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신교대(新橋隊). (3)
*
마차 안은 조용했다.
잘 닦인 관도를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와 마차의 출렁임이 전부였다.
소음을 뚫고 소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종이뭉치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다섯 번째 인사는 양방언입니다. 경성에서 금군의 교두를 했다는 소문이 있어요. 가족은 아내와 아들이 있네요. 지금은 기루의 연주자로 연명하고 있네요.”
남천휘는 침음을 내뱉었다.
금군의 교두라면 외공을 익혔을 터였다.
그런 사람이 낙향하여 금을 연주하고 있다니 언뜻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능력에 관한 정보도 있어?”
“처음에는 소문으로 인해 시비를 거는 이가 없었는데 몇 년 전 술취한 뒷골목 왈패들에게 얻어맞고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는 굴욕을 자처했다는군요. 그 후부터는 딱히 눈에 띄는 정보가 없어요.”
남천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 밤의 사건 아닌 사건 이후 재야인사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그 결과 등용이 가능하다는 파란색의 인사들만 찾아다니는 상태였다.
하나 아침부터 찾아다닌 네 명의 재사 중 세 명은 딱히 뛰어난 점을 찾지 못했다. 그저 산학에 능통하다는 중년 문사를 등용한 것이 전부였다. 마지막 한 명은 일신의 무위가 제법이었다.
100레벨에 근접한 무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나 그는 완곡한 거절의 한 마디로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 다만 언제고 하산을 하게 된다면 곡부남가를 찾아오겠다는 말로 이별을 대신했다.
그렇게 다섯 번째 재야인사를 찾아가는 중이다.
“흐음, 금군의 교두라면 나한테 딱 필요한 사람이기는 한데······.”
그러나 십 년 전 낙향한 후 한 번도 병장기를 쥐지 않았단다. 심지어 금을 연주하며 지낸다는 소리에 좋은 결과를 예상하기 힘들었다.
“네 생각은 어때?”
남천휘의 물음에 소혜의 입술을 삐죽였다.
이대로라면 오리나 기러기가 호형호제를 할 만큼 튀어나왔다. 잘만 하면 호리병에 든 술을 움직이지 않고 마실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개똥님에게 물어보시지요?”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 계속 저 상태다.
이럴 거면 따라오지나 말지.
하지만 인재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이름과 위치가 전부였다. 그렇기에 하오문의 정보가 필요했다. 하나 일전에 사기를 쳐버렸으니 웃으며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오문 정도 되는 곳이라면 쌍도를 시작으로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챘을 터였다. 다만 자신의 위명이 산동강호에 진동하니 차마 탓하지 못할 뿐이리라.
‘혜소가 있었으면 개구리도 필요 없는데.’
혜소는 아직 신공부에 머물렀다.
남천휘가 일부러 안자영과의 연락을 맡아달라고 청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쯤 어머니는 혜소를 네 번째 아들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소혜는 수완을 발휘하여 하오문에서 정보를 모아왔다.
하나 고마운 것과 귀찮은 건 별개였다.
무엇보다 하오문에 정보 대금을 치룬 건 나라고.
“야, 너 질투하냐?”
남천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적으로 물었다.
하나 소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꾸했다.
“제가 왜 질투를 해요?”
“그럼 개똥이라고 부른 걸 왜 마음에 담고 있어? 심지어 너는 별명 부르는 것도 싫어했잖아.”
남천휘의 말에 소혜는 다시 한 번 입술을 삐죽였다.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래도 제가 공자와 몇 년을 함께 했는데······. 그 사이 천 소저에게 홀딱 빠지셔서!”
“놀고 있네. 너는 나보다 아버지를 더 좋아하잖아. 되도 않는 소리로 까불면 진짜 혼난다!”
소혜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허허, 아직도 아버지가 제일 좋은 거냐?’
아무리 고아였던 그녀를 거둬줬다지만, 편애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어찌됐든 한 건 해결이다.
남천휘가 소혜를 보고 개똥이라고 한 까닭은 별 것 없다. 그저 천수련과 소혜는 동생처럼 여겨질 뿐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누구를 뭐로 부르든 무슨 상관이랴?
