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달마시안(達磨始眼). (3)
*
젊은 승려는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곡부남가의 문을 두드리며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탁발을 위해 목탁을 두드리고, 경문을 외웠을 뿐이다. 한데 치기가 가시지 않은 시동이 물끄러미 쳐다보더라.
처음에는 탁발승을 처음 봤나 싶었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맑은 목소리로 경문을 읊조렸다.
부처의 기운이 어린 소년에게 스며들기를 기원했다.
녀석은 헤죽 웃더니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양곡이나 한 바가지 가져오면 족하다고 여기던 중 갑작스런 환대를 받았다.
“이거 드세요.”
승려는 여인이 내어준 찻잔을 받아들고 감사를 표했다. 여인의 복색은 남루했다. 하지만 피부는 희고, 고왔다. 게다가 총기가 가득한 눈빛과 달리 눈동자는 바람 없는 호수의 수면처럼 잔잔했다.
‘독특한 여인이로구나.’
그는 차를 음미한 후 침음을 흘렸다.
지금껏 탁발승의 복색으로 천하를 떠돌았지만, 진실 된 신분은 그리 낮지 않았다. 그런 그의 입맛에 맞을 만큼 다향이 좋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시비가 아니야.’
그는 여인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는 그저 쌀 한 움큼만 얻으면 족합니다. 한데 저를 이리 귀하게 대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여인은 이제와서 왜 그러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소림사에서 오셨잖아요.”
승려는 의구심에 인상을 썼다.
이렇게 된 이상 신분을 밝히고 궁금한 것을 묻는 편이 나을 듯했다.
“후우, 소저의 말이 옳소. 한데 하나만 물어봅시다. 내가 평소 사문을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외다. 그러니 정문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나를 알아보는 건 말이 되지 않소.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여인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옅은 미소를 흘렸다.
웃음마저 청아한 것이 속세의 사내라면 눈을 떼지 못할 듯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승려가 경문을 외는 사이 여인이 말을 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동의 모든 사람이 공자를 지켜봤어요. 한데 이제는 올려다보는 입장이 되었잖아요. 그렇다면 산동 밖의 사람들이 공자를 지켜볼 차례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한데 제 주제에 나쁜 마음을 품고 찾아오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마음을 품고 오시는 분들이나 제대로 대접하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하오문과 개방에 의뢰하니 소림이나 무당의 고인들께서는 특정한 표식이나 복장을 고집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승려는 탄성을 흘렸다.
“어허.”
여인의 말을 듣다보니 그녀의 능력보다 마음 씀씀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올해 들어서 곡부남가 주변은 아예 다른 세상처럼 발전하고 있어요. 일거리가 넘쳐나니 부모는 아이를 챙기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본가는 그런 아이들을 모아서 곡부남가 근처에서 놀게 하고 있어요.”
탁!
승려는 무릎을 쳤다.
어쩐지 곡부남가의 정문 근처는 고아원이라도 있는 것처럼 많은 아이들이 오갔다. 산동의 패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곡부남가의 정문은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정문에는 수십 명의 무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지 않던가.
‘그보다 안전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여인은 주전부리를 내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아이들에게 얘기해줬어요. 여러 가지 표식을 알려주고, 정문 근처에 그림을 그려서 붙여놨지요. 저런 사람이 찾아왔을 때 알려주면 당과를 준다고 했어요. 속세를 떠나셨으니 모를 수도 있지만, 그 나이 때의 당과는 주먹만한 황금의 가치를 지니거든요.”
승려는 그제야 아이가 자신을 탐색하듯 살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당과를 얻게 되겠구려.”
그는 여인을 향해 질문했다.
“그럼 용린협은 무엇을 얻게 되겠소?”
“새벽부터 우려낸 토끼탕을 얻겠지요.”
여인의 말에 승려는 미간을 좁혔다.
‘토끼탕. 토끼탕이라.’
그는 다시 화두(話頭)를 건넸다.
“하면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소이까?”
여인은 승려의 선문답에 일고의 여지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 능력으로는 여기까지네요.”
그리고는 자리를 뜨려 했다.
승려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소저의 방명을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아! 이상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니 괘념치 마시오.”
“소혜입니다.”
그는 소혜라는 두 글자를 몇 번이나 되뇌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에 남은 것은 한 사람이건만, 찻잔은 두 개였다.
“하하. 이것 참.”
사마의는 승려를 마주하자마자 사과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미력하나마 현월회의 군사를 맡게 된 사마의라고 합니다.”
