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87화 (187/305)

84, 무인무명무대(武人無名舞臺). (1)

84, 무인무명무대(武人無名舞臺)

남천휘는 표정을 구겼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도를 찢었다.

한데 듣고 보니 자신의 일이다.

남천휘가 확인한 지도의 명칭을 보면 강호에 뿌려진 것만 수백 장이 될 터였다. 그 말인즉슨 수많은 사람들이 홍택호 북부를 수색한다는 뜻이 아닌가.

‘누가 먼저 발견하기라도 하면······.’

남천휘는 만병보고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청염진군과 제룡검야가 마봉파를 만든 장소를 찾고 싶을 뿐이다. 칠야와 창월만 고친다면 족하다고 여겼다.

보물에 대한 욕심?

있지. 사람인 이상 어찌 없겠는가.

하지만 만병보고의 주인은 강호사에 붉은 글씨로 깊이 이름을 새겨 넣은 사령신이다.

그런 사람의 보물을 얻어서 어디에 쓸까?

기껏 해야 무림공적으로 몰려서 짜증나겠지.

그게 아니라면 사방에서 도와달라며 귀찮아지겠지.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 보물을 얻으면 사돈의 팔촌은 물론이고, 얼굴도 모르는 자들이 조금이나마 뜯어먹겠다고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단다.

남천휘는 그런 귀찮음을 감수하고 싶은 생각이 전무했다.

‘어차피 보물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챙길 수 있다고. 황제의 옥새도 훔칠 수 있는 사람이야. 내가!’

재이가 있고, 시스템이 있고, 인벤토리가 있다.

그런 그가 도적으로 전직한다면 마교주의 속옷도 훔칠 수 있으리라.

그랬는데.

“정확한 위치가 어디야?”

소용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기까지는 못 봤지. 확인하기도 전에 네가 찢어버렸잖아.”

남천휘는 화기를 가라앉히며 되물었다.

“그거 말고. 백룡암과 흑린곡의 정확한 위치.”

“모르지. 나도 처음 가보는 거야.”

“아니! 그걸 왜 몰라? 우리 지금 거기 가는 거잖아.”

소용녀는 어깨에 짊어진 철항아리를 한 번 들썩이며 말했다.

“백룡처럼 생긴 바위가 흔해? 흑린이라고 이름 붙일 계곡이 흔해? 가서 찾아보면 있겠지.”

저 여자는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다.

자칫 하면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처럼 흑린곡의 비밀을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하나 남천휘는 더 이상 소용녀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불을 다루는 그녀의 성격은 불같겠지.

자칫 홧김에 철 항아리를 휘두르기라도 한다면 좋지 못한 곳에 맞을 것만 같았다.

소용녀는 남천휘를 다독이듯 말했다.

“지도 많다며. 가다 보면 한 장 정도는 더 얻지 않겠어?”

남천휘는 혀를 찼다.

“그게 쉽겠냐?”

쉬웠다.

“지도를 찾았어!”

남천휘는 자신의 손에 놓인 여섯 장의 보도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소용녀도 보도라고 부르지 않을 만큼 많은 지도를 수거했다.

‘슬슬 시기가 다가온 건가?’

객잔에서 사람을 끌기 위해 잔치를 하면 시작이 다가올수록 초대권을 뿌리지 않던가. 예를 들면 소면 세 그릇을 먹으면 화주 한 병을 무료로 준다든가 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 객잔이 어디 있냐고?

풍산현, 용인곡, 작야 마을의 객잔이 그러더라.

못 믿겠으면 찾아가 보든가.

소용녀가 보도를 보며 상념에 잠긴 남천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갈 거야?”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굳이 보도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 말했잖아. 이거 가짜라고. 함정만 잔뜩 파놨을 걸? 그러니까 우리는 홍택호 북부에서 백룡암부터 찾자고.”

그래서 강소성 북부의 하오문 지소를 찾았다.

“여기 맞아?”

남천휘의 말에 소용녀는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시사철 열두 시진 내내 문이 열려 있어야 할 지소는 폐업을 한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쉬는 날인가?”

소용녀가 변명을 하듯 말했다.

하나 남천휘는 개의치 않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들은 소문에 의하면 강소성은 물론이고, 인근의 성까지 발칵 뒤집혔다. 무림맹의 지부가 움직였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니 정보로 먹고 사는 하오문이 제집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개가 똥을 끊지 않는 이상 하오문도들은 정보가 가리키는 홍택호 쪽에 퍼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홍택호에 가서 생각해보자.”

