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01화 (201/305)

90, 이게 고수의 맛이로구나.

90, 이게 고수의 맛이로구나.

몇 번을 다시 봐도 도주행이 맞다.

중원행과 도주행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지 않은가.

설마 흑린곡에 들어가 있던 중 무슨 일이라도 발생한 것일까?

《2-1, 도주행(逃走行)》

- 불특정 다수에게서 적대감이 느껴집니다.

- 다수의 성소에서 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 즉시 대상 지역에서의 탈출을 권고합니다.

얼씨구. 이것 봐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영웅이나 협객, 귀인으로 불리지 않았던가. 주변에 퍼져 있는 무인들의 표정 또한 귀인을 외친 청년과 다르지 않았다.

한데 도주행이라니?

‘잠깐, 다수의 성소에서?’

남천휘는 위기가 감지되었다는 말에 황급히 성소 목록을 띄웠다.

◎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 왜?

남천휘는 비활성화 된 성소 목록을 두드리다가 재빨리 특기 목록을 살폈다.

없다. 특기 ‘유지가 없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 대상자는 현재 성소를 벗어난 상태입니다.

남천휘는 주변을 둘러봤다.

만병보고로 인해 광활한 지역이 주저앉거나, 무너졌다. 그러나 저 멀리 백룡암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만병보고가 확실했다.

◎ 만병보고가 붕괴했습니다.

- 성소의 핵심인 흑린곡은 건재합니다.

- 만병보고의 붕괴로 성소의 영역은 흑린곡으로 한정됩니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설마 곡부남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 정보가 부족합니다.

남위기를 켜고 곡부남가를 검색했다.

하나 새롭게 갱신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쯧.’

그 사이 무인들이 다가왔다.

약관과 이립 사이의 젊은 무사들이다.

그렇기에 영웅이나 협객에 대한 경외감이 한창 클 때였다.

“남 대협. 백룡대의 양선이라고 합니다.”

“철귀유협의 의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적의 흉계를 막고, 많은 사람을 살리셨으니 가히 후기지수 중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대협! 제가 곡부 출신입니다. 그 동안 변방이라 무시당했던 산동에서 이처럼 훌륭한······.”

수십 명의 무사들이 눈도장을 찍으려는 듯 듣기 좋은 말을 연이었다.

남천휘는 손에 흔들며 무인들을 반겼다.

마치 개선장군이 된 듯하여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적이 어디 있어?’

시스템도 완벽한 건 아니구나.

남천휘는 추종자들을 거느린 채 으스댔다.

하나 의기양양하던 표정은 금세 사라졌다.

한 무리의 무인들이 달려왔다.

경장을 입고 수색을 하던 무인들과 달리 제대로 장비를 착용한 무림맹의 타격대였다.

◎ 저기 있습니다.

그래, 누가 봐도 적이네.

도대체 흑린곡에 들어가 있던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새롭게 등장한 무인들이 외쳤다.

“저기 있다!”

“포위해!”

남천휘와 주변의 무인들은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새롭게 등장한 자들은 동료를 향해 일갈을 내질렀다.

“진위대와 백룡대는 뭐 하는 거야? 무기를 들어라!”

“철귀유협에게서 만병보고를 무너트린 혐의가 발견됐다!”

저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란 말인가?

“뭣들 하는 거야? 정신 차려라!”

남천휘는 지금 이 순간 무림맹의 수준을 엿봤다.

진위대와 백룡대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급변했다.

차차차차차창!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상을 대하듯 하던 이들이 검을 겨눴다. 오히려 저들과 거리를 좁힌 것이 실책으로 다가왔다.

“너희들 뭐 하냐?”

남천휘는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눈 무인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무인들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검끝을 돌리지 않았다.

“남 소협. 맹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대협에서 소협으로 격하된 것으로 보아 영웅이나 협객은 포기해야 할 듯했다.

“훈련이 잘 되어 있네.”

“칭찬으로 받겠습니다.”

진위대와 백룡대의 태세전환은 무림맹의 근간과도 관련이 있다. 두 개의 타격대는 외원의 별동대였다. 반면 정무단은 외원의 핵심이 아니던가. 그러니 진위대와 백룡대는 개인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남천휘를 포위한 건 정무단에 속한 네 개의 타격대 중 황무대(黃武隊)와 적무대(赤武隊)다. 그리고 황무대주와 적무대주는 은밀하게 문상 백결공을 추종했다. 무상이 고르고 고른 수하들 중에도 백결공의 수족이 섞여 있었다.

