무의 설명처럼 도로무마 자체는 칼로 풀잎에 맺힌 이슬을 몇 겹으로 갈아내듯 섬세했다.

이슬에 칼을 댈 때에는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칼의 투로(套路)는 부드럽고, 느렸다.

그리고 이슬을 베어내기 직전 움직임이 멈췄다.

남천휘가 사선으로 칼을 겨눈 채 멈춰서는 순간 연회장의 모든 것이 정지된 듯했다.

“도로마무, 도로마무.”

그리고 예의 주문과 같은 한 마디가 흘러나오는 순간 칼끝이 잘라낸 이슬을 튕겨낸 것처럼 빠르게 번뜩였다.

“하아.”

여기저기서 한 숨이 흘러나왔다.

남천휘의 검무로 인해 억눌렸던 모든 것을 토해내듯 장탄식이 들렸다.

하나 검무는 끝나지 않았다.

투로가 이어질수록 후기지수들의 감정이 등락(登落)을 계속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어 보였거늘.’

남천휘는 검무를 펼치며 후기지수들의 표정을 살폈다. 이미 호감을 가졌던 상태가 증폭되다보니 볼을 붉히는 자도 있었다.

심지어 동성과 이성을 가리지 않았다.

수염이 숭숭 난 녀석이 깍지를 낀 채 자신을 보며 눈을 빛내는 광경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날을 잡아서 특기를 정리해야겠는 걸.’

특기를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합성과 승급.

같은 등급의 특기를 최고 레벨까지 올린 후 합성을 하면 상위 등급의 특기가 무작위로 부여됐다. 반면 승급은 중심 특기를 두고, 쓸데없는 특기를 먹여서 상위 등급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자수정도 인벤토리가 터질 만큼 모았으니······.’

회회회판으로 뽑으면 잡다한 특기가 쏟아질 터였다.

그러려면.

‘이벤트 언제 주냐고?’

남천휘는 연말과 연초 이벤트에 크게 데이고 난 후 신중하게 시기를 조절했다. 산처럼 쌓아놓은 자수정을 볼 때마다 한 번만 돌려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하지만 욕망을 억누른 채 이벤트가 열리기만을 간절히 기원했다.

그러나 이십사절기 중 대한(大寒)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곧 입춘(立春)이다.

만약 입춘이 지나가면 여름까지는 행사라고 할 만한 것도 없지 않은가.

대답해라! 이 요망한 것아.

◎ 이벤트란 갑작스럽기에 이벤트라고 하지요.

◎ 그보다 자칫하면 고백이 쏟아질 수도 있겠군요.

“황홀하군.”

누군지도 모를 사내놈의 혼잣말을 듣는 순간 냉수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얼굴 붉히지 말란 말이다!

남천휘는 잠시 재이에 대한 처우를 뒤로 미뤘다.

그래봤자 할 수 있는 건 먹히는지 아닌지도 모를 차단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박자를 조금만 빠르게.’

이대로라면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사내놈들이 달려들 기세였다.

남천휘의 검무가 변화했다.

섬세함은 여전했으나, 전체적으로 속도가 빨라졌다.

그와 동시에 검무를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의 감정은 더욱 들끓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놈이 튀어나왔다.

얼굴을 붉힌 채 달려드는 놈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다행이다. 반한 놈이 아니라서.’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린 채 상대를 맞이했다.

검을 뽑은 자는 다름 아닌 신기오룡 중 장강대상단의 소단주였다.

후기지수들이 호의를 보였던 것과 달리 신기오룡은 처음부터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것이 도로마무로 인해 한없이 증폭된 것이다. 적대감은 분노와 증오로 변했고, 마침내 살의로 성장했다. 그리고 신기오룡 중 내공이 가장 약한 소단주가 발끈한 것이다.

“같잖은 놈이 계집처럼 뭐하는 짓이더냐!”

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모양새가 검법을 익히기는 한 듯했다. 하나 허점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 될 만큼 엉망진창이다.

돈으로 수하를 부리며 패악질을 해왔겠지.

‘일도에 머리통을 후려치고 싶지만······.’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이를 갈며 외쳤다.

“이 새끼가 기습을 해?”

검을 튕겨내고 놈의 가슴을 걷어찼다.

