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29화 (229/305)

101, 달마시안(達磨始眼). (4)

남천휘는 영문 모를 이야기를 자신도 모르게 되뇌었다. 그러다 보니 회종의 몸놀림에서 빈 틈이 발견됐다. 칼을 꽂아 넣으면, 아니 주먹만 날려도 타격을 줄 수 있을 터였다.

하나 때리지 않았다.

회종을 적이 아니라 비무 상대로 대하는 순간 안계가 열리는 듯했다.

빈틈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허허실실?’

일부러 빈 틈을 보인 건가 싶을 만큼 잦은 허점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던 중 일권을 찔러 넣던 회종과 눈이 마주쳤다.

맑다.

한 점의 사심 없이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투기가 잦아들었다.

그 순간 깨우쳤다.

이건 비무가 아니다.

이건 싸움도 아니다.

이건 가르침도 아니었다.

이건 시험이다.

‘뭐에 대한?’

남천휘는 회종의 투로에 맞춰서 몸을 움직였다.

그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소림의 이름값이나 회종의 맑은 눈빛과는 상관없다.

시스템이 확인하지 않았던가.

‘퀘스트가 발동했으면 완료를 해야지.’

무엇보다 초절정으로 가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 끝이 지옥이라고 해도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취소. 그래도 지옥은 아닌 것 같아.’

남천휘는 피식 웃으며 회종의 손을 걷어냈다.

그러자 회종은 등을 바닥으로 한 채 상체를 뒤집었다. 용조와 호조가 연이어 전방을 휘젓는 순간 재차 경구가 이어졌다.

고오오오-

남천휘는 숨을 내뱉었다.

회종의 읊조림을 따라할 때마다 단전의 내공이 꿈틀거렸다. 마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려는 듯 요동을 친다. 하나 자연지기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으니 탁기가 존재할 리 없다.

그러자 내공은 혈맥과 혈도를 질주했다.

비천무상도의 초식을 이어가는 순간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내력이 평소와 달리 전신세맥으로 흩어졌다고 모이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엇!’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치 구멍 뚫린 대나무 통에 물을 흘려 넣은 것처럼 곳곳에서 누수가 발생했다. 다행히 목적지에서 모이기는 했지만, 낯선 광경에 숨이 턱 막혔다.

하나 남천휘는 억지로 거스르지 않았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재이가 경고했으리라.

지난 번 무적자의 일을 떠올려 보라.

시스템은 고난과 역경을 줄 뿐 남천휘의 생사 자체는 끔찍하게 위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순응했다.

거기에 더하여 세맥(細脈)을 눈여겨봤다.

세맥이란 단순히 내공의 통로가 아니라 생사가 달린 비처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고명한 심법이 아니라면 섣불리 세맥에 내력을 담지 못했다.

거기까지 떠올리는 순간 눈앞에서 별이 번쩍이는 듯했다.

‘달마십삼수의 수법은 평범하지만, 수법에 담긴 구결은 범상치 않아.’

그렇다면 달마십삼수 또한 비천무상도와 같은 부류가 아닐까 싶다.

백파도 남추가 남긴 비천무상도 또한 심법과 도법을 동시에 품고 있지 않던가. 도법의 수련이 곧 심법의 수련이었고, 심법의 깨달음이 곧 도법의 깨달음이었다.

남천휘는 세맥으로 흩어지는 내력을 지켜봤다.

그리고 지금껏 인지하지 못했던 세맥의 움직임을 기억했다.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 비천무상도에 대한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현재 숙련도는 행공(行空) 18입니다.

그 동안 느릿하게 올랐던 비천무상도의 숙련도가 상승했다. 고무적인 사실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 비천무상도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19/100)

남천휘는 호기롭게 외쳤다.

물론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을 호기로움이었다.

‘오랜만에 피가 끓는다! 남아당자강 한 번 가자아!’

그 순간 예기치 못한 호응이 이어졌다.

◎ 소림무학과 남아당자강의 상성이 확인되었습니다. 필요충족조건을 달성했기에 비천무상도에 대한 숙련도가 빠르게 상승합니다.

‘좋아! 삭발한 기분으로 가자! 소리는 최대로!

귀를 울리는 악기 소리가 울리는 순간 남천휘와 회종은 요철처럼 맞물린 채 지근거리에서 박투(搏鬪)를 이어갔다.

◎ 비천무상도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20/100)

◎ 비천무상도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21/100)

◎ 비천무상도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22/100)

◎ 비천무상도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23/100)

마치 심상의 세계에서 철투를 하듯 지치지 않았다.

남천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주먹을 내뻗다가 미간을 좁혔다. 분명 회종의 반격이 있어야 하거늘 허공이 그를 반길 뿐이다.

‘아.’

현재 숙련도는 90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회종은 숨을 헐떡이면서 물러선 후였다.

“왜?”

남천휘가 표정을 굳힌 채 묻자, 회종은 지친 가운데에도 미소를 지었다.

