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35화 (235/305)

104, 머리가 좋아졌다!

104, 머리가 좋아졌다!

침착하자.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개똥이에게 슬쩍 손을 흔들고, 제비에게 눈짓을 했다. 그걸 지켜보던 개구리의 눈동자가 한껏 커졌다.

안 된다. 이 개구리야.

현재 황보세가의 외원에는 내일의 행사를 위해 거대한 무대를 꾸며놓았다. 한데 비라도 쏟아지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될 터였다.

‘너는 알고 있었지? 경고 안 하냐?’

◎ 네.

- 미연시를 활성화하시겠습니까?

그렇게만 되면 소혜는 몰라도 천수련과 연하연의 속내를 미리 알 수 있게 된다. 손이 눈보다 빠를 수는 있어도, 미연시보다는 느릴 터였다.

‘미연시 켜라.’

예전과 달리 남천휘의 허락이 있어야만 미연시가 활성화됐다. 오랜만에 시야가 위아래로 나뉘며 메뉴가 재구성되는 순간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천수련과 연하연의 머리 위로 간략한 정보가 등장했다.

이름 : 연하연(♡♡♡)

지위 : 무소속

미모 : 갑(甲)

몸매 : 갑(甲)

상태 : 뜻밖의 상황에 동요하고 있습니다.

하트 3개를 보는 순간 왜 이렇게 마음이 뿌듯한지.

한데 연하연과 달리 천수련의 정보창은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이름 : 천수련(♡♡)

지위 : 검후의 후계자.

미모 : 갑(甲)

몸매 : 갑(甲)

상태 : 그리워했던 대상을 만나서 즐거워합니다.

왠지 모르게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호감도는 100이 되면 더 이상 표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후로는 하트 싸움이다.

남천휘만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데 천수련은 잠시 헤어져 있던 시기에 하트를 2개나 붙이고 돌아왔다. 상태 목록에 적힌 문구를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한데 몸매 상태가 변한 건 그로서도 의외였다.

◎ 사람에 따라 성장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키도 조금 큰 것 같다.

그리고 체형의 굴곡도 훨씬 도드라졌다.

기특함이 배가 됐다.

‘뭐랄까?’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마음가짐보다 흐뭇함이 더 컸다. 한데 그 와중에 시야를 스쳐가던 소혜를 보는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저건 뭐냐?’

소혜의 머리 위에는 ‘미연시 예비 대상자’라는 문구가 둥둥 떠 다녔다. 지금껏 소혜와 관련이 없다고 여겼던 미연시가 처음으로 반응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상했다.

소혜의 외모는 수련에 환장한 근육의 실체화라고 여겨졌던 양대안이 혼을 뺏길 정도였다. 비록 남운군을 공경하는 마음가짐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어여쁜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 미연시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미적 서열이 기준치 이하라고 여겼다.

그저 강호에 미인이 많겠거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 소혜는 어립니다.

뭐라는 거냐?

‘소혜가 벌써 열아홉이야. 벌써 혼인해서 가정을 꾸린 친구들도 많아.’

◎ 시스템에 규정된 법규에 어긋납니다.

- 예비 대상자의 활성화 기간은 일 년 후입니다.

천상계라고 하면 자유분방할 줄 알았는데 깐깐하기가 법가나 다름없지 않은가.

‘흥! 한비자가 살아 돌아온 줄.’

남천휘가 사자대면을 코앞에 뒀을 때 곁에서 헛기침이 들려왔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일청대사는 지금껏 본 적이 없을 만큼 표정을 굳힌 채 남천휘를 응시했다.

“비경회와 일원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했지 않은가. 그리고 자네도 내가 나설 수 없다는 상황을 이해했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는가?”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알겠다고 했지요. 이해해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가?”

“저는 비경회의 실체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 일원은 직접 겪어봤지요. 봉황곡은 금문이니 그렇다고 칩시다. 한데 정파 내부에도 일원의 뿌리는 깊더군요. 그리고 신승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심지어 무림맹의 문상까지 일원이라고 하시는 상태잖습니까. 그러니 제가 신승의 말만 믿고 행동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일청대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문이나 명성을 신뢰의 증거로 내세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신의 입으로 무림맹 내부에도 일원이 뿌리를 내렸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에서 소림이니 믿어달라고 하는 건 떼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달마시안으로 조사 아닌 조사를 행해왔던 건 강호의 안위를 위해서였네. 한데 자네로 인해 강제로 정체를 드러내게 되었어.”

남천휘는 히죽 웃었다.

“산동도 강호잖아요. 황보세가도 현월회도 강호입니다. 그리고 저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강호인입니다. 그러니 신승께서 좀 보살펴주시지요.”