와장창!

소단주는 술상을 뒤엎으며 나뒹굴었다.

적당히 힘 조절을 했으니 다시 일어날 것이다.

최소한 십여 합 정도는 어울려줘야 신기오룡도 만만하게 여기고 덤벼들지 않겠는가.

한데 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 이걸로 기절한 거야?’

◎ 경험치가 1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럴 만도 하다.

약해도 이렇게 약할 줄이야.

새삼 이러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산동을 일통했으니 중원을 질주해야 마땅했다. 한데 코흘리개를 상대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이게 다 일원 때문이다!’

남천휘의 자괴감이 깊어지는 만큼 일원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

동시에 우려도 됐다.

신기오룡이 겁을 먹고 머뭇거린다면 오늘 연극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공산이 컸다.

“야! 이 개새끼야.”

“죽여!”

거품은커녕 활화산이 되었군.

남천휘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네 명의 우애로운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채채챙!

신기오룡 중 가장 강한 건 운룡쌍사방(暈龍雙獅幇)의 소방주인 적인걸이다. 신기오룡은 무림맹에서 의기투합한 자들이 아닌가. 그렇기에 석자경의 집안은 하북의 석가장이고, 적인걸의 운룡쌍사방은 개봉에 위치했다.

하남성 동북부의 개봉은 개방의 총타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거지의 습성 상 총타라고 불리는 곳만 십여 곳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널리 알려진 것은 개방이었지만, 실제로 개봉의 실권을 쥔 쪽은 운룡쌍사방이다. 한 자루 창으로 용의 무리를 연상케 하는 창법과 두 마리의 사자를 방불케 하는 권으로 유명한 방파였다.

그런 곳의 소방주인 적인걸이 선두에 섰다.

철컥!

남천휘를 향해 질주하는 가운데 두 자루의 단창을 결합했다. 그렇게 장창의 끝으로 남천휘를 겨눈 채 손목을 비틀었다.

‘뚫어버린다!’

하나 그 순간 남천휘의 신형이 눈앞에 사라졌다.

말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마치 귀신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백룡도의 도신이 적인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각-

적인걸은 개구리처럼 대자로 뻗은 채 혼절했다.

가장 강한 동료가 쓰러지니 녀석들이 머뭇거렸다.

천리표국의 소국주가 칼끝을 슬쩍 내리며 손을 뻗으려 했다.

아마 그만 하자고 할 생각이겠지.

‘그건 네 생각이고.’

남천휘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어디서 패악질이나 하던 것들이 건방지게!”

퍼퍽!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빠각!

한 방에 한 놈씩.

남은 건 오늘의 주인공인 석자경이다.

이 놈은 쉽게 보내줄 수 없지.

남천휘는 석자경의 오금을 걷어찼다.

“으아악! 이 새끼가.”

석자경은 무릎을 꿇은 채 소리쳤다.

이처럼 굴욕적인 장면을 연출했으니 놈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 게다.

퍽퍽퍽퍽퍽!

석자경은 피투성이가 된 채 악에 바친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남천휘는 분노한 듯 석자경을 두들겨팼다.

그 때 천수련이 남천휘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상공, 그만 해요. 그럴 가치가 없어요.”

석자경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아마 육신의 고통보다 천수련의 한 마디가 더 뼈아팠으리라.

[오! 우리 개똥이, 연기 잘하는데?]

남천휘는 흐뭇함을 숨기 채 혀를 찼다.

“후. 그도 그러네. 꺼져라. 이곳은 현월회와 산동강호를 존중하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자리다.”

황보장천이 손짓을 하자, 수하들이 달려와 석자경을 비롯해 신기오룡을 부축했다.

“크흑! 두고 보자. 가만 두지 않을 테다.”

잠시 후 시비들이 난장판을 정리했고, 분위기는 금세 처음으로 돌아갔다.

신기오룡이 시작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남천휘의 마지막 말처럼 오늘의 싸움은 산동과 외지의 싸움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산동에 적을 둔 후기지수들은 여전히 도로마무의 감흥을 지닌 채 연회를 즐겼다.

‘크큭, 이제 석자경이 불러낼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네. 네 생각은 어때?’