“회종이라고 합니다.”
승려의 한 마디에 사마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대 소림승의 항렬은 일회각명(一悔覺明)이다.
소림방장의 법명이 일륜이니 탁발승처럼 보이는 젊은 승려는 최소한 당주나 각주의 직위를 지녔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걸 믿어야 하는가?’
사마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데 그 순간 회종(悔從)의 맑은 눈빛이 꽂혀들었다.
일체의 미혹을 거부할 만큼 깊고, 투명한 눈동자가 아닌가.
“하아. 제가 결례를 범했군요.”
회종은 손사래를 쳤다.
“그저 쌀 한 줌을 얻으러 왔을 뿐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허락 없이 찾아온 것은 제 쪽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알아듣지 못할 말이다.
다만 회종을 만난 사람은 소혜가 유일하니 그녀와 관련된 말이 아닐까 싶다.
사마의는 의관을 정제한 후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제가 강호의 견식이 짧아 회종 선사께서 방문하신 연유를 알 수가 없군요.”
회종은 쓴웃음을 지었다.
“본래는 멀리서 지켜보다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한데 총명한 소저를 만나 이렇게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었군요. 저는 용린협을 보고자 합니다.”
사마의는 미간을 좁혔다.
소림에 대한 예우와 별개로 주군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가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슨 의미신지.”
“말 그대로입니다. 용린협을 만나고 싶군요. 사 군사께서 자리를 주선해주시겠습니까.”
회종의 말에 사마의는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내가 사 씨라는 걸 알아.’
일개 탁발승이라면 알 리가 없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것이라면 알 리가 없다.
그는 미간을 좁힌 채 회종을 응시했다.
맑고, 깊은 눈동자 너머의 진심을 엿보려 했다.
“맹에서 현월회의 창립을 응원하기 위하여 문상과 장로를 포함한 사절단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선사께서도 그 자리에 함께 해주시겠습니까?”
회종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소림승이라고 해서 모두가 맹에 속한 것은 아니랍니다. 이 정도 말씀드렸으면 악의가 없음을 아실 겁니다. 사 군사께서 거절하신다면 그냥 떠나겠습니다. 그저 처음의 계획대로 멀리서 보는 것으로도 족하니까요.”
사마의는 침음을 흘렸다.
회종의 말처럼 모든 소림승이 맹을 추종할 이유는 없다. 한데 그가 맹에 속하지 않았음에도 정보에 통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아니 강호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군께 전하겠습니다. 잠시 별원에서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회종은 빙긋 웃었다.
“기꺼이요.”
*
남천휘는 회종과 마주했다.
“소림사에서 오셨습니까?”
회종은 남천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발길 닿는 대로 떠돈 세월이 수삼 년입니다.”
몇 마디 담소가 이어졌다.
하나 회종은 선문답으로 일관할 따름이다.
마치 남천휘의 성격을 확인하려는 듯 무례할 정도로 말을 빙빙 돌렸다.
결국 남천휘는 시야 구석을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그럼 일단 붙어보지요.”
처음으로 회종의 미소가 깨졌다.
그는 속내를 들킨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야! 주도권을 잡는 기분이 이런 거지.
칼자루를 잡을 때마다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남천휘는 대답 대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연무장 가운데 서서 회종을 응시했다.
“안 하실 겁니까?”
회종은 침음을 흘렸다.
‘허허, 총기 가득한 시비에 이어 냉철한 문사. 거기에 더하여 종잡을 수 없는 주인인가?’
이미 만남의 장소를 연무장으로 잡았을 때부터 자신의 의도를 눈치 챈 듯했다.
그는 흔쾌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좋습니다. 한데 제 속내를 어떻게 눈치 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남천휘는 시야 구석에서 반짝이는 퀘스트 목록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게는 아주 유능한 수하들이 많거든요.”
《소림의 시험을 통과해라!》
- 불문의 무학은 그 자체로 시작과 끝입니다.
- 제2막에 이어 제3막으로 향하는 관문입니다.
- 승패에 따라 제3막의 명칭이 정해집니다.
- 승리 시 강기 활용을 위한 마지막 조건이 충족됩니다.(2/3)
보면 볼수록 입꼬리가 치솟았다.
VIP 등급이 4단계에 이르렀을 때 강기공의 첫 족쇄가 풀렸다. 그리고 초절정 고수인 봉황곡주를 죽이고, 두 번째 족쇄가 풀렸다.
마침내 마지막 단계가 눈앞에 나타난 셈이다.