기름을 바른 것처럼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일장연설에 일청대사는 침음만 연발할 뿐이다.

‘후훗, 이쪽은 준비한 시간이 다르다고.’

남천휘는 지난 며칠 간 틈 날 때마다 남위기를 활용하여 비경회와 일원을 조사했다. 핵심 단어를 알고 검색을 하니 단편적인 정보가 나타났다.

하나 여전히 실마리가 부족했다.

그저 일청대사의 말처럼 비경회와 일원은 확실히 존재했고, 그들의 구원 또한 신마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 후에는 일청대사를 궁지에 몰 수 있는 방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병법서와 군략가들의 일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일청대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복잡한 표정을 보였다.

“신승, 저는 협객이나 영웅이 아닙니다.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만큼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 눈앞의 불의를 해소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평범한 존재입니다. 저와 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었으니, 너무 고깝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잠깐의 침묵 후 일청대사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남 소협의 뜻도 이해하네. 모두가 한마음일 수 없는 것이야 말로 자연의 섭리겠지. 아쉽지만, 이해하겠네.”

예상 보다 일청대사의 수양은 대단했다.

득도한 고승처럼 금세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쯤 했으면 달래줘야지.’

어찌됐든 무림맹과 척을 질 수는 없지 않은가.

“문상이 신승을 봤으니 아예 무대에 오르시지요.”

일청대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내가 비경회라고 의심하고 있었네. 오늘 일로 확신할 수도 있지.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지는 않을까 우려되는군.”

“오히려 잘 됐지 않습니까?”

“뭐라?”

남천휘는 슬쩍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이미 저 자는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세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겠지요. 한데 신승이라는 변수가 등장한 겁니다. 운이 좋다면 실기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일청대사의 일그러졌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잠시 실망했을 그를 한 번 더 추켜세웠다.

“무엇보다 신승께서 계신다면 놈도 백주대낮에 혈겁을 저지르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양민들의 피해도 없을 거예요.”

남천휘의 능수능란한 언변에 일청대사의 표정도 제 빛을 찾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할 나위가 없지. 내일 내 자리로 만들어주게. 참석하겠네.”

특기 변설 레벨을 최고까지 올린 보람이 있구나.

일청대사는 어깨를 활짝 폈다.

잠시 후 간간히 이쪽을 응시하는 문상을 보며 눈인사를 하기도 했다.

‘좋아. 이렇게 한 건 해결!’

◎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 천수련이 연하연에게 호기심을 보입니다.

- 연하연이 천수련에게 호기심을 보입니다.

이 놈아!

강호를 집어삼키려는 어둠 속의 일원과 강호를 수호하려는 정의의 비경회가 맞붙은 상황이란 말이다.

한데 여자가 문제란 말이더냐?

‘문제이기는 한데.’

남천휘는 행렬의 후미를 바라봤다.

천수련은 여전히 천응검후의 곁을 지켰다.

그녀는 미색과 몸매가 범상치 않은 연하연을 힐끔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연하연 역시 토끼 고기가 든 자루를 늘어트린 채 눈을 끔뻑였다.

남천휘는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여유롭게 눈인사까지 하면서 문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딱히 지금 해결할 필요는 없잖아.’

◎ 이대로라면 사태는 좋지 않은.......

됐어. 상관없다.

어차피 혼인을 약속한 것도 아니고, 몸을 섞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가깝게 여기는 관계가 아니던가.

남천휘는 떳떳했다.

◎ 나쁜 남자로군요.

그래도 떳떳했다.

‘인기 많은 나쁜 남자니까 괜찮아.’

무엇보다 일원과 비경회가 맞붙었다.

또한 산동 정세의 향방을 가를 현월회의 창립 행사가 코앞이다.

핑계거리가 충분하여 명분처럼 보일 정도였다.

◎ 머리가 좋아지셨군요.

뼈가 있는 칭찬이지만, 고맙게 받아들여주마.

‘이건 시작에 불과해! 진짜 머리가 좋아졌다는 증거를 오늘 밤에 보여주마!’

*

백결공은 얼굴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듯했다.

그만큼 일청대사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저 노괴가 이 곳에 있다는 건.......’

소림의 뜻일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비경회의 뜻이고, 무림맹주와 총군사까지 개입된 결과였을 것이다.

‘나를 의심하고 있군. 어쩌면 확신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문제는 남천휘와 일청대사의 관계였다.

그가 마지막에 확인한 일청대사의 위치는 산동이 아니었다. 그러니 일청대사가 산동성에 나타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터였다.

‘지켜봐야겠어.’

