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97화 (197/305)

87, 사자와 춤을. (3)

다만 진지함과 달리 눈앞의 변화는 너무나 총천연색이다.

‘이게 뭐야? 홍등가도 아니고.’

녹빛으로 번들거리던 야명주의 빛이 산란하듯 흩어졌다. 한데 시스템의 영향인지 무지개처럼 휘황찬란한 칠채(七彩)로 번뜩이는 것이 아닌가.

당장 나삼을 입은 기녀가 달려와 팔을 잡아끌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딴딴! 딴딴따다딴!

동굴 전체를 가득 채운 생소한 음률이 남천휘를 족쇄처럼 휘감았다.

‘이거 뭐야?’

《해당 모드와 어울리는 음악은 남아당자강입니다.》

《보법의 표식과 동조율은 100%입니다.》

《남아당자강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숙련도도 상승합니다.》

-> 남아당자강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 과정보다는 결말, 지금 당장 수련을 시작한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창해일성소의 동조율이 98%였다.

한데 100%가 떴으니 남아당자강(男兒當自强)이야 말로 오행군림보의 ‘대가’와 비천무상도의 ‘행공’ 단계를 위한 최적의 음률이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새로운 수련법은 언제나 환영이다.

재이는 성격이 고약한 것만큼이나 효율을 중시하지 않던가.

‘그런데 여기서 춤이 왜 들어가는데?’

예전과 같이 방향 표식을 띄우면 될 터였다.

어차피 비천무상도와 오행군림보의 투로는 잠을 자면서도 펼칠 수 있을 만큼 능숙했다. 그러니 선생이랍시고 누군가를 데려다 놓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일단 설명부터 들어보자.’

그 순간 운무가 휘몰아쳤다.

재이가 남아당자강의 유래를 설명할 줄 알았기에 자신도 모르게 물러섰다.

‘뭐야?’

촤아아아악!

그 순간 사자탈을 쓴 자가 운무(雲霧)를 찢어발기며 등장했다.

쾅!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파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더불어 운무를 제 것처럼 이리저리 휘감은 모습은 마치 천상의 신장(神將)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네가 만든 거겠지?’

◎ 시스템에 수집된 무인 중 검무(劍舞)로 손꼽히는 실존 인물입니다. 시스템에 정리된 정보를 토대로 남아당자강을 가르칠 수 있게 재구성되었습니다.

실존한다는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한데 그 순간 사자탈의 눈이 남천휘를 향했다.

솨아아아-

기파가 가라앉는다.

그는 무게 중심을 뒤로 하여 자세를 낮췄고, 양 팔을 활짝 펼친 채 도발적으로 흔들었다. 그 순간 동굴 전체에 울리던 음률이 긴박하게 울렸고, 빠른 박자와 함께 사내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패기는 만근의 파도를 밀어내고!”

일갈과 함께 자세가 바뀌었다.

투로(套路)다.

오행군림보와 비천무상도를 동시에 펼치는 게다.

자세히 살피면 세세한 동작마다 지금껏 무무혁명을 통해 숙지한 표식이 번뜩이는 듯했다.

‘가 아니라······. 진짜 번쩍이네.’

사자탈이 투로를 이어갈수록 핵심 부분이 번쩍였다.

마치 지금껏 허공에 발판을 두고 펼치던 표식에 사람이 덧씌워진 듯했다.

무무혁명 때에는 사방을 뜻하는 네 개의 표식으로 숙련도를 올렸다. 그리고 확장판 무무혁명의 경우 여덟 개의 표식과 더불어 간혹 중앙에서 기습적으로 표식이 등장했다. 최종형 무무혁명은 춤 선생이 직접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혈인도처럼 여러 개의 표식이 번쩍였다. 아무래도 그 모든 표식을 동시에 맞춰야 숙련도가 상승하는 게 아닐까 싶다.

쿵!

사자탈이 진각을 밟는 순간 천지가 요동을 치는 듯했다. 그러니 남천휘도 딴청을 피우지 못하고 시선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열혈은 붉은 태양과 같이 빛나니.”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사자탈의 연공은 남아당자강이라는 음률과 절묘하게 맞물렸다. 마치 가락과 춤사위, 그리고 노래까지 어우러지니 저것을 단순한 춤이라고 비하했던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담력은 단련된 무쇠요! 강골은 정련된 강철과 같다!”

