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59화 (159/305)

73, 항아리.

73, 항아리.

환마소혼검법(幻魔召魂劍法).

이것은 남천휘에게 있어서 계륵 같은 무공이다.

명칭에 떡 하니 마(魔)가 적혀 있지 않던가.

무적자가 된 이상 마공을 익힌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하나 남천휘는 천하를 피로 뒤덮으려는 마두가 아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환마소혼검법이란 익히기는 껄끄러웠고, 버리기는 아까운 존재였다.

“하아, 사람 참 곤란하게 만드네.”

남천휘는 손을 좌에서 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알림창이 밀려나듯 우측으로 사라졌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몸을 돌리지도 않았다.

대놓고 와서 찾아보라고 하는 상황이 아닌가.

차후에 포기를 하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으려면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 나을 터였다.

팟-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 창고의 전경이 들어왔다.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이건 뭐······.”

창고의 크기가 그를 압도했다.

그리고 그는 압도당했다.

창고는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게다가 깊이 내려온 만큼 좌우로 올라가는 길이 따로 존재했다. 그리고 수많은 선반과 서고에는 병장기와 서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휴우.”

창고의 내부는 마치 거대한 조직이나 방파의 보물창고를 연상케 했다.

그렇기에 더욱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넓은 제연평에는 오직 제룡장(帝龍莊)이라는 낡은 장원이 전부였다. 신마대전을 종식시킨 정천칠공의 한 사람인 제룡검야의 고향임을 제외하면 어느 곳 하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평범했다.

그리고 검후의 친우이자, 제룡장의 주인은 마을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촌노(村老)였다.

레벨은 검후처럼 200을 넘긴 듯했다.

하나 서고를 가득 채운 서책과 초라한 몰골을 보면 지혜 쪽에 수치가 집중됐을 것이 분명했다.

그 뿐 아니라 제룡장에 머무는 수십 명의 무인과 하인들을 통틀어도 눈에 띄는 자가 없었다. 호위랍시고 있는 무인 몇 명도 70에서 100레벨 사이였다.

한데 그런 곳의 지하에 이런 대단한 창고가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신공부주도 몰랐겠지.’

하지만 나는 알지.

자! 강철의 접촉술사께서 나가신다.

남천휘는 먼지가 쌓였고, 거미줄이 쳐진 물건들을 하나씩 쓰다듬었다. 육안으로 확인하고, 내용물을 살펴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200, 350, 330, 410, 150······.’

물품을 확인하며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눈앞에 떠올랐다.

남천휘가 지닌 +5짜리 천하도와 제일도의 가치는 각기 250이다. 반면 영웅 등급인 질풍뇌격궁과 마린보의의 가치는 각기 600과 800이다.

그러니 조금 전에 지나친 410짜리는 제법 훌륭한 물품이었다. 오랜 세월 먼지 속에 있었음에도 예기(銳氣)가 사리지지 않았을 만큼 잘 벼려진 검이 아닌가.

하나 퀘스트 용품은 아니었다.

‘아깝지만.’

남천휘는 검을 지나친 후 창고 내부를 거닐었다.

이곳에 있는 병장기만 무진철원에 내다 팔아도 은자 백만 냥은 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새삼 제룡장의 장주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는 창고를 열어달라는 검후의 말에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허리춤을 뒤적거리며 열쇠를 건넸을 뿐이다.

그러며 말하더라.

창고에 있는 물품은 제룡검야 시절에 모은 것이고,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주인 잃은 물품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제룡장주 역시 창고의 가치를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제룡장주의 눈동자는 맑은 호수와 같았고, 머리 위에 떠 있는 레벨의 색은 짙은 파랑이었다. 그저 분수에 맞게 살라는 조상의 뜻을 따를 뿐이라고 했다. 자신의 삶과 방식은 다르지만, 참으로 존경스러운 위인이었다.

‘하지만 위험해.’

제룡장의 창고가 외부에 알려진다면 나쁜 마음을 품은 자들이 몰려올 터였다. 강호인은 무공과 보검을 차지하기 위해 가족마저 저버리는 무정한 존재가 아니던가. 어쨌든 흔쾌히 창고를 열어준 만큼 위험에 대해서 경고정도는 해줘야겠다.

‘강호가 평화롭다고 해서.’

강호인까지 평화를 찾는 건 아니니까.

그러던 중 남천휘의 두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물건이 등장했다.

평범한 도신과 투박한 손잡이.

하나 도신은 피를 머금은 것처럼 은은한 적빛을 흘렸다. 분명 사마외도의 누군가가 피를 잔뜩 먹여놓은 듯했다.

