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98화 (198/305)

88, 신검(神劍), 울다.

88, 신검(神劍), 울다.

우걱우걱!

밥이 보약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듯했다.

쩝쩝!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더니 그 말도 맞다.

남천휘는 봉두난발을 한 채 바삐 수저를 놀렸다. 얼핏 보면 도망친 노비가 삼일밤낮을 굶은 후 첫 끼를 먹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쫓아오는 것처럼 주변을 살피는 꼴이 영락없는 도망 노비였다.

“천천히 먹어라.”

소용녀는 수저를 멈춘 채 인상을 썼다.

“시간 없어.”

남천휘는 소용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릇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 없어 보이기는 한다.”

그녀는 이내 수저를 내려놨다.

남천휘의 게걸스러운 모습에 식욕이 달아난 게다.

또한 칠야와 창월의 수리를 끝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 달쯤 되었나?’

소용녀는 슬쩍 동굴을 둘러봤다.

이제는 야명주의 불빛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눈을 감아도 벽에 부딪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지형지물이 익숙했다.

“수련은 좀 할만 해?”

남천휘는 고개를 들지 않고 한 숨만 내쉬었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는 힘을 지녔다지?”

“그렇지.”

콰직!

나무젓가락이 으스러졌다.

남천휘는 손가락을 튕겨 새 것을 꺼낸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더 힘들다. 적응할 만하면 그 위가 있고, 적응했다 싶으면 더 어려운 게 있더라. 답답해 미칠 것 같아.”

소용녀는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매일 같이 내실에서 수련하는 걸 지켜봤다.

한데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것처럼 대꾸를 하니 창졸간 우려가 일었다.

‘설마 머리가 어떻게 된 건······.’

그 때 남천휘가 그릇을 비우며 말했다.

“나 안 미쳤다.”

소용녀는 뜨끔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

“누가 뭐래?”

“심상 수련이야. 나 자신과 싸우는 중이지.”

남천휘의 변명에 소용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에 큰 관심이 없는 그녀였지만, 심상 수련의 효율만은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걸 움직이면서 하던가? 보통은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는······.’

그녀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언제부터인가 남천휘의 언행을 이해하려는 마음 자체를 저버렸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철신의 이름을 잇겠다는 사명감으로 가득하지 않던가. 칠야와 창월을 완벽하게 수리하기 전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다.

“그나저나 칠야와 창월은 어때?”

남천휘의 물음에 소용녀는 입꼬리를 올렸다.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어!”

지금까지와 달리 확신 가득한 한 마디가 아닌가.

“역시 철신의 몸과 마음을 그대로 이어받은 용녀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몸 이야기는 그만 해주지 않으련? 이 도망 노비 놈아.”

남천휘는 자신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끼리 뭐 어때?”

어차피 인벤토리에는 새하얀 무복만 스무 벌을 넣어놓지 않았던가.

“하여간 칠야와 창월을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 완벽하게! 예전과 똑같이 만들어서 보여줄게.”

지금까지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훈훈한 미소를 교환했다. 남녀가 밀폐된 공간에서 한 달을 보냈지만, 쌓이는 것은 전우애요, 버리는 건 예법이었다.

“나 간다! 저녁에 보자.”

소용녀는 남천휘를 보내고, 두 자루의 도를 꺼냈다.

칠야와 창월이다.

두 자루의 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묵빛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한데 부러졌던 부분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수리가 된 상태였다.

“완벽하게!”

소용녀는 눈을 빛냈다.

동굴 반대편에서 남천휘의 악에 바친 외침이 들려왔다.

“황궁에서 왜 싸워? 평생 갈 일도 없는데!”

소용녀는 품에서 철신의 일지를 꺼내어 펼쳐 놨다.

그리고 그곳에 그려진 칠야와 창월의 형태를 보며 망치질을 시작했다.

땅! 땅! 땅!

*

중원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곳을 따지자면 응당 황궁이 첫 손에 꼽히리라. 하나 강호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곳은 대별산의 무림맹이다.

전자는 출입이 쉽지 않다.

하나 후자는 누구에게나 문호를 열어뒀다.

무림맹은 강호 방파의 뒷배이자, 대변자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하루에도 수백 명의 청원이 이어졌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무림맹 총군사인 광목진인은 칠순을 넘겼다.

군사로 역임한 세월만 삼십 년 이다.

그렇기에 대소사는 문상 백결공에게 위임된 상태였다. 무림맹의 근간이 흔들릴만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백결공의 결정권이 가장 컸다.

그러니 오늘도 백결공의 처소인 천문각(天文閣)은 이른 아침부터 손님으로 분주했다.

“문상, 창운선생이 오셨습니다.”

천문각의 문사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섰다.

그는 쉬지도 못한 채 업무에 시달리는 문상이 안쓰러웠다. 그렇기에 청원이나 고변이 아니라 문상의 지인이 방문한 것을 알리면서 환히 웃을 수 있었다.

백결공은 여인이라고 오해를 할 만큼 선이 고운 사내였다.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잠시나마 시간을 낼 수 있을까요?”