담력(膽力)과 강골(强骨)을 논할 때 몸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포부는 백 장, 천 장을 뛰어넘고, 눈빛은 만 리까지 뻗어나간다.”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였다.

대장부로서 저것을 따라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내라 할 수 있을까.

“열혈남아의 의기는 태양보다 빛나는 법.”

그래, 내 피가 들끓는다.

태양처럼 빛나야 한다며 나를 부추긴다.

“천지여! 내게 힘을 모아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내가 천지를 개벽하리라!”

호연지기가 절로 일어났다.

남천휘는 휘파람을 불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기세등등하게 사자탈을 따라 비천무상도와 오행군림보의 투로를 밟았다.

“차핫!”

한데 사자탈의 움직임은 점점 신묘해졌다.

분명 보법과 도법의 투로가 맞다.

그러나 운용의 방법은 천지차이였다.

남천휘는 점차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고, 재이의 신명나는 알림이 연이었다.

띠- 띠- 띠- 띠-

◎ 성공률 : 48%. 정확도 : 51%

◎ 합계 등급은 ‘D’ 등급입니다.

- 숙련도가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재이의 기분 좋은 외침에 남천휘는 똥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우! 저걸 그냥.’

그 때 예기치 못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체력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내공의 정순함에만 의지하니 큰 이름은 날릴지언정 큰 공을 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사자탈이 뒷짐을 진 채 남천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제 관계라도 맺으려고 그러시나. 지금껏 누구도 나를 막지 못했습니다.”

“천하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강과 들에 머물지 말고, 바다와 산을 보라. 편의에 익숙해진다면 결국 편의에 잠식될 뿐이란다.”

사자탈은 진짜 선생처럼 충고를 했다.

한데 목소리에 정감이 가득하니 남천휘도 더 이상 뻗대기가 어려웠다.

‘실존 인물이라잖아.’

남천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편의에 익숙해지지 않을 겁니다.”

그 때 사자탈의 벼락같은 한 마디가 귓가에 꽂혔다.

“벽선단과 적선단을 물처럼 마시면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특급 강호인은 고사하고, 일류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남천휘는 물약을 거론하는 사자탈의 일갈에 말을 잇지 못했다. 실존 인물을 토대로 시스템이 재구성했다더니 현실과 가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한 마디가 아니던가.

‘······.’

지금껏 물약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 사실이다.

하나 가진 것을 쓰지 않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행위가 아닌가.

남천휘의 생각은 고스란히 표정으로 드러났나 보다.

사자탈은 안타까운 어투로 말을 이었다.

“적선단과 벽선단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너는 더더욱 적선단과 벽선단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 지닌 것의 소중함을 알아야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대비를 할 수 있는 법.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면 물약이든, 비약이든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남천휘는 눈을 부릅떴다.

지금껏 남천휘는 시스템의 도움으로 무공을 익혔다.

그러니 제대로 된 사부를 만나지 못했지만, 최적화 된 수련법으로 타인을 뛰어넘었다.

한데 사자탈의 충고는 남천휘도, 시스템도 할 수 없는 연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남천휘는 사자탈의 한 마디에 깊이 감읍하여 절로 존대를 사용했다.

한데 경건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 주인님의 의지에 호응하여 ‘최종형 무무혁명’의 실행 중에는 물약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야! 이 새끼야.

기다렸다는 듯이 물약을 금제하는 것 좀 보라.

사자탈, 저 놈도 시스템이 심어놓은 간자가 아닐까?

“만약 그대에게 비약이 없었다면 훨씬 더 많은 위기에 처했겠지. 하나 그만큼 무공의 성취는 깊어졌을 것이야. 처절한 실전은 곧 그만큼의 성장을 의미하니까. 게다가 강호에서 부족함을 알게 되는 순간 생사가 결정되지 않던가. 반면 자네는 이곳에서 위기에 처한다한들 죽지는 않을 게야. 그러니 이처럼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사자탈이 다독이는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마봉파에 담긴 VR에서 봤던 사령신은 물론이고, 청염진군마저 몇 수 위의 고수였다. 그러니 제2막 중원행이 시작된다면 감당할 수 없는 고수를 만나게 될 것은 기정사실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지 않던가.

