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00화 (200/305)

89, 제2막. (2)

*

남천휘는 주먹을 내뻗었다.

그럴 때마다 이마에 맺힌 땀이 비처럼 흩날렸다.

파팟!

오늘의 수련 장소는 좁은 골목이다.

그렇기에 앞과 뒤로 초식을 발출했고, 기감은 허공까지 퍼졌다.

남천휘가 몸을 띄웠다.

가볍게 뛴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내공이 소비됐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해 보이는 이 골목에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남천휘는 시야 구석에 위치한 표식을 보며 이를 악 물었다.

[계왕권x10 적용 중.]

계왕권 열 배는 곧 인간이 평소에 느끼는 대기의 흐름이 열 배로 느려졌음을 뜻했다.

그러니 초식을 이어갈수록 녹초가 됐다.

하나 남천휘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앞에서 시연을 보이고 있는 사자탈을 보며 힘을 냈다.

‘빌어먹을! 사자탈!’

남천휘와 달리 사자탈은 계왕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닦달을 할 때마다 짜증이 노도와 같이 밀려왔다.

하나 사자탈은 자신만의 세상을 살 듯 방실방실 웃으며 외쳤다.

“자! 마지막이다. 성층무계운!”

비천무상도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성층무계운(盛層貿界運)는 층을 담고, 계를 담는 움직임이다. 층은 수평을, 계는 수직을 가리키니 성층무계운만 완성하면 손발이 닿는 모든 공간을 지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파파파파파팟!

남천휘가 허공에서 십여 회나 몸을 뒤집은 후 내려섰다.

“후우. 후우.”

수련을 마무리하는 순간 알람이 연이어 울렸다.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현재 레벨은 200입니다.

- 강기공의 봉인이 해제됩니다.(2/3)

- 자수정과 VIP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남천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상대로 200레벨이 강기공의 단서였다.

이제 마지막 한 가지만 해결하면 내공을 강기로 운용하는 것이 가능해지리라.

남천휘는 수십일 만에 상태창을 소환했다.

- 생명력 : 100/100

- 내공력 : 115년

- 공격력 : 840(장착 : 없음)

- 방어력 : 460(장착 : 없음)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치가 상승했다.

고정인 생명력은 둘째 치고, 내공만 봐도 이 갑자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공격력과 방어력의 변화였다.

사자탈은 물약의 남용을 경고했다.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잠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가르쳤다.

그 결과가 이렇게 수치로 나타났다.

공격력은 100 가까이 상승했다.

방어력은 마린보의가 없음에도 장착했을 때보다 100 가까이 올랐다.

‘용린.’

차라라락-

남천휘는 백룡도과 흑린도를 소환했다.

도의 형상으로 등장했기에 공격력은 1540까지 솟구쳤다.

‘철투.’

철투를 실행하는 순간 운무가 몰아치며 연무장으로 변화했다. 최종형 무무혁명은 철투와 무희까지 연계되어 있기에 사자탈 또한 한 쪽에서 자리를 지켰다.

‘사부, 강기 좀 보여줘요.’

부탁할 때에는 공손하게.

이것이 현실이었다면 진짜 사제 관계라 해도 섣불리 강기를 선보이지 않았으리라.

하나 사자탈은 남천휘의 수련을 위해 소환된 상태가 아닌가. 그렇기에 수련을 돕기 위해서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이것이 나의 전력이다!”

그 순간 검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기운이 검신 전체를 휘감았다. 그리고 폭발하듯 체구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검 자체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엄청난 기운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사자탈이 검을 찌르는 순간 공간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파장이 일었다. 동시에 수십 그루의 나무가 폭발했다.

“네 차례다.”

사자탈은 시스템으로 인해 만들어졌으니 남천휘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남천휘는 호흡을 가다듬고, 비천무상도를 펼쳤다.

그리고 초식의 묘리가 극에 달하는 순간 쌍도를 교차하여 내리그었다.

쩡-

사자탈처럼 휘황찬란한 변화는 없었다.

그저 묵빛의 기세가 전방을 예(乂)자 형태로 갈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공간이 찢긴 것처럼 일렁이더니 돌과 나무가 가루로 변하며 흩어졌다.

‘아.’

남천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용린쌍도의 부가 기능을 떠올렸다.

내공 전달력이 50%나 증가하지 않던가.

만약 용린쌍도와 어우러지는 심법과 무공을 익힌다면 공격력은 50%씩 더 상승할 터였다.

‘잠깐! 그러면 도대체 몇 배가 강해지는 거야?’

◎ 공격력의 수치 계단은 기본 공격력을 기준으로 더해집니다.

‘아, 그럼 계산은 간단하겠네.’

남천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다가 되물었다.

‘현재 나는 심법과 무공으로 인해 증폭된 게 아니지?’

그렇다는 대답에 입꼬리를 올렸다.

어찌됐든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는 여력이 있다니 좌절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리고 레벨 업과 동시에 울린 알림도 있지 않은가.

