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63화 (163/305)

75, 신교대(新橋隊).

75, 신교대(新橋隊).

남천휘의 제안은 간단했다.

곡부남가에 의탁하여 함께 하자는 것이 전부였다.

오십 명의 무인들은 그것만으로도 반색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금 강호의 사정은 저기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만 허락됐을 터였다. 저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무인들은 타지의 사정에 어두웠고, 크게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평생 갈 곳도 아니잖아?’

남천휘조차 산동성 밖의 강호는 무지했다.

심지어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저들에게 있어서 남천휘란 존재는 무림맹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산동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후기지수가 숙식을 제공하고, 무공을 손봐준다는 제안을 누가 거부할 수 있으랴.

‘조금 전의 대략적인 조언만으로.’

‘오직 그만이 나를 무인으로 대우해줬어.’

‘꽉 막힌 신공부에서 빌빌대느니 곡부남가에서 함께 커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남천휘가 점수를 거론하며 평가해줬던 것도 저들의 마음을 사는데 큰 공헌을 했다.

하나 모두가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두 명이 난색을 표했다.

“저는 강소성 홍택호 쪽으로 갈까 합니다. 그곳에 낭인들이 모이는 낭시가 있다더군요. 비무도 하고, 이런 저런 경험을 하고 싶네요.”

완곡한 거절이었다.

“곡부남가에 의탁해서 무얼 얻을 수 있을까 모르겠군요. 제가 알기에 그곳은 정식 방파가 아니라 상단이잖습니까? 철귀협께서 매일 같이 손을 봐주실 것도 아닌데 곡부남가에 의탁하는 건 제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군요.”

명확한 거절이었다.

하나 남천휘로서는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오십 명을 두 부류로 나눠놓은 상태였다.

오십 명 모두 잠재능력이 높다.

그러나 몇몇은 현재 능력도 한 사람 몫을 할 만큼 뛰어났다. 하여 조장급과 조원급으로 내심 선별을 해놓지 않았던가.

공교롭게도 떠나겠다는 두 명은 전자였다.

‘조필현과 위강.’

유순하게 생긴 조필현의 수치는 4/8이다.

고집 있게 생긴 위강의 수치는 5/8이다.

혜소를 제외하면 상위 다섯 명에 손꼽힐 만한 수치였다.

‘일단 까다로워 보이는 놈부터.’

남천휘는 위강과 마주했다.

녀석의 야망은 4였고, 인내는 5였다.

적응과 충성은 좋지만, 야망과 인내는 어중간했다.

“꿈을 가지는 건 좋지만, 현실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위 소협이 익힌 검법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해요. 아마 정식으로 익힌 검법이 아니지요?”

위강은 얼굴을 붉혔다.

예상대로 어딘가에서 반쪽짜리 검법을 주워 익힌 것이 분명했다. 하나 역설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현재 능력을 5까지 끌어올린 유망주였다.

그리고 꼭 가지고 싶었다.

“아마 좌에서 우로 검을 휘두를 때마다 어깨가 아플 겁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런가요?”

남천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눈빛으로 말했다.

현실을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강은 우물쭈물했다. 절정의 무인이니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나 보다.

그 때 남천휘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위강! 정신 차려. 젠장, 너는 스승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반편이야!”

위강은 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예의로 대해주던 사람이 힐난을 해버리니 한순간 넋이 나간 듯했다.

“그, 그럼 당신과 함께 있으면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남천휘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느리게 가는 건 괜찮지만, 잘못 된 길은 가지 말아야지. 그러니 느릴지언정 제대로 된 길을 가르쳐줄게.”

‘변설’로 약한 곳을 보듬어줬고, ‘지모’로 강한 곳을 부쉈다.

결국 위강의 얄팍한 자존심이 무너졌다.

“크흑, 따르겠습니다.”

사내 녀석이 울기는.

남천휘는 코밑을 훔치며 피식 웃었다.

자, 이제 만만한 녀석을 설득해볼까?

조필현의 겉모습은 영락없는 백면서생이다.

그렇기에 낭인들의 폐쇄성과 낭시(浪市)의 위험성을 이유로 설득하고자 했다.

“그래도 한 번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결국 조필현은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별채를 떠났다. 순진하게 생겨서 제법 고집이 있는 녀석이다. 그러고 보면 상세정보에 나타난 4가지 수치로 사람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았다.