‘축복받은 확인서.’

《혈야마견도》

- 혈야의 독문병기(가치: 980)

- 강기의 발현을 보조합니다.

- 무기 등급 : 영웅

혈야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하나 무기로 강기를 논한다면 초절정의 고수가 아닐까 싶다.

‘어쩐지 피 냄새가 난다 했어.’

남천휘는 쓴물을 삼킨 것처럼 미간을 찡그렸다.

살짝 쥐고 있는 것만으로 음습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런 것이 강호에서 흔히 말하는 마병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980인데도 영웅이라면······.’

아마 전설 등급은 천 이상이 아닐까?

하나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까지 강기조차 구경하지 못했으면서 전설의 가치를 운운하는 건 시기상조였다. 게다가 땅속을 오래 거닐었더니 몸이 축축 쳐지는 듯했다.

실제로 체력 수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어디에 있느냐?”

남천휘는 탐색의 속도를 올렸다.

그러던 중 가장 깊숙한 곳에서 예기치 못한 물건을 발견했다.

누군가 반죽이라도 한 것처럼 울퉁불퉁한 철통이다.

한데 항아리의 형태를 하고 있기에 시선을 끌었다.

“내부도 철로 채워졌네.”

이런 물건이 평범할 리가 없다.

남천휘는 조심스럽게 항아리를 매만졌다.

‘이거 맞네.’

철로 만든 항아리의 가치는 무려 700이다.

남천휘는 항아리를 들고 이리저리 흔들어봤다.

일견하기에도 환마소혼검법의 병장기는 아니었다.

잠시 이리저리 살피다가 인벤토리에 넣어버렸다.

띠링-

그 순간 재이가 퀘스트의 완료를 알려주었다.

◎ 봉인된 항아리를 획득했습니다.

◎ 퀘스트 ‘B급 보도’가 완료되었습니다.

아!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봉인이 된 물건을 얻었으니 풀라고 징징 거릴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 어째 쉽게 풀린다 했어.”

남천휘는 혀를 차며 축복받은 확인서를 건드렸다.

《봉인된 항아리》

- 청염진군과 제룡검야가 봉인한 항아리.

- 묵철로 만들어졌다.(가치: 700)

- 물품 등급 : 영웅(英雄)

※ 자체 퀘스트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 확인 시 수락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제룡검야의 창고에서 제룡검야와 관련된 물건이 등장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하나 청염진군(靑炎眞君)은 또 누구란 말인가.

‘설마 정천칠공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제룡검야의 앞자리에 등장했다는 건 배분이 같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항아리를 봉인한 당사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남천휘는 시야에 환마소혼검법을 띄워놓고 항아리와 번갈아 바라봤다. 환마소혼검법의 경우 아직 등록만 해놓고 상세 내용조차 펼쳐보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익힌 것과 궤가 다르다보니 재이가 선택지를 준 듯했다.

‘환마소혼검법이라······.’

그가 이 검법에 관하여 아는 사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황도쌍노는 환혼검이라고 했지.’

강호칠대금문 중 한 곳인 자하림의 비전이라 했다.

황도쌍노는 쌍검술이었던 환혼검을 익히기에 자질이 부족했을 터였다. 그렇기에 한 쪽씩 나눠서 합격술을 펼치지 않았던가.

한데 천수련을 통해 환혼검의 연원(淵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때 제천검귀의 일지환혼검법이라 했으니.’

오래 전 자하림의 림주였던 제천검귀는 쌍검으로 무위를 자랑했단다.

여기까지가 세간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남천휘는 무공총람을 응시했다.

하나 눈앞에는 환혼검이나 일지환혼검법이 아니라 환마소혼검법이라 적혀 있지 않던가. 시기적으로 청염진군과 제룡검야가 제천검귀보다 전시대였다.

그러니.

‘저게 진짜겠지.’

남천휘는 항아리를 만지작거리다가 바닥에 새겨진 희미한 글자를 발견했다.

마봉파(魔封破).

마를 봉인하고, 깨트린다는 구절이다.

이쯤 되고 보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안에 뭐가 들었을지······.’

남천휘는 이마를 긁적였다.

정보의 부재로 인해 곤란을 겪을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다.

아직도 강호에 대하여 아는 것이 너무 없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쑥스러울 지경이다.

남천휘는 결심을 한 듯 항아리를 옆구리에 낀 채 창고를 나섰다.

‘진지하게 하오문이나 개방을 찾아가서 정보라도 사야 하나?’

*

제룡장주와 검후는 시야 끝까지 펼쳐진 제연평을 바라보며 마주앉았다.