《오행군림보의 숙련도가 최고점에 도달했습니다.》

《비천무상도의 숙련도가 최고점에 도달했습니다.》

소용녀에게 예언했던 대로 오 일 만에 숙련도 100을 찍었다.

◎ 오행군림보(대가)를 대성했습니다.

- 새로운 스킬이 등록됩니다.

궁신탄영 옆에 잔영은무가 생성됐다.

잔영은무(殘影隱霧)는 말 그대로 그림자를 남긴 후 안개 속에 숨는 것을 의미했다. 한 마디로 살수에게는 감로와 같은 능력일 터였다.

평소의 남천휘였다면 사내답지 못하다며 못마땅하게 여겼으리라.

‘이제는 정면 대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건가.’

앞으로 남천휘가 상대할 자들은 기척을 감추고 싸워야 할 만큼 고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쯧. 오행군림보가 부족하게 여겨질 줄이야.”

오행군림보를 승급할 때마다 배가되는 가치를 헤아리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선했다.

하나 냉정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비천무상도를 대성했을 때 무공의 가치는 2000이다.

만약 무공의 등급을 나눠야한다면 오행군림보는 영웅 등급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기대할 건 회회회판인가.’

이제 전설 등급까지 개방되었고, 이벤트 효과까지 더해진다면 가능할 터였다.

고민해도 답이 없다면 고민하지 말자.

남천휘는 보법에 대한 아쉬움을 한쪽에 미뤄둔 채 비천무상도를 살폈다. 오행군림보는 대성했기에 스킬이 자동으로 등록됐지만, 비천무상도는 마지막 단계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 비천무상도를 ‘비천’ 단계로 승급하시겠습니까?

남천휘가 수락하는 순간 VIP 2000점이 소모됐다.

대략 예상했던 점수였다.

아깝다. 아까우니까 좋은 스킬을 다오.

질풍난무 옆에 새로운 스킬이 등록됐다.

남천휘는 확인서를 통해 재빨리 스킬을 살폈다.

《일기당천(一氣撞天)》

- 내력을 응집하여 전력으로 발출합니다.

- 1초 간 기를 집중한 후 공격합니다.

- 기를 집중하는 동안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 1회 발동 시 내공 5년이 소모됩니다.

※ 재사용 대기 시간이 존재합니다.

무방비라는 말에 절로 침음이 흘러나왔다.

하나 위력을 봐야지.

남천휘는 재차 철투를 실행했다.

자신의 강함을 시험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으랴. 가상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순간 두 번째 강기가 휘몰아쳤다.

콰콰콰콰쾅!

*

만병보고에서 일어난 혈겁은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지 않았다. 수백 명의 무인이 죽었지만, 이름 있는 자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검 남궁재야와 남궁세가, 거기에 무림맹 강소지부의 무인들까지 함께 했다. 저들의 이름값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만병보고의 혈사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무림맹은 최소한의 인원을 파견했다.

외원에서도 작은 일에 동원되는 진위대(鎭威隊)와 백룡대(白龍隊)였다.

한데 상황이 급변했다.

일원이라는 비밀 조직이 수 년 동안 혈사를 기획했다는 것이 알려진 게다. 특히 백명괴군(百命怪君)의 등장으로 인해 무림맹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미 사마천세가 끝나고 백 년이 흘렀다.

하나 정파는 여전히 괴겁천마와 사령신을 역병처럼 두려워했다.

괴겁천마와 사령신의 수족이었던 사성신위와 광혈오주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러니 백명괴군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무인들은 사령신과 광혈오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마외도의 발호를 막고, 제마멸사의 기틀을 마련하겠다!”

이와 같은 외침과 함께 정무단 전체가 급파됐다.

정무단(正武團)은 무림맹의 외원 삼단 중 한 곳이다.

정무단주는 초절정의 경지로 이검 남궁재야에게 뒤지지 않는 고수였다. 그런 그가 정무단에 속한 네 개의 타격대를 이끌고 나섰으니 강호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호사가들은 일원이라는 신비 조직이 빠르게 일망타진 될 것이라 입술이 마르도록 떠들었다.

하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만병보고는 붕괴됐고, 일원은 자취를 감췄다.

지지부진한 수색만 계속 될 뿐이다.

그러니 무림맹의 막사에서는 연일 고성이 끊이지 않았다.

“여섯 개의 타격대만 해도 육백 명입니다. 그들이 먹고, 자고 하는 비용만 하루에 은자 삼백 냥씩 들어가지요.”

강소 무림의 대표는 칠계(七契)다.

산동성에 삼정이 있듯 강소성에는 칠계가 주인을 자처했다.

지금 타격대의 대주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자는 칠계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태황방주였다.

“이미 막사와 제반 비용만 해도 이만 냥이 들어갔습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허송세월을 보내시렵니까?”

태황방주(太荒幇主)의 말에 타격대의 대주들은 시선을 피했다.

무림맹은 중원 권력이고, 칠계는 지방 권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황방주는 거리낌이 없었다.

태호를 거점으로 삼고, 소주의 물류를 독점하면서 쌓아온 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방주.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소.”

