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신교대(新橋隊). (6)
쌍부파의 주인인 문천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눈을 끔뻑이던 그가 도끼로 귀밑머리를 긁적였다.
“허, 웃긴 새끼네. 여기 분위기가 장난처럼 보이냐?”
남천휘는 슬쩍 장내를 둘러봤다.
“저기 칼 찬 놈들하고 독이라도 사고팔았냐? 한데 양 교두가 난입했고, 시험 삼아 독을 쓴 거지. 엇! 그런데 덩치만 산만한 줄 알았던 양 교두가 버텨내내. 엿 됐다! 싶었던 그 순간 저기 허여멀건 한 놈이 돕겠다고 튀어나온 거야. 그래서 저 녀석으로 시선을 끌면서 양 교두를 괴롭히고 있었겠지.”
문천은 표정을 굳힌 채 남천휘를 노려봤다.
남천휘는 마치 장내를 지켜본 것처럼 상황을 파악했다.
“너 누구냐?”
“100레벨 이하가 정체를 묻기 있기? 없기?”
뜻을 몰라도 어투로 전해졌다.
“이 놈. 감히 나를 조롱해?”
하나 그는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그 사이 대전의 문이 닫혔고, 여전히 장내에는 독이 가득했다. 그러니 시간은 능력의 유무를 떠나 그의 손을 들어줄 터였다.
아니나다를까 남천휘는 말이 없다.
‘퀘스트 뜰 때가 됐는데?’
하나 그것을 알 리 없는 문천은 도끼를 손가락처럼 사용하며 턱 밑을 긁적이며 말했다.
“하독하는 방법도 쉽고, 지속력도 나쁘지 않네. 흐음, 그런데 이걸 백 개 팔겠다고?”
칼을 찬 자들의 정체는 홍문회(紅門會)로 낙현과 반나절 거리의 터를 잡은 흑도였다.
홍문회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개당 은자 오십 냥. 너도 알다시피 이 독은 절정 고수도 못 피해. 아닌 말로 유명한 중과 도사가 아니면 대부분 꼴까닥이야.”
여기서 말하는 중과 도사는 소림과 무당을 뜻할 터였다.
문천은 침음을 내뱉었다.
“좋네. 좋은데 너무 좋아. 그래서 찝찝하네.”
홍문회주는 문천의 혼잣말에도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이해해. 나 같아도 이런 건 꽁꽁 감춰뒀다가 사용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나도 위임을 받은 거란 말이지. 그리고 용평, 장산, 부란, 곡지 놈들은 모두 샀어. 안 샀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지 말고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사라.”
“물량이 꽤 되나봐?”
문천이 눈을 빛냈다.
홍문회주는 키득거렸다.
“하여간 이 새끼들은 어미도 다르면서 한 배에 태어난 것처럼 하는 짓이 똑같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빨리 결정해. 네가 안 사면 봉황방에 갈 거야.”
봉황방은 쌍부파와 더불어 낙현을 양분한 흑도 세력이 아닌가.
문천이 입매를 비틀었다.
“말을 참 예쁘게 하네?”
그는 도끼를 휘휘 돌리며 홍문회주를 노려봤다.
하나 홍문회주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없는 시비 트려고 하지 마라.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면 없던 수전증도 생길 걸?”
문천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되물으려던 순간이었다.
콰직!
홍문회주는 눈을 끔뻑였다.
자신 앞에 있던 문천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피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문천, 아니 문천의 몸뚱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문천의 머리를 호박처럼 깨버린 철시는 삼분지 이나 기둥에 박힌 채 용트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반대편으로 바라본 후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활을 들고 있는 남천휘가 히죽 웃었다.
“쉽고 오래 간다고 좋은 게 아니잖아. 독을 썼으면 중독을 시켜야지.”
홍문회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화살은 신외지물이다.
그러니 아무리 강한 힘으로 활을 쏴도 화살은 눈에 보여야 했다. 한데 남천휘가 활과 화살을 꺼낸 후 쏘는 건 물론이고, 궤적조차 느낄 수 없었다.
보지 못하고, 느낄 수 없다면.
‘고수.’
그 사이 남천휘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는 홍문회주를 지나치며 말을 건넸다.
“안 그래?”
홍문회주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그렇소. 이런 쓰레기 같은 독탄은 빨리 폐기해야겠구려.”
그는 슬쩍 뒷발을 뺐다.
한데 남천휘는 죽은 문천에게 다가갈 뿐 제지하지 않았다. 그는 남천휘의 등을 바라보며 한 걸음 더 물러서려 했다.
“아!”
남천휘가 기둥에 박힌 철시에 손을 얹었다.
“네 배후가 그렇게 대단하다며?”
홍문회주는 두 가지 이유로 말을 잇지 못했다.
첫 째는 배후를 섣불리 거론했다가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둘 째는 남천휘가 철시에 손을 얹는 순간 기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기둥에 삼분지 이나 박혀 있던 철시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거짓말을 한 거요. 독탄은 표행을 털어서 구한 것일 뿐이외다. 대협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이만······.”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도 돼.”
