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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158화 (158/305)

72, 용봉삼협은 여기까지!

72, 용봉삼협은 여기까지!

◎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

남천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해.”

그렇게 하찮은 퀘스트를 뒤로 한 채 걸었다.

잠시 후 또 하나의 퀘스트가 발동했다는 알림이 이어졌다. 그러나 퀘스트 창이 뜨기 무섭게 거절하는 것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안 한다.’

남천휘는 여전히 시야 한 구석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새해맞이 특별 행사’ 창을 노려봤다. 연말 특별 행사는 반나절만 했으면서 새해맞이 행사는 십일 동안 계속된단다. 이건 누가 봐도 자신을 욕보이기 위한 조잡한 협잡질이 아니겠는가.

그래서였을까?

연말 행사를 통해 영웅등급의 보상품을 십여 개나 받았지만, 흥이 나지 않았다.

이겨도 진 듯한 찝찝함.

그렇기에 남천휘는 B등급 무작위 보급 상자를 비롯한 보상품을 인벤토리에 박아둔 상태였다.

“아! 생각하니까 또 짜증이 난다.”

남천휘는 인상을 쓴 채 걸었다.

그러자 신공부 내를 오가던 이들이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했다. 신공부가 재편되면서 철귀협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것처럼 드높았다. 퀘스트의 보상으로 인해 산동성 내에서는 수위에 꼽힐 만큼 유명했다.

그러면 무엇 하겠는가?

‘철귀협을 어떤 놈이 제일 먼저 얘기한 거지?’

작명에 재주가 없으면 알아서 빠졌어야지.

남천휘는 세상만사가 불만인 사람처럼 투덜거림을 그치지 않았다.

그 때 신공부의 말단 무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남천휘를 발견했는지 목소리를 낮췄다.

“어, 철귀협이다. 이 기회에 인사라도 나눠볼까?”

“어허, 큰일 날 소리. 요즘 철귀협의 어깨가 태산처럼 치솟았다는 소문도 못 들었는가? 신공부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차지한 채 밤낮으로 술을 마신다잖아.”

남천휘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태산처럼 치솟기는커녕 사기를 당해서 전답을 날린 사람처럼 축 쳐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건가.

하나 저들을 붙잡고 변명하는 것도 우습다.

말단 무인의 대화는 계속됐다.

“사내가 술을 즐기는 것이 어때서?”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지. 마치 자신의 땅을 감상하듯 웃고, 울었다네.

“울었어?”

안 울었어! 그냥 울부짖었을 뿐이다.

가슴을 데인 것처럼, 눈물에 베인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 때문에 괴로웠단 말이다.

“어쨌든 철귀협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사람이야. 철의 밝음과 귀의 어두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더군.”

“하긴 철귀협의 모략에 전대 신공부주가 그냥 개처럼 짓밟혔잖은가.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다르겠군.”

철(鐵)도 싫고, 귀(鬼)도 싫다.

아, 호도도 싫다.

남천휘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도대체 멋들어진 별호는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 건데? 천하를 뒤집으려는 일당이라도 발본색원해야 할까?’

◎ 정답입니다.

남천휘는 재이가 말을 덧붙이려는 순간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입 다물라. 아직 화 안 풀렸다.’

한데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끊겼다.

가란다고 가니까 더 열 받네.

‘두고 보자!’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는 법.

언제고 때가 올 것이다.

남천휘는 재이가 한 번만 뽑아달라고 애걸하는 날을 머릿속에 그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날이 맑다.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어쨌든 해가 바뀐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며칠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남천휘는 성소의 등록을 끝냈고, B등급 공백지의 주인이 됐다. 그리고 그 순간 신공부에 등록된 수많은 퀘스트가 여기저기서 발동했다. 하나 쓸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천휘는 허공을 노려보며 씹어뱉듯이 읊조렸다.

“너 때문에!”

그는 허공을 응시한 채 움직이면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신공부를 차지한 이상 특기 ‘유지’가 상시 발동됐다. 그렇기에 시야 상단의 지도를 보면서 걷다 보면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신공부의 북쪽 출구는 인적이 드물다.

한데 정자에는 선객(先客)이 존재했다.

한 자루의 칼처럼 날카로운 기세의 사내와 보호본능을 일으킬 만큼 가냘픈 여인이 마주한 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공태령과 천수련이다.

‘아······.’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구도에 발을 들이기 껄끄러웠다.

마치 방해꾼이 된 것 같았다.

그렇기에 발소리를 죽인 채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나무와 수풀을 방패막이 삼아 나아가는 순간 저절로 특기 ‘은신’이 발동했다.

