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62화 (162/305)

74, 제 점수는요. (2)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나 하늘 아래, 그리고 땅을 밟고 선 사람은 모래알처럼 많았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성격과 근골을 지녔을 터였다.

그렇기에 강호는 제자를 받을 때 근골과 자질을 살피고, 오성을 시험했다.

둔재와 범재, 그리고 기재.

마지막으로 강호사에 이름을 남기는 천재.

남천휘는 범재에 가까웠다.

근골과 자질이 어떠했든 본인 스스로가 강호에 뜻을 두지 않았다. 놀고먹는 한량처럼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근골과 자질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재이를 만나고 ‘특급강호인승급체계’를 통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뭐?’

억울하면 전생에 덕을 쌓았어야지!

어찌됐든 남천휘가 만났던 조상이나 공태령, 그리고 혜소와 같은 존재는 기재를 뛰어넘었으리라. 북풍대주인 조상만 해도 군계일학의 성장을 자랑하지 않았던가.

다만 시작 지점이 너무 낮았던 게 아쉬울 따름이다.

반면 공태령은 억지로 무공을 익혔음에도 천수련을 뛰어넘는 무위를 자랑했다. 하나 볼 때마다 성장기의 어린아이처럼 달라지는 혜소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보고 있나. 태령군.’

남천휘는 혜소의 정보를 침음을 흘렸다.

‘너를 능가하는 뛰어난 기재가 여기에 있어. 그것도 두 명이나!’

혜소, 그리고 나.

남천휘는 민망할수록 더욱 더 눈을 부릅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억울하면 전생에 덕을 쌓았어야지. 그런 의미에서 저 녀석은 덕을 많이 쌓은 것이 분명했다.

이름 : 혜소(Lv:70)

현재 능력 : ○○○●●

잠재 능력 : ○●●●●

※ 상세 정보 확인 가능.

현재 능력 4에 잠재 능력 8.

혜소의 레벨보다 잠재력이 더욱 놀라웠다.

‘상세 정보 좀 보자.’

남천휘는 혜소의 상세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 적응7, 야망1, 충성1, 인내9.

녀석의 붙임성을 보면 적응7은 놀랄 수치가 아니었다. 또한 동생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강호를 헤맸으니 인내심도 범인과 다를 터였다.

‘아, 저 놈과 야망만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없겠네.’

동생을 찾는 것이 일생일대의 소원이라던 녀석이 아닌가. 그런 녀석의 야망이 1인 건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신공부의 무인이 되겠다고 찾아온 놈의 충성이 1인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걸까.

‘나 때문이구나.’

잠깐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혜소는 신공부와 접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발전에 참가한 이유는 자신과 함께 하기 위함일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외부에 알려진 바로 신공부는 즉 철귀협이 아니던가.

실상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혜소는 유엽도를 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 보면 저 유엽도는 용봉쟁투의 예선을 뚫을 때 처음으로 쥐었던 병장기일 터였다. 관리를 하지 않아서 군데군데 녹이 슨 유엽도가 허공을 갈랐다.

쉭쉭쉭쉭쉭!

남천휘는 집중했다.

혜소는 도법이라고 칭하기도 어색할 만큼 흐느적거렸다. 그는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적이 없으니 이상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래도 많이 늘었네.’

이제는 제법 칼질처럼 보였다.

게다가 혜소는 내공 위주의 극단적 성장을 이룬 상태가 아니던가. 어설프게 받아넘기려 했다가는 병장기째 으스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끄음.”

동주림주가 침음을 흘렸다.

그는 붓을 만지작거리다가 남천휘에게 물었다.

“철귀협과 아는 사이라면 통을 줘도 무방하겠군요.”

그게 도대체 무슨 기준인데?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돌리니 왕학과 왕인방도 동주림주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그 순간 묘수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 저들은 모르잖아!’

저들은 혜소의 폭발적인 성장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것 또한 알지 못했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신상내력과 눈으로 본 몇 초식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거기에 인맥과 명성이 더해지면 평가는 더욱 올라갈 터였다.

그 말인즉슨 잠재능력이 아무리 높더라도 인맥이 없고, 현재 능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발탁이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닌가.

‘내가 싹쓸이를 하자.’

남천휘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심사는 공! 정! 하게 봐야지요.”

제법 일침 같은 한 마디였다.

심사를 지켜보던 불계산이 감복한 듯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남천휘의 목소리는 참가자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컸다.

저들이라고 눈이 없고, 귀가 없을까.

능력이 부족함에도 뽑혀나가는 자들을 보며 속으로 칼을 갈았을 터였다.

남천휘는 자신을 보고 감탄하는 참가자들의 눈빛을 즐기며 말을 이었다.

“오늘 일에 신공부의 미래가 걸렸습니다. 유가의 정신과 무가의 뿌리가 될 동량지재를 뽑아야 합니다. 다들 피곤하실 텐데 잠시 쉬었다가 하시지요.”