황무대주는 침음을 흘렸다.

‘설마 남천휘가 살아 돌아오다니.’

예상했던 결과 중에 가장 좋지 않은 패를 뽑은 셈이다. 그는 깃발을 흔들며 대원들을 전진시켰다. 동시에 적무대주도 수하들과 함께 포위망을 펼치기 시작했다.

“포위해라! 홍택호 쪽으로 몰아넣어!”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황무대와 적무대의 무인은 이백 명이다.

그리고 주변을 수색하던 진위대와 백룡대의 무인 또한 오십여 명에 이르렀다. 조만간 진위대와 백룡대의 잔여 인원이 도착할 것이다.

‘남위기에 의하면 정무단은 사대로 구성된다고 했으니······.’

저들에 이백 명이 더해질 터였다.

◎ 적의가 기준치 이상으로 상승했습니다.

-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 탈주를 권고합니다.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빼곡하게 들어찬 무인들을 응시했다.

‘내가 누구냐? 네가 말해봐.’

◎ ‘무적자’입니다.

‘그래, 나는 무적자다. 도주를 모르는 남자지.’

남천휘는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한 걸음 내딛었다.

레벨 200을 찍고, 무공 또한 일정한 경지를 밟았다.

게다가 새로운 스킬까지 익히지 않았던가.

제아무리 무림맹이라고 해도 등을 보일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내원의 핵심 전력도 아니고, 외원의 타격대를 대상으로는 더더욱 그러했다.

“나! 남천휘.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는다.”

내력이 담긴 웅혼한 일갈.

무인들이 한순간 주춤거렸다.

그들은 잠시 기세를 갈무리한 채 적당한 거리에 포위망을 구성했다.

“이쪽에서 성의를 보였으면, 그쪽에서는 대표가 나와서 설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남천휘의 여유로운 일갈에 몇몇 무인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들은 남천휘가 흑린곡에서 빠져나왔을 때 접근하여 인사를 나눈 진위대와 백룡대의 무인들이다.

‘저렇게 당당한데.’

‘뭔가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겠지.’

그들의 검 끝이 무뎌진다.

타격대와 별동대의 기강은 큰 차이를 보였다.

지금이라도 뚫으려면 충분히 파해할 수 있는 진형이다.

하나 남천휘는 그들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잠깐의 인사와 아부로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사실 도망쳐봤자 의미가 없잖아.’

남천휘의 신상이 알려진 상태였다.

눈앞의 무인들을 모조리 처리한 후 자리를 떠도 돌아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곡부남가.

저들은 남천휘를 놓치면 곡부남가를 압박할 것이다. 그러니 음모였든, 오해였든 이 자리에서 풀어야 할 터였다. 이제 남천휘는 무림맹을 강호의 수호자라고 믿는 순수한 청년이 아니었다.

‘여차하면.’

남천휘는 무인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중년인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다 쓸어버리는 것도······.’

살인멸구(殺人滅口)라는 가장 확실하고, 안정한 방법이 뇌리를 스쳐갔다.

“적무대의 대주를 맡은 성추다.”

“그래서?”

성추가 미간을 좁혔다.

남천휘가 뒷짐을 진 채 내려다보는 모습에 짜증이 난 것이다.

“철귀유협. 투서가 있었다. 그대가 만병보고의 붕괴와 관련이 있다더군. 할 말이 있나?”

“그게 끝인가?”

결국 성추의 표정이 무너졌다.

“어린 친구의 혀가 반토막이군. 공가의 성지에서 자란 것치고는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들이 내게 한 것을 보면 만병보고 내의 상황이 알려졌을 거야. 즉, 나 때문에 살아난 사람이 기백이다. 그리고 나는 죽음을 무릅썼지. 한데 구사일생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런 개소리를 들었음에도 예법을 논해야 한단 말인가?”

“흥! 지금껏 만병보고에 출입한 자가 없다. 있다면 흉수겠지. 한데 너는 만병보고에 처음 들어갔음에도 제 집처럼 능숙하게 행동했다지. 심지어 방금 만들어진 독을 해독하고, 검을 가루로 만들기도 했다니 누구의 말을 믿는 편이 낫겠는가?”

“그래서 투서를 보낸 것이 누군데?”

성추가 아니라 황의무복을 입은 자가 호통을 쳤다.

“네 놈이 흉수와 한 편인데 어찌 정체를 밝힐 수 있겠는가!”