홍문회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나 믿지 못하는 것과 달리 행동을 빨랐다.
그가 뒷걸음질 치려는 순간 남천휘의 말이 이어졌다.
“다 가는 건 안 되지. 너, 너, 너, 너, 너, 그리고 그쪽의 너희들은 남아.”
홍문회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만약 수하 몇 명을 거론했다면 기꺼이 두고 떠났으리라. 하나 남천휘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킨 이상 결과는 뻔했다.
“젠장! 쳐라!”
그 순간 대전에 모여 있던 왈패들이 달려들었다.
쌍부파와 홍문회가 동시에 접근했다.
남천휘의 손속으로 보아 쉬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스릉-
그 순간 질풍뇌격궁이 자취를 감췄다.
+5짜리 직도의 내구도를 올리려면 숫돌을 어마어마하게 갈아 넣어야 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질풍뇌격궁이 사라진 자리를 수련용 직도가 대신했다.
촤악! 촤악! 촤악!
남천휘는 양떼 무리에 뛰어든 늑대처럼 날뛰었다.
애초에 레벨 차이만 해도 백에 가까웠다.
그러니 그가 가볍게 휘두른 도에 서너 명씩 나자빠졌다.
레벨이 붉은 자는 죽어야 마땅했다.
살기 힘들어서 그랬다고?
죽을 만큼 힘들어도 그러지 않는 자가 더 많다.
그렇기에 손속에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푹푹푹푹푹!
붉은 놈은 죽고, 옅은 놈은 부러트렸다.
“이제 가도 돼.”
혈풍이 몰아친 후 내뱉은 한 마디.
살아남은 왈패들은 부상을 당한 동료들을 챙겼다.
갑작스레 의리가 발동했다기보다 남천휘가 턱 끝으로 가리켰기 때문이다.
하나 살아 있음에도 떠나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부끄럽군요.”
양방언은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남천휘는 양방언의 등에 손을 얹은 후 녹선단을 사용했다.
‘허헙! 이처럼 고절한 내공이라니.’
경악을 금치 못하는 양방언의 귓가에 담담한 한 마디가 흘러들어왔다.
“낙현을 고향처럼 여기시는 거잖습니까. 저 또한 그렇습니다. 제가 없을 때에도 곡부남가가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남아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협과 제가 다르지 않았군요. 이제 제가 힘닿는 곳까지 지키겠습니다.”
남천휘는 양대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야.”
“네, 부끄럽습니다.”
양대안은 울상을 한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응, 너는 좀 부끄러워해라. 나 아니었으면 네 아버지뿐 아니라 너까지 죽었어. 어린 나이에 혈기만 믿고 날뛰는 것도 좋지만, 상황 파악은 해야지.”
남천휘는 양대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부모님 걱정 끼치지 않는 착한 아들이 되거라. 얍!”
양대안은 신랄한 조롱에 화를 내려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가슴을 옥죄던 고통은 한순간에 사라졌고, 무기력하던 육신에 활력이 돌았다.
“아.”
“알았지?”
남천휘가 빙긋 웃으며 하는 물음에 양대안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전부였다.
양방언이 손을 모은 채 물었다.
“대협, 문천의 시신을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양방언이 문천의 시신을 끌고 나섰다.
이제 대전 안에 살아 있는 존재는 한 명뿐이다.
짝!
남천휘가 박수와 함께 발을 들였다.
“우리는 이제 배후 얘기를 해야지?”
홍문회주는 부러진 다리를 부여잡은 채 앓는 소리를 냈다.
“크흑! 잔인한 놈.”
남천휘가 접근하자, 놈은 대뜸 독탄을 뿌렸다.
누리끼리한 가루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뭐가 뭔지 모를 때에는.
‘녹선단.’
남천휘는 날파리를 쫓듯 손을 내저었다.
“으어어어!”
이번에는 녹빛 가루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러자 기이한 거품이 일며 퀴퀴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그래서 녹선단.’
그렇게 몇 개의 독탄이 대전을 가득 채웠을 때였다.
남천휘는 홍문회주 앞에 쪼그려 앉았다.
놈은 이제 저항 의지를 상실한 듯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다.
“여기서 죽을래? 아니면 배후를 불래?”
홍문회주의 눈에 빛이 돌았다.
“살려주겠다는 건가?”
“나는 살인귀가 아니야.”
남천휘의 말에 홍문회주는 널브러져 있는 왈패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걸 보고는 믿기 힘들지 않겠소.”
“저 정도는 보여줘야 내가 진심인 걸 알지 않겠어?”
홍문회주는 남천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진짜 살려주는 거요?”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내 신념이거든.”
남천휘의 다짐에 홍문회주의 눈빛이 풀렸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그나마 나은 쪽을 택한 것이다.
“면사를 쓴 여인들이었소. 독탄을 푸는 대가로 큰돈을 준다고 했소. 달포마다 물건을 받으러 가는 장소를 알려주겠소.”
용두암이란다.
남천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홍문회주는 다급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황도 아래쪽에 큰 산이 있소. 그곳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암자요.”
황도는 귀에 익었다.