소용녀는 의외로 무덤덤해하는 남천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 같네.”

남천휘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 지금쯤이면 지도가 퍼질 대로 퍼졌을 거야. 그러니 바보가 아닌 이상 이상한 점을 누구나 눈치 챘겠지? 거대방파는 책임감 때문에라도 움직이겠지만, 더 이상의 대규모 움직임은 없을지도 몰라.”

“그럴까?

그랬다.

드디어 남천휘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제아무리 강호인들이 정보에 어두워도 수백 장의 보도가 풀렸으니 이상하게 여기는 건 당연했다. 능력이 부족한 자는 못먹는 감 취급하며 발길을 돌렸고, 장수를 꿈꾸는 무인이라면 핑계를 대며 엉덩이를 붙였다. 홍택호 북부는 무림맹과 남궁세가를 필두로 수십여 곳의 중소방파들이 퍼져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꺄아아!”

피투성이의 사내가 다루에 들어서는 순간 양민들은 역귀를 마주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반면 몇몇 눈썰미가 좋은 자는 사내의 행색과 어울리지 않는 허리춤의 검을 응시했다.

‘저거 왠지······.’

점소이가 껄끄러운 표정으로 다가갔다.

“주, 주문하시겠습니까?”

하나 사내는 대답 대신 점점 고개를 떨궜다.

툭.

머리가 탁자에 닿는 순간 몸이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널브러진 채 절명했다.

눈치를 보던 서너 명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하나 누군가 움직이는 순간 무인들은 이곳저곳을 걷어차인 채 튕겨나갔다.

“아고고.”

그들은 당장 칼을 뽑을 것처럼 씩씩 거렸다.

하나 칼을 뽑지 못했고, 오히려 주춤거리며 물러서야 했다.

“남궁세가야.”

“청룡검호 남궁표가 분명해.”

천하제일검가라는 표현이 생각날만큼 쭉 뻗은 검미가 역팔자를 그렸다. 옥을 박아 넣은 듯한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린다.

남궁표는 죽은 사내에게 예를 표한 후 검을 주웠다.

“흐음.”

검을 쥔 손이 힘을 더했다.

그는 잠시 객잔의 내부를 돌아봤다.

수십 명의 겁 먹은 눈빛이 꽂혀든다.

“쯧.”

그가 주렴을 걷고, 떠나는 순간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살인멸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음을 말이다.

남궁표는 경공을 펼쳤다.

오늘 일은 해가 지기 전에 퍼져나갈 것이다.

‘내가 먼저 알려야 해.’

남궁세가의 보검 중 당대의 으뜸은 이검(二劍) 남궁재야가 사용하는 천영검일 터였다. 하나 그 이전 시대에만 해도 천영검은 보검의 축에도 들지 못했다.

남궁세가를 상징하는 두 자루의 보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창천검(蒼天劍)과 창궁검(蒼穹劍).

이름만 달랐지, 뜻은 같았다.

그렇기에 두 자루의 검은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남궁표는 굳은 표정으로 손안의 검을 바라봤다.

그가 가주를 배알할 때마다 보았던 검과 똑같은 형태였다. 백 년 전 사령신이 남궁세가를 짓밟고, 굴종의 증표로 빼앗아갔던 창궁검이 분명했다.

‘만병보고가······.’

*

“진짜라고?”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소용녀는 그런 남천휘를 보며 혀를 찼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란다. 녹린철사창과 옥룡선, 벽풍투, 천공비도가 발견됐어. 무림맹에서 모두 진품이라고 확인했다네.”

남천휘는 눈을 끔뻑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진짜라고?”

“그래!”

소용녀는 뜨거운 소면을 한입에 털어넣은 후 해장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육수까지 후루룩 마셔버렸다. 그리고 점소이를 불러 소면 세 그릇을 추가했다.

남천휘는 소용녀의 식탐에 놀랄 여유도 없이 눈만 끔뻑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재이는 보도를 가리켜 가짜라고 했다.

남천휘는 품안의 보도를 꺼냈다.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보도를 꺼내면서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의 눈빛은 ‘또 보도냐?’가 전부였다.

‘분명 가짜라고······.’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진 보도》

- 칠호 입구의 열여섯 번째 지도입니다.

- 등급 : 희귀

- 자체 퀘스트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 휴가 기간으로 인해 퀘스트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적혀 있지는 않네.’

남천휘는 입맛을 다셨다.

그는 간절하게 소용녀를 보며 물었다.