◎ 씨를 뿌리고 물을 주셨으니 수확을 기다리면 되겠군요.

그리고?

◎ 인간의 심리를 활용하여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 S급 특기 통찰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 A급 특기 심상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좋구나!

자! 이제는 연회를 즐겨 보자.

*

씨를 뿌리고, 물을 준 효과는 확실했다.

석자경은 비온 뒤의 죽순처럼 피투성이가 된 채 가문의 어른을 찾아갔다.

무림맹의 장로이면서 석가장의 장로인 석풍은 피투성이가 된 조카를 마주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완전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한 개종자입니다! 무공도 희한할 걸 쓰더라고요. 분명 사파나 마교의 무공을 숨어서 익힌 것이 분명해요. 적인걸도 한 방에 쓰러졌어요.”

석자경은 숨을 쉴 여유도 없이 빠르게 입을 놀렸다.

남천휘를 천하에서 가장 나쁜 존재로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을 듯했다.

반면 석풍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숙부! 지금 당장 아버지께 전해서 본장의 무인들을 보내달라고 하세요. 남천휘를 죽여버리기 전에 제가 잠을 잘 수 없다고요!”

석자경은 붉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온갖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하나 그의 말이 실현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석가장주처럼 냉철한 사람이 자식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수백 리를 달려와 아들 뻘되는 남천휘와 겨룰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봉황곡주가 죽었고, 황보세가주가 쓰러졌다.

하나 석자경은 떼를 쓰듯 애원했다.

석가장이 하북의 패주가 된 까닭은 정세의 영향의 가장 컸다. 하나 석풍이 무림맹의 장로가 된 이후 온갖 이권을 물어온 탓에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석가장 내에서는 가주를 제외하면 석풍의 입김이 가장 강했다.

석풍은 사람좋은 미소를 보인 채 석자경을 달랬다.

“그래, 네 말대로 하마. 내일 당장 형님께 서찰을 보내마. 일단 돌아가서 치료를 하고 정양을 하도록 해. 그래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석자경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의 말이 옳습니다.”

석풍은 석자경이 의당으로 돌아간 후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잠시 후 그는 야음을 틈 타 처소를 벗어났다.

그리고 문상 백결공이 머물고 있는 별원의 문을 두드렸다.

석풍은 이미 석가장의 장로보다, 무림맹의 장로보다 일원의 한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남천휘와 석자경 사이의 일을 소상하게 일러바쳤다.

“흐음. 밖에 있는가?”

“하명하시지요.”

백결공은 수하를 풀었다.

잠시 후 돌아온 수하들이 연회에 참석했던 후기지수들의 반응을 전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오만하고, 혈기가 넘치더군요. 하나 이상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성향이 아니었거든요.”

석풍은 백결공의 혼잣말을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저도 알아봤습니다. 분명 황보세가 이전에는 성격이 급하기는 하나,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한데 황보세가를 먹은 이후 자신도 모르는 본성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요?”

“하긴 산동 전체를 먹은 시점이니.”

두 사람은 남천휘에 관하여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과하고, 패배한 적이 없으며, 성격이 불 같다면...”

백결공이 말끝을 흐린 채 입꼬리를 올렸다.

석풍이 말을 받았다.

“혼자 떼어놓기만 하면 되겠군요.”

“일청대사만 없으면 망자들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일단 현월회 창립은 지켜본 후 날을 잡도록 합시다.”

석풍이 눈을 빛냈다.

“제가 석자경을 이용해서 남천휘를 불러내도록 하겠습니다.”

“석 수석만 믿습니다.”

일원의 하남 수석 석풍이 대례를 올린 후 자취를 감췄다.

*

남천휘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도로마무의 영향 때문에 술을 권하는 횟수가 늘었다. 특히 수염이 숭숭 난 사내놈들은 남천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힘에서 밀린 여인들이 열심히 흘겨봤지만, 사내놈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남 대협, 장부의 호연지기란 능히······.”

그냥 높은 산에 올라가라.

“용린협께서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견마의······.”

너 말고도 많아.

“제가 어려서부터 형님이 있었으면······.”

아저씨, 왜 이러세요.

천수련과 연하연마저 밀려난 채 허망함을 금치 못했다. 그녀들은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 참, 한 명도 벅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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