말단 문사에게도 경어를 써주는 모습에 문사는 감압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각 정도는 시간을 빼보겠습니다. 문상께서도 쉬셔야지요.”

“고맙습니다.”

문사는 깊이 허리를 숙이며 공수한 후 잰걸음으로 달려 나갔다.

창운선생은 알려지지 않은 도문의 후계자로 천하를 떠도는 명사였다. 천문에 능통하여 복자를 자처했지만, 실제의 능력은 훨씬 대단했다.

그야말로 재야의 백결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선생, 드시지요.”

허리가 굽은 노인은 앓는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겼다. 몇 번이나 문사가 부축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할 만큼 위태로운 움직임이다.

문사는 창운선생이 천문각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허허, 나이를 초월한 지기라니. 나도 그런 친우를 얻고 싶구나.’

하나 천문각 내부의 분위기는 문사의 예상과 사뭇 달랐다.

백결공은 창운선생이 들어서자 목례를 했다.

“직위가 직위인지라 예를 표하지 못함을 탓하지 마소서.”

미소는 여전했으나, 왠지 냉기가 감돌았다.

반면 창운선생은 여전히 앓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엉덩이를 붙였다.

“괜찮네. 인세의 법도는 잊은 지 오래니까.”

무덤덤한 대꾸에 날선 한 마디가 돌아왔다.

“인세의 법도를 잊으신 고인께서 이곳까지 어인 행차신지요?”

창운선생은 침음을 흘렸다.

그 순간 희뿌연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기막으로 소음을 차단하는 순간 창운선생이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러자 노도(怒濤)와 같은 기운이 대전 전체를 가득 채웠다.

“전언이다.”

백결공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전언이라는 한 마디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일원좌사 휘하 백결이 하늘의 부르심에 응답하나이다.”

창운선생은 지극히 공손한 백결공의 어투에도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백결공은 창운선생이 말끝을 흐리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일원이란 아랫것들에게 알려진 사실과 달랐다.

대부분의 구성원은 일원을 통해 강호가 재편되고, 만민이 평등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하나 일원의 수뇌부에게 있어서 평등이란 명분에 불과했다.

오직 ‘하늘’이라 불리는 존재를 위해 모든 것이 숨을 쉬고, 움직일 따름이다.

하늘에게는 세 명의 제자가 있다.

좌사(左士)와 우사(右士), 그리고 중사(仲士)였다.

강호에 퍼져 있는 수석을 쥐락펴락 하는 백결공조차 좌사의 제자일 따름이다.

‘중사가 직접 나섰다면 엄청나게 큰일이겠군.’

좌사는 백결공을 통해 일원이라 알려진 조직을 운용했다. 우사는 강호를 등진 고인들의 집합체였다. 즉 좌사가 암암리에 활동한다면 우사는 더더욱 깊숙한 곳에서 활동하는 셈이다. 때가 되었을 때 죽거나, 은거한 전대 고수들이 해일처럼 밀려오리라.

반면 중사는 세력이 없다.

대신 ‘하늘’을 대신하여 말할 뿐이다.

그렇기에 좌사와 우사조차 중사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신검이 울었다고 하셨다.”

백결공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신검이······.”

“울었다.”

창운선생 역시 범상치 않은 일임을 알기에 한 번 더 읊조렸다. 백결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나타난 것입니까?”

“알 수 없다. 신검은 또 다른 신물과 공명한다. 그러니 봉인되었던 신물이 깨어난 것을 신검이 울음으로서 알려주는 게다.”

백결공을 고개를 조아렸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홍택호.”

“만병보고.”

“그렇다. 신물을 회수하라. 그 과정에서 신검이 울게 된 이유가 저절로 밝혀지리라.”

창운선생은 그 말을 끝으로 침음을 내뱉었다.

그러자 희뿌연 기운이 한순간 휘몰아치더니 창운선생의 코를 통해 자취를 감췄다. 백결공이 몸을 일으키자, 창운선생의 허리 또한 잘 익힌 벼처럼 휘어졌다.

“좋은 만남이었네.”

백결공은 처음처럼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강녕하십시오. 좋은 소식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자네의 능력은 마음만큼 뛰어나니 믿고 기다리겠네.”

창운선생은 뼈가 섞인 한 마디를 남긴 채 천문각을 떠났다. 백결공은 창운선생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미소를 유지했다.

‘우사는 힘만 믿고 날뛰는 멧돼지와 같다. 그러니 중사만 제어할 수 있다면 하늘의 세상이 도래했을 때 좌사의 세력이 지상을 다스리리라.’

그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후 천문각을 나섰다.

목적지는 검존 하후태경의 처소인 용무각이다.

“무상께 내가 왔다고 알리거라.”

잠시 후 하후태경이 거두름을 피우며 들어섰다.

“크흠! 대회의가 아니면 얼굴도 보기 힘든 귀인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셨구려.”

아쉬운 소리를 하려면 빨리 하라는 소리다.

하나 백결공은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최근 들어온 소식을 모아보니 제 예상과 다른 점이 보이더군요.”

하후태경은 탄성을 흘렸다.

“호오! 백결공께서 부족함을 자인하시다니. 이것이야 말로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 아닌가.”