◎ 미연시의 대상은······.
남천휘는 재이의 설명을 끊었다.
‘내가 혼인까지 시스템에 맡길 줄 알아?’
사내로 태어나서 자신의 반려는 스스로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인연을 시작하라는 미연시에 휘둘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무엇보다 아직 산동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잖아.
세상은 넓고, 뭐 그렇다는 거다.
남천휘는 안자영에게 휘둘리는 남운군을 떠올리며 굳게 다짐했다.
‘벌써부터 목을 맬 수는 없지!’
그 사이 마부가 외쳤다.
“이제 곧 낙현입니다.”좋아! 양방언이라는 자를 평가해볼까?
*
남천휘는 기루를 앞에 두고 침음을 흘렸다.
누각이 있을 만큼 크고 화려한 기루가 아닌가.
아무래도 낙현에서 으뜸가는 기루일 터였다.
남천휘는 슬쩍 옆을 보며 말했다.
“그거 나 주고, 너는 가라.”
하나 소혜는 종이뭉치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내저었다.
“기루에서 뭘 하시려고요?”
아, 이래서 감이 좋은 개구리는 무심코 던진 돌에 맞는 건가 싶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뜻이지.
남천휘는 어쩔 수없이 소혜를 대동한 채 기루에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점소이가 두 사람을 안내했다.
소혜를 보고 놀라지 않거나, 잘 차려 입은 복장만 봐도 이곳이 색주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아쉽다.’
남천휘는 여차하면 소혜에게는 소면이나 주고 따로 별채를 잡으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광영루에서는 많은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특별히 원하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금을 잘 타는 사람이 있다던데.”
점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양 악사를 찾아오셨군요. 다행히 시간이 비어 있습니다. 몇 층으로 모실까요?”
매일 오는 것도 아니잖아.
“제일 좋은 곳으로.”
남천휘는 사치를 부리기로 했다.
재야인사를 등용하기 위해서라면 재력 과시 쯤은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겸사겸사 소혜에게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두 사람은 누각의 꼭대기 층에 들어섰다.
“와!”
소혜는 누각에 오르자마자 난간을 붙잡고 연방 탄성을 흘렸다. 낙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만큼 풍광이 좋았다.
두 사람이 주변 풍경에 넋을 놓았을 때였다.
“크흠.”
남천휘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내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곰이다. 저건 먹잇감인가?’
양방언의 체구는 남천홍을 방불케 했다.
다만 물렁살인 남천홍과 달리 암석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몸을 휘감았다.
‘손가락 굵기가 소혜 팔목 같아.’
이런 과장을 섞어야 할 만큼 양방언은 뭐든 다 컸다. 한데 그뿐 아니라 전신의 피부는 먹칠을 한 것처럼 새카맣고, 바늘을 놓치면 찾을 수 없을 만큼 울창한 털을 자랑했다.
그런 사람이 금이랍시고 가져온 것을 품에 안았다.
‘연주는 들어보지 않아도 되겠어.’
저 손으로 현을 타는 것만으로도 박수갈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존재였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아, 네.”
양방언은 음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탁자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연주를 들으러 오신 것이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남천휘는 말을 돌리지 않았다.
일견하기에도 어설픈 설득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양방언은 고개를 꾸벅이더니 금을 주워들었다.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지요.”
그러더니 그대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
소혜가 탄성을 흘렸다.
남천휘는 피식 웃으며 출구로 향했다.
“가자.”
“이건 다 놓고 가요?”
음식 보고 내지른 탄성이었던 거냐.
남천휘는 아쉬움이 가득한 소혜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히잉, 아까운데.”
하나 남천휘는 단호했다.
“더 먹음직스러운 걸 찾았어.”
양방언의 레벨은 144였다.
한데 소혜가 버티는 것이 아닌가.
남천휘가 인상을 쓰며 돌아보자, 소혜 역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딱!
소혜의 머리를 쥐어박은 후 한 숨을 흘렸다.
“망상도 심하면 병이 되는 거야.”
*
명백한 축객령이었지만, 이대로 떠날 수는 없다.