‘저 중만 이기면 나도 초절정 고수다!’
잠시 현월강기를 마음껏 흩뿌리는 자신의 모습을 뇌리에 그렸다.
멋있었다.
‘그런데 제2막은 중원행이 도주행으로 바뀌었잖아. 3막은 뭐가 또 있는 거냐?’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는 주인님에 대한 맞춤형 성장 방식을 적용합니다. 당면 과제의 수행도와 강호 정세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경됩니다.
이기라는 말보다 더 무섭네.
남천휘가 생각에 잠긴 사이 회종은 소매를 걷고 나섰다. 한데 호리호리해보였던 체구와 달리 그의 팔뚝은 수백 개의 자갈을 붙은 것처럼 잔 근육으로 뒤덮였다.
“궁금한 것이 많을 겁니다.”
솨아아아-
회종이 자세를 낮추며 앞발을 슬쩍 뻗었다.
동시에 양 팔이 원을 그렸고, 전방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굽혀 용조(龍爪)를 형성했다.
남천휘는 가볍게 양팔을 늘어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몸을 풀고 왔거든요. 그러니 바로 갑시다.”
“호쾌하시군요.”
“아! 남자한테 듣고 싶지 않은 말인데.”
회종은 유쾌한 남천휘의 한 마디에 피식 웃으며 앞발을 슬쩍 내밀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동시에 그는 연무장의 바닥을 쓸 듯 갈지자로 몸을 튕겼다. 느릿하게 내딛은 한 걸음에도 경공을 펼친 것처럼 쭉쭉 뻗어 나왔다. 육신의 단련이 극에 달했다는 증거였다.
쇄애애액!
남천휘는 목젖을 노리는 일수에 가볍게 상체를 비틀었다. 그러자 회종의 손은 긁고, 찢고, 비틀고, 밀어내는 온갖 수법으로 변하며 공간을 장악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수법에 어지간한 상대였다면 넋이 나갔으리라.
타타탁!
남천휘는 손날로 회종의 손목을 쳐낸 후 상체를 돌렸다. 하체를 고정한 채 상체만 휘돌리는 순간 회종의 옆구리가 지척에 이르렀다.
손끝으로 찍는 순간 회종의 무릎이 솟구쳤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요철처럼 맞물리기 시작했다.
“달마십팔수입니다.”
회종은 공방의 틈이 있을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는 대신 입을 열었다.
퍼퍼퍼퍼퍽!
대퇴부를 때리고, 종아리를 얻어맞았다.
두 사람은 팽이처럼 반대편으로 회전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재차 격돌하며 공방을 이어갔다.
“나한십팔수는 알아도 달마십팔수는 처음 듣네요.”
“속세에 알려질 만큼 고명한 수법은 아닙니다. 한데 이것의 기본은 마음과 뜻을 하나로 묶으며 시작합니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회종의 양 손이 스무 개 이상의 잔영을 만들며 상반신 전체에 꽂혀들었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몸과 움직임을 하나로 묶고, 안과 밖을 하나로 하면······.”
심의일치(心意一致).
신행일치(身行一致).
내외일치(內外一致).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회종의 읊조림을 따라했다.
이게 뭐하자는 짓이지?
꽈드득!
회종의 손이 요란한 기음을 흘렸다.
‘흐음.’
모든 관절이 뒤틀리는 듯한 소음 속에서 지법이 더해진 게다. 수법과 지법이 혼용되는 순간 태산이 전신을 억누르는 듯했다.
텅!
내력과 내력의 충돌.
남천휘는 탄성을 흘렸다.
그가 지닌 내공은 이 갑자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가 지닌 내공의 최대 장점은 정순함이 아니던가. 자연지기를 여과 없이 몸속에 담았기에 정순함만으로는 천하에 손꼽힐 터였다.
‘이것이 소림의 내공인가?’
봉황곡주나 황보세가주의 내공과는 궤가 달랐다.
소림의 무학은 하나로 다른 무학의 셋을 누른다는 소문이 뇌리를 스쳤다.
“심의는 의기로! 의기는 기력으로! 기력은 역심으로 이어지니······.”
심의(心意)와 의기(意氣), 그리고 기력(氣力).
거기에 더하여 역심(力心)까지.
이건 단순히 회종의 넋두리나 기합이 아니었다.
‘설마 구결이라도 읊어주는 건가?’
한데 어느 순간부터 회종의 읊조림이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지는 듯한 착각이 계속됐다.
도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