이내 두 사람을 이 장 거리에 뒀다.

남천휘는 천수련의 등을 노려보며 서서히 접근했다.

저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이 어찌나 꼴배기 싫은지 모르겠다.

‘분위기를 제대로 깨주겠어!’

그 순간 공태령과 눈이 마주쳤다.

‘엇!’

다행히 공태령은 별다른 기색 없이 천수련과 대화를 이어갔다. 만약 남천휘가 통찰을 발동시켰다면 공태령이 주먹을 쥐었고, 목울대의 떨림이 달라졌음을 인지했으리라.

하나 남천휘는 산통을 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중이었다.

“이제 제 얘기는 그만 할까요?”

“호호, 제가 너무 말이 많았나요.”

얼씨구. 아양 떠는 것 좀 보게.

누가 보면 개똥이가 아니라 고양이인 줄.

공태령은 누가 봐도 시선을 고정할 만큼 환한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만사가 귀찮다며 투덜거릴 때보다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 지금의 모습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천 소저는 제연평에 가신다고요?”

“네, 제연평 주변에 마적떼가 나타났데요. 아무래도 산동에서 날뛰던 흑도 패를 소탕했더니 외지에서 악인들이 몰려오나 봐요.”

“검후와 천 소저께서 가신다면 손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천수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을 텐데······. 산적처럼 근거지를 두고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라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척후를 두고 움직일 만큼 조심스러운 자들이거든요.”

공태령은 탄성을 흘렸다.

“아! 그렇다면 남 소협에게 부탁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네?”

“천 소저도 아시다시피 남 소협에게는 묘한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기와 달리 재주도 많고요. 아마 마적 떼의 이동경로 정도는 쉽게 발견하지 않을까 싶군요.”

이놈아! 칭찬이냐? 악담이냐?

한데 천수련은 쉬이 대꾸하지 않았다.

단언컨대 지금쯤 입술을 삐죽이고 있으리라.

“됐어요. 며칠 전부터 넋이 나간 사람 같아요. 분위기도 못 맞추고, 술을 옷에 뿌리기나 하고. 그 뿐인가요? 이상한 별명을 붙여서 부르는 통에 스승께서 매번 물어보신단 말이에요. 개똥이가 뭐냐고······.”

“후훗, 두 사람은 참 사이가 좋아 보입니다.”

공태령의 한 마디에 천수련은 손사래를 쳤다.

“좋기는요! 남 소협하고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져요. 바보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천 소저의 마음을 알아줄 겁니다.”

“흥! 기대하지도 않아요. 알고 그러는 거면 얄밉고, 모르고 그러는 거면 더 짜증나!”

공태령은 쓴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너무 어렵게 가지 마세요. 남 소협은 의외로 모자란 구석이 많은 분이니까요.”

야! 이 새끼야. 악담 맞네.

남천휘가 벌떡 일어나려는 순간 천수련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정도는 아니랍니다. 그냥 생각할 것이 많아서 그럴 거예요. 요즘 보면 전답이라도 날린 사람처럼 공허해보이거든요. 며칠만 푹 쉬면 다시 뭔가를 해낼 거예요.”

공태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어쨌든 남 소협과 상의해보세요. 길이 열릴 겁니다.”

“헤헤, 백협이 이렇게 애틋하게 귀협을 보살피니 화협은 질투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지 진짜 말해주지 않을 거예요?”

“네.”

그는 단호한 한 마디가 미안했는지 말을 덧붙였다.

“용봉삼협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더니 대뜸 남천휘가 있는 곳을 향해 손짓하는 것이 아닌가.

“그만 훔쳐 듣고 나오세요.”

남천휘는 몸을 더욱 웅크린 채로 호흡을 멈췄다.

나오란다고 나가는 것만큼 비참한 것이 어디 있으랴. 하나 공태령의 뒤이은 한 마디에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야 했다.

“머리가 보입니다. 덩치라도 작아야 숨겨지지.”

“그, 그랬냐?”

남천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수풀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공태령을 배웅하기 위해 나선 길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산통은 나중에 깨기로 하고, 배웅에 전념하고자 했다.

“그래, 짐은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뭐가?”

“머리가 보인다는 말이요.”

“이 새끼가!”

아! 속마음이 그대로 나와 버렸구나.

그런데 미안한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공태령은 남천휘의 한 마디에 피식 웃는 것이 아닌가.

녀석의 웃음은 한겨울의 꽃과 같다.

그러니 봐주도록 하자.

하나 공태령은 끝까지 남천휘를 가만 두지 않았다.

“짐은 이미 마차에 넣어뒀고, 남 소협이 챙겨준 여비도 잘 쓰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싶었던 순간 마차가 등장했다.