백결공은 멀리 있는 일청대사를 향해 기꺼이 예를 표했다.

그는 일원에 속했으나, ‘하늘’의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애초에 멸문한 사마세가의 복수를 위해 합류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머리로 승부하려 했기에 가전무공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기에 달마시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 십이망자는 달랐다.

[금산혈주에게 전해라. 오늘 밤은 그냥 넘어간다. 행사 이후 일청이 떠나면 바로 손을 쓴다.]

떠나지 않는다면 함께 처리할 뿐이다.

[전하겠습니다.]

백결공의 뒤에 있던 호위가 슬쩍 빠져나갔다.

잠시 후 현월회의 군사인 사마의를 뒤로 한 채 남천휘와 일청대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강호의 기린아나 다름없는 남 대협을 이렇게 만나는군요. 반갑습니다. 무림맹의 말직을 맡고 있는 백결공이라 합니다. 항마신승께서도 계셨군요. 오랜만에 뵙니다. 강녕하셨는지요.”

백결공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오랜만이외다.”

반면 일청대사는 속내를 숨기지 못한 채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

남천휘는 그 모습에 남몰래 한 숨을 내쉬었다.

‘아! 같이 연기 못하겠네.’

*

그 날 밤 황보세가의 곳곳에서 연회가 개최됐다.

당연히 후기지수들을 위한 연회도 열렸다.

황보장천은 일부러 연회 장소를 세가 밖으로 잡았다. 그 또한 강호의 선배들보다 또래가 편했다. 그러니 오랜만에 요대를 풀고 한껏 즐길 요량이었다.

“소가주. 오랜만이외다.”

석가장의 소장주인 석자경은 황보장천의 환대에 미소를 보였다.

“이게 몇 년 만이지요? 일전보다 신수가 훤해지신 것을 보니 소문이 맞았군요.”

“무슨 소문이기에?”

“황보세가를 홀로 이끄는 장부시라고요.”

황보장천은 석자경의 너스레에 박장대소를 했다.

“석 소가주도 조만간 하실 일이잖소. 우리 같이 큰일 할 사람들은 자주 어울리며 친분을 다져야 할 필요가 있지. 이쪽에 앉아요. 오늘 제대로 즐겨봅시다.”

“아! 이쪽은 제 친우들입니다. 강호동도들이 미력하나마 신기오룡이라 불러주더군요.”

석자경이 네 명의 후기지수를 소개할 때마다 황보장천은 탄성을 흘렸다.

“석 소가주의 친우라면 나와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만 하시오.”

“위명이 자자하신 황보 소가주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들끼리 얼굴에 금칠을 하는 사이 별채의 자리가 대부분 주인을 찾았다. 이곳에는 사절단의 후기지수뿐 아니라 제남과 곡부 인근의 젊은 무인들이 가득했다.

석자경을 비롯한 신기오룡은 수십 명의 환대를 받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산동의 촌뜨기들에게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지.’

자신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기 위해 애쓰는 후기지수들을 볼 때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제법 미색이 출중한 여인들도 보였으니 오늘 밤은 선택만 하면 될 듯했다.

그 때 별채의 안내를 하던 황보장천의 수족이 황급히 다가왔다.

“소가주, 검후의 제자인 천 소저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석자경의 얼굴이 활짝 폈다.

오후 내내 자신과 함께 가자고 졸랐음에도 단칼에 거절하던 그녀가 아닌가.

‘훗, 그렇게 튕기더니 결국은 넘어오는군.’

그는 천수련의 얼굴을 떠올리느라 뒷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하하, 이 놈의 인기란.”

황보장천은 눈을 끔뻑였다.

하나 석자경은 천수련을 맞이하기 위해 상석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러나 제대로 일어나기도 전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춰서야 했다.

천수련은 혼자가 아니었다.

멀끔하게 생긴 놈의 좌측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미소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멀끔하게 생긴 놈의 우측에는 천수련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미색을 자랑하는 미녀가 자리했다.

‘저 새끼는 뭐지?’

석자경은 멀끔하게 생긴 놈, 또는 저 새끼의 정체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내가 들어서는 순간 저들끼리 떠들던 후기지수들이 일제히 일어나 손을 모았다. 그리고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닌가.

“용린협을 뵙습니다.”

석자경은 똥을 씹은 것처럼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황보장천이 그런 석자경을 똥통에 쳐 넣는 듯한 행동을 했다. 마치 죽은 부모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천휘야. 왔어. 이리 와. 내가 자리 마련해놨다.”

석가장에서 키우는 개도 자신을 저렇게 반기지는 않으리라.

‘이거 뭐하자는 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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