“충분합니다.”

내가 충분하지 않아! 이 땡중아.

한데 호종이 품에서 작은 목합(木盒)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그가 목합을 여는 순간 청아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달마십팔수는 심상을 건드리는 무학입니다. 그렇기에 명가의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상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내기가 진탕되기 마련이지요. 자칫 내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이걸 드십시오.”

뭔지도 모를 걸 내가 먹을 것 같으냐?

“소환단입니다.”

일단 잡았다.

강호의 정보가 어두운 남천휘라고 해도 소림의 영약인 대환단과 소환단은 알았다.

대환단은 막힌 혈막을 뚫고, 단전의 크기를 늘려주는 희대의 영약이 아닌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내공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그러니 내공을 늘리는 건 대환단을 복용한 당사자에게 달린 셈이다.

소환단 역시 대환단에는 미치지 못하나, 내상을 치료하고 혈맥을 다독이는데 영험하지 않던가.

“고맙습니다.”

남천휘는 거두절미하고 소환단을 먹었다.

그리고 운기조식을 하려는데 뜻밖의 상황을 마주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소림의 소환단은 효력이 없었다. 그저 풀의 쓴맛과 곡식의 텁텁함이 입안을 가득 채울 뿐이다.

먹는 순간 녹아내리는 건 소문에 불과했단 말인가.

‘이거 뭐냐? 소환단 맞아?’

◎ 주인님의 신체는 시스템의 영향으로 인해 단전과 혈맥의 교정이 끝난 상태입니다.

듣고 보니 그렇다.

남천휘는 시스템을 각성한 시점부터 자연지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즉 처음부터 깨끗한 그릇에 깨끗한 물을 담았다. 그러니 소환단이라는 행주로 닦아봤자 나올 것이 없다는 뜻이다.

한데 회종은 남천휘가 인상을 쓰는 모습에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십니까? 하긴 이처럼 오랫동안 달마십팔수를 마주한 건 남 소협이 처음입니다. 운기조식을 해야겠지만, 소환단을 더 드시는 것이 낫겠군요.”

남천휘는 소환단이 들어 있는 목합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회종은 그가 미안해한다고 여겼는지 빙긋 웃으며 목합을 더욱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허락 없이 달마십팔수를 펼친 것에 대한 작은 사과의 표시일 뿐입니다.”

먹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지만.

“그럼 사양하지 않고.”

일단 챙겼다.

그가 목합 자체를 받아가니 회종은 한순간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아.”

돌려달라고 하기 전에 화제를 돌리자.

남천휘는 목합을 품에 넣고 헛기침을 했다.

“그나저나!”

회종은 소환단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남천휘를 바라봤다.

“네?”

남천휘는 애써 표정을 굳힌 채 외쳤다.

“그만 나오시지요!”

하나 사위가 고요했고, 정적이 감돌았다.

남천휘는 바닥을 굴렀다.

쿵!

이 갑자의 내력을 한 번에 폭발시키는 순간 일진광풍이 몰아쳤다.

“언제까지 지켜보실 생각입니까?”

우렁찬 일갈과 달리 속은 조바심으로 인해 타들어가는 듯했다.

‘없으면 개망신인데.’

회종은 당황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남 소협, 무슨 말입니까? 여기 우리 말고 누가 있다고······.”

한데 그 순간 낮은 웃음이 들려왔다.

“허허, 나를 눈치 챘는가?”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고수.’

그도 그럴 것이 숲에서 들려온 웃음이 마치 귀 옆에서 들린 듯했다. 공력이 심후함만 논하자면 남천휘보다 윗줄이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초로의 노인이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심후한 음공과 달리 등장은 산책 나온 노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나 낡은 승복에 빛바랜 가사를 걸친 노승의 등장은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노승은 주름진 눈매를 가늘게 하고 남천휘를 살폈다.

“용과 기린을 자처하더니 진짜일 수도 있겠군.”

용린협을 빗댄 농에도 남천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노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기척을 숨기는 재주만큼은 말코나 화노에 뒤지지 않다네. 어찌 내 기척을 눈치 챘는지 물어도 되겠는가?”

남천휘는 헛기침을 했다.

시스템은 승리를 위한 퀘스트를 냈다.

한데 이겼음에도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으니 진짜 상대는 따로 있다는 얘기일 터였다.

그렇기에 한 번 떠본 것이다.

“크흠, 사문의 비전이니 함부로 알려드릴 수 없는 점 미리 사과드리지요.”

노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도 그렇군. 인사나 하지. 일청이라 하네.”

남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천휘라고 합니다.”

회종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부의 법명을 듣고, 아무렇지도 않다니?’

일청대사는 소림의 일대제자다.

방장의 사제이며 한때 나한당주와 장경각주를 역임했다. 소림 내에서도 몇몇에게만 허락된 과정일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또한 강호에는 제마멸사의 상징처럼 여겨졌기에 항마신승(降魔神僧)이라는 별호로 유명했다.