잡티 하나 없는 두 마리의 백마가 마차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훤칠한 체구의 마부가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와아! 이걸 남 소협이 사준 거예요?”

천수련은 코딱지만한 눈을 최대한 깜빡였다.

마치 자신의 애절한 눈빛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아, 그래. 내가. 마련해줬지.”

새삼 수천 냥을 뜯겼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근래에 뒤통수를 연달아 맞았더니 바보가 되기라도 했나 보다.

남천휘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천수련의 이마를 밀어냈다. 그리고 마차에 타는 공태령을 배웅하듯 한 마디를 건넸다.

“가라! 강해져서 돌아와라.”

공태령은 옅은 미소를 보였다.

“돌아올 생각 없습니다.”

뒷말은 전음으로 들려왔다.

[그러니 혹시나 제가 생각난다면 섬서의 여산으로 보세요. 거기 화청궁의 절경이 아주 끝내준답니다.]

천하의 백협이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내가 거기를 왜 가냐?

그렇게 공태령이 떠났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용봉삼협은 여기까지인 줄 알았다.

*

“아! 이건 뭔가요?”

남천휘는 수십 명의 마적 떼를 앞에 두고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천수련이 혀를 살짝 빼물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미안해요. 마적 떼라고 해서 수십 명인 줄 알았는데······.”

남천휘는 미간을 좁힌 채 이마를 긁었다.

“하아, 내가 너랑 얽히는게 아니었어.”

공태령을 떠나보내고 재이에게 복수할 기회만 엿보던 때였다. 천수련은 남천휘를 찾아와 마적 소탕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공태령의 조언을 받아들인 게다.

하나 남천휘는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신공부 내에서 할 일을 정리하면 몇날며칠이 걸려도 부족할 터였다.

새로운 신공부주로 추대된 노국장주의 취임식도 구경해야 했고,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과도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뿐 아니라 퀘스트의 보상을 얻은 아이템과 수치를 분배하여 성장을 도모할 시기였다.

하나 결국 따라나섰다.

‘하필 무작위 보급상자에서 보도가 나와 버리네.’

B급 보도(寶圖)의 보상품이라면 영웅등급의 물품일 것이 뻔했다.

한데 등급에 비해 난이도는 낮았다.

제연평의 창고에 나뒹굴고 있는 물품을 가져오면 끝날 만큼 손쉬웠다.

- 마적 떼를 없애주게. 창고를 개방하겠네.

검후의 호언장담에 신이 나서 마적떼를 뒤쫓았다.

어차피 적도가 등장하는 순간 낮은 등급의 퀘스트가 등록되지 않던가. 그렇기에 지도상에 표시된 붉은 선을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이미 몇 번이나 남천휘의 능력을 지켜본 천수련은 놀라지 않았다. 하나 검후 천술녀는 단순히 의기가 드높은 후기지수로 여겼던 남천휘의 능숙한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강호에서 손꼽히는 명숙에게 칭찬을 받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으랴.

하나 남천휘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마적떼를 앞에 두고 천수련을 향해 이를 갈았다.

“벌써 이백 명은 넘게 조졌겠다. 한데 저건 또 뭐야? 내 일당이 얼마인지나 알아? 며칠 동안 씻지도 못했다고. 이걸 어떻게 보상할 거야?”

천수련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애절한 자세를 취했다.

“저는 아무 것도 없어요. 맨몸뚱이가 전부라고요.”

남천휘는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됐다. 네 작달만한 몸을 가져다 어디에 쓰랴.”

“칫! 찾아보면 어딘가에는 쓰겠지요.”

천수련의 되바라진 반발에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그래. 쓸 곳이 생각났다.”

그리고 마적떼를 가리켰다.

“가라! 개똥아.”

두 사람이 제연평으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삼 일이 더 지난 후였다. 그리고 검후는 호언장담했듯 제연평의 주인을 설득하여 창고를 개방했다.

남천휘는 거미줄을 걷어내며 힘겹게 창고에 들어섰다.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던 듯 사방에 먼지가 가득했다.

“땅을 얼마나 판 거야?”

남천휘는 창고의 내부를 살피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분명 한 점의 빛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어두운 장소였다. 한데 시야 한 구석에서 무언가 반짝거리고 있지 않은가.

‘무공총람이 왜?’

남천휘는 별 생각 없이 무공총람을 건드렸다.

그 순간 두루마리처럼 무공창이 펼쳐지며 등록된 것들이 나타났다.

“어.”

등록만 해놓고 건드리지도 않았던 무공이 반짝였다.

《환마소혼검법》

- 전용 병기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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