“예, 어르신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사자탈은 탈 안에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싶다.

“자! 다시 한 번 해보세.”

한데 그가 자세를 취하다말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은 시간과 정신에 구애받는 장소가 아니니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동굴에서 수련하는 것도 좋지만, 공간이 제한적인 장소를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군. 뭐가 좋을까?”

아저씨, 불안하게 왜 이러세요.

남아당자강을 부르더니 뜨거운 피가 솟구치셨나.

“그래, 죽림으로 하자. 반장 간격으로 빽빽하게 들이찬 대나무 숲이라면 실전과 같은 수련이 가능하리라. 긴장해야 할 것이네. 같은 초식이라고 해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를 줘야 하니까. 무턱대고 펼치다가는 대나무에 걸려 초식을 완성할 수 없을 것이야. 어때? 가능한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요.

‘그냥 해도 어렵던데.’

◎ 가능합니다.

너는 누구 편이야!

◎ 최종형 무무혁명은 춤 선생의 수련법을 지향합니다. 수련 장소와 방법, 그리고 제약에 대한 제반 사항에 대한 권한이 춤 선생에게 이양됩니다.

내 편은 아니군.

그 순간 운무가 한 차례 휘몰아치더니 바닥에서 죽순이 치솟았다. 잠시 후 한 여름의 대나무 숲처럼 사방이 녹빛으로 가득했다.

딴딴! 딴딴따다딴!

남천휘가 투덜대기도 전에 남아당자강의 가락이 울려 퍼졌다.

“패기는 만근의 파도를 밀어내고!”

사자탈이 초식이 펼치는 순간 남천휘는 울상을 지은 채 자세를 취해야 했다.

‘이게 뭐가 그리 좋다고 심장은 주책없게 뛰는 건지······.’

*

고된 망치질 후에 마시는 술은 감로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도 싸구려 술이 아니라 향긋한 명주였기에 소용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크하! 좋다. 이런 신비로운 장소에서 술과 요리를 즐기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남천휘는 초췌한 안색에 인상을 썼다.

“귀가 울리니까 그냥 조용히 먹자.”

그러자 소용녀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을 하는 남천휘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어. 그러다 병난다.”

“젠장! 물약만 먹을 수 있었어도.”

남천휘는 이를 갈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자탈의 수련은 혹독했다.

마지막 한 줌의 힘까지 끌어낸 후에야 수련을 마쳤다. 분명 시스템을 통해 남천휘의 체력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 분명했다.

“물약? 어디 아프냐?”

남천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아니, 괜찮아.”

사실은 아팠다.

그것도 너무너무 아팠다.

사자탈은 매일 같이 수련 장소를 변경했다.

어느 날은 바닥이 울퉁불퉁한 돌산이었고, 어느 날은 탁자와 의자가 가득한 객잔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만 해도 폭포수를 맞으며 수련하지 않았던가.

아닌 말로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소용녀라고 해도 이것만은 믿어주지 않을 터였다.

“후우, 그나저나 칠야와 창월은 어때?”

소용녀는 식욕이 떨어졌는지 수저를 내려놨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안 된다는 소리는 안하니 다행이다.

“얼마나 걸리는데?”

남천휘의 말에 소용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은 가늠이 안 되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생각보다 수리하는 방법이 까다로운 듯했다.

하나 소용녀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천휘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을 하는 것처럼 그녀 역시 망치질에 밤을 새기 일쑤였다.

“완벽하게만 수리해줘.”

소용녀는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건 맡겨둬!”

남천휘는 미소로 화답한 후 젓가락을 놀렸다.

몸이 고되니 식욕마저 사라진 듯했다.

하나 잠시 후 시작될 수련을 위해서라도 배를 채워야 했다. 그는 무공총람의 숙련도를 보며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었다.

눈에 띄게 상승한 숙련도가 가장 좋은 반찬이다.

그 순간 점점 요망해지는 재이의 알림이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 최종형 무무혁명이 활성화됩니다.

이 새끼야! 밥 먹을 때에는 개도 안 건드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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