“저 또한 사람입니다. 부끄럽군요.”

“이곳까지 찾아온 것을 봐서 이 하후 모의 힘을 필요로 하는 듯하군요.”

“맞습니다. 만병보고에 대한 사안입니다.”

백결공의 말에 하후태경은 인상을 썼다.

“지난 며칠 간 남궁세가를 비롯하여 강소성의 칠계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소. 일원이라는 생면부지의 조직이 만병보고를 통해 혈겁을 일으켰으니 당장이라도 일군을 보내서 진상을 파악하자고 난리였소. 하나 나는 그럴 때마다 웃는 낯으로 그들을 달래야 했지. 왜 그랬겠소?”

“죄송합니다. 그 때에는 출병하지 않는 쪽이 낫다고 여겼습니다.”

하후태경은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의 호적수라 여겼던 백결공이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하니 온 몸이 저릿했다.

‘미녀와의 방사보다 이쪽이 낫군.’

그는 평소 주장했던 바를 그대로 털어놓았다.

“단주 급을 주장으로 하려 삼대를 급파하겠소. 진상 조사를 위한 구성원은 내 뜻대로 하리다. 그래도 되겠소?”

“일원이라는 조직의 흉악함이 하늘을 찌르니 무에 통달하신 무상의 뜻을 따라야지요.”

하후태경은 만병보고와 상관 없는 몇 가지 일을 거론했다. 이번 기회에 최대한 이득을 보려는 수작이었다.

“뜻대로 하소서.”

“크하하하! 문상과 이리 대화가 잘 통하다니. 앞으로 자주 봐야겠소.”

“무림맹의 기둥으로서 응당 그래야지요.”

오월동주나 다름없는 두 사람은 의미 없는 덕담을 몇 차례 주고받은 후 헤어졌다.

백결공은 용무각을 나서자마자 입술을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이검 남궁재야가 올린 보고서를 다시 가져오라. 그곳에 남천휘가 갇혔다지?”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홀로 남았답니다. 동굴은 물론이고, 봉우리 전체가 주저앉았으니 살아 남지 못했을 겁니다.]

백결공은 침음을 흘렸다.

그 또한 저간의 사정을 들었을 때에는 그런 줄 알았다. 하나 신검이 울었고, 그 진원지를 홍택호로 삼은 이상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남천휘에 대한 정보를 처음부터 전면 재구성하라. 그리고 쓸 만한······. 아니 제대로 된 자들을 뽑아 조사단에 투입해. 남천휘가 관계되었다면 처결하라. 아니, 무언가 이상한 게 보이거나, 느껴진다면 누구든지 처결하라.”

[존명.]

백결공은 수하 중 한 명이 사라지는 기척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삭초제근, 발본색원.

그가 좋아하는 성어였다.

“남천휘의 집안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라. 여차하면 그곳부터 쓸어버린다.”

[신공부와 연결되었기에 대대적으로 움직인다면 눈에 띌 것입니다.]

백결공의 입가에 잠시 살소가 드리워졌다가 자취를 감췄다.

“이번 일을 실패했으니 강소수석을 교체해야겠지. 봉황곡주에게 운을 띄운다면 그들이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그는 천문각에 틀어박힌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린 시절 좌사를 따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하늘’의 위용이 절로 그려졌다. 그리고 ‘하늘’의 곁에 박혀 있던 묵빛 신검의 서늘함을 떠올리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

*

“하아.”

남천휘는 멀쩡한 칠야와 창월을 보며 연거푸 한 숨을 내쉬었다.

“야, 이게 뭐냐?”

소용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미완성 칠야와 창월이지.”

“미친! 이게 왜 미완성이야. 제대로 수리 됐잖아.”

남천휘의 외침에 소용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철신의 일지에 외형이 그려져 있어. 지금보다 조금 더 휘어지고, 더 웅장한 자태를······.”

콰콰쾅!

남천휘가 칠야를 휘두르는 순간 동굴의 벽이 움푹 패였다. 손가락이 통째로 들어갈 만큼 엄청난 위력이었다.

“하아, 이게 칠야도구나.”

그는 칠야도와 창월도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감탄을 연발했다. 하나 소용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투덜거렸다.

“별로 일 텐데. 내가 조금 더 멋있게······.”

남천휘는 표정을 구긴 채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언제 완성한 거야?”

소용녀는 고개를 갸웃렸다.

“그냥 칼만 붙인 날짜를 말하는 거야?”

“그래.”

그녀는 날짜를 헤아릴 것도 없다는 듯 대꾸했다.

“사십이일 전이지.”

남천휘는 눈을 부릅 떴다.

“흑린곡에 갇힌 다음 날이잖아!”

소용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어깨를 으쓱였다.

“칼 붙이는 거야 자면서도 할 있지. 다만 원형 그대로의 기품과 유려함을 살리기 위해······.”

“아아아아아아!”

남천휘가 쌍칼을 휘저으며 날뛰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만은 재이도 최종형 무무혁명을 띄우지 않은 채 숨을 죽였다.

잠시 후 재이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건넸다.

◎ 최초로 ‘신화’ 등급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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