“그렇소이다. 일원이라는 놈들이 분명 흔적을 남겼을 게요. 그것을 찾아서 상부에 보고를 해야 진퇴를 결정할 수 있지 않겠소이까?”

대주들이 태황방주를 달래듯 말을 건넸다.

하나 태황방주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만병보고는 무너졌고, 일원은 사라졌소이다. 예전처럼 진위대와 백룡대만 남겨둬도 뒤처리는 충분하지 않겠소?”

그 때 각진 얼굴의 장년인이 막사에 발을 들였다.

“무상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타격대를 파견해달라며 애원하던 자가 누구였던가.”

태황방주는 표정을 굳혔다가 한 숨을 내쉬었다.

상대는 무림맹의 백대 고수에 손꼽히는 정무단주가 아닌가. 게다가 그의 곁에는 남궁세가의 이인자인 남궁재야까지 함께 했다.

“당시에는 일원이라는 자들이 발호할까 우려가 됐기 때문입니다. 하나 지금은······.”

정무단주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밀어낼 수 있을 만큼 흐릿한 기운이 밀려왔다.

하나 태황방주는 정무단주의 기운을 받아치지 않았다. 받아치는 순간 정무단주는 진짜 실력을 보이며 그를 억누를 것이 뻔했다.

“듣게. 정무단은 의협의 기치를 수호하고, 사마외도의 뿌리를 뽑기 위해 한 시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네. 그렇기에 그대들의 요청을 받고 타지에 와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게야. 한데 그깟 은자 몇 냥 때문에 정무단을 귀찮아하는 것인가? 그게 정녕 칠계의 뜻이던가?”

태황방주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사마외도의 흔적을 찾지 못하여 조급했던 것입니다. 못난 꼴을 보였으니 여러 대주들께 사과하겠습니다.”

그는 이내 대주들을 향해 공수를 했다.

남궁재야가 틈을 보아 나섰다.

“모두 힘들게요. 평화가 끝날까 두렵기도 하겠지. 하나 그럴 때일수록 강호의 명사라 할 수 있는 우리가 중심을 잡아야 하오. 철귀유협은 스스로 목숨을 버려 생면부지의 무인들을 구했소. 나 또한 후배의 도움을 받고 목숨을 연명했소이다. 그의 의기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작은 흔적이나마 찾아봐야 하지 않겠소?”

다섯 곳의 대주와 칠계의 수장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남궁재야의 원론적인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남궁세가의 가주와 이검이 아끼는 남궁소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진중에는 철귀유협과 혈화해가 연인 사이였다는 웃지 못 할 소문이 퍼졌을 정도였다.

그 때 밖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무너진 동혈 중 한 곳에서 귀곡성이 들린다고 합니다!”

*

“흐흐흐.”

“이상하게 웃지 말아 줄래?”

하나 소용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이상한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는 흑린곡에서 가져온 망치가 들려 있었다.

“살아생전에 이처럼 귀한 선물을 받게 될 줄이야!”

“그러지 마라. 네가 해준 일에 비하면 약소한 거야.”

남천휘의 말에 소용녀는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사실 다섯 살 때 조부에게 망치와 정을 선물 받은 이후로 네가 처음이야.”

도대체 어떻게 된 집구석이기에 다섯 살짜리 여아에게 망치와 정을 선물한단 말인가.

“후, 반하지 마라.”

“네가 불의 신이라도 된다면 고려해보마.”

성별을 초월한 담소를 나누다보니 저 멀리 빛이 스며들었다.

소용녀는 미간을 좁혔다.

“진짜 출구가 있었네.”

“내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어?”

“하지만 몇 번이나 지나갔던 길이었다고. 그런데 이런 출구는 처음이야.”

당연히 성소 포인트까지 소모해서 만든 출구였다.

남천휘는 너스레를 떨며 바위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망치질에 혼을 빼앗긴 게지.”

“그, 그런가?”

“여기 좁으니까 조심해라.”

“걱정 마! 나 뼈는 얇아. 이거 다 살이야.”

그거 자랑 아니야. 친구야.

솨아아아-

남천휘는 동굴 밖으로 나서는 순간 손을 들어 시야를 가렸다. 사실 단련된 육신으로 인해 햇빛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다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드디어 밖이야!”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뒤따라 나온 소용녀가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 보니 입구 근처에만 수십 명이 모여 있지 않은가.

남천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어린 무인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남천휘.”

어리 놈의 혀가 자라다가 만 듯했다.

“영웅, 영웅이에요.”

그는 남천휘를 가리키며 있는 힘껏 외쳤다.

“정의로운 협객! 귀인 남천휘요. 여러분! 남 대협이 살아 있었어요.”

영웅(英雄), 협객(俠客), 귀인(貴人).

좋다는 호칭은 죄다 가져다 붙였구나.

하나 남천휘는 웃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저 멀리서 몰려오는 수많은 무인들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다. 그의 시야에는 반투명한 알림창이 떠 있었다.

《메인 퀘스트 ‘도주행’이 발동했습니다.》

제 2막은 중원행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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