환혼검을 쓰던 황도쌍노의 은신처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여인들은 청도문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신공부주가 죽은 이상 청도문은 더 이상 꺼릴 것이 없으리라.
‘이거 뭔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은데······.’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나는 이만 가겠소.”
그 순간 홍문회주는 눈을 부릅떴다.
어디선가 나타난 남천휘의 칼이 홍문회주의 아랫배를 헤집었기 때문이다.
“놈! 하찮은 신념이었더냐?”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가리가 빨간 놈은 살려두지 않는다는 게 내 신념이야.”
“너! 나를 속여?”
“그래, 염라한테 내 탓 많이 해라.”
촤악!
*
양방언은 한 시진 후 돌아왔다.
양대안을 추궁했더니 양방언은 문천의 시신을 가지고, 봉황방에 갔단다. 쌍부파와 낙현을 양분한 방파에서 할 일은 뻔했다.
적당한 수금과 적당한 보살핌.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그 정도면 충분히 할 일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다음 날 양방언은 가산을 정리한 후 주변에 나눠줬다. 그 후에야 남천휘와 소혜가 타고 온 마차에 몸을 실었다.
“제가 지붕 위에 앉겠습니다.”
“손님 대접은 이게 마지막입니다. 그러니 들어가서 쉬세요. 아직 여독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남천휘는 양방언과 그의 아내를 마차에 태운 후 지봉에 올랐다.
양대안이 눈치를 보며 엉덩이를 붙였다.
“대협, 지난밤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놈이 뒤늦게 왜 살가운 척을 하는 거지?
남천휘가 경계심을 드러내자, 양대안은 헤벌쭉 웃기 시작했다. 양방언과는 다른 의미로 위협이 되는 미소였다.
“반 소저가 그러는데 대협께서 육포를 참 좋아하신다고요?”
남천휘는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소혜의 성이 반 씨임을 기억했다.
자신도 모르게 통성명까지 했다면 더 늦기 전에 단속을 해야 할 터였다.
“소혜는 잔정이 많아서 길 잃은 강아지도 그냥 두지 못하는 아이야. 그러니까 섣불리 말 붙이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둬. 만약 소혜 입에서 안 좋은 소리라도 나오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남천휘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경고를 했다.
한데 양대안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다시 헤벌쭉 웃는 것이 아닌가.
“조언 감사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마부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말동무를 자처하며 쉴 새 없이 떠드는 것이 아닌가.
남천휘는 양대안의 듬직한 등을 보며 몇 번이나 침음을 흘렸다.
‘잠깐! 뭔가 잘못 전해진 것 같은데?’
*
신교대의 구성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오랜만에 현업으로 복귀한 양방언이 의욕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남천홍이 열어준 연회를 끝날 무렵 양방언의 동료가 도착했다.
레벨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저마다 지닌 특기가 도드라졌다. 공격과 수비는 물론이고, 중원 장악과 침투, 그리고 공수의 연결까지 담당하는 바가 달랐다.
“훌륭합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양방언은 그 날 이후 남천휘를 윗사람으로 대했다.
단지 구명의 은인이 아니라 같은 꿈을 꾸는 사람으로 인정한 듯보였다.
그렇게 양방언과 교두 십여 명을 필두로 마흔여덟 명의 신교대가 곡부남가를 나섰다.
“기대 되는 걸?”
“철귀유협께 직접 가르침을 청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양 교두께서도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어.”
“어제 철귀유협께서 무공을 손봐주실 때 양 교두도 함께 하시더군. 가르치는 건 양 교두 쪽이 윗줄인 것 같아.”
이미 남천휘가 신교대의 무공을 한 번씩 살펴봐줬기에 무인들 역시 의욕이 넘쳤다. 그들은 대화동에 도착하자마자 자신들이 사용할 연무장을 정비하고, 대화동 곳곳에 목책을 설치했다.
그 사이 남천휘는 인벤토리에 챙겨온 식량을 창고에 넣었다. 서너 달은 넉넉히 먹을 만한 양이었으니 유선관에서 돌아올 때까지 배곯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군사.’
남천휘는 특기 유지가 발동한 가운데 군사의 보고를 받았다. 그간 성소 포인트를 모아놓은 것을 치하하고, 새로이 등록된 인명록을 살피던 중이었다.
띠링-
며칠 전 쌍부파와 홍문회를 처리할 때에도 조용하던 녀석이 기분 좋은 알림을 터트렸다.
◎ 곡부남가의 내실과 외형을 완성했습니다.
◎ 일문의 책임자로서 큰 성과를 이뤘습니다.
◎ 제 1막 ‘강호행’에 대한 수행평가가 끝났습니다.
◎ 제 1막 ‘강호행’의 수행평가 지수는 120점입니다.
백 점 만점에서 백이십 점이라.
남천휘는 재이가 선사할 보상을 기대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한데 뒤이은 알림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대상자의 기간 대비 성장 예정치가 100%를 돌파했습니다.
◎ 하급 모드가 자동으로 종결됩니다.
◎ 고급 모드를 개방하시겠습니까?(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