“좋은 의도로 이걸 뿌렸을 리가 없어. 그러니 함정이라는 건 바뀌지 않잖아.”

그 순간 객잔의 문이 열리며 먼지투성이의 사내들이 몰려왔다.

“말에게 건초 좀 주게. 그리고 가장 빨리 되는 걸로 준비 좀 해줘. 우리는 청명칠우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당장 시작해!”

점소이는 청명칠우라는 말에 희색이 만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명칠우라면 홍택호 서쪽에 은거한 정파의 명숙들이 아닌가. 그런 자들이라면 돈 떼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청명칠우는 모두 유생 출신이야. 속내야 어찌됐든 겉으로는 더없이 명망 높은 유자들이지. 그런 사람들이 개처럼 헉헉거리며 달려가는 곳이 어디 일까?”

남천휘는 똥 씹은 표정을 했다.

소용녀의 놀림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몇몇 사람의 움직임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해?”

◎ 적대적인 다수의 기운이 접근합니다.

◎ 고강한 무위로 인해 특기 ‘신안’이 자동으로 발동합니다.

시스템이 2.0으로 업데이트 되면서 신안의 능력이 변경됐다. 신안은 상대의 레벨과 능력 수치를 파악하는 용도였다. 하나 지금의 신안은 레벨을 볼 수 없는 대신 기감을 대신했다.

‘그런데 신안이 발동될 정도의 고수라면······.’

싸늘하다.

가슴에 기감이 날아와 꽂힌다.

홍택호 북서쪽에서 몰려올 고수라면 남궁세가가 유일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남궁세가의 엉덩이는 소용녀보다 무거우니까.

소용녀가 한 입에 소면 한 그릇.

다시 소용녀가 한 입에 소면 한 그릇.

마지막 남은 소면도 소용녀의 입으로.

이제 남천휘의 소면만······.

“동작 그만. 소면빼기냐?”

소용녀는 남천휘의 앞에 놓인 그릇에서 소면을 건져내다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먹을 거였어?”

남천휘가 대꾸하려는 순간 객잔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남궁세가다!”

남천휘는 표정을 굳힌 채 창가로 향했다.

은사를 섞은 청의무복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그들은 마치 용이 지나가듯 꼬리를 물고 말을 몰았다. 그 숫자는 일견하기에도 백여 명을 훌쩍 뛰어넘었을 정도였다.

“아.”

소용녀도 남궁세가의 행렬은 처음 보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검이 좋네. 무진철원이 아니야. 그러면 철왕가 제품이겠네. 철왕가도 많이 컸어.”

그 때 매담자로 보이는 자가 자리를 펴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크흠! 드디어 남궁세가가 등장했군. 홍택호 주변에서 가장 대단한 곳이라면 남궁세가가 유일하지. 그들이 참전한 이상 이번 일은 쉬이 끝나지 않을 게야.”

매담자와 한편일 것이 분명한 소년이 말을 받았다.

“엇! 남궁세가의 청룡대와 황룡대가 동시에 출진했다면서요. 그들은 마교의 준동이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을 텐데.”

“클클, 알고 싶으냐?”

그 순간 매담자의 앞에 은 덩어리가 굴러왔다.

“말해.”

남천휘의 서늘한 일갈에 매담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소매로 바닥을 쓸며 은자를 챙기면서 제 할 일을 이어갔다.

“사령신이 강탈해간 창궁검이 발견됐습니다. 남궁세가에서 구파오가에 전언을 넣었다더군요.”

남천휘는 뒷목을 잡았다.

신마대전 당시 괴겁천마와 사령신에게 굴복한 정파가 어디 한둘이던가. 그들은 마치 전리품이라도 수집하듯 온갖 기물을 빼앗아갔다.

“아! 빌어먹을.”

소용녀가 다가와 남천휘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갈까?”

남천휘는 소면을 바라봤다.

한 입도 먹지 않은 그릇이 텅 비어 있었다.

“가자.”

누구라도 때려버리지 않으면 화기를 삭힐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소용녀는 감격에 젖어 침음을 흘렸다.

그녀가 가리키는 호숫가에는 일견하기에도 승천하기 직전의 용의 형상을 한 바위가 놓여 있었다.

“찾았다!”

남천휘는 탄성을 흘렸다.

“칼 갈아 드립니다. 줄을 서시오!”

“소면과 당과 팝니다. 요기하고 떠나세요.”

“동굴이 얼마나 깊은지 아무도 모른다오. 건량과 물을 꼭 챙기시오.”

백룡암(白龍巖) 주변에는 때릴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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