적당히 받아먹은 값을 했으면 제대로 하라는 일침이었다.

동주림주는 노기로 인해 얼굴을 붉혔다.

그것은 곧 그가 가장 많은 뒷돈을 받았다는 증거이리라.

“크흠. 알았소. 64번 혜소! 불통이오.”

불계산이 슬쩍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귀협의 제안대로 잠시 휴식을 하겠소. 여러분! 뒤뜰에 음식을 마련해뒀으니 요기를 채운 후 다시 선발전을 이어가도록 합시다.”

남천휘는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럼 이만.”

그가 단상에서 내려오는 순간 수백 명의 참가자들이 숨을 죽였다. 그만큼 남천휘의 기세는 칼을 간 것처럼 서늘했다.

하나 남천휘는 연무장을 떠나는 순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나도 판을 깔아볼까?’

그는 가장 먼저 별원으로 향했다.

검후와 천수련이 머무는 별원에는 두 사람의 비무가 한창이었다. 외인의 수련을 지켜보는 것은 생사가 결정될 만큼 커다란 무례였다.

하나 남천휘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탈각진체법을 얻어 배울 때부터 천수련은 관람을 허락하지 않았던가.

채채채채채채챙!

두 사람의 검이 어지럽게 뒤엉킨다.

검후에게 전해지던 천수검이 아니라 평범한 장검을 사용했다. 그렇기에 내력을 배제한 채 초식의 묘만 겨뤘다.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문 채 초식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불똥이 쉴 새 없이 튀며 쇳소리만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두 사람 다 탈각진체법을 익혔으니 굳이 대화할 필요가 없겠지.’

다행히 두 사람의 비무는 길지 않았다.

잠시 후 천수련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등장했다.

서늘한 겨울바람마저 빗겨간 것처럼 싱그러운 모습은 마치 봄을 예고하는 듯했다.

하나 남천휘에게는 비 맞은 중처럼 처량해 보일 뿐이다.

“왔어요?”

“수련은 끝났어?”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는 나쁜 남자.

천수련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네.”

“할 일 있어?”

제 할 말만 하는 나쁜 남자.

천수련은 반항적인 눈빛으로 대꾸했다.

“네. 지금 생겼어요.”

“뭔데?”

남천휘의 시큰둥한 물음에 천수련은 말없이 입술만 삐죽였다.

‘너, 너, 너, 너! 이 말똥구리야!’

천수련은 앓느니 죽는다는 심경으로 말했다.

“왜요?”

“나랑 같이 가자.”

그래도 함께 하자는 말에 꽁꽁 얼었던 마음이 살짝 풀렸다.

“어디로 가는데요?”

남천휘는 천수련이 다가서자 슬쩍 물러났다.

“일단 씻고 와. 그 꼴로는 힘들어.”

*

“다시 선발전을 시작하겠소!”

왕인방의 외침에 참가자들은 다시 연무장에 모였다.

동주림주는 그 사이 무슨 위로라도 받은 듯 처음의 거만한 모습을 되찾았다. 한데 그는 심사 자리에 앉은 후 미간을 좁혔다.

“저 아이가 왜 저기에 있소?”

왕학과 왕인방도 뒤늦게 연무장 입구를 바라봤다.

통과자와 탈락자에게 명패를 나눠주는 자리였다.

한데 오전에 있던 무인을 대신해 천수련이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어! 화협이 아닌가.”

“과연 듣던 대로 미색이······. 쿨럭.”

왕인방은 넋을 놓았다가 뒤늦게 헛기침을 했다.

남천휘는 마지막에 착석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 명패를 담당하던 무인은 탈이 났다는군요. 하여 제 친구인 화협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안 될까요?”

동주림주는 흔쾌히 수락했다.

“허허, 아니외다. 검후의 제자가 이 자리의 격을 높여주는군.”

“그러게 말이오. 검후의 제자가 명패를 건네준다니 참가자들에게는 아주 기억으로 남겠어.”

남천휘는 모든 걸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누구를 높여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미녀의 등장 때문이었을까.

참가자들의 목소리와 몸짓이 커졌다.

마치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활활 불태우는 참가자들이 속출했다.

하나 남천휘는 참가자의 신상내력을 살피고, 정보창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네, 잘 봤고요. 제 점수는요.”

예기치 못한 한 마디에 참가자는 눈을 끔뻑였다. 또한 심사 위원들도 통과 불통을 고민하다가 남천휘를 바라봤다.

‘갑자기 무슨 점수를······.’

하나 남천휘는 참가자의 장단점부터 거론했다.

적응, 야망, 충성, 인내를 기반으로 참가자가 펼친 무공을 살폈다. 이미 레벨과 능력 수치, 경험만으로도 또래에 따를 자가 없지 않던가.

그렇기에 남천휘의 평가를 반박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제 점수는 삼 점입니다. 그리고 불통 드릴게요.”