“풍광이 참으로 좋군요.”

“클클, 허허벌판에 뭐 볼 게 있겠소이까.”

천응검후 천술녀(天戌女)는 뚜껑을 살짝 들고 찻잔을 기울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으니까요.”

그녀의 한 마디는 여러 가지를 담고 있었다.

다향을 음미하던 제룡장주는 나직이 한 숨을 흘렸다.

“작금의 강호가 마음에 들지 않나보오?”

“검후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클클, 그럴 리가 있겠소. 검후란 단순히 검을 잘 쓰는 여인에게 붙여지는 별호가 아니라오. 당대의 검후는 결코 선대에 뒤지지 않소이다.”

천술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말만이라도 고맙네요.”

그러자 제룡장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은근슬쩍 한 마디를 건넸다.

“걷다가 힘들면 쉬는 것이 삶의 도리요. 지칠 때면 언제든 찾아오시구려. 말년에 마음이 맞는 남녀가 함께 하는 것은 흉이······.”

하나 그는 검후의 싸늘한 눈초리에 말끝을 흐려야 했다.

“아이가 있는데 못하는 소리가 없으시군요?”

천수련은 시중을 들다말고 배시시 웃었다.

“두 분의 인연을 알고 있는데 어찌 이상하게 여기겠어요. 저는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시고······.”

하나 검후의 싸늘한 눈빛에 천수련도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물이 식었네요. 제가 뜨거운 물을 가져올게요.”

제룡장주는 다 식은 찻물을 호호 불며 마시기 시작했다.

“쯧, 내가 수작부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거늘. 왜 이렇게 민감하신가? 환절기라 그런가?”

검후는 천수련이 사라지자, 으르렁거리듯 말을 이었다.

“좀 닥쳐요! 애들 보기 민망하지도 않아요?”

“다 늙어서 남의 눈치나 보는 것이 더 민망하겠네.”

제룡장주는 이번에도 말끝을 흐리며 식은 차를 들이켜야 했다.

검후는 그런 제룡장주를 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정천칠공과의 인연은 후대에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제룡장주와 검후의 관계는 더욱 돈독했다. 그러니 강호를 등진 제룡장주가 검후에게만은 흔쾌히 모든 것을 내어주었으리라.

“내가 창고도 열어줬건만······.”

제룡장주는 미련이 많은 남자였다.

“쯧, 사내는 늙어도 사내라더니. 어찌 옛 모습이 하나도 안 변하셨소?”

“클클, 우리 나이에 변하면 죽어.”

“됐어요. 당신이 죽기 전에 강호에 사달이라도 나지 않기를 비시구려.”

제룡장주는 찻잔을 내려놨다.

“그렇게 심각한가?”

검후는 절강과 산동을 비롯해 동부 지역 전체를 오랫동안 떠돌았다. 그런 그녀가 그렇게 느꼈다면 무시하기 힘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평화로운 강호가 맞아요. 몇몇 위선자의 작태야 전과 다를 바가 없고, 사마외도의 잔당들도 매한가지지요. 한데 모르겠어요. 뭔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잡히지가 않아요. 마치 안개 같은 무언가가 강호 전체에 퍼져 있는 듯해요.”

“그래서 무림맹에 가려는 겐가?”

검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겸사겸사 검후의 위신도 세우고요.”

“잘도 그러시겠군. 그나저나 정말 뭔가가 있다면 통문이라도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제룡장주의 말에 검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아니에요. 갑자기 정천칠공의 후예가 나선다면 무림맹을 비롯한 구파가 경계할 겁니다. 괜한 진흙탕 싸움은 피하고 싶어요.”

“언제든 말만 하시게. 내가 자네를 위해 못할 일이 어디 있겠어?”

검후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고마워요. 뒷말은 빼고.”

두 사람이 오랜만에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던 중 천수련이 남천휘와 함께 나타났다.

제룡장주는 마치 금지옥엽처럼 키우던 딸을 빼앗긴 아비처럼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저 호랑말코 같은 놈은 누구지?”

“누군지도 모르고 창고를 열어줬어요?”

“당신이 열라면서.”

검후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쩌면 그분이 보내준 마지막 선물일 수도 있는 아이지요.”

제룡검주는 경악을 금치 못한 듯 눈을 부릅떴다.

그는 남천휘를 뚫어져라 응시한 채 나직이 한 마디를 흘렸다.

“자네 아이인가?”

검후는 천수련과 남천휘가 눈치채지 못하게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좀!”

하나 제룡장주의 눈은 남천휘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항아리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저걸 골라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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