“형님.”

혜소가 다가왔다.

시간으로 따지면 길지 않은 헤어짐이었다.

한데 녀석은 그 사이 많은 고생을 한 듯 초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걸 보면 참으로 성격이 좋은 놈이다.

“저도 힘들겠는데요.”

좋기는 개뿔.

“왜?”

“저야 형님을 보러 온 건데요. 곡부남가에 적을 두면 동생을 찾으러 다니기가 힘들잖습니까.”

그것도 그러네.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혜소와의 관계는 저기 모여 있는 마흔여덟 명보다 깊지 않은가. 한 명 정도는 수하가 아니라 동생으로 둬도 좋으리라.

“그래. 밥은 먹었냐?”

혜소는 소처럼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웃었다.

“겨울은 먹을거리를 구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밥 얻어먹으러 찾아왔던 길입니다.”

남천휘는 능글맞은 혜소의 한 마디에 입꼬리를 올렸다.

“가자.”

일단 배부터 채워야겠다.

*

남천휘가 금의환향을 생각했다.

일신의 무위가 어쨌든 수십 명의 훌륭한 유망주와 함께 하는 귀환이 아닌가. 햇살 좋은 날 곡부 인근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기세등등하고 도착하고 싶었다. 한데 곡부 외곽에 도착했을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겨울비가 모든 걸 망쳤다.

‘쯧쯧, 이러다 고뿔에 걸리겠는 걸.’

남천휘에게 겨울비란 귀찮을 뿐 어려움이 대상은 아니었다. 정순한 내력과 냉기 저항수치를 꾸준히 쌓은 덕이다.

반면 무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살던 자들이 누군가의 가솔이 되기 위해 목을 맬 리가 없지 않은가. 저들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악착같이 무공을 수련했으리라. 문파에 소속된다면 먹고 자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속도를 올리자.”

남천휘는 길 잃은 어린 소를 인도하듯 무인들을 다독였다.

그렇게 곡부남가에 들어섰을 때였다.

무인들은 천막 아래 펼쳐진 진수성찬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게 다 뭐야?”

“오셨어요.”

소혜는 제 얼굴만한 국자로 솥 안을 휘저으며 헤죽 웃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사람을 반기듯 평범한 인사였다.

한데 남천휘는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집에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혜는 탕을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마님께서 전갈을 주셨어요. 공자께서 곡부남가의 새로운 가솔들과 함께 출발하셨다고요.”

“그래서?”

남천휘의 말에 소혜는 환하게 웃었다.

“이런 날에는 토끼탕이지요.”

그렇게 때 아닌 잔치가 벌어졌다.

잠깐!

남천휘는 자신이 도착하자마자 빗발이 잦아드는 걸 보며 인상을 썼다.

“이 놈의 개구리가 또.”

*

무인들은 다음 날부터 곡부남가의 가계도와 구조를 익혔다. 한데 곡부남가는 규모에 비해 자금이 넘쳐흐를 만큼 많았다. 그러다 보니 숙소는 새집처럼 깨끗했고, 먹을 것과 의복은 고급스러웠다.

그들은 미심쩍던 마음을 버리고 곡부남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반면 남천휘는 무인들을 키워낼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히든 모드인 ‘문파 관리’를 이리저리 살피던 중 별 생각 없이 물었다.

‘발탁은 그냥 등용만 하고 끝인 건가?’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 발탁을 통해 고용된 무인은 새싹과 같습니다. 뿌리의 깊이와 가지의 퍼짐은 대상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저들을 붙잡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방법이 없냐고?’

답답한 마음에 내뱉은 한 마디였다.

◎ 대상자가 보유한 특기로 인해 탐색이 가능합니다.(해당 특기 : 통찰, 신안.)

방법이 있다는 말에 안도의 한 숨이 절로나왔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녀석은 이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남천휘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재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 양천중 휘하 사십팔 명의 보고서가 갱신됩니다.

양천중이라면 남천휘가 발탁한 무인 중 가장 능력이 뛰어났다.

하나 여전히 미심쩍은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갱신이라고? 그럼 지금 파악한 것이 아니라 원래 알고 있었다는 뜻이잖아.’

재이는 답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 불리하면 침묵하려나 싶은 순간이었다.