양방언의 레벨만 봐도 수십만 금군의 교두였다는 소문은 진실일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총사범이나 그에 준하는 고관이었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 상대를 두고 다른 재야인사를 찾아 헤맬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남천휘는 곧장 양방언의 집으로 향했다.
당사자가 안 된다면 주변 인물을 공략하는 것이 나을 터였다.
‘아.’
양방언의 아내는 평범했다.
일견하기에도 강호와 어울릴 사람이 아니었다. 혼인을 하고 강호를 떠났다니 아내를 위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쪽에 앉으세요.”
그녀는 친절했다.
초췌한 가운데 피부가 유달리 하얗다.
게다가 부드러운 미소로 인해 마주할 때마다 편안함이 느껴졌다.
“제가 식견이 높지 않지만, 공자께서 철귀유협이라 불리는 남 소협이시겠군요.”
남천휘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봉천검 왕학이 정말 철귀유협이라는 별호를 퍼트리기로 작정을 한 듯했다. 벽촌의 아낙까지 알아볼 정도면 이건 단순히 돈만 써서 될 일이 아닐 터였다.
‘신공부에서 대대적으로 움직였군.’
당금 강호에서 남천휘는 곧 신공부가 아닌가.
그러니 남천휘의 위명이 올라갈수록 신공부의 명성 또한 덩달아 상승할 터였다.
노인네들의 치졸한 정략이었다.
하나 그로 인해 양방언의 아내는 경계를 풀지 않았던가.
남천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 제가 철귀유협입니다.”
그녀는 이내 한 숨을 내쉬며 뜻밖의 한 마디를 건넸다.
“양 교두께 들었습니다.”
“한데 교두라고 부르시는군요.”
여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금군의 객당을 관리하는 시비였습니다. 교두께서 어여삐 여긴 덕에 이렇게 호사를 누리며 지내고 있지요.”
남천휘는 슬쩍 집안을 둘러봤다.
소박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하나 아무리 찾아봐도 호사를 누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차를 내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협.”
“말씀하세요.”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만약 그녀에게까지 쫓겨난다면 양방언에 대한 등용이 어려워질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한데 뜻밖의 한 마디가 돌아왔다.
“부디 양 교두를 거둬주세요. 그는 금을 타면서 안빈낙도할 사람이 아닙니다. 십만 금군을 호령하던 이가 저자의 왈패들에게 치욕이나 당하다니요. 부디 부족하게 여겨지시더라도 대협의 휘하에 거둬주시길 간절히 청하나이다.”
남천휘는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내력까지 운용해야 했다. 십만이라면 제연평에 세워뒀을 때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머릿수가 아닌가.
‘어쩐지 천라쌍익이나 천위검호와 비슷한 레벨인가 싶었다.’
한데 옆에서 주책없을 소혜가 ‘후아후아’라는 이상한 탄성을 흘렸다.
“하나 양 교두께서는 등용에 관심이 없다고 하시던데요.”
여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사람이 술만 마시면 철귀유협을 칭송하겠습니까? 근래에 보기 드문 호협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더군요. 그런 사람이 많아져야 강호가 더 평안해진다고요.”
결국 병약한 아내를 위해 강호를 떠난 게다.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파란색이 뜬 이상 등용은 가능해. 방법만 찾으면 되는데······.’
여인을 통해 자신에 대한 호감도를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적당한 계기가 생겼을 때 여인이 힘을 더한다면 등용이 가능할 터였다.
쿵-
한데 밖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소음이 일었다.
남천휘는 난색을 표했다.
‘벌써 돌아오면 안 되는데.’
당황스러워하는 사이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양방언을 빼다 박은 젊은이가 들어섰다.
“어.”
아버지의 덩치와 어머니의 살결을 겸비했구나.
‘흑곰 다음에는 백곰이냐.’
한데 백곰의 시선은 잠시 남천휘에게 머물더니 다른 곳을 향했다.
남천휘는 백곰의 시선을 쫓다가 미간을 좁혔다.
소혜가 고개를 모로 숙인 채 소매로 입을 감추는 것이 아닌가.
‘이것아! 그 큰 입이 소매로 가려진다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