남위기에서 확인한 정무단의 정보를 보면 저 자가 황무대주이리라. 두 사람이 제멋대로 끼워 맞추는 걸로 보아 이미 말을 맞춘 듯보였다.

‘일개 대주가 나를 걸고넘어질 리는 없고······.’

배후에 누군가 있는 걸까?

남천휘는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 백룡대의 무인이 말하기를 남궁재야와 남궁소가 근처에 있다고 했다. 자신을 찾기 위해 하루도 자리를 뜨지 않았단다. 남궁소가 매일 같이 베갯잇을 적셨다며 매정한 사람취급까지 하더라.

‘없군.’

황무대주가 고리눈을 뜨며 외쳤다.

“놈! 지금 당장 무림맹으로 가자. 만약 네게 죄가 없다면 상을 내릴 것이고, 죄가 있다면 마땅한 처벌을 받으리라.”

남천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죽다 살아난 사람을 다짜고짜 죄인 취급하는 너희들을 어찌 믿고 함께 움직이자는 거지. 혈도 짚을 거지?”

“당연하다.”

“혈도를 짚은 후 으슥한 곳에서 쓱싹할 거냐?”

황무대주는 한순간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만 끔뻑였다. 적무대주 성추는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것이 없다고 여겼나 보다.

“맹을 우습게 여기는군.”

밑밥을 깔았으니 공격을 하겠지.

“일단 꿇려라! 압송한 후 처결하겠다.”

그럴 줄 알았다.

남천휘는 멀뚱히 지켜보는 소용녀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조심해.”

“걱정 마. 너만 죄인 취급하잖아.”

소용녀는 그 말을 남긴 채 슬쩍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구경하기 좋은 자리에 앉아 입맛을 다시며 눈치를 봤다. 염치가 없었다면 육포와 술이라도 달라고 할 기세였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낫다.’

남천휘는 포위망을 좁혀오는 무인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자리를 피하지 않은 까닭은 하나였다.

‘피할 이유가 없으니까.’

강자존(强者存).

강호는 고수의 목소리가 진실이 되는 세상이다.

음모는 힘으로 부순다!

그러니 부딪쳐본 후 중과부적이라면.

그 때 도주의 장점을 깨달은 남자가 되어야겠다.

“쳐라!”

적당히 거리가 좁혀졌을 때 황무대주의 일갈이 들려왔다. 황무대의 누런 물결이 먼저 들이쳤고, 적무대의 붉은 물결이 큰 원을 그리며 포위망을 구성했다.

남천휘는 입맛을 다셨다.

‘먹을 때에는 맛있는 부분부터!’

남천휘는 붉은 얼굴에 덩치가 큰 먹잇감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촤앙-

양 손에 도가 잡혔다.

용린쌍도나 천하제일도가 아니라 수련용 직도다.

아직은 무림맹과 완전히 척을 질 때가 아니었다.

‘귀찮기는 하지만.’

퍼퍼퍼퍼퍽!

날을 세우지 않은 수련용 직도에 얻어맞은 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나갔다.

‘기절 정도로 봐주마.’

예전에 상대했던 자들과 비교한다면 황무대의 무공 수준은 120레벨을 넘겼을 터였다. 한데 가벼운 손짓에도 튕겨나갔고, 발길질에 주저앉았다.

마치 어른이 아이를 혼내는 듯한 광경이다.

가을이었다면 추풍낙엽이 연상될 만큼 황무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부!’

남천휘는 중원 어딘가에 있을 검무의 고수이면서, 사자탈을 즐겨 쓰는 무인을 떠올렸다.

작은 몸짓마다 그의 가르침이 배어 있지 않은가.

잠력을 최대한 끌어내 헛되이 소모되는 체력과 내공을 줄였다. 그렇기에 남천휘의 작은 움직임은 가장 큰 효과를 냈다.

“헉! 사, 사술이냐? 독인가?”

황무대주는 패검을 늘어트린 채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때 남천휘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파팟!

오행군림보의 첫 스킬인 궁신탄영이다.

“놈!”

황무대주는 대주의 자격을 증명하듯 시퍼런 검기를 뽑아올렸다. 그는 남천휘가 지척에 나타나자마자 검기를 내질렀다.

촤아악!

하나 검기는 잔상을 가를 뿐이다.

‘잔영은무.’

남천휘가 오행군림보의 두 번째 스킬을 펼친 것이다. 잔상(殘像)을 남긴 채 사라진 그는 살수처럼 은밀하게 황무대주의 좌측에서 짓쳐들었다.

쇄애애애애액!

‘잘 가라. 이름 모를 대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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