◎ 시스템은 대상자의 생활양식과 습성을 토대로 대상자가 활동할 지역 내의 모든 정보를 수집합니다.

어투만 봐도 속뜻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런데 기간 대비 성장 예정치에 미치지 못했기에 제한적으로 정보가 제공되는 건가?’

평소였다면 몇날며칠을 고민해도 깨우치지 못했을 내용이었고, 의심이었다.

하나 어느덧 지혜 수치만 해도 900에 가까웠다.

게다가 특기 ‘지모’를 얻은 후부터 생각의 궤를 달리하게 되었다. 의도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됐다.

머리가 좋아졌다는 걸까?

◎ 정확합니다.

좋아졌네.

하나 좋아진 만큼 궁금한 것이 늘었고, 미심쩍은 것도 늘었다. 마냥 하늘의 선물이라고만 여겼던 재이에게는 얼마나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하지만 대답하지 않겠지.

‘자격을 갖추라는 건가?’

남천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그랬듯 한 걸음씩 가는 거다.

대신 타인의 열 걸음을 자신의 한 걸음처럼 여기는 의지만 놓치지 말자.

“알았어. 일단 보자.”

◎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또 뭐가 부족한데?”

재이는 남천휘에게 보여준 첫 알림을 다시 띄웠다. 그것을 보아하니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발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도 해야 하는군.”

재이의 말이 옳다.

저들이 남천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구속력은 전무했다. 외부에 알린 것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서류를 작성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남천휘가 고용의 방도를 궁리하는 사이 재이의 알림이 이어졌다.

◎ 충성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돈을 주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고용 관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돈을 주고받는 것이 가장 명확했다. 소혜와 가족처럼 지내고 있지만, 월봉을 비롯한 상여금이 지급되고 있지 않은가.

남천휘는 검지로 이마를 긁적였다.

돈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무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급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할 수하들과 첫 대면부터 돈 얘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던 중 묘수가 뇌리를 스쳤다.

“상재가 있으면 거래를 할 시에 손해 보는 경우가 적다고 했지?”

남천휘는 재이의 그렇다는 대답을 듣자마자 자리를 박찼다.

‘먹는 건 남천홍에게, 술 마시는 건 막 총관. 아니지. 거래는 막 총관에게 맡겨야지!’

자신에게 상재를 전해준 막 총관이라면 서로가 만족할 수 있을만한 계약을 완성해주리라.

막 총관은 언제나 그렇듯 백주대낮부터 술독에 빠져 있었다. 상단의 일을 대부분 오용에게 맡겼다더니 한량이 다 된듯했다.

남천휘는 입술을 삐죽였다.

막 총관의 하루야 말로 그가 재이를 만나기 전에 꿈꾸던 삶이 아닌가.

“노야!”

“흥, 일찍도 찾아온다. 신공부에 다녀왔으면서 얼굴도 안비추고 말이야.”

상단의 일을 넘긴 후 무료하기는 했나 보다.

평소와 달리 벌게진 얼굴로 투덜거리는 것을 보니 절로 입꼬리가 치솟았다.

‘확실히 집은 집이야.’

그는 헛기침과 함께 막 총관을 잡아끌었다.

“술은 나중에 드시고, 함께 가시지요.”

“왜?”

“애송이들한테 독소조항이 잔뜩 들어간 계약서 좀 안겨주세요.”

막 총관은 계약이라는 말에 눈을 빛냈다.

오랜만에 상인의 피가 들끓는 듯하지 않은가.

“그건 내 전문이지.”

막 총관의 호언장담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해가 질 무렵 남천휘에게 마흔여덟 장의 계약서를 건넸다.

남천휘는 계약서를 확인하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월봉을 이렇게 조금만 줘도 되는 겁니까?”

“처음부터 많이 주면 배에 기름만 차. 처음에 적게 주더라도 꾸준하게 올려주면 되는 일이야. 하다가 안 되면 내보내기도 쉽고 말이야.”

막 총관의 대수롭지 않은 한 마디에 남천휘는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하기는 한평생 칼만 휘두른 자들이 꼼꼼하게 계약서를 살피는 것도 우습네.’

이렇게 된 이상 잘 챙겨줘야겠다.

‘형에게 말해놓으면 알아서 하겠지.’

◎ 사십팔 명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 발탁 목록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 순간 남천휘의 눈앞에 사십팔 명의 장단점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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