왕인방은 자신이 적은 통(通) 앞에 슬쩍 불(不)을 덧붙였다.

그만큼 남천휘의 식견은 놀라웠다.

하나 그가 심력을 허비해 참가자를 평가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탈락이 확정된 참가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모았다.

“누구도 제가 이처럼 애정 어린 조언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 철귀협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그렇게 참가자들의 통과와 탈락이 결정됐다.

하나 남천휘의 평가가 시작된 이후 참가자들은 불합격을 했어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하는 표정을 보이거나, 울먹거리는 자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강호는 폐쇄적이다.

‘좋아, 아주 눈에서 꿀이 떨어지겠어.’

남천휘는 방금 불통을 준 참가자의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윤석명, 레벨 44.’

하나 현재능력이 3인 것과 달리 잠재 능력은 7이다.

게다가 적응, 충성, 인내가 훌륭했다.

‘넌 내가 찜했어.’

윤석명은 남천휘의 욕망 어린 눈빛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연무장 입구에 섰다.

신공부는 탈락한 자에게 여비를 지원해줬다.

그러니 탈락 명패라도 받아둬야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을 터였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그는 한 숨을 쉬다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수련이 환하게 웃으며 명패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정말 소문처럼 기품 있고, 아름다우시구나.’

윤석명은 얼굴을 붉힌 채 손을 내밀었다.

“가, 감사합니다.”

천수련은 소매로 입을 가린 채 미소를 보였다.

“별말씀을요. 윤 소협의 시연, 잘 봤어요.”

“하찮은 실력으로 화협의 눈을 더럽혔군요.”

윤석명은 부끄러움에 황급히 자리를 뜨려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선발전의 명패에는 통과 불통이 새겨져 있을 터였다. 한데 그가 받은 명패에는 남(南)이라는 글자만 존재했다.

“어, 이건 뭔가요?”

천수련은 빙긋 웃었다.

“아직 윤 소협의 기회는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문을 나서시면 왼쪽으로 별채가 있답니다. 그곳에서 대기하시면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윤석명은 기회라는 말에 눈을 빛냈다.

뭐가 됐든 약자에게 있어 기회란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과 같았다.

“감사합니다.”

천수련은 윤석명이 떠난 후 다시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꽃단장을 하라고 해서 풍광 좋은 곳에 놀러가는 줄 알았다. 한데 그녀는 남의 집 잔치나 다름없는 선발전의 명패 소녀가 되어 시간을 축내야 했다.

그 때 남천휘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장 소협! 초식의 흐름이 마치 박자를 타듯 자연스럽군요. 제가 지금껏 봤던 참가자 중에 최고였어요.”

천수련은 나직이 한 숨을 흘렸다.

‘신났네. 신났어.’

하나 남천휘는 이내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한데 힘이 부족하군요. 검을 내뻗을 때의 모습은 좋지만, 마무리가 무뎌요. 그렇게 하면 손목에 무리가 갈 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습니다. 제 점수는요.”

천수련은 자세를 바로 했다.

남천휘가 ‘제 점수는요.’라고 말한 참가자에게는 남이라고 새겨진 명패를 주기로 말을 맞추지 않았던가.

천수련은 남천휘가 만든 명패를 쥔 채 눈을 흘겼다.

‘저 말똥이 놈!’

잠시 후 어깨를 축 늘어트린 참가자가 다가왔다.

천수련은 풀 죽은 참가자를 향해 인상을 쓸 만큼 못된 여인이 아니었다.

“기운내세요. 아직 장 소협의 기회는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응원하기 위한 한 마디였다.

선량한 그녀였기에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나 그것이야 말로 남천휘가 바라던 한 마디가 되기에 충분했다.

“별채로······.”

*

선발전이 끝났다.

그리고 수백 명 중 칠십 명이 뽑혔다.

저들은 금일부터 병장기와 무복을 지급받고, 숙소를 배정받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간의 소양 교육을 거친 후 신공부의 무인이 될 터였다.

“신공부의 내일은 그대들에게 달렸네!”

“함께 정의로운 강호를 만들어보세!”

“내 처소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어.”

남천휘는 합격자들의 환호성을 뒤로 한 채 별채로 향했다. 연무장을 떠나는 순간 합격자들에 대한 기억은 지운지 오래였다.

그는 별채에 발을 들이자마자 미소 지었다.

“철귀협.”

혜소를 비롯한 오십 명의 무인들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남천휘에게 공수했다.

남천휘는 포권을 하며 저들을 눈에 담았다.

병장기와 무공, 그리고 레벨까지 제각각인 자들이다.

하나 저들의 잠재 능력은 최하 6이었다.

남천휘가 적응, 야망, 충성, 인내까지 평가하여 고르고 골라낸 유망주들이 아닌가.

‘후훗, 시작은 미약할지언정 끝은 창대하리라.’

남천휘는 될 성 부를 떡잎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여러분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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