“왜요?”

남천휘는 회종과 일청대사의 표정을 보고 황급히 남위기를 검색했다. 소림의 일청을 검색하는 순간 대단한 일화가 전집처럼 쏟아졌다.

“아! 항마신승.”

별호를 보아하니 기억이 났다.

어머니인 안자영은 남씨 삼형제가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항마신승이 잡아간다며 겁을 주지 않았던가.

“허허, 묘하다. 묘해. 잊고 있던 것을 깨우친 표정이 아니라 백지 상태에서 그려낸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할아버지, 누구랑 대화하세요?

그렇게 혼잣말이 잦아지는 건 갈 때가 멀지 않았다는 증거랍니다. 시스템이 없는 이상 지양해야 할 버릇이 분명했다.

어쨌든 어머니와의 일화를 변명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천휘는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제가 머릿속에 넣은 것이 많다보니 꺼내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일청대사 역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한데 옥을 박아 넣은 것처럼 투명한 눈동자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저 나이 때의 노인이라면 혼탁한 눈빛으로 삶의 궤적을 드러내지 않던가.

남천휘는 일청대사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회피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신승께서 나타나셨으니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지요.”

일청대사의 눈동자가 다시 묘한 빛을 머금었다.

“용과 기린을 자처한다더니 멧돼지처럼 성급하구나.”

남천휘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뭐든 높은 곳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이 회종이 공터 한 쪽에 자리를 만들었다.

젖은 바위 위에 마른 풀을 깔았다.

일청대사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뜻하리라.

“일단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과하겠네. 그리고 그 이유를 지금부터 알려주지.”

다짜고짜 비무를 요청한 건 이쪽이다.

한데 일청대사는 그것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올 말이 범상치 않음을 뜻했다.

“우리가 곡부남가를 찾은 까닭은 자네를 시험하기 위험이라네.”

퀘스트로 인해 시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연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제가 소림의 시험을 받을 만큼 잘못한 것이 있었던가요?”

일청대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강했기에 자네를 찾아왔네.”

이럴 때에는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

“강호는 오랫동안 평온했지. 한데 요즘 들어 곳곳에서 혈란이 끊이지 않네. 우리는 일련의 사건을 뒤에서 조종하는 자들이 일원이라고 확신하네.”

남천휘가 일원을 처음 확인한 건 만병보고에서였다.

한데 일청대사는 오래 전부터 그들을 뒤쫓은 듯했다.

‘심지어 우리?’

일청대사는 회종이 건넨 맥차로 입을 헹군 후 말을 덧붙였다.

“그들이 아무리 어둠속에서 암약해도 찾아낼 방도가 있지.”

“그것이 달마십삼수입니까?”

남천휘의 물음에 일청대사는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자네도 느꼈다시피 달마십삼수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단련하는 역근의 묘리를 담고 있네. 또한 스스로를 보는 단계를 지나 상대방을 관조하는 심상의 효능을 지녔지. 이것은 달마조사께서 처음 제자들에게 안법을 가르치신 것에서 비롯됐기에 달마시안이라 부른다네. 그리도 단언컨대 일원의 무리는 달마시안을 접하면 마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지.”

이제야 돌아가는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천휘는 지난 반 년 간 범인의 수십 배에 이르는 성취를 이뤘다. 일 년도 되지 않는 기간 내에 산동강호를 거머쥐었으니 강호사에 새겨질 업적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일청대사도 의심했으리라.

혹여 일원의 손이 닿은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럼 저는 나쁜 놈이 아닌 거로군요.”

일청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내 성취를 뛰어넘지 않는 한 악인이 아님을 증명한 셈이지. 예고도 없이 찾아와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과하겠네.”

남천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과하지 마세요.”

“응?”

“저도 무례를 좀 저질러야 할 것 같아서요.”

일청대사는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의미인가?”

남천휘는 비천무상도의 숙련도를 힐끔 쳐다본 후 주먹을 쥐었다.

꽈드득-

“달마십삼수, 아니 달마시안을 한 번 더 견식하고 싶군요.”

반 시진 후 공터를 가득 채웠던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나무가 뿌리 채 뽑혀나간 공터는 폐허를 방불케 했다. 그리고 남천휘의 비천무상도는 숙련도 1을 가리키고 있었다.

띠링-

◎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 비천무상도의 행공 단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 비천무상도의 비천 단계가 개방됩니다.

◎ 강기공에 대한 제약이 풀렸습니다.

단전에서 휘몰아친 내력이 전신세맥으로 퍼져나갔다가 되돌아왔다. 그 순간 전해지는 쾌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남천휘는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반면 일청대사는 눈을 반개 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바위에 풀을 깔고 앉았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아! 조금 미안하네.’

남천휘는 멋쩍은 표정으로 품에서 소환단을 꺼냈다.

“하나 드실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